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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같이 일하실 분이에요. 인사 드리세요."

첫 출근을 한 진화를 피킹해서 창고로 데리고 간 김미영 팀장은 열 댓명이 모여 서 있는 곳으로 갔다. 사람들은 진화를 쳐다 보았고 어색하게 서 있는 진화에게 김미영 팀장은 갑자기 자기 소개를 하라고 시켰다. 오늘 처음 온 진화가 어색하게 입을 떼게 두는 것 보다는 김미영 팀장이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만도 했지만 김미영 팀장은 싸늘한 웃음기를 띄며 진화의 등을 떠밀었다. 진화는 누가 누군지 몰랐음에도 일단 팀장이 시키는 대로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안녕하세요! 성진화 라고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화로 몰린 시선들이 수다스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뭐? 성진? / 성진씨 흐흐 / 성진이래? / 또 성진이야?"

"아니, 성진 아니고 성이 성이고 이름이 진화, 진화 씨에요."

김미영 팀장이 싸늘한 표정에서 약간 부드럽게 바뀌며 진화의 말을 이어받았다.

진화의 인사를 듣고 계속 흘깃거리며 쳐다보던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은 뚱뚱한 남자의 몇 가지 작업 지시 사항 전달이 끝나자 진화를 향하는 시선을 거둔다. 성진 성진 거리던 사람들은 그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미영 팀장은 진화에게 장갑 한 켤레를 건넸다. 진화는 장갑을 받아들고 김미영이 걸어 다니는 뒤를 쫒아 다녔다. 창고 한 쪽에 놓여있는 지저분한 책상에 몸을 숙여 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김미영은 뒤에서 쭈뻣거리며 서 있는 진화를 흘깃 허리를 세운다. 그리고 진화를 데리고 가 일 할 자리를 알려주었다.

"진화씨, 이런 일 안 해보셨다고 하던데? 그런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처음이니까 천천히 집중해서 실수 없이 하다보면 나중에 익숙해지실 거에요. 여기 앉아서 이 의류 포장 열어서 불량 체크하고 라벨 뜯고 실밥 처리하세요. 옆 사람 하는 거 잘 보시고 참고하시고요. 오늘은 처음이니까 물량 체크는 안 할거지만 내일부터는 90프로 이상 완료하셔야 해요. 한송씨 이 분 새로 오셨는데 가위 드리고 업무 좀 알려 주세요."

이한송은 김미영의 말에 즉각 반응을 했다. 그리고 김미영에게 다가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네, 팀장님. 아 그리고 팀장님 잠시만요. 아니 어제 그 불량을 전부 우리가 다 책임지라는게 말이 돼요? 성진 씨가 그러고 나간 걸 왜 우리가 다 덮어써요?"

"뭐 어쩌겠어, 한송씨 그래도 오늘 새로왔잖아. 어제 그 불량 다 꺼내서 정리부터 하고, 알아서 시켜. 이따 점심 때 다시 확인 할게요."


김미영과 이한송은 둘의 대화가 주변 사람에게 다 들리는 것을 알면서도 둘만 속삭이며 조용히 말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한송은 김미영이 돌아가자 진화를 흘깃보고 곁으로 다가갔다.


"진화씨라고요? 몇 살이세요? ( 진화 : 네, 저는 47살이에요. 열심히 해볼게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37살이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 일 안 해보셨다고요? 일은 쉬워요. 그래도 실수하면 서로 힘들어지니 꼼꼼하게 하셔야 해요. 이 회사에서는 중국 공장에서 옷을 가져와서 여기서 작업을 해서 온라인 쇼핑몰 통해서 파는 거에요. 온라인 쇼핑 많이 하시죠? (진화 : 네.) 저희가 하는 작업은 라벨 제거하고 실밥 정리하고 불량 체크하는 건데, 지퍼 불량, 단추 불량, 박음질 불량 이런것 전부 체크하시는 거에요. 어려운 일 아니에요. 여기 50대 언니들도 많이 일하고 계세요. 거기 앉아서 시작하세요. 시간당 100벌 확인을 끝내야 하는데 오늘은 처음이시니까 체크하지 말라고 하니 편하게 하세요. 그래도 실수하시면 안되요. 아, 오늘 하실 물량은 제가 따로 가져다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한송은 한 쪽에서 옷이 가득 든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와서 진화 옆에 털썩 내려 두었다. 진화는 그 박스 속에서 봉투 하나를 집어 올려 안에 든 옷을 꺼내었다. 옷은 여성용 검정색 패딩이었는데 퀼팅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퀼팅 실이 여기저기 남아 지저분했다. 진화는 눈에 보이는 실밥부터 잘라 내었다. 실수하지 말라는 김병신 사장과 김미영 팀장, 이한송의 말이 머리 속을 맴돌아 옷을 앞 뒤로 계속 돌려보며 실밥을 찾고 또 찾았다. 실밥이 거의 다 제거 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진화는 지퍼와 단추, 박음질 불량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지퍼 슬라이드는 뻑뻑했지만 다물어는 졌다. 장식 단추는 싸구려스럽고 옷과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일단 잘 달려 있었고, 단추에서 삐져나온 실밥을 잘 떼내었다. 이어 박음질 불량을 찾으니 불량으로 보이는 곳이 여러 군데 였다. 진화는 옆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한송에게 물었다.


"이거 불량인 것 같은데 불량은 어떻게 해야해요?"

"어디가 불량인데요?"

"박음질이 마무리가 안되고 삐뚫어진 곳을 세 군데 발견했어요."

"다른 데는 괜찮아요? 실밥은 다 뗐어요?"

"네, 지퍼 단추는 괜찮고 실밥은 깨끗하게 제거했어요."

"그럼 그냥 다시 담으세요. 박음질 이런 거는 찢어진 정도만 아니면 그냥 나가도 돼요. 중국산 저가 옷이 다 그렇지, 사람들도 그거 다 감안하고 사는 거에요. ( 진화 : 네.) 정확히 하되, 빨리 하셔야 해요. 시간 당 백 개 가까이는 해야 하는데 한 벌에 5분 씩 걸리면 언제 다 하실 거에요? 오늘은 아마 오후에도 일 해야 하실 거에요. 오늘 보내야 하는 출고 해야 하는 물건이라서 아마 좀 있다가 말씀 하실 거에요."

"4시간 근무로 알고 왔는데 더 해야 해요?"

"물어볼 지 안 물어볼 지 모르죠. 있어 보세요. 못 하겠으면 못 한다고 하시면 돼요."

"네,"


진화는 시간당 백 개라는 말에 정신을 집중해 빠르게 손을 놀렸다. 쪽가위를 든 손가락 근육이 마비가 오려는 듯 뻐근 했지만 손가락 스트레칭을 할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다. 박음질 불량은 불량도 아니라는 이한송의 말을 되새기며, 그러니 그 온라인 쇼핑몰의 저렴한 옷들이 세탁 한번 하면 올이 줄줄 풀리고 너덜거리는 이유가 다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9시부터 창고로 일하러 온 진화는 10시를 넘어서자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 마침 그 때 옆에서 일하던 이한송이 일어나 진화에게 잠깐 쉬자고 말했다. 진화는 창고 어딘가에 커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이한송을 따라나갔다. 이한송은 지하 창고고 뒷문으로 나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는 무리에 끼었다. 그리고 크롬이 장식된 반짝이는 전자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저기, 커피는 없나요? 믹스도 괜찮은데,"

"커피요? 일 층 문 옆에 자판기 있어요. 동전 넣으셔야 돼요."






