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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에 맞서기

 

 

경제학자 우석훈은 [민주주의는 직장 문 앞에서 멈춘 다] 라는 책 (2019.1. 한겨레출판사)으로 이른바 갑질 이라는 우리 사회 직장 내 민주주의의 수준을 고발했다. 저자 우석훈은 책 발간 인터뷰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직장 민주주의란 말이 국내에서는 용어 자체부터 낯설 수 있다. 요즘 등장한 직장 갑질이란 말과 비슷 하기도 하다. 직장 갑질이란 말이 직관적으로 더 와 닿 고 어감이 주는 통쾌함도 있지만 직장 갑질은 그 문제 를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사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 나아가 사회 구조 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 거기에 초점을 두고자직장 민주 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직장 내 비민주적 문화의 원인으로 군대식 병영 문화의 잔재를 꼬집었다.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군대식 문화가 한국에 뿌리내려 일본보다 더 한 병영 사회가 되었고 그 문화 가 직장을 비민주적인 집단으로 만든 것이라고 분석 했다.

일상이나 직장에서 단 한 명이라도 꼰대가 있다면 생활이 불편해진다. 보통 겸손한 사람들을 꼰대의 꼰대 짓을 참아낸다. 꼰대가 늘 꼰대 짓을 하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이기적인 꼰대는 오로지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 하고,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겸손한 사람은 꼰대와 같이 행동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 참고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꼰대의 잔소리가 자주 들리고 길어질 수록 주변 사람들은 지칠 수 밖에 없다.

일부 언론이 코로나19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였던 꼰태적 행태는 같은 국민이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자신들만이 오로지 선이고, 정부가 하는 일 은 무엇이든 틀렸으며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아 나라 가 망해간다는 논리였다. 겸손한 약자라도 이런 독선 적인 꼰대들을 입 닫게 하려면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 는 안 된다. 꼰대 짓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당신들 때문에 미치겠다 고 말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꼰대가 있는 직장에서 도망 칠 준비를 해야 하고 가족 내 꼰대에게서는 최대 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

사람이 늙는다고 전부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삶 안에서 머무는 것을 편안 해한다. 가난한 시절을 겪은 노인들은 늙어서도 여전히 가난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그저 돈과 물건을 모으기만 한다. 가족보다 자신을 위해 살았던 노인은 늙어서도 주변 사람들이 병든 자신을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기만을 바란다. 젊어서 이기적이었던 사람 은 나이 들어도 여전히 이기적이며 젊어서 꼰대가 늙어서 도 꼰대가 되는 것이다. 늙은 꼰대라 외면 받기 싫다면, 당장 지금부터 꼰대에서 탈출해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꼰대로 사는 이로움은 별로 없다. 꼰대가 안 되는 가장 기본적인 수칙은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내가 안 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남을 보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 것 이다.

 

 

하지만 멘토는 필요하다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으며 끊임 없이 자기 개발을 하라는 조언을 담은 책들이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왜 이런 잔소리 같은 책들이 아직도 팔리고 있을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중요한 삶의 포인트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값진 조언을 해 줄 멘토를 필요 로 한다. 세상이 변했지만 사람의 삶은 과거나 현재나 유사한 점이 있다. 먼저 경험하고 살아온 세대의 실수 담와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기록하고 재열람한다. 그리고 먼저 경험한 멘토도 본인 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지혜를 공짜로 알려주려고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젊은 세대가 무조건 잔소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겠 지만, 젊은 세대 중 똑똑한 일부는 가끔 일부러 찾아서 라도 잔소리를 듣고자 한다. 비록 맞을 때 따끔하고 때론 아나필락시스 같은 부작용도 겪을 수 있는 백신 같은 잔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꼰대는 싫지만, 이들 에게도 여전히 실수를 줄여줄 멘토는 필요한 것이다.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불쑥 꼰대 짓부터 나오는 사람이라면 꼰대가 아닌 멘토 역할을 위해 다음에 설명 할 중요한 차이를 기억해야 한다.  

엄연히 멘토는 꼰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꼰대는 오로지 자신의 의견만이 맞고 자기 외에 모든 사람은 틀리다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일은 사실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게 마련이다. 적어도 최신상 등산 로프는 아니라도 썩은 동아줄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멘토는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 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이다.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틀림을 인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겸손한 사람이자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

 

꼰대는 아무리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라도 상대방을 윽박지르며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애기만 한다. 때로는 자신이 꼰대 임을 인정하기도 하며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따라 오기를 강요한다. 누구도 웬만치 급한 사정이 아니면 꼰대를 믿고 따르려 하지 않는다. 멘토는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태도로 배려한다. 아무리 백 번 천 번 맞는 이야기라도, 윽박 지르며 가르치려 한다면 계속 참고 들을 사람은 없다. , 차분히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는 것 하나 없고 경험치 하나 없으며, 세상사 아는 바 하나 없다는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으로 상대를 설정하고 대한다면, 정말 중요한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지혜의 가치를 꼰대 스스로 저 밑바닥으로 던져버린 셈이 된다. 단지 뼈를 치는 옳은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 아니라 상대를 무시하는 예의 없는 태도가 싫은 것이다.

 꼰대는 늘 같은 말만 반복하고 별 뾰족한 수도 없지만, 멘토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꼰대는 오로지 좁은 경험에만 비추어 강압적으로 이야기한다. 꼰대는 어느 상황에서나 문제를 다 해결하는 신통방통 한 방법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멘토는 경우에 따라 유연한 자세를 취하며 가능한 조언을 한다. 자칭 지혜의 샘인 꼰대가 그저 못난 꼰대로 만 남는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말을 쏟아내면서 정작 남의 말은 듣지 않아 발전이 없어서 다. 멘토는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다른 시각을 통해 검증하고 비판하고 확신에 대해 의심을 가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자가 발전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법도 쌓아간다. 꼰대는 금새 밑천이 드러나고 만다.

 꼰대는 잔소리에 의미를 더 할 행동은 없이 말만 쏟아내나, 멘토는 말에 따른 행동으로 말의 가치를 높인다. 여러 이유를 들어 주식 투자를 하라고 권유하지만 정작 꼰대 본인은 주식 투자로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는 상황이라면 누가 그 말을 귀 기울여 듣겠는가. 꼰대는 주장 뒤에 감추고 숨기는 것이 있다. 그래서 더욱 말보다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공부하라는 말을 한다. 자녀 들은 부모가 하는 공부하라는 말이 잔소리로 들린다. 이 잔소리를 듣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개 는 잔소리로 흘려 듣고 만다. 왜냐하면 부모는 항상 공부 좀 하라는 말을 하지만 자신들은 공부는커녕 책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하루 종일 힘들게 일 하고 돌아와 저녁에 쉬고 싶은 마음에 티비도 보고 게임이라도 잠시 하고 싶어한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했던 하지 않았던 학교에서 또는 학원에서 하루 종일 나름 한다고 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또 공부하라는 말은 퇴근한 직장인에게 집에서 일 더 하라는 말과 같다.

  밖에서는 대단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정작 집에서는 누워 있기만 한다면 자녀들에게 부모는 늘 피곤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들은 의외로 영리하다. 부모가 매일 쏟아 내는 말보다 부모가 일상적으로 보여주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 행하는 행동을 기억하고 따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를 걱정 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대부분 성인 중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확히 알고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아야 해서 우연히 하게 된 일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다. 운 좋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성인 중에서도 정작 소중한 가족과 관계 쌓기는 뒷전인 사람도 많다. 사람 마다 각자 할 일을 찾는데 필요한 시간이 다를 수 있고 목표나 욕망으로 나타나는 개인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 컸다고 큰소리 치는 자식이 저 필요할 때 도와 달라 다가와 손 내밀 때, 눈을 맞추며 손을 내밀어 줄 준비면 되지 않을까.       

비록 부모가 자식을 위해 애쓰고 산다는 것을 당장 철없는 자녀가 잘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자라서 부모가 진심으로 열심히 살았음을 알아주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순간까지는 꼰대 부모보다는 멘토 부모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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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꼰대 백신

 

늙은 꼰대 뿐만 아니라 젊은 꼰대까지 너무 많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꼰대들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 사회가 일상에서 보편적인 민주주의를 원하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특유의 자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넘치는 학부모들의 요구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일종의 꼰대 문화는 공교육 에서 먼저 바뀌기 시작했다. 교내에서 사제간 혹은 친구 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적 문화가 시도되고 있고 이어 가정에서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을 받는 분위기가 정착 되어가고 있다. 아쉽게도 여전히 일부 사학에서 이런 권위주의적인 문화, 꼰대 문화의 잔재를 확인하는 사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꼰대 나 꼰대 짓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꼰대에 무뎌 지는 것은 곧 나도 꼰대가 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움에 더듬이를 세워 슬쩍 쳐다보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몸까지 돌려 다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남의 불행을 통해서 찾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찾고,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돌이켜 보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꼰대의 자기 확신과는 완전히 다르며 오히려 자아 성찰의 과정 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을 향해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볼 줄은 모르면서 주위 사람들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사람을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다시 또 인간사의 키워드가 역지사지, 입장 바꾸 어 생각하기로 귀결됨을 느낀다.

 

 

 

안티 꼰대 펭수 열풍

 

 

교육방송EBS의 연습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자이언트 펭수는2019년에 처음 등장하여 아이돌 스타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린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통령 뽀로로가 펭귄이라는 점과 클레이 애니메이션 핑구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라는 점에서 펭귄이 가진 귀엽고 안정감 있는 매력을 펭수가 이어 나가고 있다. 남극 대륙에 사는 펭귄은 영하 60도의 험난한 환경에도 정장을 잘 차려 입은 듯한 모습을 하고, 수영을 잘하는 어류 같지만 조류로, 엉뚱함과 반전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가 펭귄이다. 2000년대 생으로 첫 마디를 떼기 전부터 만화 뽀로로 를 보고 자란 세대가 2020년 경에 이르러 대학생이 되고 취업을 걱정 하는 세대로 성장한 모습을 연상시키 는 펭수는 스스로 열 살이라고 말하며, 같은 EBS 소속 스타인 뽀로로와 선 긋기를 하는 쿨 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펭수는 EBS 사장인 김명중의 이름을 부르며 이름이 존함이 아닌 서로를 부르는 호칭임을 잊고 있었던 우리 사회에 모든 사람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 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을 시켜주었다. 펭수는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 되는 겁니다라며 당연한 소리를 당당하게도 하였다.

