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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광풍에 묻지마투자를 하다가
그나마 쥔 돈을 날려버린
슬픈 이야기는
최근 새롭게 인기를 끄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90년대에 이미 주식으로 망한 사람,
광고전화만 믿고 땅샀다가
망한 사람,
지인에게 돈빌려주고
떼인 사람,
보증서 주고 빚진 사람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는 사람들이
계속 합류하고 있습니다.

큰돈 벌려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
다 날리는 것에 대한
대책도 없이
사람들은 실패 후 또 실패하고
후회하고 망각하고
긴 행복은 포기하고
순간적인 즐거움에만 기대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학비가 무료인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할수있는기회에
감사할 줄 모르고
겉으로 대단해 보이는데
신경쓰는 아주 많은 학생들은
내면의 성숙이나 남다른 실력은
기르지 못하고
내면의 공허함을 숨기고
가난을 숨기고 게으름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능력주의, 실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비판이고,
개인의 게으른 삶에 대한 비판은
비판대로 강하게 해야하는 것이,

실컷 놀고는
무언가 이루어져 있기를 바라거나,
배터지게 먹고
날씬하기를 바라거나,
특별한 행운에만 기대어
매일의 삶을 비참하게 사는 것
모두 게으른 본성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잘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죠.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니라 그저 수저형상으로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지혜로 도금하는
숙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다른사람들이 그저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쓰고 버리게
해서는 안되게
나약해 보이지말고
아무 생각없게 보이지 말아야합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의
가볍지만 잘 부러지지 않는 특성은
살아남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나 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외에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계산이 떨어집니다.
사라져야 주변 사람들이 덜 고통스럽다고
느낀다면 그런 이기적인 삶을
이어나가는 것의 의미는
단지 존재함으로 됐다는
것에 부합이 가능할까요?



물론 다른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을
권리도 없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사랑을 받지못해 슬프기도 했으며,
때론 남에게 신세를 지고
어려움을 겪는 남을 돕기도 하며
사는 삶이며
나를 돕지 않는 사람을
저주하기보다는
내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내 자신부터 반성해야겠습니다.

주변에 휘둘리지않고
물질적인 치장에서 멀어지고
거저얻은 행운을 자랑하지않고
바라지도 않는다면
플라스틱 수저의 삶도 충분히
의미있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금수저는 남들이 달려들어
녹여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쓸려고 하겠지만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것이
플라스틱 수저입니다.
살아남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유연함까지 지닌 플라스틱 수저로도
충분하겠습니다.

물론 자신을 재활용분리수거함에
던져버리지 않는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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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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