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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aside some jobs for humans.
My dad died of Alzheimer’s in 2020. In the later stages of his illness, he was cared for day and night by paid caregivers who understood him even when he struggled to express himself. He couldn’t always tell them when he was hungry, but they always knew.
My family and I will always be grateful to that amazing group of professionals. Something in the care they gave my dad was irreplaceably human. No robot could or should have done it.
I think about that team when the question of which jobs will disappear and which will remain comes up. I believe that as AI and robots improve, we’ll set aside certain things for only people to do. I’ve started calling this domain Human Reserved, and it’s an example of the kinds of ideas we’ll need to consider.
I like the phrase Human Reserved because it makes me think of nature reserves—places where we could put buildings and roads, but we choose not to because the loss would be too great.
We might set something aside as Human Reserved for economic reasons. For example, we may do it because allowing machines to take over a certain role will displace a large number of people who can’t easily change jobs. You can’t tell a 55-year-old who has worked in construction their whole career that they need to go work at an elder care facility and expect them to find it fulfilling.
Sometimes the decision to make something Human Reserved will be driven by other factors. In health, for example, imagine a robot giving you the awful news that you have an incurable disease. There’s no technical reason why it couldn’t. Yet it shouldn’t.
The Human Reserved domain will evolve over time—for example, we should consider setting aside some jobs now and phasing in AI slowly over years or decades with a commitment to preserve some jobs. Some areas, like education and mental health care, will be a mix, with a human in charge who’s using the technology to extend what they can do.
The lines will also vary from place to place. Some countries might insist on having humans take care of the elderly. But a country like Japan, which has a shrinking workforce and not enough young people to care for the old, may welcome a caregiving robot.
The idea of Human Reserved raises a host of questions I don’t have answers to. Who gets to decide what we reserve for humans? What criteria should we use? How do you keep companies from cheating and using robots anyway? What happens to international trade when one country lets robots make something and another country doesn’t? These will need to be worked out in public as part of the transition plan."
: 인간을 위한 일자리를 따로 남겨두어야 한다. 내 아버지는 2020년에 알츠하이머로 사망했다.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아버지는 밤낮으로 유급 간병인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실 때에도 아버지를 이해해 주었다. 아버지는 배고프실 때를 직접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항상 알아차렸다.
내 가족은 그 놀라운 전문가들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그들이 아버지께 베풀어준 보살핌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로봇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해서도 안 됐다.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고 어떤 일자리가 남을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 간병인들을 생각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따로 남겨두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영역을 '인간 전용 영역(Human Reserved)'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우리가 앞으로 고려해야 할 아이디어의 한 예이다.
'인간 전용 영역'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자연 보호 구역을 떠올리게 하기 때이다. 건물과 도로를 지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의 자연이 너무 많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특정 분야를 '인간 전용'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계가 특정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 직업을 쉽게 바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건설업에 종사해 온 55세 남성에게 노인 요양 시설에서 일하라고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라고 할 수는 없다.
때로는 다른 요인들이 특정 분야를 인간 전용으로 지정하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 로봇이 당신에게 불치병에 걸렸다는 끔찍한 소식을 전한다고 상상해보라.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도 안된다.
인간 전용 영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일부 직종을 인간 전용으로 지정하고, 인공지능을 수년에 걸쳐 또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도입하면서 일부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이나 정신 건강 관리와 같은 분야는 인간이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의 역할을 확장하는 혼합형 체제가 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보고 경악했다.
빌게이츠가 주장한 휴먼리저브: 인간보호영역은 여성돌봄보존과 동일어이다. 우리는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를 시집온 아내에게 맡기는 돌봄전가를 오랫동안 봐 왔다. 빌게이츠는 부친을 유급으로 돌봐준 사람들로부터 느낀 감사함을 미래에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를 위해 보존하고, 본인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 지금 뭔가 말 하는 모양이다.