아픈 청춘을 조롱한다고 까지 일부에서 평가받는 모 작가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꼰대를 대표하는 문장 으로 써 먹히자 펭수도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아니죠. 그쵸? 그러니까 힘 내라는 말 보다 저는 사랑해 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고 후련 하고도 따뜻한 조언을 한다. 펭수에 열광하는 사람들 은 펭수가 보여 주는 모두가 동등한 인격적 포지션에서 혐오가 아닌 진심 어린 할 말을 하는, 즉 안티 꼰대의 정신에 열광 한다.

젊은 꼰대도 펭수처럼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주장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젊은 꼰대 는 자신보다 높은 사장에게는 극 존칭하고 자신보다 아래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쉽게 반말을 하는 큰 차이 가 있다. 펭수는 김명중 사장을 회사 동료 부르듯 자신도 그렇게 불러 주기를 원한다. 펭수는 무엇을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고 하물며 자칫 강요로 들릴 듯한 행복 하세요, 힘내세요 보다는 서로 사랑합시다 홧팅 같은 짧은 인사로 각자 알아서 잘하자는 메시지 를 던진다. 젊은 꼰대는 자신 만이 묘수를 알고 있으며 모두가 자신의 말을 따라야 좋을 것이라는 지극히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주변에 강요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 의 서클 안 멤버들 외에는 모두가 자신들의 밑이라고 무시한다.   

자신의 생각을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꼰대와 젊은 나이에 꼰대가 되어 아래 위 세대를 모두 비난하는 젊은 꼰대들에 모두 저항하는 안티 꼰대의 유행은 펭수의 인기와 또 뒤이어 등장할 또 다른 안티 꼰대 캐릭터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안티 꼰대 전유성

 

  70대 코미디언 전유성의 활약상을 티비에서 본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가 책이나 방송에서 한 말을 통해 그저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이 있다.   

2020년 한 방송에서 전유성은 난 꼰대지만, 꼰대가 아니고 싶다. 그러려면 뭔가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그래서의 재료를 찾으러 몰타에 간다라고 말했다. 전유성에게 업그레이드란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리고 20대나 30대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이 없다며 같은 나이 대라고 말이 잘 통하지 만도 않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이 안 통하리라는 법도 없다고도 했다. 70이 넘어 영어를 배우겠다고 몰타라는 곳으로 떠나 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그의 전유성의 말을 들으며 먼 곳으로의 여행이나 해외에서 장기 거주를 하고 싶을 때 바로 계획하고 실행할 만한 그의 용기와 여유가 부럽기도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만 끝나 면 뭐 못할 것도 없다 싶다.

작년에 여행에 관한 책을 출간하면 근사한 여행지 에서의 추억이나 알짜배기 여행 정보가 아닌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법에 대한 내 책에 관심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여행도 못 가고 사는 일상에 화만 내고 투덜거리기 보다는 매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처럼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고작 주변에서 건네는 잘 다녀 왔냐는 인사말을 기대 하며 거액을 쓰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변한 것이 통장 잔고뿐이라면, 그 동안 못한 소비를 한 번에 치르고 주변에 돈 쓴 자랑하려고 한 여행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목돈을 쓴 해외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스트레스 투성이지만 꾸역 꾸역 돈을 위해 사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도돌이표 삶 을 굳이 선택해 사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었다. 여행이 정말 휴식과 쉼표를 위한 것이었다면, 매일 억지 아부 를 하고 또 인상 쓰며 서툰 신입에는 꼰대 짓 해 번 돈을 어쩌다 하는 여행에 소비하기보다는, 일상에서 더 이상 시달리지 않고 감사할 수 있음이 필요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달을 모아야 가능한 목돈을 쓰면서 다녀온 여행이 정말 휴식과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소비를 과시하고 또 여행지 에 대해 아는 척 하며 아직 여행 떠나지 않은 사람의 여행에 대해 이미 다 아는 듯 평가를 하는 꼰대 짓을 위해서 라는 솔직한 여행의 이유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비싼 돈이 드는 여행만큼 아는 척 꼰대 짓 리스트에 포함 시킬 만한 소재도 없다.

일상에서 여행 기분을 느끼는 방법을 찾은 나는 계속 글을 쓰고 꾸준히 출판도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워낙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에게 까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일은 잘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가끔만나게 되는 그들을 더욱 반갑게 그들을 맞이한다. 더욱이 젊은 여행자들이 대부분이라 그들의 생각을 듣고 한국에서 느끼는 기분을 따라 느끼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나이 대가 비슷하다고 말이 잘 통하지만은 않는다는 전유성의 의견에 공감하는 것이, 어쩌다 새로운 동갑 친구를 만나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아쉬움을 종종 느껴 왔다.

아이들 학교 모임에 나가면 참석하는 학부모들의 나이 대가 아주 다양하다. 내가 삼십 대 시절에 만난 사십 대 학부모들과 어울림이, 지금 내가 사십 대가 되어 만나는 오십 대 학부모들과 어울림과는 완전히 다름을 느낀다. 아이가 같은 나이라면 엄마들 간의 십 년 나이 차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금새 친구가 되었 고 마음을 터 놓았지만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사람 들조차 사십 대에서 오십 대로 들어서며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오십 대는 본격적으로 꼰대 노년기로 발을 들여놓는 문턱이다. 그들이 변했다기 보다는 더 이상 변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꼰대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또 다른 유명인인 60대 방송인 배철수는 이런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배철수는 과거에는 섹시한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꿈이 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고약한 늙은이는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배철수가 말하는 고약함이란 아마도 타인과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충고를 하거나 고집 을 피워 자기 주변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태도를 말할 것이다. 바로 꼰대이다.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이 두 사람이 인기에 따라 자만했었더라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뉴스 사회 면에서 여러 번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두 사람의 실제 생활을 내가 알 수는 없으나 오래 방송을 해 오면서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본심에 꼰대가 숨어 있었다면 그 꼰대는 예고 없이 툭툭 튀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꼰대가 되지 않고 싶다, 고약한 노인이 되지 않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적어도 꼰대가 안 되고자 노력은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찐 꼰대는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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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꼰대 유형

 

젊은 꼰대가 보이는 행태 중에는 오로지 자기 경험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꼰대가 있다. 자신이 대단한 경험을 해 왔고 자신이 겪어왔던 경험만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 면서 충고하고 지적한다. 늙은 꼰대가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경험을 가진 것에는 늙은 꼰대들의 경험을 축소 시키거나 별 의미 없다고 치부한다. 젊은 꼰대들은 자신들이 가진 작은 경험을 부풀려 인식하고 과장하여 떠벌린다. 수다의 소재를 위해 정작 별 관심도 없는 것 에 대해서조차 경험이 있다 자랑하고 별 것 아닌 경험 을 별 것으로 포장한다. 오직 자기 경험에만 의지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꼰대는 젊은 꼰대 에서도 많이 나타나지만, 기성 꼰대에서도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 중 하나이다.

이들은 사회와 직장에서 마주치는 기성 세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자신들이 흉내내는 꼰대 짓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다. 마치 따돌림 폭력에서 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경찰에 고발하고 언론에 호소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어를 하지만, 가해자 중 한 명이 되었을 때는 그저 장난이 었고 놀이였는데 왜 그렇게 정색을 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젊은 꼰대를 소개할 때 등장한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 역시 기성 세대나 남이 꼰대 짓을 했을 때는 비판 받아 마땅한 행동이지만 자신이 했을 때는 웃자고 한 농담이었다며 그 무게를 달리한다. 이처럼 젊은 꼰대는 자기 중심적면서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늙은 꼰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인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예의 즉, 권위에 대한 순종적인 태도를 말하는 싸가지를, 때로는 능력이나 재능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때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젊은 꼰대 중에는 성차별적 인식을 가지기도 하는데 특히 외모를 지적하는 유형이 있다. 말투, 표정, 태도뿐만 아니라 옷차림이나 화장 등의 외모를 지적을 한다. 성형 수술을 했어도 혹은 성형 수술을 안 했어도, 비싼 옷을 입던 싼 옷을 입던 모두 자신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 나면 싸잡아 비난한다. 자신이 성형을 했으면 성형을 안 한 못 생긴 사람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고, 자신이 성형을 하지 않았다면 성형 하지 않은 잘 생긴 사람만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 유형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성 세대보다 젊은 세대 의 꼰대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의외로 일반 사람들이 많이 겪는 유형이라고 한다.

젊은 꼰대의 유형에서 가장 흔한 유형은 바로 꼰대 짓을 출신 대학의 서열부터 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들은 수능 성적과 학벌-출신학교가 증명하는 성적 지상주의가 세상의 모든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거기에 정규직 직장인 혹은 전문직 종사자 임을 부각하며 자신이 남다른 성공을 이룬 사람임을 자랑 한다. 성적이 곧 능력이라는 등식을 주장하며 세상의 다양한 가치와 제각기 가치 있는 능력을 전부 무시 하고 오로지 십 대 시절에 얼기 설기 완성된 가치관이 이십 대와 삼십 대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멍청하다는 비하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공부를 못하거 나 멍청하면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주장 한다.

자신보다 높은 서열의 학벌자들에 고개 숙이고 낮은 서열 학벌자들을 무시하는 등 학벌 서열주의에서 오는 차별의 전형성을 보인다.

그리고 학벌에 이은 또 한 가지는, 부모 배경을 이용 하여 자신을 과대포장 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족의 재산을 자신의 능력인 양 자랑하는데, 부자인 집에서 자라 혜택을 입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기회를 가졌고, 더 넓은 경험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발언에 스스로 애써 무게를 두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과 아무 연관도 없는 가족 재산 에 자신의 성숙도를 이어 붙여 상대에게 충고와 지적을 하는 유형도 있다. 그리고 가족이나 학벌을 매개로 알게 된 인맥 등을 자랑하며 자신이 유명한 누구와 동급 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 을 높이는 동시에 동료나 하급자들의 지위를 내려다 보며 비교하고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는 다.

