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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1.04 [공개소설]학원강사 송혁언씨 잘배운갑질 써먹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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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은 못참겠다.
빨리 일어나서 가라, 인간적으로."

거실바닥에 자고 있는 송혁언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이는 송혁언의 전 부인이다. 이혼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송씨는 전부인 집을 친정인양  찾아 온다.
송씨는 이혼한 부인이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릴까 봐 계속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매달 약간의 생활비를 갖다주며 전 부인이 엄한 놈을 만나고 다니지 않도록 하려고, 이혼을 하고 나서야 남편 노릇을 그나마 하는 중이다.

송씨의 전부인은 송씨가 내미는 돈이 이상하지 않았다. 이혼 위자료도 한 푼 받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전 남편 송씨의 돈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집에 들어와 자기 집 인양 차지하고 있는 송혁언을 보면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송씨의 전부인은 자신의 잔소리에 아랑 곳 않고 자는
송씨를 쏘아보고 출근을 해버린다. 현관문이 쾅 닫히고 현관잠금장치가 삐리리 소리가 나자 송혁언은 그제야 슬며시 일어난다.
냉장고를 열고 속을 두리번거리다 아래칸의 큰 김치통을 보고 뚜껑을 열어 김치부터 꺼낸다. 밥솥을 열어보았지만 안은 텅 비어 있다.

'젠장, 밥도 안했구만.'

부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라면 한 봉지를 찾아낸다.
라면을 끓여 냄비채로 가져와서는 아까 꺼내 둔 김치와 함께 먹기 시작한다. 송씨의 전부인의 친언니가 담아 보내주는 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이 끝내준다.


송혁언은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었다. 이민 간 미국은 상처의 깊이만 다를 뿐 매일 상처를 주는 곳이었고 온 몸으로 그 상처들을 견뎌 내야 했다. 어린 동생들은 미국 친구들을 사귀고 말도 빨리 배웠지만 송혁언은 수줍은 성격에 경계심까지 생겨 저절로 입이 무거운 성격이 되었다.

이민을 떠나면서 부모가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도망친 것을 알게 되었고, 쉽게 생긴 돈이라서 였을까 송씨의 부모는 그 돈을 빨리도 모두 날려버렸다.

송씨는 조용히 그리고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인타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한국에서 유치원이나 초등상대  영어강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조금이나마 모은 돈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씨의 부모는 송씨가 고향 한국에 자리를 잡으면 따라가 살겠다고 맏아들에게 미련을 보였지만 사실, 송씨의 동생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동생들이 송씨보다 먼저 미국에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더 컸다.


송씨는 운좋게도 한국에 와서 서울 마포의 한 영어학원에 강사로 채용이 되었다. 송씨가 미국에서 온 교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혀를 굴리자 별다른 확인 없이  채용이 된 것이었다.
송씨는 학원에서 젊은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송씨의 전부인이 바로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송씨를 미국시민권자로 알아 혹시나 미국으로 가서 살수 있을거라 기대했던 송씨의 부인은 송씨가 조건부 영주권자였던 것을 뒤늦게 알았고 그때부터 다툼이 시작되었다.

3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왔던 송혁언은 40이 조금 넘어 직접 학원을 차려 사업을 시작했고 운좋게도 학원은 운영이 잘 되었다. 송씨는 열 명의 강사를 채용해 원장님 소리를 들었는데, 통장에 돈이 쌓여가자 나스닥 주식에 큰 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하고 말았다.
부인과는 외도문제로 이혼을 했고 학원을 말아먹은 덕에 부인과 나누거나 위자료라도 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전 부인의 허황된 기대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뭐라도 하려로 시도해보았으나 미국에서 자리잡은 동생들은 빈혼인 형의 리턴을 반기지 않았다. 부모님이 힘들게 지내고 동생들이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할 때, 혼자 한국으로 도망간 형을 결단코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송씨는 쌀쌀 맞게도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미국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가 다시 상처를 입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혁언은 50이 다 된 나이에 학원강사로 일하려고 알바천국 앱을 깔았다. 연락이 온 곳이라고는 여학생들이 있는 성인대상 회화학원은 일절 없었고 그나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강사 자리 밖에 없었다. 운좋게 면접을 보러간 서울 외곽의 한 초등 영어학원 주변에는 잠시 둘러보아도 영어학원이 여러개 더 보였다.  이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은 자신이 아는 영어강사를 면접관으로 불렀고 둘은 송혁언의 이력서를 훑어 보았다. 그러고 질문을 흘렸다.

