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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동현관문으로 나가려다 슬쩍 쳐다본 우편함에 웬 흰색 편지 봉투가 꽂혀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금이라도 나왔나, 구청에서 안내장이라도 나온건가 하며 불안한 쪽으로 편지의 발신자를 상상했다.
편지봉투에는 손글씨로 내 집 주소가 적혀있었는데
이름은 없었고, 보낸 사람 주소와 이름은 적혀 있었다.
게다가 유편요금을 지불했다는 스탬프가 박혀 있었다.
오! 이게 얼마만.

편지봉투를 뽑아 들고 공동현관문을 통해 나와 걸으며 편지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얇은 편지지와 칼라로 인쇄되어 비닐로 코팅된 광고지가 들어있었다.
먼저 밝히자면, 영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 우편함 옆으로도 비슷한 봉투가 쭉 꽂혀있었던 것 같았다.





편지에 손글씨로 적혀있던 내용은 성경구절과 교회 나로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에 1도 흥미가 없었지만, 누군가 나에게 손글씨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 것이 신기하고 솔직히 고마웠다. 물론 편지봉투나 편지지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고, 가족의 이름도 없었다.
네이버 부동산에 검색하면 주루룩 나오는 아파트 주소로 무작위 또는 할당구역을 나누어 전도하는 광고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나는 이 편지에 대해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 했고 어떤 반응을 할 지 기대했다. 옆동네 교회다니는 어느 할머니가 내집으로 보낸 편지에 적힌 교회 다녀야 천국가고 안가면 지옥간다는 내용에 대해 그 사람이 보인 반응은 미지근했다.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런 심심한 반응의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교회를 다니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잠깐, 오, 노노노... 누구나 교회를 다니건 말건 자유이다. 종교를 맹신하던, 이데올로기에 끌려다니던 개인의 자유이다. 마약을 하던 자살을 하던 그것 역시 자유라고 생각한다. 단 가족, 친구, 적, 타인과 세상을 나누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민폐를 심하게 끼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종교는 나의 종교일뿐, 누군가를 설득해 가담시키기엔,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지나온 과거사에서 피비린내가 난다.

교회 교리를 잘 알지 못하나, 일단 교회는 사람을 성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적인 성장을 뜻하는 성찰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단순해지고 남의 말에 잘 넘어간다. 성찰은 허무함을 가져온다. 허무하면 구원이나 용서에 무뎌진다. 그러면 교회는 팔 거리가 사라진다.





내가 이 편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누가 노인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냐는 것이다. 글씨체와 그리고 발신인 이름을 통해 봤을때 70대 이상 할머니라고 90프로 확신할수 있었다. 이 노인이 자식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본 때는 아마 아주아주 먼 예전일 것 같다. 우리가 편지를 쓰지 않은 지는 수 십 년은 된 듯하다.
교회 목사나 감투를 쓴 누군가가 이 노인에게 손편지 전도라는 방법을 알려줬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흐릿한 눈으로 편지지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글을 쓴 그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는 마치 지하철에서 동냥처럼 껌을 팔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교회 혹은 교회의 누군가가 알려준 내용을 따라 적으며, 자기 성찰이나 삶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대신, 교회권력에 복종하면 당장 편하고 죽어서도 편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을 것 같다.

나는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논리나 가치를 타인에게 주장하는 사람, 그리고 충분한 검증이나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피하고 싶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어 불안해하며 그 불안감을 지우고자 떠들어대는 것, 권력에 의해 주입된 가치에 대해 의심이나 재고 한번 하지 않고 따르는 이들의 연약함을 벌써 읽었고 말고다.

종교 전도는 설득을 넘어 폭력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제껏 무수히 많은 전도를 당하며 그들의 폭력성과 지옥저주소리를 들으며, 그런 어리석은 자들과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그것을 상상하는 자체가 나에게는 아주 불쾌하고 일종의 무시를 당하는 것으로 각인이 되었다.
믿건 말건 그냥 조용히 지내기를 바란다.

시커먼 덩어리 세 마리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은 죄를 지어서도, 신을 믿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냥 재수가 없을 뿐이다.
나에게 편지를 보낸 노인이 답장이 없다고, 편지받아놓고 교회에 얼굴 한번 비추지 않는다고 나를 저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끄~ 솔직히 나는 이미 저주짚인형을 열개 이상 아작낸 프로저주러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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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울기 싫다... 진짜...
사람들이 볼 것 같아 울기싫다...
젠장... 꾹꾹 참다가
주루룩 흘러버리는 눈물,
왜 눈물은
가끔 조절이 안되는 걸까



울려고 준비한 것도
관심이니 위로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운다고
핀잔이다.
내가 울어서 본인 기분이
가라앉아서일까

넌 참 울일도 많단다.
그런 일로 울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하냐고
잔소리다.



