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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로 돌아온 트럭은 택배 상자 내리듯 사람을 하나씩 내려 놓았다. 진화는 김미영팀장 뒤를 따라가려다 거기 있으라는 김미영의 말을 듣고 대신 이한송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최선미가 진화에게 말을 걸었다.

"할 만 하시죠? 이게 크게 힘들다기 보다는 지겨워요. 지겨워."

"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힘들긴 하네요."

창고안으로 들어갔던 김미영팀장이 다시 창고 뒷문에 모여 있는 무리 쪽으로 걸어왔다.

" (김미영) 경인아, 오늘 내 보낼 것 다 쌌어?"

" (추경인) 네, 얼추 다 했어요. 반품 CS부터 하고 마무리 하려고요."

" (김미영) 진화씨랑 같이 해도 되고."

" (추경인) 오전조 검수 정리해야되는데 그거 하라고 하세요. 진송언니는 오후조 관리하셔야 하고."

" (김미영) 진화씨, 지금 좀 쉬고 이따 오전에 마무리한 박스 정리해주셔야 해요. 검수 마친 박스들은 봉해서 송장 붙여서 내보낼 거에요."

" (진화) 네, 알겠습니다."

" (김미영) 진화씨 커피는 마셨어요?"

" (진화) 아까 오전에 자판기에서 빼서 먹었어요."

" (김미영) 왜 자판기를 먹어? 여기 옆에 커피 있어요. 종이컵이 없을 때는 있는데 우리는 각자 다 자기 컵을 들고 다녀요. 내일 올 때는 개인 텀블러 가져오세요. 그게 편리할 거에요."

" (진화) 아, 네. 들고 오겠습니다."

" (김미영) 이제 가서 오전조 박스 좀 옮겨주세요. 1층으로 빼야 하거든. 오후조 들어오기 전에 끝내야 해요. 옮기고 있으면 내가 가서 송장 붙이는 법 알려줄게요."

진화는 김미영팀장의 말에 따라 창고로 들어갔다. 진화처럼 오전 내내 실밥을 뜯고 옷 앞 뒤를 살펴보던 다른 노동자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진화는 검수가 마무리되어 각 박스들을 가득 채운 옷들을 꾹꾹 눌러 모았다. 김미영이 박스를 봉하라고 한 말을 기억했지만 테이프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박스를 밀어 입구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 허리까지 오는 크기의 박스는 무게도 상당했다. 복잡한 창고에서 요리조리 길을 찾아 끌며 플라스틱 박스를 옮겼다. 김미영팀장이 박스를 끌고 있는 진화에게 다가왔다.

"박스 못 들겠으면 끌어도 되요. 종이가 아니라 괜찮아요. 그리고 이리 와 봐요. 여기 송장이 나왔는데 종류랑 갯수를 맞추어야 하거든요. 검수는 다 끝난 거니까 따로 볼 필요는 없고, 박스마다 수량 체크 좀 해 주세요."

"갯수 세라고요? 어... 바닥에 부어서 해도 되나요?"

"네, 편하데로 하세요. 제품에 물기만 안 닿게 해주세요."

"네"

진화는 허리만한 박스에서 포장된 옷들을 꺼내 일일이 세어 갯수를 리스트에 적고 다시 박스 안에 집어 넣었다. 한꺼번에 바닥에 부으면 편할 것도 같았으나 혼자 들기에 박스가 너무 무거웠다. 허리를 숙여 꺼내고 다시 허리를 구부려 넣는 동작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허리가 뻐근해져 오기 시작했다. 이제 한 박스 했는데 벌써 몸이 아프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미영팀장은 서류뭉치를 뒤적거리며 창고 한쪽에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이한송과 추경인, 최선미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 (추경인) 한송언니, 저기 새로온 사람, 손은 좀 빨라?"

" (이한송) 느려터지지는 않았더라. 뭐하던 사람이래?"

" (최선미) 팀장님, 저 분 뭐하다 오신 분이래요?"

" (김미영) 나도 잘 몰라요. 사장님이 이런 일 한 적 없다고만 하던데요."

" (최선미) 하던 일 아니면 못 해. 나이가 젊은 것도 아니고. 아까도 힘들다고 하더라고. 어디 며칠이나 가나 보자고."