진화는 담배연기 자욱한 골목에서 다시 창고로 내려와 반대편 문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삼백 원 짜리 믹스 커피 버튼이 진화를 향해 이미 오래 전에 지친 듯 빨간불을 반짝 이고 있었다. 진화는 아침에 비상용으로 주머니에 넣고 나온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 자판기로 밀어 넣었다. 밀크 커피 버튼을 누르자 달캉 하고 종이컵이 내려 왔다. 웽웽 거리며 커피가 내려왔고 작은 컵에서 김이 솔솔 나왔다. 종이컵을 꺼내 들고 차가 지나 다니는 도로를 바라보며 진화는 뜨겁고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종이컵 속 커피는 어찌나 조금이었던지 매일 아메리카노를 세 잔도 마시는 진화에게는 모자랐지만 달디단 자판기 커피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빈 종이컵을 버리고 창고로 내려 가 자리로 돌아갔다. 이미 내려와서 일을 하고 있던 이한송은 조금 늦게 돌아온 진화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김미영이 진화에게 다가왔다.


"진화씨, 일 할 만해요? 안하던 일이라 쉽지 않죠. 그래도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다들 그렇게 시작하지 뭐. 뭐 잘 모르겠으면 한송씨한테 물어보고 아니면 나한테 와서 물어봐도 돼요. 그리고 가위 생각보다 날카로우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돈 벌러 왔다가 몸 다치고 가면, 그런 낭패가 어딨어? 안 그래요? 오래오래 일해야죠."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송님이 잘 알려 주셔서 실수 안하려고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조금 늦게까지 일할 수 있어요? 오늘 사람이 부족해서 물량 소화가 쉽지 않네. 오버타임도 시간 당으로 다 정산해줄거에요. 할 수 있어요? 여섯시 전에 끝날 거에요."

"여섯 시 전에 끝나면 할 수 있어요."

"그래요, 진화씨 이따가 같이 점심 먹으러 가요."

진화는 김미영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열심히 손을 놀리지만 박스 안에 옷은 좀처럼 줄어 들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박스도 슬쩍 쳐다 보았지만, 각자 작업라는 옷 종류가 다 달라 보였다. 자신이 얼마나 느린지 아니면 잘 따라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려는 무렵, 창고 한 켠에 켜 놓은 라디오에서 12시를 알리는 음악 소리가 흘러 나왔다. 진화는 김미영이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한 말을 기억하며 작업대에 놓인 옷만 마저 끝내놓고 밥을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꼼꼼리 실밥을 잘라 내고 앞 뒤를 돌려보며 불량을 찾아내려고 했다. 여전히 진화의 눈에 포착되는 삐뚤삐뚤 박음질 불량이 거슬렸지만 이것은 큰 불량이 아니라는 이한송의 말을 되새기며, 적은 돈을 결재한 데에 합의된 구매자들의 관대함을 기대했다. 그런데 12시가 넘었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진화에게 점심을 먹자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진화는 이한송에게 슬쩍 물었다.

"점심은 언제 먹는 거에요?"

"오늘 잔업 하시게요?"

"네, 팀장님이 말씀하셔서 한다고 했어요. 여섯시 전에 끝난다고 하시던데요."

"여섯시 전 일 수도 있고, 넘을 수도 있어요. 저는 아기때매 오늘 일찍 가야 하는데 잔업하라고 해서 지금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여기 점심 시간은 12시 30분이에요. 요 앞 식당에 가서 먹는데 일하는 사람들 전부 다 가는 건 아니고요, 오전 근무만 하는 사람은 1시까지 하고 퇴근하고; 오후 잔업 하는 사람은 점심 먹고 다시 하는 거에요."

"아, 네. 배가 벌써 고프다고 난리네요. 호호 그런데 제가 지금 느린지 빠른 지 모르겠어요."

"느리고 빠르고 보다는 실수하지 않으셔야 해요. 지난 주에 그만두신 분은 손이 느려서가 아니라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잘리신 거에요."

"잘리셨다 고요? 실수를 얼마나 하셨길래요... 저도 처음이라 실수 많이 할 것 같아 불안하네요."

"누가 실수를 일부러 하나요? 딴 데 정신 팔지 않고 신경 써서 하시면 실수 할 일 별로 없어요."

"네, 감사해요. 실수 하면 회사에도 저한테도 안좋으니까 실수 안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두어야 겠네요."

"진화씨, 이제 어서 일 하세요."


진화는 이한송과 대화를 너무 길게 한 것은 아닌가 아차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침부터 검수하던 박스 안 옷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쪽가위를 들고 컴컴한 지하창고에서 먼지를 마시며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흡사 70년대 재봉공장 여공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최저임금 제도 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쉬운 일도 한 시간을 일 시키면 9천원은 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어렵고 더러운 일도 똑같이 시간당 9천원이라는 함정도 존재하긴 하다.

진화의 플라스틱 박스 안 옷들이 전부 검사를 마치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던 이한송이 진화를 불렀다. 식사 하러 가자는 말이었다. 진화는 쪽가위를 내려놓고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이한송이 부르는 뒷 문으로 갔다. 뒷 문 밖 구석에 큰 깡통 안에는 담배 꽁초들이 쌓여 있었고 여기저기 가래 침을 뱉어 더러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한송 옆에 서 있던 한 여성이 진화를 보고 이한송을 향해 말을 했다.

"아, 담배 그만 펴, 새로 오신 분은 담배도 안 피시는 구만. 밥 맛 떨어져. 근데 오늘 반찬 뭐래?"

그때 골목으로 트럭 한 대가 들어 와 섰다. 운전석에서 젊은 남자가 내려 탑차 뒷 문을 열었고 화물 칸으로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진화도 얼떨결에 화물칸으로 올라탔고, 모두 열 댓 명의 사람이 탑차 내부 벽에 기대어 옹기종기 쪼그려 앉았다. 문이 쾅 닫히고 트럭은 출발을 했다. 화물칸에는 다행히 불이 두 개 켜졌다.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별 말이 없었다.
진화는 예전에 읽었던 기사 하나가 생각이 났다.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어 온 대형 냉동트럭 내부에서 아시아 불법 이민자들 여러 명이 질식사한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 말이다. 진화는 자신이 밀입국한 불법노동자가 된 듯 한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트럭 화물칸에 쪼그려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진화의 생각에는 그다지 진화의 기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모두가 자신 앞에 앉은 동료를 바라보기 보다는 마치 현실을 잊으려는 듯, 휴대폰을 열어 게임을 하거나 카톡 메세지를 보고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한 물건을 확인하고 있었다.

트럭은 금새 어딘가에 도착했다. 화물칸 문이 열렸고 아까 탈 때 처럼 젊은 남성 운전자가 내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반복해 뛰어 내리다간 금새 무릎이 나갈 만한 화물칸 높이였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골목 안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업을 하는 곳 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골목에 숨은 식당 바깥에 걸린 간판에는 '고향집 함바' 라고 써 있었다. 식당 안 각 테이블 위에는 이미 가스버너가 놓여져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손을 씻을 생각도않은 채 자리를 하나 둘 채우고 앉았다.

진화는 눈치를 보다가 김미영팀장이 앉는 자리로 가까이 갔다. 오전에 지하 창고에서 본 김미영팀장의 얼굴과 그나마 햇빛이 들어오는 식당에서 본 얼굴은 같은 얼굴이었지만 마치 처음 입은 새 옷과 몇 번 빨아 자신감을 잃은 옷 처럼 달라보였다. 눈가에는 자글거리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머리는 환하게 염색이 되어 있고, 입은 삐쭉거리며 웃으려는 듯 말을 하려는 듯 움직거리는 모습은, 이 식당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만 웃음거리는 되지 않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듯 보였다. 김미영팀장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의미없는 수다를 떨다가 진화 쪽을 쳐다 보았다.

" (최선미) 진화 씨라고? 밥 많이 먹어요."

"(진화) 네 감사합니다. 팀장님 (저 분) 누구세요?"

" (김미영) 지금은 말 해줘도 모를 거에요. 차차 알면 되고, 저 분은 최선미 대리님이고, 옆에는 경선씨, 도은씨 그리고 말해줘도 모르겠죠? 차차 알아가세요. 진화씨 라면 드실래요? 라면 먹고 싶으면 가져다 드시면 되요. 돈은 따로 안내도 되고요."