 

 타인을 향해 멍청하다는 인격적 비난을 자주하는 젊은 꼰대는 타인의 사생활에도 참견 하기를 좋아하는 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적인 취약점을 헤집어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논리에 사용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거기에 부정적 상상을 덧붙여 자신의 차별적 논리를 뒷받침하는 도구 로 사용한다. 연애 경험이나 가족사 등 지극히 개인적 인 부분을 상대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실수를 부풀려서 떠벌린다.

특히 직장 관계에서 자신이 마치 상담 전문가 혹은 심령술사처럼 어려움을 겪는 약자에게 개인적으로 다가 가 사생활에 대해 캐묻고 약점을 알려고 하는데, 이는 꼰대의 일차원적 호기심에서 나온 유치한 행동일 뿐 이다. 겉으로는 위로하고 조언하는 것처럼 하며 상대방 의 민감한 비밀을 반드시 지킬 것처럼 말하나 이는 사적인 호기심을 채우고자 하는 천박한 본능일 뿐이다. 결국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호기심을 위해 약자가 숨기고 싶은 부분을 기어이 고백하게 만들려는 변태적 꼼수인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고백을 강요하는 꼰대에게 상대적 약자는 결국 속사정 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고백을 망설이는 약자를 도리어 비난하며, 친히 걱정 해주는 꼰대를 불신하는 태도를 도리어 비난하는 일도 벌어 진다. 결국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사적인 비밀이 퍼지게 되는데, 꼰대의 입에서 시작하여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사실이 왜곡되거나 자극적인 부분만 편집 되어 악의적으로 퍼지는 일이 비일 비재하다.

꼰대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타인의 약점을 쥐고 싶어하며 개인적 약점을 알고 있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 임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이런 성향의 꼰대는 주로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과대포장 하거나 철저히 방어적으로 나오는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여행이나 외식, 쇼핑 등 과시적 소비 자랑을 하는 사진을 자주 게시하기도하고 지인들의 과시적 사진에 관심을 보이고 신경을 많이 쓴다.

 

젊은 꼰대 중 의외로 여성들중에서 남성 중심적 군대 문화인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상명하복 문화는 정당한 논리나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직장 상사나 선배가 낮은 직급의 직원 혹은 후배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막무가내로 공적 혹은 사적인 지시를 하는 것인데, 업무의 효율이 떨어지고 유대감이 저하되는 등의 부작용이 크다. 그럼에도 상사들은 자신 이 가진 권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에 일방적인 지시를 한다.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금새 알게 되는 것이 업무 능력인데, 업무 능력이 부족한 상사가 자신의 결점을 감추려고 상명하복 문화를 선호 하기도 하고, 업무 능력은 있으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사가 엉뚱한 데에 화풀이 하려고 약자들이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모습을 즐긴다. 대게 이런 경우 직장 내 모든 업무 구조가 비효율적이며 그런 회사는 성장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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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의 육하원칙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꼰대들의 육하원칙을 보면 사람 들이 진저리를 치는 젊고 늙은 꼰대들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at 네가 뭘 안다고 그래?

Where 어딜 감히?

When 나 때는 말이야,

How 어떻게 나한테!

Why 내가 그걸 왜?

원조 꼰대라는 말과는 또 다른 성격의 젊은 꼰대는 꼰대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권위의 불합리성을 거부하면서, 비슷한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고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일방 통행적 형태로 나타난다. 늙은 꼰대들이 하는 꼰대 짓을 따라 일방적 인 주장하기를 복사, 갖다 붙이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꼰대라는 말을 모든 나이든 사람이나 기존 권위, 지혜를 전부 부정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기본적 으로 평등한 인간 관계에서의 기본 예의나 배려에 대해 서조차 거부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젊은 꼰대란 결국 편협하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드러난 현상 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열이 뜨거운 우리 사회에서 중간에 낙오하지 않고 고등 교육을 이수해내고 나면, 아무리 시험을 위한 배움이었다고 하더라고 그 지식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가치관 체계 형성이 마무리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학생들은 기성 세대가 가진 지식이 우습게 보일 만큼 지식적으로 가득 충전이 되어 자신감에 차 오른다. 그러나 책으로 배운 것과 달리 옆에 곁에서 눈으로 본 현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현실 간의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이 짊어진 현실적인 약점과 어려움을 파악한 약삭빠른 젊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 늙은 꼰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도 꼰대가 되는 길이 무시 당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빠른 길이 라 잘못 배운다. 여기에는 자라면서 길러온 도덕적 가치관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어떤 과도한 자기확신적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비록 그것이 허황 되어 보이고 그 허황된 확신에 의문이 들면서도, 뭐가 있으니까 저러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해 그들 에 동조 편승의 기회를 가지려고도 한다. 남다른 확신 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의 이유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에서 온 것일 뿐인데 말이다. 자기 확신이 초래한 결과가 범죄라고 하더라고 사람들은 그런 놀라 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신봉하기도 하는데 독재자나 연쇄 살인자를 추종하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기치는 사기꾼들을 대단한 사람이라 경외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알지 못하는 너무도 많은 일을 받아 들여야 하는 삶의 과정에서 누군가 남들이 하는 대로, 앞 세대가 했던 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는 꼰대 짓을 익숙하게 따라 하고 또 누구는 꼰대 짓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젊은 꼰대의 특징

 

1. 온라인에서 날개를 펴는 젊은 꼰대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이들은 현실에서의 미성숙한 모습을 감추고 특정 집단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감,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자신 만의 경험을 가진 듯 기성 세대를 흉내 낸다. 일단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 현실과 달리 나이가 드러나지 않아 서로 간의 나이차에 따라 불공평한 예의 범절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 이 존재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과 또 반대로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무시당하지도 않는 새로운 경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신선한 여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또한 악용 되기 쉽다. 관심과 인기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들의 범죄와 유사한 행동도 하거나 여론 조작 알바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와는 좀 다르 지만 클릭수가 돈이 되는 현재, 젊은 꼰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금전적 대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를 하는 자기 확신화 과정에 있다고 보인다.

 나쁜 것부터 따라 한다고, 나쁜 것이 나쁘지만 빠르 게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기기도 한다. 매일 주목 받는 온라인 뉴스 기사 아래에 그럴 듯한 분석과 한 마디를 달며 자신의 댓글이 상위 순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젊은 꼰대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기사를 제대로 다 읽지도 않은 채 베댓(베스트 댓글) 놀이에 빠져 아무 말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편집된 근거나 거짓 주장을 그대로 증거로 끌어와 덮어 놓고 정치권을 비판하거나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과 여성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형태가 가장 흔하다.  조금 더 지능적으로 전문가, 유명인, 시사 평론가들의 말을 일부만 따와 근거로 제시하거나 자신만의 생각 인 양 써 먹기도 한다. 인터넷 정치 뉴스 기사 소비가 가장 많은 40대 이상 남성이 댓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그들은 젊은 꼰대 이자 기성 꼰대 라고 볼 수 있다. 언론사 성격마다 댓 글의 성격도 다른데, 기존 신문 등 전통적인 언론을 뜻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댓글에 차별과 혐오 표현이 많이 있는 것은 쉽게 확인 이 된다. 

20대 30대가 많이 보는 시사 이슈 아래에 달린 댓 글에도 역시 편견과 혐오 표현으로 가득한 데, 언론사 특성에 따라 그 성격이 따라 간다고도 볼 수 있다. 젊은 꼰대가 차별과 혐오 표현을 자주 쓰는 댓글러들 이라고 단정하기 보다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치적 선호도가 바탕에 깔린 대부분의 시사 이슈에 대해 굳이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의견인지 다른 사람 들의 의견을 가져온 것인지 조차 구분이 안 되는 내용 을 남 가르치듯 단정적으로 적는 댓글러들을 바로 꼰대라 규정하고자 한다.

그들의 마치 나는 다 아는 데 니들은 아직도 모르냐 는 태도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그런 확신을 가지는 지 에 대해서 설명 없이 그냥 자신이 맞는 것이라고 알겠 냐며 문제에 대해 단정을 짓는다. 마치 일등으로 정답 을 맞춘 것처럼 퀴즈에서 순발력 자랑하듯 냉큼 조언을 던지고 가는데 아마도 다시 돌아봐 여러 번 자신의 댓 글 순위를 확인할 것이라 생각한다.

늙은 꼰대가 대부분의 인생을 소비하며 단단하게 쌓은 가치관이자 편견을 젊은 꼰대는 어디서 눈치로 보고 배워 마치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마냥 꼰대 짓을 흉내 낸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내공과 경험 치를 가진 마냥 정치와 사회 이슈에 관해 기막힌 해법 을 아는 척SNS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쓴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와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주장하며 혐오 댓글에 조차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과거의 역사나 사건을 선택적으로 수용해 온 사람은 골치 아픈 통찰의 과정 없이 일부 만을 부각해 주장 하거나 아예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 환경의 이전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려고 한다.

 

  

< 포털 댓글 통계를 통해 본 젊은 꼰대 경향 >

 

네이버에는 언론사의 선택에 의해 어떤 기사를 클릭했고 댓 글을 쓴 독자들의 연령과 성별 정보를 볼 수 있게 한다.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만약 내가 어떤 글이나 기사에 댓글을 쓰면 40대 여성의 그래 프가 조금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요 화나요 추이와 댓 글 작성자 비율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 지만 얼추 비슷하다는 가정에서 추측해 보면, 젊은 꼰대 들의 활약 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혼란스러웠던 2020 3, 세계보건기구 WHO가 한국의 상황을 두고 고무적인 조짐이라고 밝힌 기사(연합뉴스)에서 좋아요 보다 화나요 가 100배 이상 많은 클릭수를 얻었다. 30대 남성이 가장 많이 작성했다는 댓글 중 에는 WHO가 중국 정부 지원을 받는다며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과 다음 선거까지 예상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보이는 댓글에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기존 시스템을 전부 부정하고 그래 봐야 소용 없다는 회의적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면서 기존의 특정 정당을 찍어야 한다는 의견은 앞뒤가 안 맞는 내용 이었다. 캐쥬얼한 댓글 창에 논리적인 의견을 게시 하기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으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장을 열어 준다면 과연 얼마만큼 앞 뒤가 충분한 주장을 펼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 점이 생긴다.