" (이한송) 아까 나한테 자기 배고프다고 언제 밥먹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배 엄청 고팠나 봐, 흐흐"

" (최선미) 밥도 엄청 먹더만. 그러고는 라면은 안 먹는 댔지? 여기 밥 먹으러 왔나벼, 흐흐"

" (이한송) 원래 오전조만 하기로 한 거 아니에요? 밥주는 줄 몰랐을걸요? 아까 커피 찾길래 제가 자판기 알려줬거든요."

" (김미영) 여기 커피 마시라고 하지. 왜 그랬어?"

" (이한송) 돈없다고 하면 알려줄려고 했죠."

" (김미영) 아, 사장님이 진화씨 어린이집 다니던 사람이었다고 하시네. 카톡으로 말씀하시네."

" (최선미) 그럼 어린이집이나 나갈 일이지 여긴 뭐 해보겠다고 왔대? 참 이 일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봐."

" (추경인) 아무나 하죠. 여기 자격증 있어야 들어오는 데도 아니잖아요.하하"

" (최선미) 그게 아니라, 힘쓰는 일인데 저래 요령이 없어서 어디 오래 하겠어?"

" (추경인) 하다 보면 늘겠죠. 저도 그랬는데요 뭐."

" (김미영) 경인씨는 우리 회사 에이스고, 나이도 젊고 말야. 비교가 안 되지. 성진씨가 엉망으로 해놓고 나간 그 패딩 박스를 오전에 다 하긴 했던데 다시 안봐도 되겠지? "

" (이한송) 근데 저 분 다리가 약간 휘었죠? 맞죠? 자세가 이상해."

" (최선미) 좀 이상하긴 하다. 힘을 어떻게 쓰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 어린이집에서 일했으면 애들을 많이 들어봤을텐데, 박스랑 애랑은 다른가? 흐흐"

진화는 멀리서 모여 떠드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모여서 떠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듣고 있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듣던 말던 신경 쓰지 않거나. 점심은 다같이 먹었는데 진화 자신만 일을 먼저 시작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신입이니 그렇겠지 하며 계속 일을 했으나 떠드는 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들렸다.

"진화씨, 내가 송장 보는법 알려줄게요. 여기 보면 송장이 다 인쇄 되어 나왔죠? 종류 확인하고 갯수 확인 하고 그리고 박스 안에 이 종이 꼭 넣어야 해요. 그리고 박스 잘 막아서 송장은 여기 붙이고 옆에 이 작은 종이 투명 테이프로 붙여주세요.아시겠죠? 나는 오후 작업 준비해야 해서 진화씨 하고 있으면 제가 다시 와서 확인 할게요."

"저 근데 팀장님, 다른 분들은 일 안하세요?"

"할거에요. 아직 물량이 안 내려와서 그래요."

"네."

진화는 모여 떠드는 사람들을 흘깃 보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 (김미영) 자자 일들 시작해요. 신입이 왜 자기만 일하냐고 항의했어요."

" (최선미) 아이고, 잘못했네요. 일합시다, 일!"

모여있던 사람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물량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김미영팀장의 말과 달리 오후 일거리는 이미 나 나와 있었다. 두시가 되자 오후조 알바 사람들이 창고로 들어왔다. 도착한 사람들은 간단하게 작은 소리로 인사만 하고는 자기 자리로 가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김미영팀장은 사람들의 인원수를 확인하고 검수품목을 확인 기록했다. 진화가 일하는 쪽으로 와서 진화가 해놓은 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깐, 진화씨 이 종이 넣으라고 했잖아. 이거 뭐야?"

"넣었는데요."

"그럼 이건 뭐야?"

"아, 두 장이었어요? 실수했네요."

"아니, 내가 분명히 넣으라고 했잖아. 들었죠? 그쵸? 그런데 왜 실수를 할까요? 일단 다시 열어서 종이 두장 들어갔는지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다른 박스 할 때 혼자 하지 말고 한송씨랑 같이 하세요. 종이 누락되면 다 반품이야. 알겠어요?"

"네, 죄송합니다."

"아니, 무슨 큰 잘못 한건 아니에요. 처음이니까 잘하면 되지. 이제 틀리지 마세요."

"네, 감사해요. 제가 아마 서툴러서 계속 실수를 할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집중에서 해야하는데 정신은 멍하고 긴장되고..."

"진화씨 이제 일하세요."


김미영팀장은 진화의 주절거림을 끊고 돌아서 갔다. 담배를 피러 나간 추경을 찾아 뒷문으로 나갔다.

"경인아, 너 일은 안하고 또 여기서 놀아?"

