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 좀 어떠세요? 잠깐 일어나 보실래요?”
김기동 씨가 눈을 떴다. 의사와 간호사가 김기동 씨의 병실에 와있었다.
“어허흠…”
잠이 덜 깬 김기동 씨는 눈만 뜬 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까 가슴이 아팠다면서요? 지금은 어떠세요?”
방호복을 입은 의사는 김기동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며 안색을 살폈다.
“약 묵었어.”
김기동 씨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까 간호사한테 숨 안 쉬어진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내일도 증상이 계속 있으면 엑스레이 한 번 찍을게요.”
“……”
“필요한 것 있으시면 간호사한테 말씀해주시고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곧 퇴원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식사는 잘하신다니 빨리 나가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내 병원비는 누가 와서 냈습니까?”
“아, 병원비는 안받습니다. 나라에서 다 해줍니다. 그 동안 가족 면회가 안 돼서 힘드셨을 건데,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그런데 퇴원하셔도 사람들 만나는 것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럼, 쉬세요.”
김기동 씨는 병원비가 무료라는 말에 갑자기 잠이 확 깨었는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옷장 안에 걸어두었던 점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무언가 확인하는 듯 지갑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때 마침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광주 사는 큰 아들이었다.
(전화통화)
“여보세요?”
- “아버지, 접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
“어, 했다.”
- “병원에서 퇴원 언제 하랍니까? 퇴원해도 자가 격리하라고 한다던데, 의사가 그라죠? 근데 성훈이가 중국에서 다음 달에 온다는데, 와서 아버지 집에 좀 있을것이라고 간다는데 오지 말라 해야겠지요?”
“누가 와? 오지 말라 해라! 중국에서 병 숨겨서 온다.”
- “그거는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아버지 식사 잘 하시고
계시면 퇴원 때 큰 며느리랑 모시러 갈게요.”
“니 내 말 좀 들어봐라. 옆에 병실에서는, 면회는 안 돼도 온 가족들이 병원에 찾아와서 창문 밖으로 얼굴 보고 간단다. 음식 같은 거 싸가지고 와서 병원에 일하는 사람들한테 주고 가고 그런다는 데. 느그는 오지도 않나? 병원에서 뭘 좀 갖다 주고 해야 대접을 해주는 거야. 내가 여기서 특별 대접 하나 못 받고 이래 있다. 아나?”
- “함 가려고는 하는데… 아버지, 수하가 이번에 시험을 보는데 병 걸리면 절대 안 돼서 식구들 아무도 어디 안 다니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험이 끝나야 뭘 해도 하겠습니다.”
“…… 알겠다. 그… 온다는 그 놈 보고 중국에 전화해서 내 집에 오지 말라고 말해 놔라.”
전화를 끊고 김기동 씨는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승용차 몇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가족들이 음식을 싸서 환자 면회를 오는 듯한 모습은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기동 씨는 한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보다 침대에 다시 누웠다. 눈을 뜬 채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시계를 보고는 다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손과 발을 까딱거리면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물은 한 모금 마신 김노인은 침대 옆에 놓인 성경책을 펼쳐 들었다.
잠시 성경을 읽는 듯하던 김 노인은 그러고 이내 핸드폰을 열어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57로 적힌 메시지 숫자에 놀라지 않고 그 단체 발송된 문자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도착한 메시지 중 몇 개를 재전송을 하고는 핸드폰을 닫았다. 그리고 벽 시계를 쳐다보았다.
3시 50분 52초, 52초 54초……
시계를 쳐다보고 가만히 앉아 있던 김기동 씨는 옆에 펼쳐놓은 성경책의 페이지를 읽으려다가 또다시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는 제사라는 단어를 검색 창에 쳤다. 이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제사 대행을 누르고 새 화면으로 뒤따라 나오는 홍보 내용을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전부 읽어 내려갔다.
김기동 씨는 제사를 대행해준다는 업체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찬찬히 내용을 읽었다.
[… 고인을 위하여 자손과 친지가 추모하고자 정성된 마음으로 혼을 위로하고 생전의 은덕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제사입니다. 매년 정해진 날 경건한 제를 올려 자손들이 조상을 기억하게 하는 아름다운 관습은 우리나라의 전통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제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생전에 자손에게 조상을 기억하고 모시는 제사를 가르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우리 땅에서 난 재료와 경건한 마음으로 만든 음식을 정성껏 차려서 제를 치러 드립니다. 언제든지 오셔서 참관하셔도 좋습니다.]
[…아들은 일 년에 서너 번씩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 부모를 기억해줍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아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제사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영생하는 방법은 제사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들의 입장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식은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은 얼마 못 살다 죽는 그런 찰나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구한 먼 조상들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은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울러 자신의 아들도 이렇게 자신을 기억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자신의 사후에도 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도가 됩니다…]
[… 국내 선교사들은 조상 숭배를 우상숭배로 여기며 전면 금지했지만 부모님을 살아 생전에 봉양하고 효를 다하는 것을 맹 중요하게 여겼다. 기독교에서 강조한 공경의 자세는 보다 실천적인 효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복음 전파를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우리가 부모님께 지극한 효를 행하면 그들에게 효의 실천의 참 길을 보여주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동씨는 갑자기 고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듯 중얼거렸다. 오전 내내 긴장했던 얼굴이 약간 여유를 찾은 듯한 모습으로 옆 탁자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서랍 속에 넣어둔 사탕 봉지를 뒤적거려 꺼내 사탕 하나도 입에 까 넣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기대 앉아 병실 문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병실 문을 쳐다보던 김기동 씨는 핸드폰을 열어 아까 본 링크 몇 개를 여러 명에게 공유했다.
[공유하기 :
최장로, 장권사, 박목사, 임구역장, 최간사, 김환식, 김은숙, 김명식, 김정식, 유신애, 백희경, 김수하, 김성훈, 김수훈, 김미하…]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어도 답장 메시지가 오는 알림 소리는 바로 들리지 않았다.
“카톡!(카톡알림소리)”
답장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기동 씨는 바로 답장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김환식. 큰 아들이었다. 아들이 보낸 메시지에는 직접 쓴 내용은 없었고 자신이 보냈듯이 인터넷 주소 링크만 있었다.
[ 코로나 확진 후 회복되어도 다시 확진될 가능성 있다. 방역전문가 이기무 소장은 코로나19 확진후 완치 판정을 받아도 다시 재 확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소장은 정보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카톡!(카톡알림소리)”
몇 명이 짧은 아멘 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던 김기동 씨는 다시 얼굴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소리를 질렀다.
“간호원! 간호원! 나 지금 가려워서 죽겠어! 거기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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