또한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국의 확진자 수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연합뉴스 2020 3) 20 30대가 많이 클릭한 뉴스로 순위에 올랐는데 거기에는 관계없는 중국을 비난하는 의견이 많았으며, 확산의 원인이 중국과 중국인에 있다는 논리를 주장 하였다.    

젊은 꼰대는 온라인 댓글을 통해 과시적 모습을 드러 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누구라도 느꼈을 법한 혐오 표현이나 차별적 발언을 얼마 가지 못해 관심이 사라지는 댓글 창에다가 매달아 관심을 받으려는 시도 역시 딱 그 정도의 일시적 과시와 관심의 소비만 바라는 행동으로 읽힌다.

네이버는 2020 3월 부터 댓글러들이 그들이 기존에 썼던 댓글 내용 목록을 일괄 공개 전환했고 댓글을 쓴 사람이 과거 어떤 식의 댓글을 쓰고 혐오나 차별 표현 을 지속적으로 써오고 있는 지가 드러났다. 네이버의 변화가 결코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더라도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에서 댓글러들의 이력을 공개 하면서 댓글의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모든 이슈에 대해 화풀이를 하거나 빈정거리 고 차별이나 혐오를 드러내는 해당 댓글러의 반사회적 성향과 그 성향의 일관성이 드러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여론 이라고 여겨졌던 댓 글의 일부를 이제는 이상한 사람이 쓴 이상한 글로 무시해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댓글 숨기기 기능이 유용하다.  

네이버에 댓 글을 쓴 사람의 신상 정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매일 많은 댓글을 달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주로 은퇴하거나 직업이 없는 장년 노년층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사회적 관계 맺음에 실패 했거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층의 글이라는 가능성도 적지 않다.

 

 

 

 

2. 젊은 꼰대가 처한 어려움

 

저성장

때로는 굶기도 하며 살았다는 베이비 붐 세대 이후, 굶지는 않고 자란 세대와 2000년대 이후 경제적 혜택과 더불어 민주적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 중에서도 젊은 꼰대가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일명 밀레니얼 세대만을 특정 지어 젊은 꼰대 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나 2000 년대 초반에 태어나 2020년 현재 20대 초반 세대 만을 지칭하기 보다는80년대와 90년대 후반에 태어 나 저성장 경제와 정부의 노동 시장 유연화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는 세대 에게서 젊은 꼰대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본다.

이들은 이전 그 어느 세대보다도 경제 혜택을 누리고 자랐으며, 태어나면서부터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 디지 털 환경이 자연스러우며 가난과 차별을 덜 겪은 축복 받은 세대 같지만, 저성장 구조에서 취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N포 세대라는 말에서 보 듯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삶의 과정들이 이 세대 에게는 선택과 포기로 생략되고 있다. 출산을 포기 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세대로부터 부여 받은 경제적 혜택을 미래의 가족 을 위해 나누거나 포기하는 대신 자신만을 위한 혜택의 최저선을 유지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개인 의 선택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고도의 경제 성장에 필연적으로 뒤 따를 저성장, 아날로그와 디지털 로의 전환이라는 변혁을 거친 이들의 성장 배경은 이들 세대만이 보이는 독특한 특징을 만들어 내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이다. 이들은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이며 전형적인 나르시 시스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게 이어져 왔던 남아 선호 사상이나 장남 독식 가족 구조에서 차별을 받아온 지난 세대와는 또 다르게 딸도 가족 내에서 차별적 대우를 거의 받지 않고 자랐 고 또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이 배우고 창의적이라 평가 받는다. 그래서 오히려 일부 젊은 남성들은 역차별이라 는 피해 의식을 가지기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양극화된 취업 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을 겪고 있는 세대인 이들은 애매하게 끼인 세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부모 세대 보다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이기적 인 기성 세대는 이런 젊은 층의 어려움을 최대한 이용 한다.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차이

 

늙어서 심심해서 한다는 꼰대 짓을 젊은 세대가 하고 있다. 강한 자기 확신으로 타인에게 일방적 주장을 펴는 점은 양 세대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세대 중 젊은 꼰대 역시 무엇보다 자신을 우선시 하며, 그 누구보다 자기 주장 이 강한 세대이다. 비록 모두가 앞으로 밝지만은 않은 경제 상황에서 살아 가고 있지만 나이든 꼰대들에게는 찬란한 전성기 시절 이라는 과거가 있다. 마치 젊은 꼰대들에게 작은 성취나 존재감만으로 주변의 박수를 받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앞에서 말했듯이 늙은 꼰대가 젊어서부터 꼰대 였던 가능성이 크듯이 유독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꼰대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 그리 특별한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한편, 같은 꼰대 일지라도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꼰대 짓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 늙은 꼰대는 자신보다 아래이거나 모자라다 고 생각하는, 특히 철없는 젊은 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젊은 꼰대는 위-아래 모두에게 자신이 우월하다 강조한다.

• 늙은 꼰대는 현실 어디에서나 흔하게 존재하지만, 젊은 꼰대는 가상 세계에서 더 자주 존재감을 보인다.

• 늙은 꼰대에게 꼰대 짓은 생활이지만, 젊은 꼰대에게 꼰대 짓은 놀이이다.

•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공통점은 돈 혹은 성공이 전부라는 속물적 근성이 강하다.

 

 

 

 

 과거 문화에 빠진 젊은 꼰대들

 

 

젊은 꼰대는 개인 정보 즉 연령과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꼰대 짓을 한다. 기사를 읽다 쭉 내려 댓 글을 보게 되면 거기에는 자신은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다며 깔 보듯 훈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오프라인 세상에서 흔하게 보는 늙은 꼰대 짓이 온라 인 세상에서 벌어진 것 같다. 그리고 젊은 꼰대들은 자신들보다 더 어린 세대 혹은 같은 세대 위에 군림 하기 위해 지난 세대의 문화를 굳이 즐기기도 하는데, 바로 정치와 음악이다.

무료한 노인들이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를 통해 탑골 공원으로 모일 때, 젊은이들은 이른 바 온라인 탑골 공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SBS는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과거 프로그램인 인기가요에서 방송되었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영상을 올렸고, 이어 그 가수들의 노래를 기억하는 세대와 처음 접하는 세대 모두에게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해당 채널은 개설 후 구독자 수 18만 명을 넘어섰다. 해당 채널에서는 실시간 채팅이 가능하여 영상에 출연 한 가수들이나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그 채팅 창에 쏟아지는 이야기를 통해 젊은 꼰대들은 논리를 뒷받칠 자료를 보충하기도 한다.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온라인 탑골 공원 가요의 인기가 레트로 문화 소비의 한 형태로 읽히기도 하나, 젊은 꼰대들은 예전 세대의 가요를 보고 들으며 이 가요를 모르는 더 어린 세대, 혹은 이런 가요에 대해 잘 모르 는 사람들과의 선 긋기를 시도한다.

젊은 꼰대들은 사회가 양분되는 이념의 대립에 흥미를 느끼며 과거의 정치 문화에 대해도 관심을 가지고 지식 주워 담기를 하는데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 방향에 대해 주목하기보다는 과거 정치권에서 인기를 끌었거나 자극적인 선동을 했던 정치인과 정치 사건에 관심을 보인다. 나이 먹은 정치인들이 과거의 정치 사례를 마치 역사 속의 교훈인 양 인용하고자 하는 데 과거 정치인의 이름을 인용하거나 주요 사건을 들먹이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민주 정치사를 제대로 관통해서 이해 한다면 앞으로의 흐름 역시 다양성의 확대와 약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생각하는 것이 당연 하나, 꼰대들은 자신의 논리 보충을 위해 부분 지식 조차 선택적으로 차용 한다. 어떤 정치 사건의 전후 맥락과 배경에 대한 충분 한 이해 없이 단편적인 이해는 또다시 그러한 사건이 반복되는 실수를 예고한다. 이는 기성 세대의 잘못으로, 기성세대에게서 배울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데서 왔다. 거저 얻은 권리가 없듯 희생에 대한 존경이 있어야 하지만, 농부가 어리석어 보이면 맛있는 열매 조차 햇빛 만 쬐면 저절로 열리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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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인가 꼰대 짓인가

 

교과서에 기술된 지식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노하우를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선생 혹은 선배 노릇 이라고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는 꼰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꼰대 자신에 대한 과대 평가와 상대방에 대해 존중이 결핍되어서 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먼저 겪어서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잘 모르고 처음 겪는 이에게 무언가 알려 주려고 할 때,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없었음에도 기다리거나 참지 못하고 먼저 알려 주려는 것을 꼭 선의로만 볼 수는 없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첨부되는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 가 진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스트레스 풀 듯, 묵은 말을 배설할 기회를 찾는 경우라면 먼저 상대방에게 양해와 동의를 구해야 함이 마땅하다.

누군가 먼저 조언을 구하는 경우에 있어서, 조언이 필요한 사람이 알고자 했던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 보다는 묻지도 않았던 불필요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조언을 하려고 하거나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 하려 한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꼰대가 독단적 이고 독선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도 결국 세상 원리는 똑같다고 우긴다.

정작 질문자가 알고 싶어하는 답을 꼰대는 잘 모르 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에도 어린 학생의 가치관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존중하고 본인이 전지 전능하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교사라고 전지 전능하지도 않을 뿐 더러 교사의 조언으로 인해 학생 에게 생기는 결과에 교사가 모든 책임을 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깨우친다 는 것은 누군가의 가르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깊은 사고와 성찰에서 오는 것이다.