"(진화) 네, 감사합니다. 라면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 (김미영) 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진화는 마치 누가 던지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앞에 놓인 공기밥을 보고 뚜껑을 열었다. 6시부터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아침을 차려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힘쓰는 일을 해야하기에 억지로나마 대충 먹고 왔지만, 진화는 삼백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부터 이미 허기를 느꼈었다.
진화가 과거 어린이집에서 일을 할 때는 밥을 최대한 빨리 먹어야 했었다. 아이들을 식사 시간에도 돌봐 주어야 했기에, 허겁지겁 밥을 욱여 넣고 국을 마시는 것이 익숙했다. 진화는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늘 비슷한 말을 들어왔다. 왜 그렇게 급하게 먹느냐는 농담반 불평반이었는데, 일일히 설명하기도 귀찮고 그래야만 하는 처지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기 싫어, 그냥 배가 많이 고파서 라는 말로 에둘러 왔다. 진화는 천천히 밥을 먹으려 노력했지만 식당 공기밥 양은 너무 작았다. 진화는 여섯 시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첫 날부터 지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며 용기 내어 손을 들었다.

"밥 좀 더 주세요..."

"진화씨 밥 더 먹게? 이거 먹어. 나 라면 먹어서 밥이 남아."

"네 감사합니다."

김미영팀장은 자신이 덜어놓은 밥을 진화에게 건넸고 진화는 얼른 받아 먹기 시작했다. 테이블 가운데 놀인 김치찌개 냄비 안 두부 조각들은 김치 양념과 조미료를 흡수해 짭짤해져 있었고 밥을 입 안으로 더 퍼 넣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작은 딸이 먹고 싶다고 사달라던 오징어 젓갈이 식당 반찬으로 나와 있었다, 진화는 오징어 젓갈을 푹 집어 먹으며 작은 딸 생각이 났다. 오징어 젓갈은 몸에 좋지 않다고 조미료 범벅에 나트륨 과다라 먹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논리를 늘 작은 딸에게 주장해왔던 터 였으나 진화는 달달한 믹스커피에 이어 짭짤하고 맵삭하게 감칠 맛이 도는 오징어 젓갈을 자연스럽게 입 안으로 안내했다. 식사는 10분도 되기 전에 끝이 났고, 오히려 진화가 젓가락을 가장 늦게 내려 놓았다. 식사를 자친 사람들은 하나둘씩 식당 문 밖으로 나가 서 있다가 다시 트럭 화물칸에 올라타 쪼그려 앉았다. 화물칸 문이 쾅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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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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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의 육하원칙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꼰대들의 육하원칙을 보면 사람 들이 진저리를 치는 젊고 늙은 꼰대들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at 네가 뭘 안다고 그래?

Where 어딜 감히?

When 나 때는 말이야,

How 어떻게 나한테!

Why 내가 그걸 왜?

원조 꼰대라는 말과는 또 다른 성격의 젊은 꼰대는 꼰대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권위의 불합리성을 거부하면서, 비슷한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고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일방 통행적 형태로 나타난다. 늙은 꼰대들이 하는 꼰대 짓을 따라 일방적 인 주장하기를 복사, 갖다 붙이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꼰대라는 말을 모든 나이든 사람이나 기존 권위, 지혜를 전부 부정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기본적 으로 평등한 인간 관계에서의 기본 예의나 배려에 대해 서조차 거부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젊은 꼰대란 결국 편협하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드러난 현상 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열이 뜨거운 우리 사회에서 중간에 낙오하지 않고 고등 교육을 이수해내고 나면, 아무리 시험을 위한 배움이었다고 하더라고 그 지식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가치관 체계 형성이 마무리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학생들은 기성 세대가 가진 지식이 우습게 보일 만큼 지식적으로 가득 충전이 되어 자신감에 차 오른다. 그러나 책으로 배운 것과 달리 옆에 곁에서 눈으로 본 현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현실 간의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이 짊어진 현실적인 약점과 어려움을 파악한 약삭빠른 젊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 늙은 꼰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도 꼰대가 되는 길이 무시 당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빠른 길이 라 잘못 배운다. 여기에는 자라면서 길러온 도덕적 가치관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어떤 과도한 자기확신적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비록 그것이 허황 되어 보이고 그 허황된 확신에 의문이 들면서도, 뭐가 있으니까 저러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해 그들 에 동조 편승의 기회를 가지려고도 한다. 남다른 확신 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의 이유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에서 온 것일 뿐인데 말이다. 자기 확신이 초래한 결과가 범죄라고 하더라고 사람들은 그런 놀라 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신봉하기도 하는데 독재자나 연쇄 살인자를 추종하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기치는 사기꾼들을 대단한 사람이라 경외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알지 못하는 너무도 많은 일을 받아 들여야 하는 삶의 과정에서 누군가 남들이 하는 대로, 앞 세대가 했던 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는 꼰대 짓을 익숙하게 따라 하고 또 누구는 꼰대 짓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젊은 꼰대의 특징

 

1. 온라인에서 날개를 펴는 젊은 꼰대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이들은 현실에서의 미성숙한 모습을 감추고 특정 집단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감,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자신 만의 경험을 가진 듯 기성 세대를 흉내 낸다. 일단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 현실과 달리 나이가 드러나지 않아 서로 간의 나이차에 따라 불공평한 예의 범절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 이 존재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과 또 반대로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무시당하지도 않는 새로운 경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신선한 여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또한 악용 되기 쉽다. 관심과 인기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들의 범죄와 유사한 행동도 하거나 여론 조작 알바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와는 좀 다르 지만 클릭수가 돈이 되는 현재, 젊은 꼰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금전적 대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를 하는 자기 확신화 과정에 있다고 보인다.

 나쁜 것부터 따라 한다고, 나쁜 것이 나쁘지만 빠르 게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기기도 한다. 매일 주목 받는 온라인 뉴스 기사 아래에 그럴 듯한 분석과 한 마디를 달며 자신의 댓글이 상위 순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젊은 꼰대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기사를 제대로 다 읽지도 않은 채 베댓(베스트 댓글) 놀이에 빠져 아무 말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편집된 근거나 거짓 주장을 그대로 증거로 끌어와 덮어 놓고 정치권을 비판하거나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과 여성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형태가 가장 흔하다.  조금 더 지능적으로 전문가, 유명인, 시사 평론가들의 말을 일부만 따와 근거로 제시하거나 자신만의 생각 인 양 써 먹기도 한다. 인터넷 정치 뉴스 기사 소비가 가장 많은 40대 이상 남성이 댓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그들은 젊은 꼰대 이자 기성 꼰대 라고 볼 수 있다. 언론사 성격마다 댓 글의 성격도 다른데, 기존 신문 등 전통적인 언론을 뜻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댓글에 차별과 혐오 표현이 많이 있는 것은 쉽게 확인 이 된다. 

20대 30대가 많이 보는 시사 이슈 아래에 달린 댓 글에도 역시 편견과 혐오 표현으로 가득한 데, 언론사 특성에 따라 그 성격이 따라 간다고도 볼 수 있다. 젊은 꼰대가 차별과 혐오 표현을 자주 쓰는 댓글러들 이라고 단정하기 보다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치적 선호도가 바탕에 깔린 대부분의 시사 이슈에 대해 굳이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의견인지 다른 사람 들의 의견을 가져온 것인지 조차 구분이 안 되는 내용 을 남 가르치듯 단정적으로 적는 댓글러들을 바로 꼰대라 규정하고자 한다.

그들의 마치 나는 다 아는 데 니들은 아직도 모르냐 는 태도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그런 확신을 가지는 지 에 대해서 설명 없이 그냥 자신이 맞는 것이라고 알겠 냐며 문제에 대해 단정을 짓는다. 마치 일등으로 정답 을 맞춘 것처럼 퀴즈에서 순발력 자랑하듯 냉큼 조언을 던지고 가는데 아마도 다시 돌아봐 여러 번 자신의 댓 글 순위를 확인할 것이라 생각한다.

