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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교사의 '은밀한' 성평등 수업 이야기[헤드라인 속의 'OO녀']
신지혜 기자 조형국 기자





초등 6학년 국어교과서에는 한 여성을 사랑한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예쁜” 버들이가 아픈 어머니를 위해 쉽게 샘물을 뜰 수 있도록 몽당깨비는 샘물을 그의 집 근처로 옮기고, 그 죄로 1000년 동안 구덩이에 갇히는 벌을 받았다. 몽당깨비는 버들이가 자신을 속여 샘물을 독차지 했고, 집 근처에 말 피를 뿌려 도깨비가 접근할 수 없게 했다고 했다. ‘인물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게 이 단원의 교육 목표인데, 많은 교재는 몽당깨비가 ‘믿음과 사랑’을 추구하고 버들이는 ‘현실적 이익’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몽당깨비는 순수하며 버들이는 계산적이다. 이 추론의 근거는 모두 몽당깨비의 말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말야… 버들이는 왜 집 앞에 말 피를 뿌렸을까? 몽당깨비가 한 말을 들으면 버들이는 뭐라고 답할까?”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이신애 교사(31)는 다른 가능성들을 아이들에게 묻는다. ‘버들이는 정말 욕심쟁이였을까?’ ‘다른 도깨비들이 다 떠난 샘물에 혼자 남아 자신을 기다리는 몽당깨비를 본 버들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야기에 없었던 가능성이 채워지면서 버들이의 관점과 감정이 재구성된다. 아이들은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교사는 지난해 4월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스토킹 범죄의 처벌이 10만원 이하 벌금에 그쳤다는 점, 법 제정 이후 달라진 인식을 덧붙인다.

‘정치적 중립에 위배된다’ ‘그릇된 인식을 심는다’…성평등·페미니즘 교육에 따라붙는 대표적인 반발과 오해들이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정부 목표가 되고 성 대결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며 젠더갈등이 유행어처럼 쓰이는 상황. 교육 현장의 성평등 교육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교사는 ‘그 수업’을 이어간다. 단, 수업 방식은 보다 전략적이고 정교해졌다. 성평등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성평등 미디어 수업이다. 지난달 23일 이 교사를 만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이 교사와의 일문일답.

-‘성평등을 말하지 않는’ 성평등 미디어 수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평등 수업을 하자고 하면 아이들은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해서 몰입하지 않아요. 아이들 사이에선 성차별을 인정할 만큼 문제가 크지도 않고 이전부터 인권 교육을 받아서 어느 정도는 들어본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처음엔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네가 유튜브에서 배워온 혐오를 선생님이 깨주마’ 이런 욕심이 있었죠. 그런데 얻는 것도, 남는 것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어요. 외부 강의에서 성평등 수업을 하면 남자 아이들만 질문하고 대답해요. 여자 아이들은 고요해요. ‘메갈’ ‘페미’라 낙인 찍힐까봐 대답할 엄두를 못 내요. 편견이나 오해 없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수업을 ‘빌드업’ 해가면 나중엔 아이들이 이해를 하더라구요.”

-‘빌드업’은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예를 들면 경제 수업을 더 깊게 하는 식이에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특정 상품을 검색하면 가격도 비싸고 상품평도 적은데 맨 위에 뜨는 것들이 있잖아요. 왜 이 상품이 가장 위에 있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이 웅성웅성 얘기를 해요. 우리에게 노출되는 정보에 기업의 이윤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다음으론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이 익숙한 웹툰을 다뤄요.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만 생각한다면 어떤 주제를 다루는 게 유리할까? 사람들이 싸울만한 주제일수록 댓글이 많이 달린다는 건 아이들도 알아요. 요즘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많이 싸우는 주제가 뭐냐고 물으면 ‘남혐, 여혐’이라 얘기해요. 알고리즘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도 마찬가지에요. 오늘 본 영상이 내일의 영상을 결정하고, 지속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가 노출되면서 재생산 되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거예요.”

