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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가장 편하고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데, 오히려 불평등, 돈, 종교라는 민감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스트레스의 장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심각한 문제들이 혈연이라는 가장 가까운 울타리 안에서 적나라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1. 불평등한 차별
가부장적 잔재와 역할 갈등이 터지는 명절 풍경 속에서 여전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나타난다. 음식 준비나 손님맞이 등 실질적인 노동이 주로 며느리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집중되면서 억울함과 불만이 폭발한다.요즘 세상이 어떤데 아직도 이러냐는 민주적 인식과 원래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거 라는 구시대적 가부장 마인드가 정면으로 부딪치며 조용히 혹은 시끄러운 감정싸움이
터짘다.
2. 돈 문제
가까운 가족 사이라는 이유로 서로의 삶을 잣대질하고 경제적 격차를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가 되기 쉬운데 걱정한다는 이유로 개인에 대한 수동적 공격을 한다. 취업, 연봉, 자산 규모, 자녀 등을 두고 건네는 말들이 칭찬이나 안부가 아니라 상대방을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는 폭력으로 작용한다. 돈이 없으면 자격지심으로 돈이 많으면 권위를 드러내며 모두가 마음 상하는 경험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은 은근히 우위를 과시하려 하고, 그렇지 못하면 위축되거나 반발하면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 명절 식탁 위에 세워진다.
3. 종교 특히 기독교
세상의 많은 문제를 종교가 저지른 예가 많다. 기독교 등의 독단적이지만 전도를 하는 종교를 가진 가족 구성원이 있을 때 명절은 또 다른 전도 현장으로 변질된다. 기독교는 듣지않고 자기 말 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건강이나 생활 안부를 묻는 대신, '교회 안 나가면 지옥 간다','예수 믿어야 천국간다' 는 상대방의 삶과 가치관을 무시하는훈계를 늘어놓으며 벽을 쌓는다. 모순적이게도 기독교 가족은 돈 이야기는 좋아한다. 종교적 구원이나 신앙을 강조하면서도 물질적 풍요나 재정에 집착하는 모습은 매우 큰 모순이다. 배타적인 신앙심과 물질주의가 공존하는 것은 요즘 만의 일이 아니다. 카톨릭과 불교, 기독교 모두 역사속에서 권력과 결합해 영향력을 높여왔고 종교 종사자들은 헌금을 받아서 종교시설을 유지하고 생활을 해왔으므로 항상 돈은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했다. 한국 개신교 급성장 시기에 성경 속 일부 구절을 십일조나 헌금의 대가로 재물이나 성공을 얻는다는 방식으로 해석하여, 경제적 번영을 하나님이 내린 축복이자
신앙심의 척도로 정당화해 왔는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곧 신에 대한 믿음의 결과로 연결된다는 논리가 내면화되면서, 돈을 추구하는 행위가 세속적인 탐욕이 아니라 영적인 보상으로 포장했다. 돈많은 사람을 시기하지만 그 사람이 기부를 하면 나누어 가지면서 친해지는 논리는 저급한 인간관계 논리로 볼 수 있다. 대형 교회의 구조는 종교 조직을 기업처럼 운영하게 만드는데 거대한 건물, 방송 송출, 선교사 파견, 복지 시설 운영 등 조직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헌금을 강요하고 재정 운영은 투명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인 부와명예가 종교적 열정과 결합할 때,종교는 탐욕을 정당화하기가 매우
쉬워지는데, '신의 일을 크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는 명분을 내세워 재정적 집착을 거룩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미화한다. 결과적으로 타인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들의 조직 내부의 물질적 탐욕이나 불투명한 돈 거래에는 관대해지는 이중성이 나타난다. 개신교를 포함한 배타적 종교는 모든 종교나 사상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다원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서 진리를 딱 하나로만 보고, 그 외의 것은 오류 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니
타인의 입장에서 불쾌하게 느끼는
전도 행위조차, '상대를 지옥으로부터 구출하는 행동''으로 인식해서
무례를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지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타인의 권리나 사회적 비판은 '핍박'이나 '시련'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신앙적 확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가스라이팅한다. 종교 유무를 떠나서 같은 국가사람들은 공통의 헌법을 지켜야 하는데 차별적 종교인들의 세계관이 현실과 충돌할 때 종교인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진다. 종교인들이 헌법이나 사회적 상식을 모르는 것이 아니므로 핵심은 이들의 체계 안에서 종교가 국가의 법이나 세속적 상식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어서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남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이 상황과 상대를 존중하는 이타심이 아니라 내가 정한 정답을 너에게도 강요하는 일방적 이타심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인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지는 관심이 없고,자신들의 기준에서 무조건 주장하는 것이 폭력이다. 적극적인 전도나 신앙 과시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의 선의가 아니라 자기 확신을 자랑인하고 증명하려는 심리적 동기가 섞여 있어 남을 개종시키는 성과를 통해 자신의 신앙심이 강하다는 위안을 얻는 자기 이익 추구하고 할 수 있다. 비신자나 타종교인을 존중해야 할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언젠가 구원해야 할 대상, 어둠의 존재로 무시하여 이 과정에서
저 사람이 내 행동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라는 객관적인
