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김기동은 아침 식사를 대충 끝내고는 빠르게 짐을 챙겨서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퇴원 환자들을 데리고 내려갈 간호사가 병실에 도착했다.
“김 할아버지,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퇴원하시면 그 동안 드시고 싶었던 것 드시고 편안하게 집에서 지내시면 좋겠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김기동은 대꾸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니 어디고? 인제 나 내려간다.”
- “네, 아버지. 밑에 와 있습니다. 조심히 내려오세요.”
김기동은 아들이 와있다는 말에 표정이 밝아지며 간호사를 따라 병실 밖을 나갔다.
비닐 커튼이 쳐진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고 퇴원하는 사람들만 몇 명 복도로 나와 합류했다.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며 김기동 씨는 옆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누가 데리러 왔어요?”
- “... 저는 구급차 타고 갑니다.”
“구급차를 타요? 왜 자식들이 안 모시러 오고…”
- “다들 바쁘기도 하고, 괜히 병원에 왔다가 걸리면 어쩌려구요.
구급차 타도 돈 안 낸다고 해서 그냥 타기로 했어요. 거기는 굳이 가족들을 다 불렀나 보네요.”
- “자식들이 당연히 와야지.
지금 한 달 넘게 이렇게 병원에 있었는데 이제 집에 가면 자식들 보고 내 수발 들으라고 해야지요.
가르쳐야지 그냥 놔두면 알아서 한 개도 안 합니다. 지들 마음대로 살지.
어른이 딱 가르칠 거는 가르치고. 어디 효도를 모르면 그게 사람입니까? 금수만도 못하지.”
“그런데 중앙교회에서 오신 것 아닙니까?”
- “제일교회에서 왔어요.”
“아 네…”
1층으로 나온 김기동과 다른 퇴원자들은 잠시 병원 측과 인사 나눈 후 병원 입구로 걸어 나왔다.
같이 걸어 나온 사람이 건물 근처에 서 있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과 만나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김기동 씨는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계속 두리번 거렸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다른 퇴원자들을 따라 함께 큰 길 쪽으로 걸어갔다.
찾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지 긴장한 듯 보였다.
길가로 차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누군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발견한 김기동 씨는 표정이 환해지며 손을 흔드는 방향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아버지, 여깁니다. 여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멈추어 서서 둘러보니 큰 아들 환식이 길 건너편에 서있는 듯 보였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김환식은
“아버지, 접니다. 지금 서있는 그대로 앞 쪽으로 걸어오세요. 그리고 거기서 길을 건너세요.”
김기동은 천천히 걸어서 아들 환식이 있는 곳까지 갔다.
“아이고, 아버지. 다 낳으셨습니까? 얼굴은 좋으시네요. 앞 좌석 말고 뒤에 타세요.”
아들 김환식이 몰고 온 차 뒷 좌석에 탄 김기동은 대뜸 이렇게 말을 했다.
”아니 병원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태워야지 이렇게 멀리 차를 대고 와 있어?”
- “병원 안에 차를 대면 위험해서 안됩니다.
밖으로 좀 걸어 나와서 만나면 안전하고 좋지요. 여기 경치 참 좋네요.
마스크 벗지 마시고 앉아 계세요. 금방 집으로 갑니다.”
“너 혼자 왔나?”
- “여러 사람 오면 안 되지요. 그 나쁜 코로나 균이 아직 다 안 없어져서 재활성화 될 수도 있다는데, 지금 음성이 나와도 재양성 나오는 사람이 수두룩 하답니다.
회복되고 나도 폐에 자국이 남고 몸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병이랍니다.
아버지 병원 들어가시고 환자가 얼마나 많아졌었는데요.
아버지가 균 옮긴 사람도 꽤 될 겁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회복하셔서 다행입니다.
아버지야 살만큼 사셨고 그래도 건강하게 더 사서야 되지만, 어머니는 몸도 약하고 저도 걸리면 큰일 나는 상황이지요.
그래도 올 사람도 없고 장남인 제가 와야지요.
말 많이 하지 마시고 그냥 기대서 주무세요.
창문 일부러 열어 둔거니까 좀 불편하시더라도 참으세요.
아침은 먹고 나오신 거지요? 점심은 집에 가면 다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마스크 벗지 말고 그대로 앉아 계세요. 마스크 코 꼭 눌러서 쓰신 거 맞죠?
그냥 그렇게 주무시면 됩니다.”
“잠이 와야 자지!”
- “잠이 안 오면 뒤로 기대서 눈을 딱 감고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한참을 혼자 떠들던 김환식은 김기동을 차에 태우고 20분이 지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경북 외곽에 위치한 병원에서 퇴원한 김기동씨를 태운 갈색 레간자 승용차는 어느새 대구 시내로 들어섰다.
김기동의 빌라 아래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김환식이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도착했다. 지금 안 올라가니까 좀 치워놓고 나올부터 준비하라고.”
- “벌써 왔어요? 길이 하나도 안 막혔나 보네? 아직 국이 덜 끓었어요.”
“이 사람이 참… 얼마나 더 걸리는데?”
- “십 분이면 되요. 국만 조금 더 끓이고 상 차리면 되니까 바로 내려갈게요. 십분, 한 십오 분만 있어요.”
김환식은 아침에 병원으로 향하기 전 부인 유신애를 아버지가 사는 빌라에 내려주고 갔던 것이었다.
유신애는 한동안 비어있던 방 청소를 하고 식사와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시부인 김기동씨 집으로 먼저 갔다.
이른 아침에 광주에서 출발해 대구에 도착한 유신애는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다.
악취가 온 집에 배인듯한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집안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옷들이 널려있었고 버릴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물건들이 가구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창문부터 열어 제낀 유신애는 부엌 싱크대로 가서 먼저 쌓여있는 더러운 그릇들을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나는 악취의 정체는 역시 음식 쓰레기였다.
고작 한달 남짓 집을 비웠을 뿐인데 단 두 명이 사는 집이라 치면 몇 달은 쌓아 두었을 법한 양의 음식 쓰레기가 부엌 문 옆에서 풍겨왔다.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 구분이 안 되어 뒤섞인 여러 봉지들도 부엌 옆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뒤져서 가장 큰 비닐 봉투를 찾아낸 유신애는 먼저 음식 쓰레기를 담고 그 위로 다른 쓰레기들을 차곡차곡 올렸다. 그런 다음 비닐봉투를 현관문 앞에 옮겨두고 입구에 서서 집안을 훑어보았다.
잠시 서서 생각을 하는 듯하던 유신애는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와 버렸다.
쓰레기 봉투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으며 간신히 쓰레기가 담긴 비닐을 가까스로 빌라 앞 쓰레기장까지 옮긴 유신애는 뒤죽박죽 섞인 쓰레기를 분리수거 했고 마지막으로 음식 쓰레기를 음식 쓰레기통에 부어버리고는 도망치듯 쓰레기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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