-‘여성혐오’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콘텐츠가 여성혐오적인지 아이들은 알아요. 다만 그게 잘못 됐다고 생각해도 그냥 넘어가거나, 또는 그냥 재밌다고 생각하는거죠. 재밌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여성혐오 콘텐츠와의 거리가 가까운 거예요. 아이들은 좋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유튜브나 웹툰 같은 플랫폼이 전략적으로 여성혐오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면 얘기가 달라져요. ‘나한테 좋은 제품이라 추천한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어?’라고 생각하면 거리두기가 되잖아요. 그때부터는 교사가 파고들 틈이 생기는거죠. 여성혐오를 미끼로 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아이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미디어를 판단할 수 있게 되겠죠. 여성혐오 미디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이 교사는 쇼핑몰, 웹툰, 유튜브를 거쳐온 아이들에게 인터넷·신문 기사의 제목을 내놓는다. 기사 제목에도 언론사의 의도가 담긴다는 것,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선정적 보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인터넷 기사를 많이 보나요? 언론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아이들도 ‘기레기’라는 말을 알아요. ‘얘들아. 너희도 잼민이(어린이를 비하적으로 일컫는 혐오 표현)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쁘잖아. 기자들도 비하적 표현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텐데 왜 이상한 제목의 기사를 쓰는걸까?’라고 물으면 대번 “돈이 되니까요”라고 얘기해요. 누구도 좋다고 평가하지 않는 제목의 기사들이 왜 계속 생산되는가, 클릭만 되면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에 문제는 있지 않은가까지 고민을 이어가게 돼요. 쇼핑몰과 웹툰, 유튜브를 관통해온 자극적·선정적 제목과 썸네일(대표 이미지·미리보기 영상)의 문제가 언론에서도 같은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이 교사는 우크라이나 여성 유도 선수 다리아 빌로디드의 소식을 다룬 여러 기사 제목에서 빌로디드를 지우고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기사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어떤 내용을 다룬 기사일지 묻는다. ‘눈물의 한판승, 동메달 획득한 역대 최연소 챔피언’ ‘외모 되지, 실력 좋지…반짝반짝 얼짱들’ ‘모델인 줄 아셨죠? 제 정체를 공개합니다’ 등의 제목을 본 아이들은 ‘17살, 피겨 선수, 아이돌, 인플루언서, 모델, 운동선수’ 등 각자 생각한 답을 늘어놓는다. 왜 유도 챔피언에게 얼짱, 모델, 미모를 붙일까. 이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답도 하나로 모인다. “조회 수를 높이려고”다.

이 교사의 성평등 수업은 ‘올바른 건 아니지만 솔직히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식의 혐오의 씨앗이 공감을 얻어 싹을 틔울 수 없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가 학생들에게 “너희는 다 다른 사람이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야”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이들은 반 친구들의 평균 발 사이즈(235mm) 실내화를 신고 머리 위에 공깃돌을 얹은 채 걸으면서 ‘평균의 함정’을 배우고,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정체성을 숨기는 사람들’의 입장을 간접 체험해본다. 8년의 교직 생활로 얻은 노하우다. 그가 만든 ‘성평등 미디어 리터러시’ 강의 교안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젠더온’에도 게시돼있다.