늙은 꼰대가 대부분의 인생을 소비하며 단단하게 쌓은 가치관이자 편견을 젊은 꼰대는 어디서 눈치로 보고 배워 마치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마냥 꼰대 짓을 흉내 낸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내공과 경험 치를 가진 마냥 정치와 사회 이슈에 관해 기막힌 해법 을 아는 척SNS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쓴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와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주장하며 혐오 댓글에 조차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과거의 역사나 사건을 선택적으로 수용해 온 사람은 골치 아픈 통찰의 과정 없이 일부 만을 부각해 주장 하거나 아예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 환경의 이전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려고 한다.

 

  

< 포털 댓글 통계를 통해 본 젊은 꼰대 경향 >

 

네이버에는 언론사의 선택에 의해 어떤 기사를 클릭했고 댓 글을 쓴 독자들의 연령과 성별 정보를 볼 수 있게 한다.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만약 내가 어떤 글이나 기사에 댓글을 쓰면 40대 여성의 그래 프가 조금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요 화나요 추이와 댓 글 작성자 비율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 지만 얼추 비슷하다는 가정에서 추측해 보면, 젊은 꼰대 들의 활약 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혼란스러웠던 2020 3, 세계보건기구 WHO가 한국의 상황을 두고 고무적인 조짐이라고 밝힌 기사(연합뉴스)에서 좋아요 보다 화나요 가 100배 이상 많은 클릭수를 얻었다. 30대 남성이 가장 많이 작성했다는 댓글 중 에는 WHO가 중국 정부 지원을 받는다며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과 다음 선거까지 예상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보이는 댓글에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기존 시스템을 전부 부정하고 그래 봐야 소용 없다는 회의적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면서 기존의 특정 정당을 찍어야 한다는 의견은 앞뒤가 안 맞는 내용 이었다. 캐쥬얼한 댓글 창에 논리적인 의견을 게시 하기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으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장을 열어 준다면 과연 얼마만큼 앞 뒤가 충분한 주장을 펼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 점이 생긴다.

또한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국의 확진자 수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연합뉴스 2020 3) 20 30대가 많이 클릭한 뉴스로 순위에 올랐는데 거기에는 관계없는 중국을 비난하는 의견이 많았으며, 확산의 원인이 중국과 중국인에 있다는 논리를 주장 하였다.    

젊은 꼰대는 온라인 댓글을 통해 과시적 모습을 드러 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누구라도 느꼈을 법한 혐오 표현이나 차별적 발언을 얼마 가지 못해 관심이 사라지는 댓글 창에다가 매달아 관심을 받으려는 시도 역시 딱 그 정도의 일시적 과시와 관심의 소비만 바라는 행동으로 읽힌다.

네이버는 2020 3월 부터 댓글러들이 그들이 기존에 썼던 댓글 내용 목록을 일괄 공개 전환했고 댓글을 쓴 사람이 과거 어떤 식의 댓글을 쓰고 혐오나 차별 표현 을 지속적으로 써오고 있는 지가 드러났다. 네이버의 변화가 결코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더라도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에서 댓글러들의 이력을 공개 하면서 댓글의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모든 이슈에 대해 화풀이를 하거나 빈정거리 고 차별이나 혐오를 드러내는 해당 댓글러의 반사회적 성향과 그 성향의 일관성이 드러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여론 이라고 여겨졌던 댓 글의 일부를 이제는 이상한 사람이 쓴 이상한 글로 무시해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댓글 숨기기 기능이 유용하다.  

네이버에 댓 글을 쓴 사람의 신상 정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매일 많은 댓글을 달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주로 은퇴하거나 직업이 없는 장년 노년층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사회적 관계 맺음에 실패 했거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층의 글이라는 가능성도 적지 않다.

 

 

 

 

2. 젊은 꼰대가 처한 어려움

 

저성장

때로는 굶기도 하며 살았다는 베이비 붐 세대 이후, 굶지는 않고 자란 세대와 2000년대 이후 경제적 혜택과 더불어 민주적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 중에서도 젊은 꼰대가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일명 밀레니얼 세대만을 특정 지어 젊은 꼰대 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나 2000 년대 초반에 태어나 2020년 현재 20대 초반 세대 만을 지칭하기 보다는80년대와 90년대 후반에 태어 나 저성장 경제와 정부의 노동 시장 유연화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는 세대 에게서 젊은 꼰대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본다.

이들은 이전 그 어느 세대보다도 경제 혜택을 누리고 자랐으며, 태어나면서부터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 디지 털 환경이 자연스러우며 가난과 차별을 덜 겪은 축복 받은 세대 같지만, 저성장 구조에서 취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N포 세대라는 말에서 보 듯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삶의 과정들이 이 세대 에게는 선택과 포기로 생략되고 있다. 출산을 포기 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세대로부터 부여 받은 경제적 혜택을 미래의 가족 을 위해 나누거나 포기하는 대신 자신만을 위한 혜택의 최저선을 유지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개인 의 선택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고도의 경제 성장에 필연적으로 뒤 따를 저성장, 아날로그와 디지털 로의 전환이라는 변혁을 거친 이들의 성장 배경은 이들 세대만이 보이는 독특한 특징을 만들어 내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이다. 이들은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이며 전형적인 나르시 시스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게 이어져 왔던 남아 선호 사상이나 장남 독식 가족 구조에서 차별을 받아온 지난 세대와는 또 다르게 딸도 가족 내에서 차별적 대우를 거의 받지 않고 자랐 고 또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이 배우고 창의적이라 평가 받는다. 그래서 오히려 일부 젊은 남성들은 역차별이라 는 피해 의식을 가지기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양극화된 취업 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을 겪고 있는 세대인 이들은 애매하게 끼인 세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부모 세대 보다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이기적 인 기성 세대는 이런 젊은 층의 어려움을 최대한 이용 한다.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차이

 

늙어서 심심해서 한다는 꼰대 짓을 젊은 세대가 하고 있다. 강한 자기 확신으로 타인에게 일방적 주장을 펴는 점은 양 세대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세대 중 젊은 꼰대 역시 무엇보다 자신을 우선시 하며, 그 누구보다 자기 주장 이 강한 세대이다. 비록 모두가 앞으로 밝지만은 않은 경제 상황에서 살아 가고 있지만 나이든 꼰대들에게는 찬란한 전성기 시절 이라는 과거가 있다. 마치 젊은 꼰대들에게 작은 성취나 존재감만으로 주변의 박수를 받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앞에서 말했듯이 늙은 꼰대가 젊어서부터 꼰대 였던 가능성이 크듯이 유독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꼰대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 그리 특별한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한편, 같은 꼰대 일지라도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꼰대 짓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 늙은 꼰대는 자신보다 아래이거나 모자라다 고 생각하는, 특히 철없는 젊은 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젊은 꼰대는 위-아래 모두에게 자신이 우월하다 강조한다.

• 늙은 꼰대는 현실 어디에서나 흔하게 존재하지만, 젊은 꼰대는 가상 세계에서 더 자주 존재감을 보인다.

• 늙은 꼰대에게 꼰대 짓은 생활이지만, 젊은 꼰대에게 꼰대 짓은 놀이이다.

•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공통점은 돈 혹은 성공이 전부라는 속물적 근성이 강하다.

 

 

 

 

 과거 문화에 빠진 젊은 꼰대들

 

 

젊은 꼰대는 개인 정보 즉 연령과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꼰대 짓을 한다. 기사를 읽다 쭉 내려 댓 글을 보게 되면 거기에는 자신은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다며 깔 보듯 훈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오프라인 세상에서 흔하게 보는 늙은 꼰대 짓이 온라 인 세상에서 벌어진 것 같다. 그리고 젊은 꼰대들은 자신들보다 더 어린 세대 혹은 같은 세대 위에 군림 하기 위해 지난 세대의 문화를 굳이 즐기기도 하는데, 바로 정치와 음악이다.

