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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은 일찍부터 밖을 나갈 채비를 했다. 지원금을 받으려고 달력 날짜를 보며 기다리다 드디어 오늘 가기로 한 것이었다.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동사무소 앞에는 이미 지원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대기 줄이 길었다.

“여기 얼마나 기다려야 해?”

기동은 줄 선 사람들에게 손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물었다.  

“네, 한.. 한 시간 정도면 될 겁니다. 요기만 돌아 들어가시면 안으로 들어가시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

기동의 뒤에 줄을 서있던 노인이 말을 걸었다.

“거기는 지원금 얼마 받습니까?”

-“아들이 60이라고 합디다.”

“할매랑 둘이 사는 집인가 보네요. 저는 40만 받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40인가 보네.”

“원래 지원 받던 사람은 이번 달에 백만원도 넘게 받는 답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이번 달에 계탔지.  이게 정부에서 뭐 하는 짓인지. 세금 걷어서 엄한데 다 퍼주고 경제가 돌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나라 돈 받아서 살고 말이야, 나라가 곧 망할 건가 보오.”

-“…… 좌파 정부가 사람들을 돈으로 호도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소. 젊은 사람들이 어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서 보수 정권을 지지해야 하는데…”

“맞소. 이 나라가 공산화 된다고 하는데 벌써 그런 것도 같소.”

-“북한하고 내통한다고 하지 않소. 매일 밤마다 전화해서 돈 주고 쌀 주고 한다고 하네.”

“나라가 망할려고 그러는지…  자식들도 어른 공경할 줄 모르고 즈그들 먹고 놀러 다니는 것에 혈안이고 부모는 그냥 내버려 두고 말이야.”

-“자식을 똑바로 가르쳐야 돼. 때릴 때 때리고 무섭게 혼내면서 키웠어야 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들이 이 대화를 지켜보다가 한마디 했다.

“아이고, 할배들 자식을 때려서 키우다 늙어서 도로 맞는 수가 있다. 하하하” 

“돈 뿌려서 나라 망한다믄서 지금 공짜 돈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닌교? ”

기동은 할머니들의 놀림에 뒤에 서있던 노인과의 대화를 멈추었다. 뒤에 노인이 대꾸했다. 

“아니, 준다는 돈은 받아야지, 어디 나만 받나? 할매들도 다 와서 받아가면서 왜 우리보고 그래?”

-“정부에서 주는 돈은 잘 받아가면서 정부 욕은 왜 하는 데요? 정부 하는 짓이 맘에 안들면 돈도 안받아야지. 그래요 안 그래요?”

“할마시는 할마시 돈 받아 가소. 남보고 뭐라하지 말고. 어디서…”

- “하하 이 할배 웃긴다. 어디서긴 동사무소 앞에서지. 하하하”

한 할머니의 말에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면서 기동은 얼굴이 굳어지며 늘어선 줄의 앞쪽만 주시한 채 서 있었다. 

직원의 말과는 다르게 두 시간이나 걸려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다시 기다리기를 반복한 후에야 기동은 60만원의 지원금 상품권을 받아 챙길수 있었다. 
오전 내내 밖에서 시간을 보낸 기동은 피곤했는지 주머니가 두둑 했음에도 집으로 바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눕는 듯 하더니 잠이 들었다. 

12시가 다 되어서 일어난 기동은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안에서 반찬을 꺼내어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물건과 약병, 그릇들 심지어 벗어둔 양말까지 놓여있어 엉망이었지만 기동은 개의치 않는 듯 약간의 식사 공간만 확보하고는 구석에서 수저를 주섬주섬 꺼냈다. 지난 번에 아들 내외가 끓여 놓고 간 우럭탕 국물이 아직 남아있는지 냄비에서 국을 펐다.  먹고 남긴 생선 뼈 찌꺼기는 식탁에 그대로 올려둔 채 먹은 그릇만 설거지 통으로 옮겨놓고 약봉지를 뒤적였다. 그리고는 먹을 약을 다 챙겨 들고는 벽시계가 바로 보이는 자리에 서서 시계를 주시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여보세요.”