" 아니 팀장님, 전화가 와서 받으러 나왔다고 한 대 피고 들어가려고 했어요."

"괜찮아, 천천히 피고 들어와. 근데 저 성진화, 벌써 골 때린다, 골 때려. 말이 너무 많아."

"인상이 말이 좀 많은 것 같아 보이긴 했어요."

"박스 전부 1층으로 옮기라고 했거든. 어떻게 옮기나 보고 계속 할 지 못할 지 두고 봐야겠어."

"오늘 처음 왔으면 힘이 남아 돌아서 잘 할텐데, 저렇게 일일이 하나씩 들고 꺼내는 걸 보면, 며칠 출근해서 지치면 아예 들고 옮기는 건 불가능 할 것 같아 보이네요."

"그니까, 남자를 뽑으라니까 맨날 아줌마만 뽑아다 준단 말야. 힘도 못쓰고 말만 많고 말야. 갑자기 굴러들어오면 뭐 아무나 일 할 수 있는 줄 알아? 여기도 다 이미 들어와서 고생하며 경력 쌓고 있고 자리잡는다고 고생하는데 어디 지 할말 따박따박 하면서 무임승차를 하려고 말야."

"제가 아는 동생이 요즘 일 쉰다고 알바 찾고 있다는데 여기 와서 일하라고 말해볼까요? 남자에요."

"그래, 오라고 해. 면접은 사장님이 보지만 아마 일 하라고 하겠지. 저 성진화는 오전조만 하게 하던가, 그만두던가, 흐흐 "

진화는 지하창고에서 부터 1층 까지 무려 열일곱개 계단을 걸어 올라가 무거운 박스까지 옮겨야 하는 일이 막막했다. 하지만 힘들것이라는 각오하고 온 이상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썼다. 박스를 두손으로도 들기 어려운데 계단으로 어떻게 들고 올라갈 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이한송이 다가왔다.

"힘드시죠? 원래 둘이나 셋이서 드는 거에요. 못 드시는 거 같아 보여서 제가 도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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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안녕하세요. 면접보러왔는데요..."

싸해보이는 화색 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간 진화는 얼굴에 주름 하나 안 남기려는 듯 팽팽하게 얼굴 근육을 양 옆으로 잡아당겼다. 문 안으로 쏙 들어간 진화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을 향해 말을 내밀었다.

"여기 아니고요.... 따라 오세요."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있던 직원은 진화를 흘깃 보고는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진화를 다시 문 밖으로 데리고 간다.

"아, 여기가 아닌가요?"

진화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리퍼를 달달 끄는 직원 뒤를 쫒아 나갔다.

"여기로 들어가세요."

직원은 진화의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 뒤돌아 걸어가 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진아는 알려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왔습니다."

진화는 한번 연습을 해서인지 아까보다 더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아이고, 네! 어째 오시는데 괜찮으셨어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셨어요? 오늘 면접자 분 성함이... 잠시만요. 아, 먼저 그쪽에 앉으세요. 편하게, 네"

김병신 사장은 휑한 책상 위에서 잠시 뒤지다가 종이 한 장을 찾아들고 진화가 앉은 자리로 다가온다.

"자, 성진화씨, 어디, 이쪽 일은 해보셨고?"

-"아니요, 처음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처음이면 쉽지 않을 텐데. 혹시 하셨던 일은 뭐?..."

-"어린이 집에서 일했었습니다."

"왜 그 일 계속 안하시고 다른 일 하시려고 하시나?"

-"아 그게, 제가 작년에 일을 그만두고 쉬다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쪽 분야에 관심도 있고 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약간 상기된 채 순진한 표정으로 주절주절 말하는 진화를 흘깃 보고 종이를 들여다보기를 열 번은 반복하던 김 사장은 진화의 휑한 지원서 한 곳에 시선을 멈춘다.

"사시는 곳이 황금동이시네?"

-"네 맞습니다."

"황금동 아파트 값이 요즘에 엄청 올랐죠?"

-"그렇다고 누가 그러던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아, 황금동 사시는 구나. 혹시 가족관계는?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말 안하셔도 됩니다. (진화는 얼른 딸 둘이라고 말한다. ) 아, 딸 둘이시고. 다 키워놓으셨네요. 그런데 저희 회사에 지원을 하셨고... 일단은, 공고대로 포장 피킹 하시는 일을 하셔야 하고, 임금은 최저로 나갑니다. 뭐 궁금하신거 있으세요?"

-"그런데 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나요?"

