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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빌라 계단을 내려간 유신애는 골목에서 남편 김환식의 차를 발견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핸드폰을 열었다.

“ 지금 내려왔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김환식은 차 안에서 유신애의 전화를 받았다.

“ 그냥 저 쪽에 가 있어. 전염될 지도 모르니까 가까이는 오지도 말고.” 

유신애는 차가 보이는 방향 반대편으로 물러나 서 있었다.
김환식은 차 뒷 좌석에 앉아 있는 김기동씨를 쳐다보며, 

“ 아버지, 이제 내리세요. 올라 가시면 됩니다.” 
- “ 나 혼자 가라고?”
“ 천천히 올라가고 계시면 제가 바로 따라 갈게요. 수하 오마이가 식사도 다 준비해놨다고 합니다.”
- “ …… ”

김기동씨는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빌라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김환식은 차에서 곧 따라 내리더니 김기동을 뒤따라 가지 않고 유신애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아니, 전염된다면서요,  왜 이리 와요?”
- “ 나는 안 걸린다. 식사는 다 준비 해놨어?”
“ 당신은 뭔데 안 걸리는데요? 지금 당신이 아버님이랑 제일 오래 있었잖아요.  그냥 내가 올라가서 밥 차려드릴게요. ”
- “ 걱정을 마시오. 내가 다 할 테니. 국만 뜨면 되나? ” 
“ 아직 더 할 게 있어요. 내가 갈게요.”
- “아 참, 전염된다고 해도.”
“ 아니, 걸렸으면 벌써 걸렸어요. 그리고 병원에서도 괜찮다고 내보내신 거잖아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내 앞에서 침 다 튀기고 있으면서…  왜 그래요?”
- “내가 무슨 침을 튀겨? ”
“ 침방울이 튀는 게 사람 눈에 보였으면 이 사단이 났겠어요? 아우, 됐고, 지금 같이 올라가요.”

유신애는 앞서서 빌라 입구로 걸어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 다다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부터 급하게 벗었다.

“아버님, 저 올라 왔습니다. 괜찮으세요? ”
-“왔나. 병원에서 오래 있었더니 기운이 없다. 엄마는?”
“어머님은 은숙이 아가씨랑 잘 있어요. 이따가 오신답니다.”
-“… 알았다. 밥 차려라. 배고프다.”
“네, 제가 거의 다 해놨어요. 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유신애는 급하게 나가느라 어수선한 부엌 싱크대 앞으로 다가가 정리를 시작했다. 끓여놓은 우럭 탕을 국그릇에 담고 밥도 펐다. 급하게 담아놓은 밑반찬들로 식탁을 차려냈고 이만하면 그럴 듯 하다는 표정으로 식사준비를 마쳤다.

“ 아버님, 식사하세요.”

유신애가 부르는 소리에 김기동은 벌떡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김기동은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막 먹으려다가 다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도하는 듯하던 김기동은 다시 숟가락을 들고 국을 떠 입에 넣기 시작했다. 

“ 국이 입에 좀 맞으세요? 병원 밥이 맛이 없지요?”
- “ 아니다. 병원 밥 잘 나왔다. 반찬도 항상 새로한 것으로 세 가지 씩 싱겁게 해서 몸에 좋게 나오더라.”
“그래요?... 병원 밥이 좋네요.”

유신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냉장고를 열어보며 무언가 찾기 시작했다.

“반찬 드시던 것은 통 안보이네요. 병원 들어가시기 전에 반찬 뭐 해 드셨어요? 아가씨가 뭐 해 주대요?” 
- “은숙이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 사다가 먹고, 얻어왔다고 주고 그랬지.”

그때 김환식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식사하고 계십니까?” 
“아버님 드시고 계세요. 당신도 같이 식사하세요. 그런데 그거는 뭐에요?”

유신애는 김환식의 손에 들린 봉지를 보고는 물었다.

“이거, 아버지 몸에 좋은 겁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사람은 다 먹는 거라고 합니다.”
-“그게 뭔데?”

김기동은 정신 없이 밥을 먹다가 김환식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이게 꿀보다 좋은 거랍니다. 면역력에 그렇게 좋고 먹기도 참 좋아요.”
- “면역력에 좋아?”
“네, 오래 약 먹는 사람이 먹어도 좋고 아무 부작용이 없다네요.  원래 엄청 비싼 건데 해외에서 바로 사온 사람이 있어서 하나 부탁했어요. 이거 하루에 하나씩 드시면 됩니다.”

유신애는 김환식의 밥을 차리고 김환식이 들고 온 봉지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 당신도 식사 하세요. 이거 그거 네요.“
- “ 이게 그렇게 좋은 건데, 해외에서 바로 온 거라 더 좋답니다. 아부지.”
“ 어디서 구했어요?”
- “ 다 아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몰라도 되고.”

김환식은 김기동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자 그제야 반대편 의자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우럭 맛있네. 이거 얼마 주고 샀다고?”
- “ 2만원 가까이 줬어요. 그래도 물은 좋네요.”
“ 명식이 보고 돈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은숙이 보고 좀 오라고 해야지, 집을 이래 놓고 갔네. 화장실이랑 부엌도 엉망진창이다...”
- “지금 청소할 시간은 안 되요. 저녁에 집에 가야 되요.  당신이 밥 먹고 나서 좀 치우세요. 나는 설거지 하고 재료 치우고 하면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밥 안 먹어? 그 국물은 나중에 좀 드시게 남겨두시오.”
- “저는 배 안고파요. 나중에 집에 가서 먹을 라고요.”

김환식은 매운탕 한 그릇을 말끔히 먹어 치우고는 가스렌지로 다가가 놓여있는 매운탕 냄비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는 화장실 벽 한쪽에 세워져 있는 대걸레를 들고 와 집안 여기저기를 닦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옷 가지와 수건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의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온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김환식은 보이는 바닥만을 대걸레로 훔치며 그 외의 물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김기동은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정면의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환식은 기동을 쳐다보고는,

“아버지, 시계는 왜 보고 있으십니까?”
- “ 내 약 먹어야 된다.”
“ 30분 있다가 드시려고요? 30분 지나고 드시면 되지 시계를 뭐하러 보고 있습니까?”
- “ 까닥하면 시간 넘어가서 안 돼!”
“ 시간 조금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뭐 하러 그러고 계십니까?  티비나 보세요.”
- “약은 식후 30분 있다가 먹어야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내장이 상해. ”
“그러면 지금 오늘 제가 갖다 드린 거 그거 드세요. 그거는 약이 아니라 천연 성분이라서 식사 후에 바로 드셔도 됩니다.”
- “ 그거 안 묵는다. 약 묵고…”
“그게 몸에 얼마나 좋은 건데 안 드신다고 합니까? 원래는 꿀보다 열 배는 비싼 겁니다. 로얄 젤리와 비슷한 거라고 합니다. ”
- “그래?”

김기동은 ‘꿀보다 열 배 비싸다’는 말에 잠시 관심을 두는 듯 보이다 다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 보았다.

2시 5분 10초 11초 12초 13초....

김기동은 2시 10분이 되자 손에 들고 있던 약을 입안에 털어넣고 물을 마셨다. 식탁 위에는 여러개의 컵이 놓여 있었지만 용케 컵을 찾아 마시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놓았다. 

(7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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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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