무료한 노인들이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를 통해 탑골 공원으로 모일 때, 젊은이들은 이른 바 온라인 탑골 공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SBS는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과거 프로그램인 인기가요에서 방송되었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영상을 올렸고, 이어 그 가수들의 노래를 기억하는 세대와 처음 접하는 세대 모두에게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해당 채널은 개설 후 구독자 수 18만 명을 넘어섰다. 해당 채널에서는 실시간 채팅이 가능하여 영상에 출연 한 가수들이나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그 채팅 창에 쏟아지는 이야기를 통해 젊은 꼰대들은 논리를 뒷받칠 자료를 보충하기도 한다.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온라인 탑골 공원 가요의 인기가 레트로 문화 소비의 한 형태로 읽히기도 하나, 젊은 꼰대들은 예전 세대의 가요를 보고 들으며 이 가요를 모르는 더 어린 세대, 혹은 이런 가요에 대해 잘 모르 는 사람들과의 선 긋기를 시도한다.

젊은 꼰대들은 사회가 양분되는 이념의 대립에 흥미를 느끼며 과거의 정치 문화에 대해도 관심을 가지고 지식 주워 담기를 하는데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 방향에 대해 주목하기보다는 과거 정치권에서 인기를 끌었거나 자극적인 선동을 했던 정치인과 정치 사건에 관심을 보인다. 나이 먹은 정치인들이 과거의 정치 사례를 마치 역사 속의 교훈인 양 인용하고자 하는 데 과거 정치인의 이름을 인용하거나 주요 사건을 들먹이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민주 정치사를 제대로 관통해서 이해 한다면 앞으로의 흐름 역시 다양성의 확대와 약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생각하는 것이 당연 하나, 꼰대들은 자신의 논리 보충을 위해 부분 지식 조차 선택적으로 차용 한다. 어떤 정치 사건의 전후 맥락과 배경에 대한 충분 한 이해 없이 단편적인 이해는 또다시 그러한 사건이 반복되는 실수를 예고한다. 이는 기성 세대의 잘못으로, 기성세대에게서 배울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데서 왔다. 거저 얻은 권리가 없듯 희생에 대한 존경이 있어야 하지만, 농부가 어리석어 보이면 맛있는 열매 조차 햇빛 만 쬐면 저절로 열리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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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인가 꼰대 짓인가

 

교과서에 기술된 지식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노하우를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선생 혹은 선배 노릇 이라고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는 꼰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꼰대 자신에 대한 과대 평가와 상대방에 대해 존중이 결핍되어서 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먼저 겪어서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잘 모르고 처음 겪는 이에게 무언가 알려 주려고 할 때,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없었음에도 기다리거나 참지 못하고 먼저 알려 주려는 것을 꼭 선의로만 볼 수는 없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첨부되는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 가 진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스트레스 풀 듯, 묵은 말을 배설할 기회를 찾는 경우라면 먼저 상대방에게 양해와 동의를 구해야 함이 마땅하다.

누군가 먼저 조언을 구하는 경우에 있어서, 조언이 필요한 사람이 알고자 했던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 보다는 묻지도 않았던 불필요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조언을 하려고 하거나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 하려 한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꼰대가 독단적 이고 독선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도 결국 세상 원리는 똑같다고 우긴다.

정작 질문자가 알고 싶어하는 답을 꼰대는 잘 모르 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에도 어린 학생의 가치관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존중하고 본인이 전지 전능하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교사라고 전지 전능하지도 않을 뿐 더러 교사의 조언으로 인해 학생 에게 생기는 결과에 교사가 모든 책임을 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깨우친다 는 것은 누군가의 가르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깊은 사고와 성찰에서 오는 것이다.

성인 간에 어떤 조언을 할 때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는 태도, 특히 타인의 삶의 전반에 대해 지적을 하려는 태도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지난 경험에서 단지 운이 좋아서, 혹은 우연하게 작은 성공이라도 맛 본 사람은 과도한 자기 확신에 차기 쉽다. 경제가 급성장했던 베이비 부머 세대가 어쩌다 취업하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온 것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라 과대평가를 하기 시작하며 꼰대가 된다. 물론 부머 세대의 노력은 지금 세대에게도 큰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경제 발전 에 따른 전체의 성공에 기댄 결과를 자신이 남달라 특별하게 이룬 것이라 해석을 하면 지나친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고 상대방 특히 다음 세대가 나태하다는 비난으로 이어가기 쉽다. 그래서 자신들의 투기는 투자 가 되고, 기득권은 보수 성향으로 포장된다.

꼰대의 나 때가 말하는 자신의 의욕 넘치는 초보 였던 시절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왕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꼰대의 설교는 정확히 일방통행 한다. 꼰대 짓에는 언제나 자기 중심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발현 된다. 예전의 나는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간혹 실수를 했더라도 금새 다시 배우고 바로 해내는 능력 자였다고 근거 없이 주장한다. 동등한 지위를 가진 상대방과의 대화 라기보다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목사의 설교 같은 일방 통행적 주장이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진다. 아마 이 꼰대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에는 노년뿐만 아니라 모든 중장년층이 꼰대였기 때문에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 이 조금씩 바뀌며 젊은 세대의 말을 경청하는 꼰대 같지 않는 기성 세대가 나타나고 꼰대가 적은 조직이 잘 굴러가는 모습을 보며 그 특징을 세분화하고 조롱 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사회 어디서나 흔 하게 보이는 꼰대는 어쩌면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이기심 혹은 자기 중심적인 성향의 필연적 발현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개인적, 사회적 성취를 이룬 나이든 사람 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경험이 부족하다고 보이는 젊은 사람들에게 대방출하는 것을, 초보가 반드시 저지르고 지나오는 실수를 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하거나 불필요한 실수를 피하는 법을 알려주는 꽤 고마운 도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초보 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꼰대는 누구의 요청이 없어도 꼰대 짓을 시작한다. 눈치도 없는 것이다.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나 이미 꼰대 짓 을 허용한 순간이 바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 된다. 아까운 시간과 관심을 꼰대에게 지불했으니 말 이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인 회의가 고위직의 잔소리 혹은 지시 사항 전달 시간으로 허용되는 순간 을 꼰대는 바로 포착하고 꼰대 짓을 시작한다. 일방 통행적 대화를 하는 꼰대와 의 관계는 진실할 수 없다. 꼰대의 설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될 뿐이며, 그 수직적 관계를 유지할 이유 나 가치가 사라지면 더 이상 꼰대를 위한 무대는 존재 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인은 신세 한탄을 하기 전에 자신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타인과 건강 한 관계를 맺어 왔었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엉뚱한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은 자제력을 잃고 상대의 모든 부분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지적 하고 호통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바로 잡으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꼰대

 

우리가 사회에서, 특히 직장에서 만나는 꼰대는 아주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이 안 통한다는 기성 세대를 칭하는 꼰대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하라면 하는 것이었어.”, “어디 말대꾸를 해?”, “나 때는 말이야, 이거라도 주면 감사 하다고 냉큼 받았어.”, “어디 의견을 갖다 붙여?”

나이 먹은 꼰대를 한 성숙한 존재이자 열린 마음의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을 이제는 포기하자는 여론 은 어느 정도 굳어진 것도 같다. 저렇게 평생을 살아 왔는데 지금 와서 바뀌겠냐며 무의미한 기대는 그만 하자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이 드는 한 가지는 그들은 이미 젊어서도 꼰대였거나 꼰대를 선망했다는 점이다.

세대를 뭉뚱그려서 요즘 것들은 못 써라고 단순 하게 젊은 세대를 비난 하거나, ‘늙으면 집에 있어라는 늙은 세대를 향한 단순한 비난도 여전히 존재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충분히 다양해졌으며 구성원 제 각각이 다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어 단순하게 태어난 연도 만으로 세대간 문화를 구분 하기는 어려워졌다. 다시 말하면 단순 시간적 구분에서 복잡한 시간 공간적 구분으로 입체화 되었다.