나는 빌게이츠을 유급으로 돌본 사람들 중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임을 확신하고, 본문의 55세 건설업 남성이 돌봄노동으로 전직해 느낄지도 모를 불만족감은 돌봄노동에 밀어넣어진 여성들이 지금 느끼는 불만족감이다. 여성이라는 단어는 안썼지만, 이 글은 늙은 흰수염 여우가 교묘하게 쓴 여성차별이다. 빌게이츠가 만든 컴퓨터 산업의 업적과는 별개로 그의 가부장남성성은 단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인간적이고 따뜻해 보이는 글의 인간성이 누구의 노동을 말하는 지 입을 다문다. 빌게이츠도 차마 여성의 돌봄노동을 AI에 맡기지 말고 계속 여성이 떠맡게 하자는 말을 솔직하게 하지 않는다.
1. 게이츠가 말하는 ‘인간성’은 평등하지 않다.
게이츠의 출발점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를 앓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졌음에도 간병인들이 아버지의 배고픔이나 불편함을 알아차렸다는 경험이다. 빌게이츠는 그 관계에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회에서 첨예한 논란를 일으키고 있는 그것이다.
누가 그 ‘인간적인 무언가’를 제공하는가? 왜 그 인간적인 능력은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요구되어 왔는가?
돌봄에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행동 변화, 감정 상태를 읽고, 말하지 못하는 욕구를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여성성 또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어 왔다. 좋은 엄마라면 알아서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좋은 아내라면 남편의 상태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며, 좋은 딸이라면 부모의 필요를 먼저 알아차려야 하고, 그래서 좋은 간병인이라면 환자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식이다.
'기계는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간적인 돌봄을 보존해야 한다.' 는 문장은 그 자체로는 따뜻할 수 있지만, 성평등 맥락에서는 위험하다. 왜냐면 역사적으로 인간적 돌봄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부과되어 온 돌봄 노동을 계속 여성에게 떠맏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 인간보호능력에 얼마나 낼까?
아기 돌보기, 아픈 노인 돌보기, 남편 부모 안부 챙기기, 집안 장애인 돌보기, 멀쩡한 남편 돌보기, 청소년 자녀의 감정 파악하기 등
이 감정 돌봄 노동에 제대로 값이 지불된 적은 없다. 남성은 삽입섹스를 하는것이 여성이 지배당하는 질서라 주장했고, 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을 남성의 사적 영역에 가두어두고, 가족내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에 착취해왔다. 부자집 여성은 다른 여성을 데려와 여성의 돌봄노동을 건넸고, 부자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을 데려와 떠맡겼다.
돌봄 노동은 가정에서는 무급 노동이었고, 시장으로 나오면 상대적으로 저임금 노동이 되어 성별임금격차를 만들고 있다.
여성운동이 오랫동안 제기해온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왜 인간에게 필수적인 노동일수록 경제적 가치가 낮을까?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재생산되지 않는다.환자를 돌보지 않으면 병원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노인을 돌보지 않으면 가족과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돌봄은 생산노동보다 낮게 평가되어 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돌봄이 오랫동안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근데 갑자기 '돌봄은 인간적인 일이니까 인간에게 남겨야 한다.'? 라고 선언하는 것은 과거의 성별 노동분업을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그것을 ‘인간성’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재포장할 위험이 있다.
3. 더 위험한 것은 ‘인간 노동의 보호’가 누구를 보호하는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AI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일부 직업은 인간에게 남겨두자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정치적 질문이 빠져 있다.
"그래서 어떤 인간의 일자리를 보호할 것인가?"
예를 들어 고임금 전문직과 저임금 돌봄노동자가 있다고 보면,
AI가 전문직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면 사회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이 중요하니 전문직에는 인간을 남겨두자.”
그런데 돌봄노동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접촉이 중요하니 돌봄에는 인간을 남겨두자.” 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똑똑한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공평하지 않다. 누가 그 인간 노동을 제공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임금 전문직의 ‘인간성’은 고임금으로 보상될 수 있는데, 반면 돌봄노동자의 ‘인간성’은 종종 저임금으로 구매된다. 그 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다. 따라서 “인간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정책이 실제로는 고소득층의 인간성을 보호하면서 저소득 여성의 노동을 보존하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계급적, 젠더적 문이다.
4. ‘돌봄을 자동화하지 말자’는 말은 누구에게 좋은가?