성인 간에 어떤 조언을 할 때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는 태도, 특히 타인의 삶의 전반에 대해 지적을 하려는 태도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지난 경험에서 단지 운이 좋아서, 혹은 우연하게 작은 성공이라도 맛 본 사람은 과도한 자기 확신에 차기 쉽다. 경제가 급성장했던 베이비 부머 세대가 어쩌다 취업하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온 것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라 과대평가를 하기 시작하며 꼰대가 된다. 물론 부머 세대의 노력은 지금 세대에게도 큰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경제 발전 에 따른 전체의 성공에 기댄 결과를 자신이 남달라 특별하게 이룬 것이라 해석을 하면 지나친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고 상대방 특히 다음 세대가 나태하다는 비난으로 이어가기 쉽다. 그래서 자신들의 투기는 투자 가 되고, 기득권은 보수 성향으로 포장된다.

꼰대의 나 때가 말하는 자신의 의욕 넘치는 초보 였던 시절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왕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꼰대의 설교는 정확히 일방통행 한다. 꼰대 짓에는 언제나 자기 중심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발현 된다. 예전의 나는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간혹 실수를 했더라도 금새 다시 배우고 바로 해내는 능력 자였다고 근거 없이 주장한다. 동등한 지위를 가진 상대방과의 대화 라기보다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목사의 설교 같은 일방 통행적 주장이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진다. 아마 이 꼰대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에는 노년뿐만 아니라 모든 중장년층이 꼰대였기 때문에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 이 조금씩 바뀌며 젊은 세대의 말을 경청하는 꼰대 같지 않는 기성 세대가 나타나고 꼰대가 적은 조직이 잘 굴러가는 모습을 보며 그 특징을 세분화하고 조롱 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사회 어디서나 흔 하게 보이는 꼰대는 어쩌면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이기심 혹은 자기 중심적인 성향의 필연적 발현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개인적, 사회적 성취를 이룬 나이든 사람 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경험이 부족하다고 보이는 젊은 사람들에게 대방출하는 것을, 초보가 반드시 저지르고 지나오는 실수를 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하거나 불필요한 실수를 피하는 법을 알려주는 꽤 고마운 도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초보 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꼰대는 누구의 요청이 없어도 꼰대 짓을 시작한다. 눈치도 없는 것이다.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나 이미 꼰대 짓 을 허용한 순간이 바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 된다. 아까운 시간과 관심을 꼰대에게 지불했으니 말 이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인 회의가 고위직의 잔소리 혹은 지시 사항 전달 시간으로 허용되는 순간 을 꼰대는 바로 포착하고 꼰대 짓을 시작한다. 일방 통행적 대화를 하는 꼰대와 의 관계는 진실할 수 없다. 꼰대의 설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될 뿐이며, 그 수직적 관계를 유지할 이유 나 가치가 사라지면 더 이상 꼰대를 위한 무대는 존재 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인은 신세 한탄을 하기 전에 자신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타인과 건강 한 관계를 맺어 왔었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엉뚱한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은 자제력을 잃고 상대의 모든 부분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지적 하고 호통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바로 잡으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꼰대

 

우리가 사회에서, 특히 직장에서 만나는 꼰대는 아주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이 안 통한다는 기성 세대를 칭하는 꼰대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하라면 하는 것이었어.”, “어디 말대꾸를 해?”, “나 때는 말이야, 이거라도 주면 감사 하다고 냉큼 받았어.”, “어디 의견을 갖다 붙여?”

나이 먹은 꼰대를 한 성숙한 존재이자 열린 마음의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을 이제는 포기하자는 여론 은 어느 정도 굳어진 것도 같다. 저렇게 평생을 살아 왔는데 지금 와서 바뀌겠냐며 무의미한 기대는 그만 하자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이 드는 한 가지는 그들은 이미 젊어서도 꼰대였거나 꼰대를 선망했다는 점이다.

세대를 뭉뚱그려서 요즘 것들은 못 써라고 단순 하게 젊은 세대를 비난 하거나, ‘늙으면 집에 있어라는 늙은 세대를 향한 단순한 비난도 여전히 존재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충분히 다양해졌으며 구성원 제 각각이 다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어 단순하게 태어난 연도 만으로 세대간 문화를 구분 하기는 어려워졌다. 다시 말하면 단순 시간적 구분에서 복잡한 시간 공간적 구분으로 입체화 되었다.

세대적 특성으로 분류되었던 부류가 세대 간에 걸쳐 존재하거나 다른 요인으로 새롭게 분류되기도 한다. 과거 세대라 구분되는 특징이 공교육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온 것이라 본다면, 과거에 비해 삶에 있어서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나고 출발선 상에서부터 좁히기 힘든 격차가 벌어지며, 또 선택적 편향성에 빠지거나 그들만의 문화에 몰입하는 등 젊은 세대도 같은 세대 안에서도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미디어와 기술 발전, 세계화 등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었던 것이 걸림돌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많은 정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공개되고 있고 개인이 얼마만큼의 정보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 즉 정보의 양과 질을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새로운 걸림돌이 생겼다. 미디어는 인공 지능을 핑계로 편향성을 부추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30살이 되기 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던 시대에서 40대 혹은 50대에도 초혼을 하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더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과 직업과 상관 없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 한 시대 안에 존재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도 각자 주어 진 환경과 개인적 여건과 의지에 의해 각자 다른 시대 를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젊어서 나름 개혁적이었으나 나이 들면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젊어서는 별 생각 없이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외로움이 싫어 소속감을 찾고 또 사회적 관심을 받고자 극우 집단에 빠지기도 한다. 이념을 떠나서 당장 눈 앞에 주어지는 아무 기회라도 붙잡아 사회적 경력의 뿌리를 내리고 싶은 젊은이들도 이런 가치보다 이익을 따르는 행동을 따라 한다. 꼰대 건 무어 건 간에 말이다. 꼰대는 세대간 가치의 문제 라기 보다는 타인에 대한 공감력의 문제이다.  

이렇게 한 세대를 하나의 정의만 묶는 것이 불가능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젊음과 꼰대가 결합한 젊은 꼰대가 출연하였다. 

젊은 꼰대는 이러한 늙은 꼰대가 가진 특성을 답습 하여 늙은 세대와 같은 세대이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 들, 그리고 더 어린 세대를 향해 전 방위적 꼰대 짓을 한다. 온라인 댓 글을 통해 개인적으로 꼰대 짓을 하거 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베스트 글 혹은 베스트 댓글에 선정되기를 원한다. 유튜브를 통해 더욱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고 때로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린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 지만 이들은 집단 따돌림 성격을 보이기도 하는데 자신 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거나 그들만 의 서클에 발을 들이는 약한 사람을 집단 공격하며 그들 의 권력을 뽐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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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온 젊은 꼰대인가?

 

 

꼰대 라는 말이 젊다는 말과 결합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꼰대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꼰대는 주로 권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나이든 남성, 아버지나 선생 등을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그들은 상대방을 함께 대화를 나누는 파트너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훈계하는 대상으로 여기며 상대방이 동조 외에 다른 의견을 제시 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그래서 꼰대는 조용히 자신의 훈계를 수첩에 받아 적는 사람 을 아주 좋아한다.

함께 직면한 문제에 대해 각자 생각한 최선의 해결 책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오로지 자신의 경험만을 내 세우고 권위를 사용해 우기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단어가 꼰대이다. 꼰대는 라떼 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하기도 하는데, 라떼는 말이야 (Latte is horse). 라는 말은 꼰대들이 훈계를 시작할 때 등장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비꼬는 말이다. 그리고 꼰대와 비슷한 의미로 틀딱·; 틀니한 노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유교에서 온 가부장제 문화와 군대 문화가 결합하여 뿌리깊은 성차별과 나이 위계 질서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 만의 경험을 축적하며 고지식한 꼰대가 되는 문화가 있었다. 나름의 사회적 경험을 충분히 쌓기도 전에 이미 충분한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젊은 꼰대가 늘어나는 것도 유래가 없던 일은 아니다. 나이 들어 꼰대가 되기 쉬운 성향,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성격 은 젊어서부터 내재되어 왔었던 것이다. 사회적 관계 속 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과, 성인이 되고 난 이후 타인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는 과정을 지나쳐 버린 사람들은 작게 나마 움켜쥔 권력을 이용해 꼰대 짓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작년에 낯선 장소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법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집단주의 문화가 주도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마찰 없이 두런두런 잘 지내고 적을 두지 않는 무색무취 공기 같은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다 빠르게 인맥을 쌓아 여러 개 카톡 대화창을 가진 사람을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라 칭송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직적 인 조직 문화가 존재하는 직장에서 그 사회 생활이란 결국 피라미드 꼭대기 정점을 향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사회 생활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잘하는 것 인데,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것으로 비틀려 해석 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사람인지라 일방 통행적 관계는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그 스트레스를 다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풀기 쉽다. 수직적 군대 문화가 그대로 답습되고 가부장적 사고 방식마저 그 자리 그대로 잔존하는 직장 문화는 변하지 않고 조직의 비효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갑질 이자 꼰대 질이라 말한다. 권위주의적 꼰대 문화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직장에서 이 풍자적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꼰대 KKONDAE

 

영국 방송사 BBC2 2019 7월 오늘의 단어로 소개한 꼰대 KKONDAE는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영문 으로 표기되어 소개되었다. 영어에 꼰대를 번역할 적당한 단어가 없어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한 단어인 꼰대  재벌 갑질에 이어 부정적 의미를 지닌 노-번역 한국어 단어로 인터넷 사전에 등재되는 불명예 를 얻었다.

주위에 이런 사람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단어 소개를 시작한 BBC2 꼰대 자신을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잘못 되었다고 확신함)”이라고 단어에 대해 설명했다. 전 세계 독자들은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공감하며 자신의 경험 속 꼰대에 대해 반응했다.