세대적 특성으로 분류되었던 부류가 세대 간에 걸쳐 존재하거나 다른 요인으로 새롭게 분류되기도 한다. 과거 세대라 구분되는 특징이 공교육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온 것이라 본다면, 과거에 비해 삶에 있어서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나고 출발선 상에서부터 좁히기 힘든 격차가 벌어지며, 또 선택적 편향성에 빠지거나 그들만의 문화에 몰입하는 등 젊은 세대도 같은 세대 안에서도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미디어와 기술 발전, 세계화 등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었던 것이 걸림돌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많은 정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공개되고 있고 개인이 얼마만큼의 정보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 즉 정보의 양과 질을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새로운 걸림돌이 생겼다. 미디어는 인공 지능을 핑계로 편향성을 부추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30살이 되기 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던 시대에서 40대 혹은 50대에도 초혼을 하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더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과 직업과 상관 없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 한 시대 안에 존재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도 각자 주어 진 환경과 개인적 여건과 의지에 의해 각자 다른 시대 를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젊어서 나름 개혁적이었으나 나이 들면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젊어서는 별 생각 없이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외로움이 싫어 소속감을 찾고 또 사회적 관심을 받고자 극우 집단에 빠지기도 한다. 이념을 떠나서 당장 눈 앞에 주어지는 아무 기회라도 붙잡아 사회적 경력의 뿌리를 내리고 싶은 젊은이들도 이런 가치보다 이익을 따르는 행동을 따라 한다. 꼰대 건 무어 건 간에 말이다. 꼰대는 세대간 가치의 문제 라기 보다는 타인에 대한 공감력의 문제이다.  

이렇게 한 세대를 하나의 정의만 묶는 것이 불가능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젊음과 꼰대가 결합한 젊은 꼰대가 출연하였다. 

젊은 꼰대는 이러한 늙은 꼰대가 가진 특성을 답습 하여 늙은 세대와 같은 세대이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 들, 그리고 더 어린 세대를 향해 전 방위적 꼰대 짓을 한다. 온라인 댓 글을 통해 개인적으로 꼰대 짓을 하거 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베스트 글 혹은 베스트 댓글에 선정되기를 원한다. 유튜브를 통해 더욱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고 때로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린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 지만 이들은 집단 따돌림 성격을 보이기도 하는데 자신 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거나 그들만 의 서클에 발을 들이는 약한 사람을 집단 공격하며 그들 의 권력을 뽐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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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봐가며 꼰대 짓 하는 젊은 꼰대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 중에 아주 특이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결혼 후 알게 된 사람들이 거의 다 특이하기는 하다.) R과 내가 비슷한 처지 였음에도 서로 불편한 관계였던 이유가, 지나고 보니 R이 온갖 꼰대 질을 유독 나를 향해서만 해댔던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R은 주위 사람들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이 습관이었던 사람으로 내가 지금까지 만났 던 모든 이들 중 최고의 아첨꾼이다. R은 상대방에게 밑도 끝도 없이 듣기 민망할 정도의 칭찬을 해대기가 입에 배었던 사람 이었다. R과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도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하기까지 한 칭찬 세례를 했었다. R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주보는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갑작스런 외모 칭찬부터 성격 칭찬까지 듣기 민망할 정도로 아부를 해대었는데, 그 아부는 과장을 넘어서 거짓말에 이를 정도가 많았다. 가게에서 점원이 고객에게 당장 무언가를 팔기 위해 하는 칭찬도 과장이 지나치거나 과도하면 거북하고 불쾌하다. 칭찬 이면에 숨은 다른 속셈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R의 가식적인 칭찬이 정말 본심인지 궁금했고 그렇게까지 상대가 거북할 정도로 칭찬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러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 서 칭찬 세례가 자신에 대한 자랑질과 나를 향한 꼰대질로 점차 바뀌었는데, 내가 찾아낸 이유는 이랬다.

꼰대 R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나에게까지 그렇게 칭찬을 해 주었는데도 나로부터 되돌아오는 반응이 시원치 않다 느꼈던 것, 그리고 R의 관점에서 서열의 끝인 나한테까지 더 이상은 위선적인 아부를 해대기가 싫었던 두 가지 이유였다고 나는 짐작한다. R이 주변 사람들에게 아부를 해대는 것만큼 자신도 그 만큼의 아부 서비스를 나로부터 누려 보고자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얼마 못 가 완전히 상반된 행동을 시작했는데, 결국 R은 내 앞에서만큼은 아부를 완전히 중단하고 숨겼던 본심을 드러냈다. 그의 본심은 아부 대상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었고 짜증이었으며 뒷담화였다.

R의 목적이 본인을 통해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간신히 찾아낸 이유는 바로 이 것이었다. R은 결혼으로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잘 보이고 싶었고, 또 동등하지 않은 위치에서 오는 여러 상황적 억울함과 뒤따를 비난 등을 피하고 싶었던 목적이었다고 추측한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거래가 오래 전부터 그들의 관계 속에서 있었음이 확실했다. 가식적인 아부가 몸에 배었던 R은 그렇게 아부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듣기 싫은 잔소리와 비난을 피하고 나름 영리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어이 해오면서 살아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자신의 사회성이 대단하고, 자신이 아주 사교 적인 능력자 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했다. 아쉽게도 아무도 R의 그런 애씀을 인정하거나 추켜 세워 주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겸손한 척도 하려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부 세례를 일상적으로 받아 온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R의 립 서비스를 즐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R에게 그다지 특별 배려를 해주는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R을 덜 비난하고 조금은 친절하게 대하려고는 할 때도 있었 지만, 의미 없는 칭찬에 익숙해져서 인지 사람 봐가며 함부로 타인을 대하는 그 집단 전체의 원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R은 애써서 헛수고를 한 것이다.

그런 R이 내가 아부에 낚이지 않자 언제부턴가 내 앞에서 일장 연설로 꼰대 짓을 시작했다. 내가 R 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고 소위 싸가지가 없다며 비난했다. 나는 R에게 아무 것도 묻지도 않았고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지 않았는데도 언제나 혼자 시작하던 R의 일장 연설의 배경에는 너는 나 보다 한참 모자라다는 설정이 깔려 있었다. 나와 고작 몇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던 R은 그의 말 만 놓고 보면 R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겪었고, 누구보다 도 다양한 인맥을 보유하였으며, 세상의 모든 기막힌 묘수와 노하우는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참 어이없게도 R이 가장 강력하게 나와 비교 우위에 있음 을 강조하는 근거는 바로 돈이었다. 자신이 나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재산이 많기 때문에 R에게 있어서 나는, R의 조언을 넘어선 생명수 같은 설교를 새겨 들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에 두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겉으로는 돈이 전부가 아니 라고 부정하는 척 하며 돈과 물질을 추구하고 집착 하는 모습을 숨기려고 하지만 금새 들통이 난다. 이런 속물 허풍쟁이는 나 같이 말보다 행동에 주목하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발각되기 쉽다.

어디서 상을 치렀는데 집안 싸움이 나서 누가 얼마를 챙겼네 하며 돈 때문에 벌어진 흔한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 나에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R보다 서열 높은 사람 S’를 향해 직접 비난을 하지 못했던 R, 대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만만한 나를 향해 너 돈 밝히면 안 된다. 남의 돈이 다 네 건 줄 아냐,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순간 세상 황당했던 나는 그 날에서야 R의 밑바닥 꼰대 모습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던 그 나이만 많던 높은 서열 S’화난 꼰대 R’S 자신이 아닌 나에게 버럭 화를 내자 내 눈치만 살피며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모두 나이만 많고 못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된 이유와 어디서부터의 책임인 지를 그렇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반복된 경험으로 안 것은, R은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아부와 거짓말을 했고 오로지 나 에게만 솔직했다는 것이다. 꼰대R이 하는 이상한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는 계속 R을 마주 쳐야만 하는 관계에 지쳐 갔었고, 그래서 한 번 R을 이해해보고자 심리 관련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신 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 즉 잘 보여두면 여러모 로 유용한 권력을 쥔 자에게 기회만 있으면 비위를 맞추고 가식적인 칭찬을 남발하고 마치 보험처럼 관계 를 설정해두려 하지만,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나 이용 가치가 없어 보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솔직함 을 넘어 예의 없이 행동하는 R의 심리가 무엇 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멀리도 아닌 내 근처에 있었던 그 꼰대R은 칭찬이나 비난 모두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 으로 사용하는, 눈치가 빠르고 아주 계산적인 사람이었 고, 사람들을 잘 다루는 방법인 칭찬과 비난, 둘 다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가치관이나 성격, 기호 등을 눈치 빠르게 파악하여 이를 서로간 관계 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 하게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타인에 대한 아무런 공감 없이 오로지 어떻게 이용하면 자신에 유리할 지만 계산하는 사람이라고 밖에, 나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가 없었다.