냉랭하다못헤
비꼬는 듯한 말에 더 서러워지고
뷴노가 슬며시 끌어오르려한다.
못된말에 신경쓰지마라.
대꾸하지않아도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는 것은 내 자유다.

마음대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악당들의 자유만큼
우리의 울 자유,
감정을 표현 할 자유가 있다.
남들 앞에서 울었다고
약한 것도 아니고
인생이 망한것도 아니다.
그냥 울었던 것이다.
웃었던 것처럼.
그런데
자꾸 울다보면 울음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을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만 우는 사람이 되었다면
좋을까 행복할까
울음이 터지는 일이 사라지고
어디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조롱섞인 핀잔으로
참 울일도 많다고 말하고 다니면
대단한 사람이 된 걸까?

그냥 그런 악당이 된 것뿐이다.
악당에 당하고 당하다
어느새 악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못된 그 인간이
망하길 바라고 어딘가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저주는
악당보다 약한
약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이다.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차분히 정리를 하고
다시 들이닥칠 무례함에 대비하는 것이
저주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앞에서는 말도 하지 못하면서
뒤에서
소심하게 바늘 저주나 하고
저주 부적이나 꽂는다고
한숨 쉴 필요는 없다.
악당은 폭력적인 말을 마구
던지고 다니며 곧 잊히길 바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가장 무시무시한 저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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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날일 뿐인 세상에
화낼 일 좀 없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
득도를 하여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않는 한,
그런 시대가 올까 싶습니다.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참습니다만,
순간적인 무례함으로 인해
불쾌한 감정이 생기는
순간은 참을 수 있겠으나,
위력을 사용하고 위치를 사용해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하고
분노를 유발한다면
잠깐 참는다고 반복되지 않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화낼 만 한 상황에서
화를 낼 수 있는 용기와
평등한 세상이
완벽한 세상보다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화나고 웃고
부끄럽고 감동받고
사람이라 절망적이고 또
사람이라 희망이 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 악당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악당에 물들어 악당 아바타가 되기 전에
나에게 화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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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적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기도 하고

대인관계에서 오는것이 대부분입니다.

기울어진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약자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회생활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먼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라는 비합리가 실제로

흔하게 벌어집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나 여러이유에서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떨치고

회복하여 내일을 살아갈 힘을 내야하는데요,



기존관계를 해치지않고

감정적 동등함을 쟁취하는 방법이 바로

저주입니다.

유치하다고 비웃을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방법이자

인류역사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주책에 기록하고 대비하고 회복하며
저주인형으로 저주하여 감정적동등함을 쟁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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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만만한 상대를 찾아
끊임없이 괴롭히고
힘의 우위에 있음을 보이려는
악당은
과거 결핍의 산물로 그러한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최근 뉴스에 등장한 속초 괴롭힘 사망사건은
십년간 친구로 지내던 사이에서
일어난 골프채 폭행살인사건으로
친구사이가 아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던 사이로 보입니다.

과거 강남대 인분교수 장호현 사건이나
김해 사설 구급대 사건 등
이런 괴롭힘 혹은 사망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피해자가 왜 피하지 않았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물어볼까요?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상에
어떻게 살고 있냐고 한다면,
한국, 지구 외에는 살데가 없으니
버티는 것일 뿐입니다.


왜 주변 사람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죽음에까지 이르게하는
잔인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까에 대한 답은
결국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불완전성을 깨닫지못하고
고치려고도 하지않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를 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하면서 또한
자주 멍청하기도 하죠.)


지난 긴 역사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잔인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왔고
그 차별이나 혐오는 사회적 구조로
자리잡아왔습니다.
다른 착하고 약하고,
이른바 인간적인 사람들이
악당들에 희생되면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족과 개인의 영역에서
여성과 아아들을 향해 흔히 벌어지던
폭력은
사적영역에서 축소되며
사회적 관계속에서
오히려 교묘하게 드러나고 있는데요,
친구사이, 직장관계 등에서
개인적인 결핍과 불완전성을
권력을 이용해 드러내며
아주 작은 일상적인 관계에서조차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수시로 폭력을 저지르고 괴롭히고
악당의 면모를 꺼리낌없이 드러냅니다.


사람이 숨기고 사는 이 악당본능을
더욱 깊이 숨기고 제어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악당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됩니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적하고
거부하는 최소한의 용기는
악당으로부터 더 큰 피해를
입지않는 출발점이 되고
악당들이 멈짓하는 포인트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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