만약, 로봇이 장애 노인의 식사 준비, 청소, 세탁, 이동 보조, 약 복용 알림, 야간 상태 확인, 단순한 신체 보조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치면,
인간보호영역 원칙에 따라, 돌봄은 인간적인 일이므로 인간이 해야 한다며 인간 노동자를 계속 고용한다.
혹은 인간노동자의 만족을 위해 로봇을 고용한다. 로 선택이 주어진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이 하루 12시간 동안 간병인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몸을 들어주는 것과 간병인이 제공하는 감정노동이라면, 간병인이 감정노동 후 겪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다시 다른 감정노동자로부터의 돌봄으로 이어진다면, 로봇이 돌봄 노동 전체 혹은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음을 외면하는 기만이다.
인간보호영역 원칙 이라는 명목하에 인간을 고용하는 것은 고결한 윤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신체적 수고와 감정적 소진을 합법적으로 매매하는 것에 불과하다. 로봇이 24시간 내내 불평 없이 몸을 들어 올리고, 밤새 환자의 반복되는 푸념을 들으며 완벽한 미소와 친절한 음성으로 응대하면, 인간 노동자가 겪던 스트레스의 순환 고리는 여기서 끊어진다.
자동화와 인간성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동화가 인간에게서 노동에서 해방시켜 인간에게 관계를 돌려줄 수도 있다.
5. AI가 돌봄을 빼앗는가? AI가 누구를 돌봄에서 해방하는가?
흔히 AI가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고 한다. 근데 제발 뺏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AI가 이미 대체하고 있는 노동이나 로봇이 대체하는 일 말고, 가사노동에 로봇이 빨리 투입되기를 바란다.
돌봄과 가사노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여성과 아이를 착취하는 무급 노동으로 치부되어 왔다. 생산성을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리고 주 노동 주체가 여성과 사회적 약자였다는 이유로 가치 평가에서 늘 뒤로 밀려났다. AI와 로봇은 가사노동자와 간병인을 돌봄에서 해방한다. 빌게이츠 같은 부자는 수십 명의 간병팀을 꾸려서 간병노동의 질을 관리할 수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24시간 돌아가는 간병노동과 돌봄노동에 장기간 돈을 쓸 여력이 없다.
현실적인 대안은 감정노동의 99%를 AI와 로봇으로 대체하고, 남은 1%의 인간적 교감에 압도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24시간 요구되는 기본적인 말벗 역할, 그리고 신체적 수발에 들어가는 정서적 에너지를 AI가 99% 흡수하면 소모적인 감정 소비를 기술에 맡김으로써 인간 노동자는 감정적 방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술이 감정의 껍데기를 대체할 때, 비로소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공감, 깊은 맥락의 이해, 존엄성을 보장하는 마지막 1%의 연결이 희소하고 귀한 가치로 인정한다.
결국 핵심은 돌봄은 인간, 특히 여성이 해야만 하는 거룩한 노동 이라는 고정관념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AI와 로봇이 돌봄 노동을 100%에 가깝게 대체하여 수행할 수 있다면, 여성은 마침내 돌봄의 지정 담당자 라는 억압적 역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노동의 상실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강요된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을 환영해야 한다.
그렇다면 로봇이 이 돌봄 노동 전체, 혹은 물리적, 감정적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감정의 윤리적 외주화 가 완성된다. 로봇은 24시간 내내 불평 없이 몸을 들어 올리고, 밤새 환자의 반복되는 푸념을 들으며 완벽한 미소와 친절한 음성으로 응대한다. 인간 노동자가 겪던 스트레스의 순환 고리는 여기서 끊어진다. 사회는 비로소 '감정적 가성비'를 확보하며, 돌봄은 소진되는 인간 노동자 없이도 유지되는 완벽한 시스템이 된다.
둘째, 인간성에 대한 정의가 재편된다. 돌봄을 로봇에게 위임한 사회에서 노인은 더 이상 타인의 피로를 미안해할 필요가 없고, 가족은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견디는 공감의 이음새를 제거한다. 타인의 노동과 감정에 의존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빚을 지며 유지되던 인간적 유대감은 규격화된 기술적 서비스로 대체된다.