R이 함부로 대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실제로 아무 권력도 없었던 나에게 마구 스트레스를 풀어 대었던 이유 역시 결국 R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는 것이 입에 착 붙어 습관이 되었어도 타인 눈치 보기, 비위 맞추기 같은 감정 소모 는 R에게도 역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눈치를 보며 살아야만 했던 R이 처한 상황이나 성장 환경이 짐작 가기도 했다. 나름 절박 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성찰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다고 으스대는 R이 제공하는 아부와 혜택을 당연 하다는 듯 즐기는 S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R 보다 더 사악해 보이기도 했다. R은 이미 다 자란 성인으로 서 스스로 깨닫고 성장해야 하는 부분은 외면하고 오로지 눈 앞의 이익 만을 계산하고 순간적 불편함을 모면하며 살기에 급급한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R에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란 진심을 공유하며 멀리 보고 계속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처리해야만 하는 고객센터 전화 항의 내용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권력자에게 아부와 가식적인 칭찬을 탁월하게 잘 하는 이 꼰대R’을 칭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실제 있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자를 앞에 두고 싫다는 내색을 하기 힘들다. 또 공감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왜 그들이 아부를 하는 지에 대해서조차 깊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아부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쳐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은 끊임없이 주변에 칭찬 을 남발하고 그렇게 하는 자신을 자화자찬했다. 수 십 개의 미끼를 던져서 단 몇 마리라도 잡아 보려는 마음 이었을까.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던 이해 못 할 점 은, R은 사람들의 면전에 대고는 그렇게 아부를 하고 듣기 민망할 정도의 칭찬을 쏟아 내지만 뒤돌아 서서는 바로 방금했던 말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뒷담화를 하지만 R은 앞 뒤 말 전환이 아주 빠르고 대담하고 익숙했으며 내가 만났던 세계 최강으로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유독 만만한 나에게만 속마음을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양면성을 드러내었던 R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었다. 어떤 것이 진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두 얼굴을 가졌던 R의 그 어떤 말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R도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 보고, 자신이 영혼까지 털어 애써 칭찬 아부 잔치를 벌이는 동안 맞장구를 쳐 주기는커녕 모른 척 하고 있는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만만한 나 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 같았다. R이 진심을 담아 주변 사람들을 칭찬한다 라고 내가 느꼈 더라면 나는 그를 한결 같은 사람, 인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돌아서서 바로 다른 소리를 하는 R 을 보며, 언젠가 내 앞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칭찬을 던지고는 뒤돌아서 전혀 다른 본심을 드러냈을 R을 상상하니 아주 불쾌했다. 그래서 아부 잘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는 웃지만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르기 때문 이다.

처음에는 뭐지? 하며 당황했지만 지나고 보니 젊은 꼰대는 이렇게 내 근처에 아주 가깝게 존재하고 있었 다. 상대를 잘못 골랐던 R에게 나는 더 이상 대화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R의 말대로 ~참 윗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굳이 생각해서 해주는 말씀을 감사하게 잘 들었더라면”, 다시 말해 내가 생각을 고쳐 먹고 R의 꼰대 짓을 적당히 받아 주었더라면, “약간의 금전적 물질적 혜택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R은 나를 향해 답답하다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답답한 사람은 내가 아닌 R이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닌 가면까지 써 가며 애써 타인에게 아부하고 비위를 맞추어야 비로소 자신 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R의 삶 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기적인 처세의 부끄러운 민낯을 R을 통해 적나라하게 느꼈다. 끊임없이 주변 사람으로부터 얻을 이익과 혜택에만 관심을 두었던 R, 아부가 통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어디선가 돈 잘 벌고 살고 있을 지는 모르지만, 돈 외에는 중요한 가치가 없어 보였던 R 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았을까 궁금하다.   

나이 든 꼰대는 아무에게나 꼰대 짓을 벌이고 세상 전부를 우습게 여기는 듯 보이나 젊은 꼰대는 아무 에게나 꼰대 짓을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위와 아래로 분류하고 구분하여 막 대해도 손해가 없을, 만만하고 적당한 대상을 찾아 꼰대 짓을 저지른 다. 서열 속에 스스로를 가둔 꼰대에게는 꼰대 짓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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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은 못참겠다.
빨리 일어나서 가라, 인간적으로."

거실바닥에 자고 있는 송혁언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이는 송혁언의 전 부인이다. 이혼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송씨는 전부인 집을 친정인양  찾아 온다.
송씨는 이혼한 부인이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릴까 봐 계속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매달 약간의 생활비를 갖다주며 전 부인이 엄한 놈을 만나고 다니지 않도록 하려고, 이혼을 하고 나서야 남편 노릇을 그나마 하는 중이다.

송씨의 전부인은 송씨가 내미는 돈이 이상하지 않았다. 이혼 위자료도 한 푼 받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전 남편 송씨의 돈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집에 들어와 자기 집 인양 차지하고 있는 송혁언을 보면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송씨의 전부인은 자신의 잔소리에 아랑 곳 않고 자는
송씨를 쏘아보고 출근을 해버린다. 현관문이 쾅 닫히고 현관잠금장치가 삐리리 소리가 나자 송혁언은 그제야 슬며시 일어난다.
냉장고를 열고 속을 두리번거리다 아래칸의 큰 김치통을 보고 뚜껑을 열어 김치부터 꺼낸다. 밥솥을 열어보았지만 안은 텅 비어 있다.

'젠장, 밥도 안했구만.'

부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라면 한 봉지를 찾아낸다.
라면을 끓여 냄비채로 가져와서는 아까 꺼내 둔 김치와 함께 먹기 시작한다. 송씨의 전부인의 친언니가 담아 보내주는 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이 끝내준다.


송혁언은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었다. 이민 간 미국은 상처의 깊이만 다를 뿐 매일 상처를 주는 곳이었고 온 몸으로 그 상처들을 견뎌 내야 했다. 어린 동생들은 미국 친구들을 사귀고 말도 빨리 배웠지만 송혁언은 수줍은 성격에 경계심까지 생겨 저절로 입이 무거운 성격이 되었다.

이민을 떠나면서 부모가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도망친 것을 알게 되었고, 쉽게 생긴 돈이라서 였을까 송씨의 부모는 그 돈을 빨리도 모두 날려버렸다.

송씨는 조용히 그리고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인타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한국에서 유치원이나 초등상대  영어강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조금이나마 모은 돈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씨의 부모는 송씨가 고향 한국에 자리를 잡으면 따라가 살겠다고 맏아들에게 미련을 보였지만 사실, 송씨의 동생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동생들이 송씨보다 먼저 미국에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더 컸다.


송씨는 운좋게도 한국에 와서 서울 마포의 한 영어학원에 강사로 채용이 되었다. 송씨가 미국에서 온 교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혀를 굴리자 별다른 확인 없이  채용이 된 것이었다.
송씨는 학원에서 젊은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송씨의 전부인이 바로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송씨를 미국시민권자로 알아 혹시나 미국으로 가서 살수 있을거라 기대했던 송씨의 부인은 송씨가 조건부 영주권자였던 것을 뒤늦게 알았고 그때부터 다툼이 시작되었다.