"저희 회사가 의류 납품을 해요. 그래서 송장대로 물건을 찾아와서 잘 포장해서 보내는 일을 하실 거에요. 어려운 일은 아니고, 빠르고 정확하게 하셔야 해요. 이 쪽일 안 해보셔서 할 수 있으시겠어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순진한 표정으로 열심히 하겠다 의욕을 보이는 진화를 쳐다보는 김사장의 표정에는 풋 하고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진화의 지원서에 적힌 글씨라고는 이름 주소 어린이집 보조교사 경력이 전부 였지만 김사장은 열심히도 종이를 보고 또 보았다.

"진화씨, 우리 그럼 이렇게 해보죠. 일단 일주일 간 시간을 두고 서로 겪어보는 것으로 하고, 진화씨도 일을 해봐야 어떤 일인지 알 수 있잖아요. 저도 좀 지켜보고 말이죠. 괜찮으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진화는 연신 감사하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하고 내일 출근하라는 말을 덥석 받았다.
진화는 내년이면 50에 바싹 다가가는 중년 여성이다. 딸 둘을 둔 엄마로 큰딸이 고1, 작은 딸이 중1이다. 진화의 동갑 남편은 약품 회사에 다니고 있다.

몇 년 전에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어느날 한 학부모의 항의를 받게 되었는데 어린이집 원장은 진화의 해명은 들어보지도 않고 진화에게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라고 강요 했다. 진화는 무릎을 꿇고 빌며 울 수 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어린이집 4살 아이가 진화에게 다가와 선생님은 왜 혼났냐고 왜 울었냐고 물었다.
진화는 도저히 어떻게 대답을 할 지 몰라 실없이 웃기만 했고, 그날로 어린이집을 그만 두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을 쉬던 진화는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 열어 볼까 하는 마음에 경험을 쌓아보고자 알바 자리를 찾았다가 오늘 김가장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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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나 숨이 안 쉬어져. 숨이 안 쉬어 진다고! 이봐!”

김기동씨는 가슴을 움켜쥐고 간호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환자복을 잡아 뜯으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김기동씨는 입원실 유리 창문 쪽을 계속 쳐다 보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이 없자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악! 숨이 안 쉬어 진다고! 환자가 부르는데 왜 아무도 안 쳐다보는 거야!”
소리치던 김기동씨는 의외로 간호사 호출 벨을 누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때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기동 할아버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필요할 때 여기 벨 누르시라고 말씀 드렸죠. 소리 지르시면 목 아프시니까 여기 벨을 누르세요.”
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숨이 안 쉬어진다고 내가! 가슴 통증이 또 심해졌다. 빨리빨리 부르면 와야지 말이야! 아참, 간호원부터 좀 바꿔 줘!”

김기동 씨는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간호사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할아버님, 지금 말씀 크게 하시는 것 보니까 호흡 곤란은 아닌 것 같아요. 가슴 통증이 있다고 하시니까 담당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진통제 투약 해드릴게요.”

“아니, 내가 숨이 안 쉬어진다는데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간호원 주제에 환자를 잘 돌보려고 하지는 않고 밖에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있재?” 

김기동 씨는 아직 화가 치미는 듯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김기동 할아버지, 이제 점심 드실 때 되셨어요. 챙겨서 갖다 드릴게요. 그리고 필요하시면 이 벨을 누르세요.”

이 간호사는 김 노인의 항의에 익숙한 듯 태연하게 환자 상태를 둘러보고 병실을 나왔다. 
방호복을 입은 이 간호사가 얼굴에 쓴 고글에는 김이 서려 있었고, 흐릿한 김 뒤편으로 지쳐 보이는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김기동 씨 병실을 나온 이 간호사가 기록을 남기고 담당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간호사에게 아래층 병실에 다녀온 다른 간호사가 다가왔다.  

“저희 12층 환자 중 세 명 정도는 이번 주에 퇴원할 것 같아요.  그런데 10호실 김 할아버지 안 좋아지셨어요?”

“아니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좀 심적으로 불편하신가 봐요. 그러게, 재검사 결과가 언제 나온대요? 환자들 모두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면 좋으실 텐데요.” 라고 이 간호사가 말했다.

“네, 다들 힘드시겠죠. 김 할아버지도 갈수록 심해지시네요.”

“선생님도 힘내세요. 환자분들 식사 나눠드리고 우리도 조금 쉬어요.”

“그래요. 전부 천재지변 전염병 탓이지 누구 탓이겠어요.”