사적 영역에 갇혀 있던 비가시적 노동자가 해방되는 오랫동안 가정 내 돌봄을 전담해 온 여성, 혹은 가족의 병간호를 위해 자신의 삶을 유예해야 했던 이들에게 로봇의 투입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다. 그것은 주체적 삶을 되찾는 생존의 문제다. AI가 돌봄을 맡음으로써, 인간은 누군가의 수발을 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소진하지 않아도 되는 최초의 시대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 해방은 지극히 불평등하게 분배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이 남성권력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장착하고 있는 중, 해방을 누리는 것은 고가의 돌봄 로봇을 구매할 자본력이 있는 계층이며, 반면, 저임금으로 돌봄 노동을 제공하던 이들은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 수단마저 빼앗기는 현실에 직면한다. 돌봄 노동이 고되고 피곤한 일 이긴 했으나,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열린 몇 안되는 노동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AI가 돌봄을 빼앗는가, 해방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AI에 가르칠 미래 사회 구조에 달려 있다. 해방의 이점이 보편적 복지로 환원된다면, AI는 인간이 인간을 수발하느라 서로를 마모시키던 오랜 비극을 끝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6. 인간보호영역은 결과가 아닌 원인이 다.
빌게이츠는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단 일부 영역은 인간만 하도록 지정한다, 돌봄은 인간적인 영역이므로 남겨둔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돌봄이라는 노동을 왜 보존해야 하냐고 질문하자면, 돌봄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따뜻한 인간의 영역 이라는 감정적 호소가 따라온다. 결국 그 따뜻함을 제공할 주체로 다시금 여성을 호출한다. 정작 자신들은 고차원적인 지식 노동과 자본 소유를 독점하면서, 고단한 신체, 감정 노동은 인간성 보존 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성별에게 밀어 넣는 것이다.
자본과 기술이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AI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면서, 가사, 간병, 돌봄 로봇 개발에는 그만큼 속도를 내지 않을까? 돌봄 노동을 수행할 여성과 약자라는 대체 불가능한 저렴이 인간 자원 이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매우 위험하다. 돌봄을 인간다운 따뜻함 이라는 미사여구로 덮어씌워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묶어두는 순간, 그 고된 감정노동과 신체적 고갈은 다시금 성역할의 탈을 쓰고 여성에게 전가된다. 결국 인간 보호 영역 이라는 명목은 여성과 약자를 계속해서 돌봄이라는 노동 감옥에 저렴하게 가두어 두는 원인으로 작동할 뿐이다.
7.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성 저임금 노동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가정에서 무급 돌봄을 담당했고, 현대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이 발전하면서 일부 돌봄이 사회화되었다. 하지만 돌봄이 사회화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탈젠더화된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하던 일을 국가가 제도화하면, 어머니가 하던 돌봄이 여성 보육교사, 여성 요양보호사, 여성 간병인, 여성 사회복지사, 여성 방문 돌봄 노동자 등의 직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해야한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던 일을 국가가 로봇 대신 여성에게 저임금으로 다시 구매하면 여성은 해방되나? 아니다. 가정의 무급 노동이 시장의 저임금 노동으로 이동했을 뿐이라면, 노동의 장소와 계약 형태는 바뀌었지만 젠더화된 노동분업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이것이 돌봄의 사회화가 가진 역설이다.
8. 남성 기득권의 재소환
전통적인 가부장제는 남성을 생산자, 여성을 재생산 담당자로 구분했다.남성은 임금노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여성은 가사, 출산, 양육, 돌봄을 통해 가족을 재생산했다. 이 과정에 남성이 여성을 종속하고 강간하고 죽였다. AI가 등장하면 이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AI와 로봇이 과거에 남성이 특히 여성에게 요구했던 수동적 역할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적인 일은 AI가 하고, 인간적인 돌봄은 인간이 한다는 원칙을 세우면, 남성 중심의 생산 영역은 계속해서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여성 중심의 재생산 영역은 인간적 가치 라는 이유로 노동집약적인 상태로 남게 되어 역설적으로 AI가 남성의 노동을 대체하면서도 동시에 여성의 노동을 보존하게 된다. 기계화된 생산영역과 인간화된 돌봄영역이라는 전통적 분업이 생존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AI 시대의 새로운 가부장제이다.