이들은 결혼한 후부터 내 남편이 바로 꼰대”, “바로 시모를 위한 글자”, “영어로는 나이 많은 남자”, “내 기억 속 꼰대는 바로 엄마”, “휴대전화 속 아빠의 이름 을 그걸로 바꿔야겠어”, “?” 등의 재미 있지만 뼈 있는 반응을 보였다. 추가적으로 틀딱이나 라떼 같은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 비하 표현도 언급하며, 더 이상 꼰대가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단어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BBC2 꼰대를 소개하기 전에 한 해외 경제지에서 한국어 꼰대를 거들먹거리는 노인 (KKONDAE : The word for “condescending old person” in Korean) 이라는 뜻의 단어로 소개한 적이 있다. 해당 기사 에서는 꼰대를 젊은 사람들로부터 당연하게 복종을 기대하는 사람 혹은 타인은 즉각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실수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권위 에 불복종하는 사람에게 보복을 하는 사람 이라고 설명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나이와 성별, 직장 근무 년수에 따라 위계 질서가 악명 높다며 호칭이나 높임말 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비판했다. 이런 행태에 부당함을 느낀 젊은 세대들이 꼰대 라는 조롱하는 단어를 만들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고 설명했다.

 

 

 

OK, boomer’ 오케이 부머

 

해외에도 꼰대라는 말과 유사하게 기성 세대를 비꼬 고자 사용하는 단어로 부머boomer 라는 단어를 들 수 있는데, 이 부머란 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를 뜻한다. 해외에서도 부머 즉, 기성 세대를 꼬집어 조롱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2019 11월 뉴질랜드 의회에서 녹색당 소속 클로이 스와브릭 의원이 기후 변화를 외면해 온 기성 정치인을 비판하는 연설 도중 나이 든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자 됐어요, 부머(OK, boomer)’ 라고 받아 친 뉴스 영상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오케이 부머 라는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그 이후에 태어나 사회 경제 주류를 형성한 베이비붐 세대 가 젊은 세대를 향해 오지랖을 펼칠 때마다 젊은 밀레니얼 세대가 말 대꾸로 받아 치는 표현이다. ‘알았 으니 이제 그만해 라는 의미로 개인 SNS를 중심으로 퍼지던 이 유행어가 한 의원의 공개 석상에서의 발언 으로 정치 무대에 공식 등장했던 것이었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과거 고속 성장을 통해 현재까지 움켜쥐고 있는 부를 더는 이어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감을 밀레니얼 세대가 느끼고 부머 세대를 향해 불만을 표현한다. 세계 경제가 성장적 한계에 다다랐 다고 느끼는 세대인 9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부머 세대가 가진 부와 그들의 기득권을 자신들은 차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거기에 반발하는 심리를 담아 더 이상 존경이 아닌 조롱의 부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2020년 초반부터 전 세계 사회 경제 문화까지 일시 정지 시킨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일부 층들은 이를 부머 리무버 라는 단어로 비유하며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년층을 향해 극단적인 조롱을 했다.

Boomer remover는 부머 세대를 없앤다는 뜻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주로 사망한 노년층을 부머로 표현하며, 부나 여론을 움켜쥐고 놓지 않던 부머 세대 를 향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공격하는 단어로 쓰였다. 부머 리무버라는 단어가 뉴스에 소개되자 우리 나라에도 으레 등장하는 패륜이나 너는 안 늙을 것 같냐는 빈정거림과 더불어 부머 세대가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다. 노년층과 어울리지 않고 안 놀아 준다고 투정하기 보다는 이렇게라도 언급하고 놀아줘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고 하며,

, 알겠다. 밀레니얼 세대. 그런데 실제로 돈은 우리가 갖고 있지.” 라고 밀레니얼 세대를 되려 조롱 하는 발언도 있었다.        

이런 세대 간의 대결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부머 세대를 부모로 둔 밀레니얼 세대 혹은 그 앞뒤 세대는 부머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부모의 재산을 충분히 활용하여 어떤 식으로든 삶에 이점을 보탤 수 있었다. 하지만 부머 세대 중 충분한 재산을 보유하지 못하여 상대적으로 자녀 세대에 도움을 제공하지 못하 는 부모에 대한 다음 세대의 불만이 삐딱하게 드러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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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연습

 

 

 내가 대학 시절을 보낸 90년대 말에 일부러 기성 세대를 흉내 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전에 없던 새로운 개성인 마냥 예전 세대의 말투나 단어를 따라 하고 스스로 올드해 보이려는 주변 친구들이 꽤 있었다.

당시는 연도 앞 두 자리가 19 에서 20으로 바뀌는 때로, 어느 종교 종말론자들의 휴거 소동이 생중계 되기도 했던 때였다. 새천년 무슨 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등장했고, 밀레니엄이라는 말이 등장하였으며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온갖 개성들이 등장했다. 문화가 전례 없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남자 친구들이 연상의 누나와 사귀는 것이 더 이상 특이하지 않은 일 이었고, 마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귀는 사람을 오빠 라고 흔히 부르는 만큼 누나 라는 호칭을 쓰는 친구들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오빠는 오빠로 불렸지만 누나는 누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 나무라 듯 어허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며 또래 친구들의 행동을 제지 하는 이들도 있었고, “, 어디서!” 라는 말로 있지도 않는 권위를 장난스럽게 내세우려고도 했었다. 당시 급격하고 약간은 혼란스럽게도 열리고 있었던 새로운 문화 작용에 대해 반작용을 하는 듯 과거로 회귀하려 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불리어왔을 숨은 유행가를 발굴해내 자신의 대표 곡처럼 부르는 것이 유행하였다. 예전 세대들이 쓰는 비속어나 방언, 특히 일본어를 굳이 찾아내어 자기들만의 은어처럼 사용했고, 그들의 아버지 시절을 마치 자신들이 살아가는 듯, 과거 세대 의 특징을 따라 하고 흉내 내려고 했다. 자신이 특별 하고 남다르다는 어떤 존재감을 주변에 드러내고 싶었 지만 자신의 생각 속에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20대 초반의 내 친구들은, 따라 하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면서 실제로 무언가 있을 것 같기도 해 보이는 과거의 가치를 비판 없이 차용 했다. 역사가 흘러 갈수록 그 중심의 차별성이 드러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위태롭게 흔들리는 남성주의 가부장제, 남성들만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특권처럼 누려 왔던 사회적 역사적 이른바 남성 리즈 시절에 대한 어떤 향수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내 친구들 중 일부는 남성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저절로 누리는 특권, 즉 질기게도 남아 있는 남아 선호 사상으로 특별 대접 속에서 키워지고, 성인이 되면서 집안의 지원과 자원을 독차지하며 비교 우위 에서 쌓아 가는, 어떤 막강한 특권과 권위를 몹시도 그리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해서 그런 행동을 따라 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몰랐었을 것 같다. 다만 본능적으로 아버지 세대가 누려온 혜택의 겉모습이 곧 아버지 세대가 될 자신들에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 일종 의 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나도 가끔 그들의 독특하고 우스꽝스러운 말투를 따라 하기도 했고, 그들의 촌스런 노래에 박수를 쳐주기도 했었다.

너는 여자치고 공부를 못하잖아.”

졸업이 다가오면서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모여 앉게 되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취업 고민을 꺼내던 때 였었 는데, 그때 나에게 불쑥 들이 닥친 말이었다.

(오호 용감 한데!)

남자 치고는 성적이 바닥이었던 J는 취업이 다가오며 초조하고 걱정되었던지 눈 앞의 만만한 경쟁자 하나 라도 재쳐 보려는 시도였을까, 혹은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였을까, 대담하고 무례한 발언을 나에게 내뱉었다. 지방 소도시 출신 이었던 J는 앞에 나서서 리더가 되려거나 주목을 받으려는 성격은 아니었다. 나름 배려 도 할 줄 알았고 프로젝트도 함께 충실히 수행하던 친구였다. 집안 장손인 자신을 아끼는 할머니 얘기를 종종 했었던 J는 고향 집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귀한 아들이었던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어떤 프로젝트 를 준비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서로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고 받았 던 친구였었다고 나는 그를 기억한다. J의 무례한 발언을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던 친구들은 놀라는 표정 을 숨기지 못했고, 내 눈치를 보는 것을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훅 들어온 펀치에 나는 잠시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앞에서와 뒤에서의 말이 다른 남자들을 하도 많이 보아온 탓에 J도 별 수 없는 못난 놈이구나 하고 여기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래서 뭐?”   

 

취업이나 시험 같은 절박한 문제에 닥치면 누구나 자신의 손익을 계산할 수 밖에 없고 당연히 스트레스 라는 것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당장 내 눈 앞의 경쟁자 가 지치기를 바라고 포기하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수많은 경쟁자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당장은 마음이 편해질지 몰라도 사실 아주 멍청한 저주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 각 학과에서 1등을 찍으며 남학생들 사이에서 용케 살아 남은 여학생들은 그나마 순조롭게 취업을 할 수 있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평범 한 이들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시키는 믹스 커피라도 고분고분 타오지 못할 것처럼 눈빛 강약 조절이 안 되었던 (그들에게는 사나웠다) 나 같은 여성 에게는 취업의 문턱도 높았었지만, 취업 후에 찾아 올 험난한 가시밭길은 쉽게 예고된 것이었다.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나름 순수한 마음은 가졌던 J 가 우여 곡절 끝에 취업을 했고 지금도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 하고 있단다. 그 당시에 말을 꼰대 같이 했어도 자기 안의 꼰대와 끊임없이 싸우며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종종 먼저 겪은 사람, 그 이름도 거창한 선배로서 후배 신입생에게 알려주고 고쳐 주어야 한다고 주장 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냥 실수하게 둘 수는 없다고 대단한 의무감을 가진 듯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관심 을 가지는 그 신입들의 실수는 정작 길러야 하는 실력 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 태도란 결국 예의 보다는 서열을 말하는 것이었다.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선배라는 자신들을 향한 예의의 문제였다. 셀프 우쭈쭈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자신들만 의 울타리 안에서 이상한 논리에 의해 굳어 내려온 습관들을 후배에게 반드시 가르치고 계승해야 한다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이유를 대며 후배들을 긴장 시키는 선배들은 그다지 본 받을 만한 인격이나 성격, 능력을 가지지 못했었다고 기억한다.

