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할아버지, 지난주에 재검사 하신 거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네요.
이번에 퇴원하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오늘 특별한 증상 생긴 것 없으시죠? 퇴원하실 때 집으로 모셔갈 보호자 있으신가요?”
김기동 씨 병실을 찾은 이 간호사는 김기동의 안색을 살폈다.
“언제 퇴원하는데?”
- “오늘 퇴원 결정 받으실 분이 다섯 분이시거든요.
다섯 분 다 지금 건강 상태가 안정적이셔서,
담당 선생님께서 아마 점심 식사 전에 결정해서 알려주실 거에요.
이 전에 한 것처럼 하면 오늘 오후도 퇴원 가능하실 거고, 내일 오전에는 확실히 나가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김기동 씨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는 이 간호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따라갔다.
“지난번에 병원비 안내도 된다고 했지?”
- “네, 할아버지는 안 내셔도 되세요.”
김기동 씨는 병실을 나가려는 이 간호사에게 한마디를 더 건넸다.
“다른 환자들은 돈 내나 안내나?”
- “아, 내시는 분들도 있고 할아버지처럼 안 내시는 분들도 계세요. ”
“내는 사람은 왜 내는데?”
“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요.
그리고 좀 있다가 점심 가져다 드릴게요. 가족 분들에게 연락 한번 해보세요.
내일 모시러 오실 수 있냐고요. 혹시 오늘 오후에도 가능하신지도 물어보시고요.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일단 여쭤만 보세요.”
이 간호사가 나가며 문을 닫기도 전에 김기동은 충전 중이던 핸드폰을 급히 집어 들었다.
전화번호 목록에서 ‘김환식’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말이 흘러나왔다.
김기동 씨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다시 통화 버튼을 눌었다. 이번에는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왜 전화를 안 받아! 어!”
-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전화하셨어요?”
“통화를 하고 있어도 새로 전화가 온다고 알림이 뜨잖아. 그러면 바로 끊고 내 전화를 받아야지, 뭐하는 기야!”
김기동 씨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전화기에 대고 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 “아… 소리 좀 그만 지르소. 저는 어디 통화할 데가 없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통화할 수 있는데 왜 그래 화를 냅니까? 네?”
“…하여튼 내 오늘 퇴원한다고 하니까 데리러 오거라.”
- “퇴원이요? 아버지 음성 받았습니까? ”
“증상도 없고 음성 나와서 오늘 퇴원하라니까 준비해서 오너라.”
- “오늘 오후에 일이 있어서 제가 못 갈지도 모르는데, 명식이 보고 가라고 해놓을게요.”
“명식이? 명식이보고 일찍 오라고 해라. 늦으면 안 된다고 꼭 해라.”
- “네, 아버지. 퇴원하시면 올라갈게요.”
김기동 씨는 통화가 끝나자 마자 옷장에서 가방을 꺼내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장과 서랍 안에는 그 동안 받은 간식거리가 제법 많았다.
“김기동 님, 식사 왔습니다.”
점심 식사가 병실에 도착했다.
자원봉사자는 웬일로 그대로 접혀있는 침대 테이블을 펴고는 식판을 놓았다.
- "할아버지, 가방은 왜 챙기세요?”
“퇴원 준비한다.”
- “그런데 할아버지, 오늘 퇴원한다고 누가 그러대요?”
“간호원이 아까 들어와서 음성이라고 했어, 나갈 준비를 해놔야 나가지.”
자원봉사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김기동 씨는 챙기던 짐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테이블로 와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반찬 그릇과 국 그릇까지 전부 말끔하게 비우고는 병실 문 앞에 식판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침대 옆으로 돌아와 가만히 시계를 주시했다. 배를 쓸어 내리며 살짝 걷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시계바늘만 주시하던 김기동은 30분이 지나자 약봉지를 집어 들었고 이어 침대 옆에 둔 약병들을 열어 먹을 약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을 먼저 마시며 각 약들을 차례로 먹었고 약을 다 먹은 김기동 씨는 평온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 “할아버지, 잠시 일어나 보실래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눈을 뜬 김기동은 일어나지 않고 누워서 눈만 껌뻑였다.
김기동을 깨운 건 이 간호사가 아닌 다른 간호사였다.
“김기동 할아버지 퇴원 내일 오전입니다. 아침 드시고 보호자 오시면 저희와 같이 내려 가시면 됩니다. 저희한테 얘기해주세요. 보호자 오실 수 있는지”
- “오후에 퇴원이라고 했잖아.”
“아니요, 오후가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던데요.
일단 오후는 안 되고 내일 퇴원하십니다. 저녁 드시기 전에 미리 짐 좀 챙겨 두세요.”
- “……”
김기동은 간호사가 나가자 천천히 일어났다.
아까 정리하려던 짐이 여기저기 그대로 널려 있었다. 가방을 꺼내어 짐을 담기 시작했다.
옷장 안에는 병원에 올 때 입었던 점퍼가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걸려 있었다.
김기동 씨는 천천히 짐을 정리하다가 피곤했는지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 “아버지, 명식입니다. 좀 어떻습니까? 퇴원한다면서요, 제가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오늘 오지 마라. 퇴원이 내일이란다.”
- “그래요? 그러면 형한테 전화해서 내일 모시러 가라고 할게요. 저는 내일 바쁩니다.
그리고 음성 나와도 또 재감염 된다고 하니까 어디 다니지 마시고 집에 계셔야 합니다.
성훈이 보고 아버지 집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거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거기 가도 아버지한테서 옮으면 당장 큰일이니까요. ”
“내한테 옮는 게 아니라 내가 걔한테서 옮을 일이 더 문제지.
균이 버글버글한 중국에서 온다는 놈이 어디 여기를 와. 오지 말라고 확실히 말해놔라.
자기 집에 가면 되지 왜 여기를 온다고… ”
- “중국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집이 좀 지금 엉망이라서 그럽니다.
친구들 만나고 하기도 대구가 좋으니까 거기 간다고 했지요. 안 갈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들어갑니다.”
김명식은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내고 형 김환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내일 퇴원이라는데. 나는 내일 못 가.”
-“내일이라고? 오늘 오후라 하더니만, 그러면 내가 내일 갈게.”
“성훈이가 아버지 집에 간다고 형이 말했어?
성훈이가 대구를 왜 가? 거기 가서 전염이라고 되라고?”
-“니가 지난번에 성훈이 중국에서 오면 대구 보낸다고 해서 내가 얘기했지.”
“그때는 코로나 없었을 때고, 지금 노인네 걸려서 저러고 있는데 그 집에를 보내면 되겠어?
혼자 뭘 안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데?”
-“… 됐다. 아버지 퇴원 하시면 빨리 찾아 뵙고 식사나 이런 것이나 좀 챙겨라.
우리는 퇴원하는 날 같이 집에 가서 청소하고 반찬거리 해놓고 할거다.”
“우리는 알아서 할 테니까 내일 아버지 퇴원이나 잘 시켜. 병원비는 안 나온다니까 짐만 잘 챙겨서 모셔다 드리면 되겠네. 그리고 형도 조심하시고.”
-“알겠다. 그리고 삼 십 만원 부쳐라. 아버지 지난번 생일 용돈 드리게.”
“네. 딸깍”
김명식은 전화를 끊었다. 이미 회사에 오후 반차를 낸 상태라 통화 끝낸 명식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집 근처 당구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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