9. 인간성은 여성의 희생을 미화하는 말가장 비판적으로 보면 빌게이츠의 문장에서 ‘인간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인간적인 돌봄”이겠으나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정적 육체적 소진을 부르는 일 일 수 있습니다.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는 인간성으로 미화되더러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노동이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를 돌본 사람들의 노동에서 인간적 아름다움을 보았으나, 그 아름다운 인간성을 제공하기 위해 그 노동자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10. 감정노동의 자연화
빌게이츠는 아버지가 말하지 않아도 돌봄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챘다고 하는데, 이것은 상대의 감정을 눈치를 살피는 감정노동으로 오랫동안 여성에게 이 능력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것을 여성은 원래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돌봄에 적합하고 관계를 잘 이해한다 고 사실화하는 것은 문제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기술을 여성의 타고난 본성으로 오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성은 어려서부터 타인의 감정을 읽도록 사회화를 강요했고, 남성에게는 허용하지 않은 정서적 노동을 여성에게 요구해 왔다. 그런데 AI 시대에 이것을 다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 이라고 칭찬하면,
인간만이 혜택을 누리는 여성만의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AI가 오히려 여성해방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AI가 돌봄노동을 당장 대체할 수는 없어도, AI가 돌봄에서 어떤 부분을 없애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은 지금 해야한다.
빌 게이츠 자신도 글 마지막에서 누가 인간에게 남겨둘 일을 결정하는가?를 물었다. 인간에게 남겨야 할 일 을 결정하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술정책을 결정해온 사람들은 대체로 기업, 국가, 자본, 전문가 남성 집단이었다. 그런데 돌봄노동자 자신이 그 결정 과정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가는 돌봄에 로봇을 도입하지 말자 고 할 수 있고, 국가는 돌봄노동에 여성 고용을 보존해야 한다 고 할 수 있고, 부자는 인간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임금 돌봄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돌봄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이 목소리가 정책에서 사라지면 안된다.
그리고 돌봄받는 사람의 인간성 과 돌봄노동자의 인간성을 동등하게 봐야 한다
빌게이츠는 아버지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보았는데 동등하게 돌봄노동자의 존엄성도 똑같이 중요하게 여겨야한다. 노인에게 인간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도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환자가 인간답게 돌봄받을 권리가 있다면,
간병인도 인간답게 일할 권리가 있다. 환자가 외롭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간병인에게 자신의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도 필요하다. 환자가 인간적 접촉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 간병인이 인간적 접촉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남성에게는 AI가 노동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면서, 여성에게는 “인간적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계속 요구한다. 이는 AI는 가부장제를 해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가부장제를 기술적으로 재구성하는 기술이 된다.
- 무엇을 인간에게 남겨야 하는가?
- 누구를 어떤 노동에서 해방해야 하는가?
- 어떤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야 하는가?
- 자동화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 자동화 때문에 없어지는 일자리의 노동자에게 사회는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 돌봄노동을 인간에게 남긴다면 왜 그 인간은 여성인가?
- 남성과 여성이 돌봄을 똑같이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 왜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인간의 희생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AI 시대는 남성에게는 AI가 더 많은 생산성을 제공하고, 여성에게는 인간성을 이유로 더 많은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여성과 남성 모두를 생존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불필요하고 반복적인 노동, 감정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결과 발생한 시간과 부를 성평등하게 분배하는 것. 그리고 돌봄처럼 정말 인간적인 관계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인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높이고, 권한을 강화하고, 남성의 참여를 의무화하며, 돌봄을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동 책임으로 만드는 것을 어떻게 이룰지를 생각해야한다.
솔직히 말해봐.
빌게이츠가 쓴 글이라서 주목을 받은 거면, 하필 빌게이츠가 쓴 것이라 비딱하게 보고말고 이다.
빌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및 재단 여성 직원들에게 이른바 찝쩍거려 2019년 이사회 조사를 받고 사퇴.
개인 자산관리회사(카스케이드) 대표의 여성직원 성희롱 및 언어적 학대 행위를 인지하고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음.
2023년 개인 사무실 채용 과정에서 보안업체가 여성 지원자들에게 성병 여부, 불륜, 누드 사진 촬영 등 부적절한 질문을 던진 사실이 드러났음.