또 장난스럽게 혹은 공격적으로 주변을 향해 있지도 않은 권위를 내세우려고 스스로 애를 쓰는 이들도 있었다. 그 대상은 주로 후배나 만만한 동기였고 절대 힘 있는 상대를 향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정말 고립된 시골이나 과거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친구들은 그 당시를 그런 곳에서 살아 본 적도 없으면서 그저 옛날 옛적 시절의 남성 권위주의적 향수를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것이 참 많이 아쉬웠다.

그들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 권위는 저 멀리 우뚝 선 침해 불가한 권력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아마도 또래 안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한 이유 역시 자존감이 낮았던 데 있었을 것이다. ‘어허라고 외치면 서열 앞 쪽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어쩌면 거저 얹을 수 있는 기대감에 차 올랐고, 결국 다수의 누군가는 다시 서열 아래를 채워야 한다는 불평등한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 했다. 자기만 살아 남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일부의 특성으로 존재하던 것이라 생각하던 그 때 이 후 그런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그들의 존재감이 선명해지며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등장 했는데, 이른바젊은 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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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봐가며 꼰대 짓 하는 젊은 꼰대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 중에 아주 특이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결혼 후 알게 된 사람들이 거의 다 특이하기는 하다.) R과 내가 비슷한 처지 였음에도 서로 불편한 관계였던 이유가, 지나고 보니 R이 온갖 꼰대 질을 유독 나를 향해서만 해댔던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R은 주위 사람들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이 습관이었던 사람으로 내가 지금까지 만났 던 모든 이들 중 최고의 아첨꾼이다. R은 상대방에게 밑도 끝도 없이 듣기 민망할 정도의 칭찬을 해대기가 입에 배었던 사람 이었다. R과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도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하기까지 한 칭찬 세례를 했었다. R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주보는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갑작스런 외모 칭찬부터 성격 칭찬까지 듣기 민망할 정도로 아부를 해대었는데, 그 아부는 과장을 넘어서 거짓말에 이를 정도가 많았다. 가게에서 점원이 고객에게 당장 무언가를 팔기 위해 하는 칭찬도 과장이 지나치거나 과도하면 거북하고 불쾌하다. 칭찬 이면에 숨은 다른 속셈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R의 가식적인 칭찬이 정말 본심인지 궁금했고 그렇게까지 상대가 거북할 정도로 칭찬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러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 서 칭찬 세례가 자신에 대한 자랑질과 나를 향한 꼰대질로 점차 바뀌었는데, 내가 찾아낸 이유는 이랬다.

꼰대 R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나에게까지 그렇게 칭찬을 해 주었는데도 나로부터 되돌아오는 반응이 시원치 않다 느꼈던 것, 그리고 R의 관점에서 서열의 끝인 나한테까지 더 이상은 위선적인 아부를 해대기가 싫었던 두 가지 이유였다고 나는 짐작한다. R이 주변 사람들에게 아부를 해대는 것만큼 자신도 그 만큼의 아부 서비스를 나로부터 누려 보고자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얼마 못 가 완전히 상반된 행동을 시작했는데, 결국 R은 내 앞에서만큼은 아부를 완전히 중단하고 숨겼던 본심을 드러냈다. 그의 본심은 아부 대상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었고 짜증이었으며 뒷담화였다.

R의 목적이 본인을 통해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간신히 찾아낸 이유는 바로 이 것이었다. R은 결혼으로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잘 보이고 싶었고, 또 동등하지 않은 위치에서 오는 여러 상황적 억울함과 뒤따를 비난 등을 피하고 싶었던 목적이었다고 추측한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거래가 오래 전부터 그들의 관계 속에서 있었음이 확실했다. 가식적인 아부가 몸에 배었던 R은 그렇게 아부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듣기 싫은 잔소리와 비난을 피하고 나름 영리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어이 해오면서 살아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자신의 사회성이 대단하고, 자신이 아주 사교 적인 능력자 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했다. 아쉽게도 아무도 R의 그런 애씀을 인정하거나 추켜 세워 주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겸손한 척도 하려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부 세례를 일상적으로 받아 온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R의 립 서비스를 즐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R에게 그다지 특별 배려를 해주는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R을 덜 비난하고 조금은 친절하게 대하려고는 할 때도 있었 지만, 의미 없는 칭찬에 익숙해져서 인지 사람 봐가며 함부로 타인을 대하는 그 집단 전체의 원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R은 애써서 헛수고를 한 것이다.

그런 R이 내가 아부에 낚이지 않자 언제부턴가 내 앞에서 일장 연설로 꼰대 짓을 시작했다. 내가 R 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고 소위 싸가지가 없다며 비난했다. 나는 R에게 아무 것도 묻지도 않았고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지 않았는데도 언제나 혼자 시작하던 R의 일장 연설의 배경에는 너는 나 보다 한참 모자라다는 설정이 깔려 있었다. 나와 고작 몇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던 R은 그의 말 만 놓고 보면 R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겪었고, 누구보다 도 다양한 인맥을 보유하였으며, 세상의 모든 기막힌 묘수와 노하우는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참 어이없게도 R이 가장 강력하게 나와 비교 우위에 있음 을 강조하는 근거는 바로 돈이었다. 자신이 나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재산이 많기 때문에 R에게 있어서 나는, R의 조언을 넘어선 생명수 같은 설교를 새겨 들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에 두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겉으로는 돈이 전부가 아니 라고 부정하는 척 하며 돈과 물질을 추구하고 집착 하는 모습을 숨기려고 하지만 금새 들통이 난다. 이런 속물 허풍쟁이는 나 같이 말보다 행동에 주목하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발각되기 쉽다.

어디서 상을 치렀는데 집안 싸움이 나서 누가 얼마를 챙겼네 하며 돈 때문에 벌어진 흔한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 나에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R보다 서열 높은 사람 S’를 향해 직접 비난을 하지 못했던 R, 대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만만한 나를 향해 너 돈 밝히면 안 된다. 남의 돈이 다 네 건 줄 아냐,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순간 세상 황당했던 나는 그 날에서야 R의 밑바닥 꼰대 모습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던 그 나이만 많던 높은 서열 S’화난 꼰대 R’S 자신이 아닌 나에게 버럭 화를 내자 내 눈치만 살피며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모두 나이만 많고 못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된 이유와 어디서부터의 책임인 지를 그렇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반복된 경험으로 안 것은, R은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아부와 거짓말을 했고 오로지 나 에게만 솔직했다는 것이다. 꼰대R이 하는 이상한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는 계속 R을 마주 쳐야만 하는 관계에 지쳐 갔었고, 그래서 한 번 R을 이해해보고자 심리 관련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신 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 즉 잘 보여두면 여러모 로 유용한 권력을 쥔 자에게 기회만 있으면 비위를 맞추고 가식적인 칭찬을 남발하고 마치 보험처럼 관계 를 설정해두려 하지만,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나 이용 가치가 없어 보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솔직함 을 넘어 예의 없이 행동하는 R의 심리가 무엇 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멀리도 아닌 내 근처에 있었던 그 꼰대R은 칭찬이나 비난 모두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 으로 사용하는, 눈치가 빠르고 아주 계산적인 사람이었 고, 사람들을 잘 다루는 방법인 칭찬과 비난, 둘 다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가치관이나 성격, 기호 등을 눈치 빠르게 파악하여 이를 서로간 관계 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 하게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타인에 대한 아무런 공감 없이 오로지 어떻게 이용하면 자신에 유리할 지만 계산하는 사람이라고 밖에, 나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가 없었다.

R이 함부로 대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실제로 아무 권력도 없었던 나에게 마구 스트레스를 풀어 대었던 이유 역시 결국 R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는 것이 입에 착 붙어 습관이 되었어도 타인 눈치 보기, 비위 맞추기 같은 감정 소모 는 R에게도 역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눈치를 보며 살아야만 했던 R이 처한 상황이나 성장 환경이 짐작 가기도 했다. 나름 절박 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성찰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다고 으스대는 R이 제공하는 아부와 혜택을 당연 하다는 듯 즐기는 S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R 보다 더 사악해 보이기도 했다. R은 이미 다 자란 성인으로 서 스스로 깨닫고 성장해야 하는 부분은 외면하고 오로지 눈 앞의 이익 만을 계산하고 순간적 불편함을 모면하며 살기에 급급한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R에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란 진심을 공유하며 멀리 보고 계속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처리해야만 하는 고객센터 전화 항의 내용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권력자에게 아부와 가식적인 칭찬을 탁월하게 잘 하는 이 꼰대R’을 칭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실제 있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자를 앞에 두고 싫다는 내색을 하기 힘들다. 또 공감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왜 그들이 아부를 하는 지에 대해서조차 깊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아부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쳐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은 끊임없이 주변에 칭찬 을 남발하고 그렇게 하는 자신을 자화자찬했다. 수 십 개의 미끼를 던져서 단 몇 마리라도 잡아 보려는 마음 이었을까.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던 이해 못 할 점 은, R은 사람들의 면전에 대고는 그렇게 아부를 하고 듣기 민망할 정도의 칭찬을 쏟아 내지만 뒤돌아 서서는 바로 방금했던 말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뒷담화를 하지만 R은 앞 뒤 말 전환이 아주 빠르고 대담하고 익숙했으며 내가 만났던 세계 최강으로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유독 만만한 나에게만 속마음을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양면성을 드러내었던 R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었다. 어떤 것이 진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두 얼굴을 가졌던 R의 그 어떤 말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R도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 보고, 자신이 영혼까지 털어 애써 칭찬 아부 잔치를 벌이는 동안 맞장구를 쳐 주기는커녕 모른 척 하고 있는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만만한 나 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 같았다. R이 진심을 담아 주변 사람들을 칭찬한다 라고 내가 느꼈 더라면 나는 그를 한결 같은 사람, 인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돌아서서 바로 다른 소리를 하는 R 을 보며, 언젠가 내 앞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칭찬을 던지고는 뒤돌아서 전혀 다른 본심을 드러냈을 R을 상상하니 아주 불쾌했다. 그래서 아부 잘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는 웃지만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르기 때문 이다.