-성평등 수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5년에 교사가 됐어요. 6학년 담임을 맡게 됐고, 한창 철구(여성 비하, 5·18 폭동 발언 등 혐오 콘텐츠로 유명해진 인터넷 BJ)가 유행하던 때였어요. ‘선생님 섹스 해봤어요?’를 묻는 애도, 수업 중에 제 뒤에 100원을 던지고 ‘반응이 궁금해서 그랬다’는 애도 있었어요. 그땐 제가 무능해서 애들이 저를 만만하게 본다고 생각했고 카리스마 있는 교사가 돼야겠다고 했죠. 빨간 립스틱 바르고 진한 향수 뿌리고(웃음). 나아지는 건 없었어요. 결국 그 남학생이 저를 밀어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어요. 고통스런 1년을 보내던 차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어요. 사건이 있기 직전 주말, 사건현장 근처에서 친구들과 만났거든요. ‘내가 약속을 하루이틀만 늦게 잡았다면?’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때도 저는 그 사건을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만 느꼈지 성차별로 생각지 못했어요. 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 ‘여성의 안전을 위해 학교에서도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몰랐는데, 나중에 ‘꼴페미가 이상한 수업 만든다’ 이런 댓글들이 달리면서 논란이 됐어요. 그래서 알게된 게 초등성평등연구회였고 활동한 게 6년쯤 됐네요. 2018년부터 제대로 된 수업안을 개발해 성평등 미디어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변화를 체감하나요.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대중가요의 여성혐오를 다뤄보겠다며 감히 방탄소년단(BTS)을 건드렸다가 역효과가 거의 교사 탄핵 수준으로 일었고요, 장학사 참관 수업에서 육아휴직 통계를 꺼냈다가 수업 내내 ‘육아휴직이 뭐냐’ 설명하다 종이 친 일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나아요.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많이 받아서 일상의 차별도 잘 발견해요. 아이들이 말과 행동으로 차별 또는 혐오를 하는 건 못 봤어요. 그들에게 말을 거는 어른들, 온라인 플랫폼이나 미디어가 훨씬 문제가 많죠. 언론에 문제적 아동·청소년들 얘기를 다루면서 교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아요. 공감 가는 부분도 있지만, 어른들이 만든 콘텐츠가 아이들을 그리 만들었다 생각해요. 제가 이 인터뷰를 하면 ‘아이들은 무지한데 구원자 같은 교사가 짠 나타나서 성차별이 없어졌다’ 이렇게 보일까봐 걱정돼요.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잘못된 아이들이었는데 교육을 받아서 착해졌다’ 이런 게 절대 아닙니다. 다만 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아이들이 알게되는 점은 작은 변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인 변화를 소개해주세요.

“저희 반 아이가 지난해 학교 방침에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었어요. 방역상의 이유로 교사가 출근하는 오전 8시30분 이전에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정문 앞에 있게끔 했어요. 정문 앞에 있던 아이가 너무 추워서 못 참겠다며 들어와버렸어요. ‘밖은 춥고, 모여있는 건 교실과 똑같은 데다 정문 앞은 차도여서 더 위험하다’는 논리를 갖고서요. 그 뒤로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8시까지 출근하는 걸로 바뀌었어요. 물론 교사가 좀 피곤해지긴 해요. 제가 2주 정도 병가를 썼는데 대체교사로 오신 분이 화가 많이 났었어요. 아이들이 ‘차렷, 경례’부터 왜 그렇게 해야하냐고 따졌거든요. 나중에 제가 돌아오고 나서 ‘너희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 다만 전달하는 방식이나 전략도 함께 고민해야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수업을 통해 달리 바라는 건 없구요. 본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좀 더 빨리 알 수 있는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초등학생 대상 ‘성평등’ 수업을 진행하는 이신애 교사(31)가 교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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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대상 ‘성평등’ 수업을 진행하는 이신애 교사(31)가 교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이 교사는 ‘성평등은 바람직하다’고 강변하는 대신 ‘왜 그럴까?’를 묻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자극적·선정적 이슈나 성 대결 구도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미디어의 문제점이 자연스레 녹아든다. 아이들은 기사 속 혐오 표현에 맞설 논리를 스스로 갖추게 된다. “아이들은 더 나은 상태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커요. 미디어 수업 이후 본인들이 냉철한 시각을 가지게 됐다고 기뻐하거든요. 교사가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하면 편견 없이 다가설 수 있어요.” 혐오에 맞서는 이 교사의 수업은 오늘도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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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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