가장 큰 건은 미성년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오래 만나 오다가 논란이 되었으며, 멜린다 게이츠와의 이혼 사유 라고 알려졌음.
빌 게이츠가 AI를 갖다대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주장하는 것의 이유를 대보겠다.
빌게이츠의 서술에는 직접적으로 여성이 돌봐야 한다 는 주장은 없다. 그러나 현실의 돌봄노동이 여성화되어 있다는 조건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하면 이렇게 전개된다.
" AI가 나를 돌보는 것은 싫다. 나는 사람이 나를 돌봐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나를 이해하고, 감정을 읽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여성???
여기서 그 사람을 여성으로 바꾸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의 욕구를 이해하고, 남성을 위로하고, 남성의 생활을 관리하고, 남성의 감정을 받아주는 존재로 길러져 왔고, 반항하는 여성들을 바로 죽여왔기 때문이다. 즉, “인간적인 돌봄을 원한다” 라는 욕망은 "여성이 나를 돌봐주었으면 한다. 여성은 원래 돌봄을 잘한다. 여성의 따뜻함과 공감은 남성이 누릴 수 있는 인간적 자원이다”
라는 사고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빌게이츠의 인간보존영역이 성적 대상화와 연결되는 지점은 여성의 몸과 감정이 남성을 위한 자원으로 취급되는 것 이다. 성적 대상화의 핵심을 단순히 여성을 성적으로 바라본다 라고만 이해하면 이 연결이 안된다. 더 넓게 봐서 대상화에는 한 사람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포함된다.성적 대상화에서는 여성의 몸이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전환된다다. 돌봄의 대상화에서는 여성의 몸, 시간, 감정, 관심, 공감 능력이 남성의 생활과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자원으로 바로 전환될 수 있다.
“나를 돌봐주는 여성”과 “나를 욕망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항상 결합되어왔다.
남성을 돌보는 사람. 남성이 욕망할 수 있는 사람.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고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하며 남성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고 남성을 위로해야 하며 집안일을 해야 하고남성이 힘들 때 보살펴야 하며 남성의 욕구를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는 상반된 요구가 동시에 부과되는데, 이것은 단순한 “돌봄”도 아니고 단순한 “성적 대상화”도 아니라 여성의 몸과 감정 전체를 남성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패키지로 만드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로봇보다 인간 여성이 나를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젠더화될 때, 여성은 단순히 노동자가 아니라 ‘나에게 인간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존재’ 성적 대상화로 소비된다.
빌게이츠가 말한 간병인이 아버지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배고픈지 알아차렸다는 것은 아름다운 장면이나, 이 능력을 여성에게 기대하는 문화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나? 말을 해야알지! 이렇게 되면 여성에게 초과적인 감정 인식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남성에게는 상대적으로 그런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다.성적 대상화에서도 남성의 욕구가 출발점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원한다.” 이러면 돌봄을 제공하는 여성의 욕구는 뒤로 밀려난다. 여성이 일을 안하고 싶을 때도, 남성이 여성의 이해를 원하면, 이 순간 여성의 주체가 사라지고 남성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객체가 된다.
성적 대상화와 돌봄 대상화가 만나는 지점이다.
더 위험한 것은 ‘여성의 돌봄 능력’ 자체가 여성성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남성은 AI에게는 없는 것을 여성에게서 찾는다. 그런데 이 능력들이 여성적 특성 으로 정의되면, 여성은 자신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제공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여성의 인간성이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인간성을 남성이 소비한다.
왜 남성의 노동은 기술로 해방되어야 하고, 여성의 돌봄은 인간적 가치라는 이유로 보존되어야 하는가? 왜 남성은 AI에게 노동을 맡길 수 있으면서, 자신의 정서적·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인간은 여성으로 남겨두기를 원하는가?
이것을 ‘돌봄의 성적 대상화’라고까지 확장해서 보면, 여성의 돌봄 능력을 여성의 성적 매력과 결합시키는 문화적 구조는 분명히 있다. 남성은 여성을 욕망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기를 기대한다. 빌게이츠는 점잖게 말했지만 조만간 아무도 자신을 정성스럽게 돌봐주지 않을까 불안해서 한 소리가 섞여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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