처음에는 뭐지? 하며 당황했지만 지나고 보니 젊은 꼰대는 이렇게 내 근처에 아주 가깝게 존재하고 있었 다. 상대를 잘못 골랐던 R에게 나는 더 이상 대화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R의 말대로 ~참 윗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굳이 생각해서 해주는 말씀을 감사하게 잘 들었더라면”, 다시 말해 내가 생각을 고쳐 먹고 R의 꼰대 짓을 적당히 받아 주었더라면, “약간의 금전적 물질적 혜택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R은 나를 향해 답답하다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답답한 사람은 내가 아닌 R이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닌 가면까지 써 가며 애써 타인에게 아부하고 비위를 맞추어야 비로소 자신 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R의 삶 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기적인 처세의 부끄러운 민낯을 R을 통해 적나라하게 느꼈다. 끊임없이 주변 사람으로부터 얻을 이익과 혜택에만 관심을 두었던 R, 아부가 통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어디선가 돈 잘 벌고 살고 있을 지는 모르지만, 돈 외에는 중요한 가치가 없어 보였던 R 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았을까 궁금하다.   

나이 든 꼰대는 아무에게나 꼰대 짓을 벌이고 세상 전부를 우습게 여기는 듯 보이나 젊은 꼰대는 아무 에게나 꼰대 짓을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위와 아래로 분류하고 구분하여 막 대해도 손해가 없을, 만만하고 적당한 대상을 찾아 꼰대 짓을 저지른 다. 서열 속에 스스로를 가둔 꼰대에게는 꼰대 짓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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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1 : 말 ‹ 행동

 

 내가 그나마 이 나이까지 살면서 다행스럽게도 터득한 지혜 하나는 상대방을 판단할 때 그가 허공에 대고 떠드는 말 보다 말 아래에 깔린 실질적인 행동, 즉 과거에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많은 말들을 늘어 놓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말 뿐일 경우가 많으며, 실제 행 하는 행동이야말로 그 사람의 말 중에서 본인이 진짜 믿고 있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 사람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20대 혹은 30대 남성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 모임을 통해 얻으려 했던 원래 목적 에다가 덤으로 색다른 기회까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는 긍정적인 기대를 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는 것을 떠올리더라도 행동은 전혀 확인이 안 되는 말이 넘쳤고, 나에게 자신의 서브 역할을 하라고 한 것에서 그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아마도 그 남성에게는 내가 자신이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 정도로 보였나 보다. 나는 적어도 그 남성보다는 이 분야에서 경력이 많았고 정식 자격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티가 안 나 유감이다. 남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될 때, 그 평가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도 재미 지다. 

한국인이자 40대 여성인 나에게 자주 닥치는 차별적 시선이나 무례함으로 인한 불쾌함은 어느 곳 어느 자리 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역치의 선 만 넘지 않으면 참으려 하고 간혹 못 참겠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소극적으로나마 표현을 하곤 했다. 그리고 별 것도 아니고 의미 없는 대상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당시는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때 였었다. 나는 사람들의 진심에 관심이 있었고 내가 알고 싶은 그 진심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말 속에 먼저 등장하고 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장, 거짓말이라도 어느 정도는 참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자 마자 이건 헛소리 구나 라고 생각이 드는 이야기도 참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화자의 마음 속 진심이나 도저히 포장이 안 되는 사실이 튀어 나오는 것을 알아냈다. 사실 이것이 독심술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에 대해 과대 포장해서 말하거나, 우연히 얻은 운에 대해서 마르고 닳도록 써 먹으며 이야기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내려 했던 이야기는 그런 텅 빈 내용보다는 그 사람이 결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 혹은 전과 다른 용감한 행동을 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 지, 바로 그것 이었다.

쏟아지는 사람의 말 속에서 숨어있던 진실을 발견할 때 생기는 반가운 기분이 있다. 자발적으로 경청 훈련을 시작했던 나는 그 남성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툭툭 튀어 나오려는, 내 솔직한 감정에서 오는 반응을 필사적으로 누르려 애썼다. 그 과시적이었던 30대 초반 어쩌면20대 후반 남성의 말을 들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나는 무표정 하려고 애썼다.

평소에 내 얼굴 표정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고 내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얼굴을 문에 바짝 대고 서 있던 사람의 얼굴을 갑자기 볼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떴던 내 표정을, 엘리베이터 문 앞에 얼굴을 대고 서 있던 그 사람은 그런 내 표정을 보고 오히려 어이 없다는 표정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평소 감정을 숨기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던 나는 모르는 사람과 너무 솔직한 감정 교류를 해 버렸던 순간이었다.

내 감정을 숨기는 일, 다시 말하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을 그냥 넘겨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유치하고 또 이기적으로 보일까 자기 검열 차원에서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의 눈치를 보거나 거짓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무례한 상대도 주변의 솔직한 반응을 볼 의무가 있다. , 물론 평등한 관계에서 말이다.

투명한 내 표정은 내가 굳이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 야 하는 생존 훈련 과정을 겪지 않음에서 온 것 같다. 만약 엘리베이터 문 밖에서 얼굴을 대던 엉덩이를 대던 간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서 있던 그 사람이 그 건물 에서 쥐꼬리만한 권한이라도 지닌 사람이었더라면, 그 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나에게 어떻게 든 앙갚음 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바로 사회 생활 못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함은 뭐 라도 있는 사람이 주로 애용하는 감정이면서, 또한 자유로운 영혼들이 애용하는 감정이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솔직함을 요령껏 잘 숨기는 사람 이 많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사람은 본심을 그리 오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다. 편집 화면이 아닌 연속 화면, 롱 테이크로 어떤 사람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단지 시간과 노력이 조금 필요할 뿐이라는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포장도 능력인가

 

 그 날 나는 백 명 이상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여러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보여 주는 말이나 태도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 는 남성들이 마치 그룹 토의 면접을 준비하는 듯한 자신감이 고취된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모임 에서 젊은 여성들 역시 상당수를 이루었었는데 20대를 갓 넘어선, 혹은 그 이상의 나이쯤으로 보였던 그들의 에너지 역시 대단했다.

조금 과장하여 약간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졌던 그들의 자신감은, 과거에 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수준 까지는 성취가 가능하다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사회 수준에서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실력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 청년들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과 더불어 자신을 드러내야만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청년 취업 시장의 녹록지 않음까지 도 엿볼 수 있었다.

아쉬웠던 부분은, 자신감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그 자신감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겸손하기도 해야 하는 것, 또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허풍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뽑히고 누가 떨어지는 취업 면접장이 아니었음 에도 확신에 찬 모습과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는 이들 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잊고 있었던20, 30대 남성 일부의 자기 중심적 특성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그들의 말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참가자들의 개인적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모임에 초대를 받은 것 자체가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경력을 쌓아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무도 그들이 말하는 성공다운 성공을 못했다는 것 이다. 그러면 겸손한 편이 유리 했다. 태도나 말투에서 해외에서 오래 산 것처럼은 안 보였던 그 사람은, 서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적정한 정보를 공개 하고, 겸손하면서 혹은 필요에 따라 근거를 통해 말하 는 것이 서로를 잘 모르는 관계에서 신뢰를 줄 수도 있었던 점을 잊고 있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어쩌면 그 모임 후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며 보내는 나에 비해 그 남성은 점점 일이 많아져 안정된 수입을 얻기 시작했을 지는 알 수 없다.

젊은 꼰대들이 출몰했던 그 날 여기 저기에서 들려 오던 말 속에 어김없이 자기 과시는 드러났다. 거기에 다 조금 더 용기를 낸 일부는 타인에 대한 오지랖을 넘어 결국 라떼(‘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자신 보다 모자라 보이는 타인을 향한 훈계)가 등장했다. 아무리 많게 보아도 고작 30년 남짓을 산 이들의 라떼, 삶의 경험과 성찰에 의해 얻은 지혜나 어떤 깨달음이 아닌, 그들 인생에 있어서 나름대로 특이했던 경험 이라고 치는 군대 경력과 해외 경험과 단기 취업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그렇게 대단한 경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40대 아줌마인 나 를 경쟁자로 보고 이겨 먹으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참 모자라 보여, 꼰대 본능에서 오는 오지랖을 편안 하게 부린 것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싫지만,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기성 세대에게는 나이에 의한 위계문화가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같은 성별 간에서는 나이를 거스르 는 이른바 하극상 꼰대가 흔하지는 않다. 물론 성별이 달라 지면 거기에는 나이 위계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꼰대에게는 성차별 의식도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만났던 그 젊은 꼰대 는 내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여성이라는, 단지 눈에 쉽게 보이는 정보 만으로 자신감에 차올라 꼰대 본심 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민감 하게 반응했더라면 그 대화는 적당한 선에서 끊어졌을 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자발적으로 경청 트레이닝을 하는 중이었고,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고 타인의 말을 경청을 했으며 지금까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 젊은 꼰대가 가진 지나친 자기 확신은 평소 부터 있어 왔고 그 날 하필 나를 상대로 보여졌던 것 이라 생각한다.

갈가 말까 고민하는 자리는 보통 안 가는 게 맞지만 때로는 기대 없이 참석한 자리에서 뜻 밖의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 남성뿐만 아니라 그 남성과 가까이 대화를 하던 겉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은 그 날 모임을 주선한 업체 직원들과 아주 긴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낯선 사람들이 모인 자리를 어색해하는 다수의 사람들 과 달리 자신이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서둘러 주최 측 혹은 내부 관계자 등 뭔가 핵심적인 위치의 사람들과 잘 알고 있고 친밀하다는 것을 보이려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사회성이 남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행동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관계가 이어지던 어떻게 되던 그것보다는 일단 자신이 특별 하다는 과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자신 보다 모자라 보이는 나 같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 만의 기발한 사회 생활 요령 이라도 가르치려는 듯 한참을 떠들며 존재감을 보이고 싶어한다. 의도가 너무 얕은데 있고 충분치도 않아 금새 바닥이 드러나 버리는 아쉬 운 전개이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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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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