-“아버지 접니다. 지원금 받았습니까?” 

“어 받았다.”

-“줄이 안 깁디까?”

“길더라.”

-“고생하셨네요.”

“느그는 얼마 받았노?”

-“우리는 백만원 받았지요. 4인 가구다 아닙니까?”

“4명은 백만원이나 주나?”

-“1인당 치면 25만원 입니다. 아버지가 더 받으시는 겁니다. 아버지 연금도 합치면 이번 달은 돈이 많으시겠네요. 이번에 집에 정리도 좀 하시고 버릴 거 버리고 이불 같은 것도 새로 좀 사세요. 안에 넣어두고 생전 안 빠는데 우리가 가서 꺼내서 덮을 때마다 온몸이 가렵습니다. 베개 이불 세트도 제발 좀 사시고, 집 수리도 좀 하세요.”

“……”

-“다음 주에 또 한번 올라가겠습니다. 은숙이 언제 온답니까?”

“인제 온단다. 집 청소해야 된다.”

-“네, 그러면 잘 계세요. 내일 또 연락 드릴게요.”

환식의 전화를 끊고 기동은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양치질을 서둘러 끝내고 양말을 찾아 신었다. 현관 열쇠를 챙겨서 신발을 신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집 근처 동사무소를 다시 지나치며 여전히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확인했다.  
김기동씨는 큰길까지 나와 병원 쪽으로 향했다. 

당뇨약과 고혈압 약에 항생제까지 처방 받아 복용중인 기동은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병원을 다녔다. 이날은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병원 앞 악국으로 바로 향했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약국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동은 자연스럽게 대기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차례가 되자 일어나 약사에게 다가갔다. 

“내가 요즘 많이 피곤해. 안 피곤하게 하는 약 있으면 줘봐라.”

-“네, 요즘 특히 피곤하시면 몸에 면역력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으세요. 어르신. 요즘 신약 비타민이 잘 듣는 데 이거 한번 보세요. 이게 식물성이라서 부작용이 없고 몸에 흡수도 잘 되고 드시기에도 편합니다. 지금 드시고 있으신 거 있으세요? ”

“있어. 그런데 별로 몸에 안 맞는 거 같아. 더 좋은 거 비싼거 있으면 그거 먹지.”

-“네, 어르신, 체질에 맞는 비타민을 고르는 것이 제일 좋으시죠. 먼저 이거 한 병 드세요. 여름에 에어컨 쐬시면 기운이 금새 허해지시는데 쌍화탕 하나 드시면 속이 훈훈해지십니다. 그러면 비타민은 이걸로 한번 드시고 요즘에 크릴 오일이라고 몸에 지방을 싹 분해해주는 약이 나왔는데요, 들어보셨죠? 이거 6개월 정도 드시면 몸이 개운해 지실 겁니다. 그리고 비타민 D를 꼭 드셔야 하는데, 관절 안 좋으시거나 몸이 삐그덕 거리시면… 요즘 밖에 잘 못 나오시죠? 거볍게 운동을 하셔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먹는 걸로라도 챙기셔야 합니다. 아까 사신 비타민에도 들어있는데 부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거 꼭 더 드셔야 합니다.”

“…… 그래서 그거 다 하면 얼마요?”

-“비타민16만원, 오일 6개월분 25만원, 이거 관절 비타민 까지 45만원 입니다.  관절 비타민은 제가 조금 디씨해 드렸습니다.”

“정부 상품권 받나?”

-“네, 당연히 받습니다.”

김기동은 오전에 동사무소에서 받은 두둑한 상품권 봉투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셌다.  45만원 어치를 약국에서 쓰고 약이 든 가방을 두 손 가득  챙겨서 약국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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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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