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은 오전에 받은 정부 지원금 중 45만원 그렇게 약국에서 써버렸다. 쇼핑백 가득 약을 챙겨서 나온 기동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최집사를 만났다.
“아이고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병원 들어갔다가 오셨다면서요. 안 불편하셨습니까?”
-“불편했지요. 그래도 있으라고 하니 있어야죠.”
“아이고, 나라가 이 모양이 돼서는 좌파정권이 들어서니까 이런 희귀한 전염병이 막 돌고 나라가 망할라고 합니다. 북한에 마스크도 다 퍼주고 있다믄서요. 지금 우리도 모자라서 난린데, 어제 동에서 열개 줍디다. 쓰라고. 그거 받으셨어요? 요즘에 마스크 살려면 하나에 삼천원도 더해요. 주는 거 잘 받아서 아껴 써야지 그게 열개라도 돈이 삼만원 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나라 안 망하게 다음 정권 들어설 때까지 버티게 기도합시다.”
- “나는 마스크 안주던데?”
“줍니다. 아마 동장이 집으로 갖다 줄 거에요. 장로님은 바이러스 걸린 사람이라서 지금 못 돌아다니는 걸로 알텐데, 어서 집으로 가세요.”
- “내 다 나았다니까. 바이러스 없다고 했어.”
“아 네, 그리고 지난번에 장로님 사모님이 두통 있으시다고 했죠? 요기 좋은 게 있는데 지금 한번 가 보실래요? 나오신 김에 가야지 또 언제 가겠습니까? 요 앞에 가서 차 한잔 드시고 에어컨 나오는데 앉아서 이야기 들으시면 됩니다. 우리 교인이라요.”
기동은 최집사의 말을 듣고 근처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건물지하에 있는 한 사무실에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장님, 우리 장로님 모시고 왔습니다. 인사 좀 드리세요.”
최집사는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부장이라는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양복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김기동씨 앞으로 달려왔다.
“어이쿠 안녕하십니까, 장로님 여기로 오십시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중앙교회 장로님이시라고요. 저도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요즘에는 유학 준비하느라고 여기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병원에서 못 고치는 환자들이 오셨다가 기적을 체험하고 가시는 곳인데요, 화학적 약품으로 치료하면 낫기는 하지만 그 부작용 때문에 다른 병이 더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생활 습관과 기본 생활부터 개선해주는 근본치료를 하고자 하는데요, 이 기본이란 것이 공기, 물, 배변을 말합니다. 사장님, 뭐 차 한잔 드실 랍니까? 미진씨, 여기 홍삼 한잔 주세요. 괜찮으시죠? 커피 녹차 이런 거 드시지 마시고 물 한잔도 홍삼 넣어서 드시고 하셔야 기본 건강을 지킬 수 있지요. 아 이어서 말씀 드리면 도시에 사시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오염된 공기에 노출이 되서 얻는 질병이 어마어마 합니다. 물도 마찬가지고요. 집사님 우리 장로님은 어디가 특히 불편하신 건가요?”
건강식품 다단계 사무실에서 부장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김기동을 쇼파에 앉히고는 홍삼차를 대접했다. 그리고 최집사를 향해 마치 마케팅 포인트를 찾아내려는 듯 물었다.
“우리 장로님 사모님이 두통이 심하세요. 항상 머리가 아프셔서 부산 딸네 내려가 계시답니다.”
“ 아, 그러시군요. 불편하시겠네요. 사모님 두통도 두통시시지만 우리 장로님이 사랑하는 사모님께서 옆에 안 계셔서 마음이 그러시겠네요. 옆에서 챙겨주시고 하셔야 하는데 마음도 허전하고 집안에도 여자 손길이 없어서 온기가 없으시겠습니다… 그래서 원인 모를 두통이나 병원 약으로 해결이 안되는 병은 물과 공기로 다스려야 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신제품 출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데 제가 특별히 제 수당 부분까지 다 빼드리고, 우리 장로님께서 이번 달에 개시를 해주시면 제가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유학 준비 중이라서 다음 달까지 준비되면 이제 미국으로 갈 예정입니다. 원래 이번 달에 가야 되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계획대로 잘 안되서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기동은 갑작스레 한 건물 지하로 와서 부장이라는 처음 만난 남자의 말을 한참을 들었다. 다른 방문객들은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종이컵을 들고 있는 동안, 기동은 사무실 안쪽 번지르르한 쇼파에 앉아 대접해주는 홍삼차를 홀짝였다. 기동은 눈치를 살피다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거 다 하면 얼만가?
-“아 네, 장로님, 이 연수기 하고 공기청정기 함께 세트로 구매하시면 월 3만 9천원이면 건강한 생활을 시작하시는 겁니다. 36개월 사용하시고 이후에는 소유권이 전부 장로님 댁으로 이전됩니다. 이 연수기가 미국 특허를 받아서 생산이 미국 현지에서만 이루어지는데요, 그래서 생산이 적습니다. 그리고 이 공기청정기는 필터가 미국산이라서 성능이 확실히 다르고요."
“한 달에 3만 9천원?”
-“네, 이 제품들 판매가를 생각해보시면 혜택이 엄청난 것입니다. 여기 서류에 이름 주소 써주시고 자동이체 등록해주시면 할인 해드립니다. 지로로 내실건가요?”
“자동이체로 해줘”
기동은 부장이라는 남자가 내미는 서류에 이름과 주소를 쓰고 서명을 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늘 들고 다니는 통장을 꺼내 계좌번호까지 적어주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자택으로 배송은 일주일안에 가게 되고요, 혹시 반품하시려면 배송 출발 전 내일까지는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아까 제가 말씀 드린대로 제 수당을 빼드릴 건데, 이 달은 제가 대신 납부해드리고 다음달부터 자동이체 확인하시면 됩니다. 나가시면서 사은품 꼭 받아가세요.”
기동은 서류 서명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던 최집사는 밝은 표정으로 기동에게 말했다.
“장로님, 정부 지원금 한 60만원 받으셨으니 이런 거 좀 사실 여유 있으시죠? 사모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요 앞에 가서 또 받으실 거 있습니다. 저 따라오세요.”
기동은 편안하게 기대 앉아있던 쇼파에서 아쉬운 듯 일어나 최집사를 따라갔다. 시끌벅적한 방으로 들어간 기동은 그곳에서 챙겨주는 화장지와 커다란 상자 등을 양손 가득 받아 들었고, 직원 여러 명이 일층 현관까지 따라 나와 해주는 90도 인사까지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기동은 화장실의 쿰쿰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널부러진 옷가지를 발로 밀쳤다. 문짝이 내려앉은 현관 신발장을 슬쩍보았지만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재난지원금을 탕진하고 돌아와 베개를 베고 누웠는데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10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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