방금 전까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호소하던 김기동 씨는 간호사가 나가자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환자복을 고쳐 입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계속 지켜 보았다. 

11시 58분 15초, 16초, 16초......
12시 10분 30초, 31초, 32초……
12시 11분 02초, 03초, 04초……

김기동 씨는 침대 식탁을 세워 펼쳤다. 
12시 15분 45초, 46초, 47초……
12시 17분 9초, 10초, 11초……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점심 식사가 도착했다. 
이 간호사가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할아버님, 식사 왔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문 앞에 내려놔 주세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식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왜 이리 늦게 왔어! 다른 방에 먼저 주고 왔나?”

“아, 네 조금 늦었어요. 배고프셨죠? 맛있게 드시고 약 챙겨드세요.”

이 간호사는 식판을 탁자에 내려두고 서둘러 옆 병실로 갔다.
김기동 씨는 시선을 차지한 식판에 놓인 반찬 그릇 뚜껑들을 조심히 열었다. 오늘 점심 반찬은 생선구이와 오이생채, 고사리무침이었다. 국그릇 뚜껑을 여니 소고기 무국이 나왔다. 김기동 씨는 고사리 무침 뚜껑은 도로 덮어버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생선 살을 발라먹다가 뼈에 붙은 살까지 다 먹으려고 뼈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다가 퉤 뱉어냈다. 국물까지 얼추 다 마시고 식사를 끝낸 김기동 씨는 발라낸 생선 뼈 조각과 씹다 뱉어낸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보이는 식판을 대충 들어다가 병실 문 앞에 내려두었다. 지저분한 식판 위에 고사리 반찬 그릇의 뚜껑은 그대로 덮여 있었다.

김기동 씨는 점심 약 봉지를 챙겼다. 당뇨약과 혈압약 병에서 먹을 알 수까지 헤아렸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서서 다시 벽 시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식판을 회수하는 봉사자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기동 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고사리를 왜 먹으라고 주나? 그게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남자 전립선을 다 죽인다는데. 병원 밥에다가 그런 거를 넣어서 환자 먹으라고 주나? 거기, 아줌마. 가서 애기 좀 해. 지난번에도 내가 한 번 말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나.”

봉사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할부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고소하게 고사리 볶아서 드린 건데, 좋은 대학 나온 똑똑한 영양사가 다 연구해서 드시라고 하는 거에요. 고사리가 몸에 안 좋다는 거 가짜뉴스에요. 믿지 마세요. 근데 할부지 전립선 어디다 쓰시게? 흐흐”

중년 여성 봉사자의 농담에 기분이 상한 김기동 씨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병실에 서서 다시 시계를 보던 김기동 씨는 12시 55분이 되자 약봉지를 뜯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기침 증상을 완화한다는 가글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진통제를 처방 받아 병실로 왔다.

“김 할아버지, 이거 진통제에요. 아까 가슴이 아프다고 하셔서 일단 이거 드시고 오후에 선생님 회진 하실 때 다시 봐 드릴 거에요. 약 지금 드시면 돼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의 말에 아무 대꾸 없이 입만 계속 작게 우물거렸다.  

“할아버지 아시겠죠? 이거 지금 드시면 되요. 지난번처럼 반만 드시거나 하지 말고 두 알 다 드셔야 해요. 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하는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무표정하게 계속 입만 우물거렸다.

“아까 제가 말씀 드렸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 벨 누르시고, 이 약은 지금 드셔야 한다고요. 알아 들으셨죠?”
이 간호사는 김기동 씨에게 당부를 하고 잠시 쳐다보다가 병실을 나갔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에 아무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시계만 쳐다보다가 60초 기침약 가글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손에 들고 가만히 보던 김기동 씨는 두 알 중 한 알만 먹고 다른 한 알을 서랍 속 봉지 안에 넣어버렸다. 그러고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는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다시 시계 바늘만 주시하던 김기동 씨는 한 시간이 딱 지나자 다시 일어나 침대 아래 가방을 열었다. 침대 밑에 둔 가방에는 약병과 약이 든 상자가 가득했다. 그 안에서 몇 개 병들을 꺼내더니 먼저 녹색 가루를 한 스푼 입에 털어 넣었고, 검은색 환을 한 주먹 삼켰다. 그리고 액상 스틱 하나를 짜 마시고 나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아래에 내려두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김 기동 씨는 손으로 한동안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쓸어 내리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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