피드백 보다는 사탄이 저 사람을 가리고 있다거나 세상이 진리를 미워한다 는 식으로 왜곡되어 수용하여 외부의 비판을 차단하는 강력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다. 결국 이들의 행동은 겉으로는 사랑과 구원 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타인의 인권과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념 체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기적이고 차별적인 종교인, 폭력적인 이들과 함께 사는 이 세상이 아직 말이 통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인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소수의 극단적이거나 목소리 큰 집단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상식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힘에서 온다. 시끄러운 갈등과 대립이 올림픽공원과 동화면세점 앞을 채우다 보니 세상이 온통 무법천지처럼 보이지만 다른 편에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법과 도덕을 지키며, 서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압도적인 다수의 상식적 연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이란 등의
근본주의자들이 들끓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상식 질서가 유지되고 나라간 소통이 가능한 이유는, 국제 사회와 인간 사회가 그동안
실용적이고 제도적인 안전장치들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종교적 갈등이 폭발할 때, UN, 국제법, 국제조약 등은 국가 간 최소한의 대화 채널과 지켜야 할 규칙을 강제하여 완전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을 막고 있으나 이스라엘과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어 결국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종교가 좋아하는 돈이 종교를 정신차리게도 한다. 아무리 이념이나 종교가 달라도 현대 국가는 경제적으로 고립되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에 묶여 있다. 무역, 공급망, 금융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만 내세워 국경을 닫고 살 수 없어서, 경제적 이익과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필요가 대화와 타협을 강제하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국가나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리 극단적인 주장을 펼쳐도, 그 사회의 구성원 전부가 그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네타냐후 정부의 강경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고, 미국에서도 복음주의에 반대하는 성숙한 시민들을 중심으로 정부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온다.
한편, 종교에 깊게 빠진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을 혐오하고 개조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에 종교인들일수록 서로를 강하게 비난하고 실망하는 현상은 매우 흔하게 관찰된다. 겉보기에는 같은 신을 믿고 같은 성경을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서로가 정의하는
진짜 신앙 의 기준이 너무나 엄격하고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일수록 같은 종교인의 사소한 언행이나 태도에서 도덕적 흠결을 찾아내는 데 민감해서, 각자 자신이 세운 신앙적 기준이 절대적인 정답 이라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 기준에 조금만 못 미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면 위선자라거나. 믿음이 식었다며 실망한다. 바깥세상의 불신자들에게는 전도의 대상이라 어느 정도 관대할 수 있지만, 내부 교인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수준의 순수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작은 갈등도 쉽게 혐오로 번진다. 그래서 같은 종교를 믿는 이들끼리 서로 믿음을 강조하고 믿는데도 믿으라는 강요를 한다. 특히 개신교는 교황 같은 절대적인 중앙 통제 권력이 없고, 교리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예배 형식, 정치적 성향, 성경 해석 방식을 두고 우리가 진짜이고 저쪽은 이단이라고 배척한다. 한국 개신교 역사만 봐도 교리가 조금만
다르거나 주도권 싸움이 붙으면 교회가 쪼개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과정에서 한 때 한 식구였던 이들이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혐오하는 양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최종 지점은 거룩하고 완벽한 구원이지만, 믿음에 깊이 빠진 사람일지라도 실수하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상대방에게서 성자 같은 모습을 기대했다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기적이거나 돈,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 느끼는 배신감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보다 훨씬 크다.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남의 위선은 참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며 저 사람은 진짜 신자가 아니다 라는 결론을 쉽게 내린다. 결국 이들의 혐오와 실망은
내 안의 기준만이 절대 진리이며,
너는 그 기준에 미달했다는 강한 독선이 내부를 향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을 향하던 배타성의 칼날이 결국 자신들의 내부로도 향하게 되는
셈이다.
종교를 강요하고 무시하는 사람을 명절에 만나면 불쾌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그렇다고 무조건 웃으며 넘기지 말고 무표정으로 3초간 눈을 바라본다. 이는 무언의 항의 표시를 상대는 이 눈빛의 의미를 바로 알아챈다. 돈 자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을 좀 들어주고 한턱 쏘라고 하거나 뭔가 내라고 하면 깔끔해지고 차별하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그 사람은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역으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차별에 대해 상세히 말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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