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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나 숨이 안 쉬어져. 숨이 안 쉬어 진다고! 이봐!”

김기동씨는 가슴을 움켜쥐고 간호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환자복을 잡아 뜯으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김기동씨는 입원실 유리 창문 쪽을 계속 쳐다 보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이 없자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악! 숨이 안 쉬어 진다고! 환자가 부르는데 왜 아무도 안 쳐다보는 거야!”
소리치던 김기동씨는 의외로 간호사 호출 벨을 누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때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기동 할아버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필요할 때 여기 벨 누르시라고 말씀 드렸죠. 소리 지르시면 목 아프시니까 여기 벨을 누르세요.”
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숨이 안 쉬어진다고 내가! 가슴 통증이 또 심해졌다. 빨리빨리 부르면 와야지 말이야! 아참, 간호원부터 좀 바꿔 줘!”

김기동 씨는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간호사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할아버님, 지금 말씀 크게 하시는 것 보니까 호흡 곤란은 아닌 것 같아요. 가슴 통증이 있다고 하시니까 담당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진통제 투약 해드릴게요.”

“아니, 내가 숨이 안 쉬어진다는데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간호원 주제에 환자를 잘 돌보려고 하지는 않고 밖에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있재?” 

김기동 씨는 아직 화가 치미는 듯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김기동 할아버지, 이제 점심 드실 때 되셨어요. 챙겨서 갖다 드릴게요. 그리고 필요하시면 이 벨을 누르세요.”

이 간호사는 김 노인의 항의에 익숙한 듯 태연하게 환자 상태를 둘러보고 병실을 나왔다. 
방호복을 입은 이 간호사가 얼굴에 쓴 고글에는 김이 서려 있었고, 흐릿한 김 뒤편으로 지쳐 보이는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김기동 씨 병실을 나온 이 간호사가 기록을 남기고 담당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간호사에게 아래층 병실에 다녀온 다른 간호사가 다가왔다.  

“저희 12층 환자 중 세 명 정도는 이번 주에 퇴원할 것 같아요.  그런데 10호실 김 할아버지 안 좋아지셨어요?”

“아니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좀 심적으로 불편하신가 봐요. 그러게, 재검사 결과가 언제 나온대요? 환자들 모두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면 좋으실 텐데요.” 라고 이 간호사가 말했다.

“네, 다들 힘드시겠죠. 김 할아버지도 갈수록 심해지시네요.”

“선생님도 힘내세요. 환자분들 식사 나눠드리고 우리도 조금 쉬어요.”

“그래요. 전부 천재지변 전염병 탓이지 누구 탓이겠어요.”


방금 전까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호소하던 김기동 씨는 간호사가 나가자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환자복을 고쳐 입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계속 지켜 보았다. 

11시 58분 15초, 16초, 16초......
12시 10분 30초, 31초, 32초……
12시 11분 02초, 03초, 04초……

김기동 씨는 침대 식탁을 세워 펼쳤다. 
12시 15분 45초, 46초, 47초……
12시 17분 9초, 10초, 11초……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점심 식사가 도착했다. 
이 간호사가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할아버님, 식사 왔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문 앞에 내려놔 주세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식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왜 이리 늦게 왔어! 다른 방에 먼저 주고 왔나?”

“아, 네 조금 늦었어요. 배고프셨죠? 맛있게 드시고 약 챙겨드세요.”

이 간호사는 식판을 탁자에 내려두고 서둘러 옆 병실로 갔다.
김기동 씨는 시선을 차지한 식판에 놓인 반찬 그릇 뚜껑들을 조심히 열었다. 오늘 점심 반찬은 생선구이와 오이생채, 고사리무침이었다. 국그릇 뚜껑을 여니 소고기 무국이 나왔다. 김기동 씨는 고사리 무침 뚜껑은 도로 덮어버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생선 살을 발라먹다가 뼈에 붙은 살까지 다 먹으려고 뼈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다가 퉤 뱉어냈다. 국물까지 얼추 다 마시고 식사를 끝낸 김기동 씨는 발라낸 생선 뼈 조각과 씹다 뱉어낸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보이는 식판을 대충 들어다가 병실 문 앞에 내려두었다. 지저분한 식판 위에 고사리 반찬 그릇의 뚜껑은 그대로 덮여 있었다.

김기동 씨는 점심 약 봉지를 챙겼다. 당뇨약과 혈압약 병에서 먹을 알 수까지 헤아렸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서서 다시 벽 시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식판을 회수하는 봉사자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기동 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고사리를 왜 먹으라고 주나? 그게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남자 전립선을 다 죽인다는데. 병원 밥에다가 그런 거를 넣어서 환자 먹으라고 주나? 거기, 아줌마. 가서 애기 좀 해. 지난번에도 내가 한 번 말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나.”

봉사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할부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고소하게 고사리 볶아서 드린 건데, 좋은 대학 나온 똑똑한 영양사가 다 연구해서 드시라고 하는 거에요. 고사리가 몸에 안 좋다는 거 가짜뉴스에요. 믿지 마세요. 근데 할부지 전립선 어디다 쓰시게? 흐흐”

중년 여성 봉사자의 농담에 기분이 상한 김기동 씨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병실에 서서 다시 시계를 보던 김기동 씨는 12시 55분이 되자 약봉지를 뜯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기침 증상을 완화한다는 가글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진통제를 처방 받아 병실로 왔다.

“김 할아버지, 이거 진통제에요. 아까 가슴이 아프다고 하셔서 일단 이거 드시고 오후에 선생님 회진 하실 때 다시 봐 드릴 거에요. 약 지금 드시면 돼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의 말에 아무 대꾸 없이 입만 계속 작게 우물거렸다.  

“할아버지 아시겠죠? 이거 지금 드시면 되요. 지난번처럼 반만 드시거나 하지 말고 두 알 다 드셔야 해요. 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하는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무표정하게 계속 입만 우물거렸다.

“아까 제가 말씀 드렸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 벨 누르시고, 이 약은 지금 드셔야 한다고요. 알아 들으셨죠?”
이 간호사는 김기동 씨에게 당부를 하고 잠시 쳐다보다가 병실을 나갔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에 아무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시계만 쳐다보다가 60초 기침약 가글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손에 들고 가만히 보던 김기동 씨는 두 알 중 한 알만 먹고 다른 한 알을 서랍 속 봉지 안에 넣어버렸다. 그러고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는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다시 시계 바늘만 주시하던 김기동 씨는 한 시간이 딱 지나자 다시 일어나 침대 아래 가방을 열었다. 침대 밑에 둔 가방에는 약병과 약이 든 상자가 가득했다. 그 안에서 몇 개 병들을 꺼내더니 먼저 녹색 가루를 한 스푼 입에 털어 넣었고, 검은색 환을 한 주먹 삼켰다. 그리고 액상 스틱 하나를 짜 마시고 나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아래에 내려두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김 기동 씨는 손으로 한동안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쓸어 내리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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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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