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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집안에 들어서면, 제자리에 있지않은 물건들과 식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그릇들이 내 시야를 찾아 들어온다. 나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고 믿는다. 손에 든 가방만 내려놓고 양말도 신은 채 두시간 정도 이방 저방 청소를 하고 나면 씻을 기운조차 남지않는다.

내 몸을 청결하게 만드는 대신에 주변을 먼저 청소하고 나면 느끼는 청소가 주는 쾌적함, 기분이 상쾌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편안함은 내가 매일을 사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청소할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밖에서 묻혀온 더러움과 피곤함을 먼저 씻어 내주는 내몸 청소 샤워를 했을 것이고, 샤워벽만 물기를 닦아내고 바닥에 머리카락을 뭉쳐 주워 치우고 내가 벗은 옷과 수건만 빨래통으로 던져 넣었으면 됐을 것이다.

가끔 바닥구석을 뒹구는 머리카락과 먼지뭉치를 모르는 척 외면해보기도 하지만, 오래지않아 2~3일 내에 결국은 걸레봉을 들고야 만다. 마치 연체된 세금고지서 같이 결국은 내야하고 정리해야하는 청구서 처럼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것들이 매일 생겨난다. 먹다 흘려 마른 음식물 조각, 매일 꾸준히 빠지고 있는 머리카락, 아직도 어디서 왔는지 정확하지 않은 먼지뭉치들...
당장 물티슈로 발밑만 끼적거리다 점점 닦는 범위가 넓어지게되고, 반통 넘게 물티슈를 뽑아 쓰게되면 차라리 처음부터 걸레를 쓸 걸 하는 후회와 짜증, 내 인생이 청소로 소비되고 있다는 아까움이 몰려오며... 결국은 진이 빠질 때까지 청소를 하고 만다.

내야할 세금 청구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미뤄두고 그 돈으로 다른 걸 사는 순서가 바뀐 짓을 잘 안 해보아서 그런지 불편해서 못하겠다. 바닥 청소를 외면하고 설거지 거리를 쌓아두고 , 침대에만 훌쩍 올라가 누워 쉰다고 휴식이 되지는 않더라. 바닥의 먼지를 외면하자니 덮고 있는 이불에 묻은 진드기나 먼지 생각이 떠오르고, 베개에서 나야되는 상큼한 섬유유연제 향이 나지 않음이 갑자기 강조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라도 걸레를 빨아 들고 바닥을 닦았더라면 침대 위 내 이불의 정기 세탁시기까지 생각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예민함에 대한 한계가 있어, 특히 퇴근 후에는 어느정도 치우고 나면 청소에 대한 의지가 감소하는 체력적 한계가 있음은 분명했다.

하루종일 청소를 하며 보낸 날을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이 어질러진 상태로 있는 시간의 주기가 짧아지고 더 자주 닦고 더 자주 환기하며, 청소를 넘어 아예 서랍정리에 장식까지 하는 수준에 도달했던 것 같다.
서랍은 집어넣고 닫으면 잠시 시간이 정지되는 타임머신처럼 내 과거 기억이 저장되고, 다시 열었을 때 시간이 다시 이어져 흐르는 듯하다. 내 머리속 매일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순서없이 흩어져 있을때, 이를 수면을 통해 버리고 간직하고 정리 해야하는 것처럼, 서랍속 물건들도 나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 서랍정리란 오래된 숙제로, 과거의 나를 정리하고 기억할 -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만 골라 낼 수 있는 꼭 해야할 작업이다. 과거 물건 정리를 통해 현재 나를 탄탄이 하고 내일의 내가 있을 자리를 상상하게 해준다.

매일 충분히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지낸 후 든 생각은, 정리가 필요한 물건들로 가득찬 서랍이나 어디선가 몰려든 먼지뭉치가 바닥을 구르는 것처럼, 내 에너지를 쏟아 모든 것을 돌이킬 그 어지러움과 엉망이 바로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며칠은 어쩔수없이 때로는 지저분함을 느끼지 못하고 어지럽게 살아야만 하는 피곤함과 지침을 위해 내 에너지를 쏟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단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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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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