3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왔던 송혁언은 40이 조금 넘어 직접 학원을 차려 사업을 시작했고 운좋게도 학원은 운영이 잘 되었다. 송씨는 열 명의 강사를 채용해 원장님 소리를 들었는데, 통장에 돈이 쌓여가자 나스닥 주식에 큰 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하고 말았다.
부인과는 외도문제로 이혼을 했고 학원을 말아먹은 덕에 부인과 나누거나 위자료라도 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전 부인의 허황된 기대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뭐라도 하려로 시도해보았으나 미국에서 자리잡은 동생들은 빈혼인 형의 리턴을 반기지 않았다. 부모님이 힘들게 지내고 동생들이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할 때, 혼자 한국으로 도망간 형을 결단코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송씨는 쌀쌀 맞게도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미국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가 다시 상처를 입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혁언은 50이 다 된 나이에 학원강사로 일하려고 알바천국 앱을 깔았다. 연락이 온 곳이라고는 여학생들이 있는 성인대상 회화학원은 일절 없었고 그나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강사 자리 밖에 없었다. 운좋게 면접을 보러간 서울 외곽의 한 초등 영어학원 주변에는 잠시 둘러보아도 영어학원이 여러개 더 보였다.  이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은 자신이 아는 영어강사를 면접관으로 불렀고 둘은 송혁언의 이력서를 훑어 보았다. 그러고 질문을 흘렸다.

"송 선생님, 미국시민권자에요?"

-- "네"

"혹시 비자 확인 할수 있을까요?"

--"네? 그건 당장은 어렵고요.."

"시민권자는 맞으세요? 그런데 최종학력이 무슨 스쿨인데 고졸이신가요? 컬리지 나오신건가요?"

--"한국과 제도가 조금 달라서 설명하기는 힘든데 고졸과 대졸 중간쯤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 소리야, 참. 아닙니다. 그럼 수업시연 지금 해보시죠."

--"네? 지금 바로요?"

"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송혁언은  칠판 앞에 서서 어정쩡 수업을 시작했다. 학원이 망하고 폐인처럼 지내다 과외를 시작했는데 시험대비를 해주기에는 실력이 한참 떨어졌고, 회화반은 원어민들에 밀려 자리가 없었다.

간신히 찾은 초등영어학원에서 자신을 구경보고 있는
원장과 원장 친구 앞에서 뭐라도 해야하는 송씨는 칠판을 긁적였다.

"송혁언 선생님,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문법이 많이 모자라신 것 같고 교포라고 하시지만 국내 대졸자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간판은 그럴듯하게 꾸미면 되니까 일단 기초 파닉스반에 맞으실 것 같고 주로 7세에서 8세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부드럽게 대해야 하는데 잘하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파닉스반도 가능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고 혹시 직접 학원을 차리셨던 적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네, 누가 어디서 봤다고 해서요. 으흠. 아무튼 다음주부터 출근해주시고 첫 수업 하시는 것 보고 수업 횟수
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페이는 일단 시간당 만원으로 가고 봐가면서 올려드릴게요. 괜찮으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송씨는 겨우 연락 온 학원의 조건을 생각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1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받는 대가는 150만원 정도였다. 그 외에 아무런 제공은 없었다. 송씨는 50이 다 된  할아저씨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것 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  전 부인에게 생활비를 갖다주고 관계를 이어가려면 단돈 1백만원 아니 1십만원이라도 필요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송씨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고 영어든 뭐든 가르치는 일 역시 송씨에게 맞는 일은 아니었다. 여학생들과 시시덕거리며
영어로 대화하는 그런 것이나 재미있었지 학문적으로 누굴 가르칠 능력도 마음 가짐도 없었으나, 송씨가 한국에서 할 일은 그것 뿐이었다. 송씨는  미국 영주권 박탈 위기에 처해있었고 그렇다고 완전한 한국인이 되는 것도 싫었다.  조만간 이중국적을 정리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려면 미국인이어야 하고 한국에 더 머물려면 한국인이어야 하는 박쥐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하던  학원이 다른 업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원장은 권리금을 받고 판 뒤, 한 일년 여행을 다니다가 다른 곳에 다시 학원을 차린다고 했다.
송씨는 이 기회를 잘 잡아보고 싶었다. 학원을 인수하려는 사람이 수학 학원으로 운영하려는 것을 알고 영어학원까지 합쳐서 종합학원으로 운영하자고
설득을 시작했다.


" 사장님, 아니 원장님, 두 과목 모두 하시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아이들이 보통 학원 두 개 씩 다니는데 그게 영 수입니다. 제가 사교육계에서 일한지도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초등 영어 쪽은 제가 눈감고도 다 압니다. 저만 믿어주시면 제가 확실히 살려보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도 오래 살았고 학원 경력이 이만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저는 월 300만원 정도 받으면 되고 학원이 더 커지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네, 사장님? 아니 사모님? 그런데 사모님 참 엘레강스 하십니다. 허허"


송씨는 평생 살며 지금까지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절절하게 말을 널어놓았다. 송씨의 말에 넘어가 준 학원 인수자는 학원을 반 나누어 송씨와 나누어 경영을 하기 시작했고 50대에 갑자기 부원장 직함을 달게 된 송혁언은 아주 오랜만에  의욕이 넘쳤다. 그 덕분인지 송씨 말대로 수강생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송혁언은 자신이 사장에게 벌어다주는 매출이 1억에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지분을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송씨는 자신은 주3일 총 12시간만 수업을 하고  강사를 두 명 더 뽑아 다른 시간을 채우자고 주장했고학원 원장은 송씨의 말을 따랐다. 알바천국에 강사신규채용 공고를 내자마자 이력서가 쇄도했다.


"송 부원장, 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이에요. 이력서
확인해보세요"

--"음... 일단 교실로 가시죠."

송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듯한 강사 지원자를 교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 자 그럼 수업 시연 해보세요"

이름도 묻지 않고 송씨의 해보라는 말에 어색하게 수업을 시작하던 강사 지원자를 보다가 갑자기 송씨는 수업을 멈추게 했다.

" 자, 잠깐만요. 선생님,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티칭스킬이 많이 모자라신 것 같고 교육학 전공이 라고 하시지만 고졸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십니다. 그래도 간판은 그럴 듯하게 꾸미면 되니까 일단 기초파닉스반에 맞으실 것 같고 주로 7세에서 8세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카리스마 있게 대해야 하는데  잘하실 수 있으실까요?"

--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제가 영어 교육 20년 경력에 국내 파닉스 전문가입니다. 저한테 도제식으로 배우셔야 합니다. 제 수업 모두 들으시고 숙지하시고 그대로 시연할 수 있을 때 그때부터 정식 페이 지급되고요 계약 들어갑니다. 아시겠어요?"

--"수습기간이 얼마나 되는지요?"

"선생님 하기에 달렸어요. 똑똑하시면 빨리 하실거고,
느리시면 늦을거고. 그런데 혼자 사시나 보네요.  혹시 애인은 있고? 없으시다고요. 생각 있으시면 오늘부터
배워 보실래요? 제 수행비서처럼 따라 다니시면 됩니다. 일단 겉옷 벗어서 저기 두시고  여기로 앉아보세요. 식사는 하셨나?  뭐 좋아해?"


송씨는 신규 강사로 들어온 여성에게 과거 자신이 숱하게 들어온 인터뷰 갑질을 몽땅 재현했고, 그런데도
별 거부 반응이 없는 여성을 보고 점점 간이 커지고 있었다.


송씨는 큰 두갈래 길에 서 있다. 전 부인을 달래가며
하던 학원강사 일을 할 데까지 하는 것과 지금 앞에서 잡혀온 초식동물 마냥 가만히 있는 이 여성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며  앞 일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송씨의 담배로 쩌든 시커먼 얼굴에 박힌 누런 두 눈알이 데굴거리며 앞에 서 있는 이의 아래 위를 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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