"송 선생님, 미국시민권자에요?"

-- "네"

"혹시 비자 확인 할수 있을까요?"

--"네? 그건 당장은 어렵고요.."

"시민권자는 맞으세요? 그런데 최종학력이 무슨 스쿨인데 고졸이신가요? 컬리지 나오신건가요?"

--"한국과 제도가 조금 달라서 설명하기는 힘든데 고졸과 대졸 중간쯤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 소리야, 참. 아닙니다. 그럼 수업시연 지금 해보시죠."

--"네? 지금 바로요?"

"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송혁언은  칠판 앞에 서서 어정쩡 수업을 시작했다. 학원이 망하고 폐인처럼 지내다 과외를 시작했는데 시험대비를 해주기에는 실력이 한참 떨어졌고, 회화반은 원어민들에 밀려 자리가 없었다.

간신히 찾은 초등영어학원에서 자신을 구경보고 있는
원장과 원장 친구 앞에서 뭐라도 해야하는 송씨는 칠판을 긁적였다.

"송혁언 선생님,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문법이 많이 모자라신 것 같고 교포라고 하시지만 국내 대졸자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간판은 그럴듯하게 꾸미면 되니까 일단 기초 파닉스반에 맞으실 것 같고 주로 7세에서 8세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부드럽게 대해야 하는데 잘하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파닉스반도 가능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고 혹시 직접 학원을 차리셨던 적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네, 누가 어디서 봤다고 해서요. 으흠. 아무튼 다음주부터 출근해주시고 첫 수업 하시는 것 보고 수업 횟수
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페이는 일단 시간당 만원으로 가고 봐가면서 올려드릴게요. 괜찮으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송씨는 겨우 연락 온 학원의 조건을 생각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1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받는 대가는 150만원 정도였다. 그 외에 아무런 제공은 없었다. 송씨는 50이 다 된  할아저씨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것 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  전 부인에게 생활비를 갖다주고 관계를 이어가려면 단돈 1백만원 아니 1십만원이라도 필요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송씨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고 영어든 뭐든 가르치는 일 역시 송씨에게 맞는 일은 아니었다. 여학생들과 시시덕거리며
영어로 대화하는 그런 것이나 재미있었지 학문적으로 누굴 가르칠 능력도 마음 가짐도 없었으나, 송씨가 한국에서 할 일은 그것 뿐이었다. 송씨는  미국 영주권 박탈 위기에 처해있었고 그렇다고 완전한 한국인이 되는 것도 싫었다.  조만간 이중국적을 정리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려면 미국인이어야 하고 한국에 더 머물려면 한국인이어야 하는 박쥐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하던  학원이 다른 업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원장은 권리금을 받고 판 뒤, 한 일년 여행을 다니다가 다른 곳에 다시 학원을 차린다고 했다.
송씨는 이 기회를 잘 잡아보고 싶었다. 학원을 인수하려는 사람이 수학 학원으로 운영하려는 것을 알고 영어학원까지 합쳐서 종합학원으로 운영하자고
설득을 시작했다.


" 사장님, 아니 원장님, 두 과목 모두 하시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아이들이 보통 학원 두 개 씩 다니는데 그게 영 수입니다. 제가 사교육계에서 일한지도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초등 영어 쪽은 제가 눈감고도 다 압니다. 저만 믿어주시면 제가 확실히 살려보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도 오래 살았고 학원 경력이 이만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저는 월 300만원 정도 받으면 되고 학원이 더 커지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네, 사장님? 아니 사모님? 그런데 사모님 참 엘레강스 하십니다. 허허"


송씨는 평생 살며 지금까지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절절하게 말을 널어놓았다. 송씨의 말에 넘어가 준 학원 인수자는 학원을 반 나누어 송씨와 나누어 경영을 하기 시작했고 50대에 갑자기 부원장 직함을 달게 된 송혁언은 아주 오랜만에  의욕이 넘쳤다. 그 덕분인지 송씨 말대로 수강생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송혁언은 자신이 사장에게 벌어다주는 매출이 1억에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지분을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송씨는 자신은 주3일 총 12시간만 수업을 하고  강사를 두 명 더 뽑아 다른 시간을 채우자고 주장했고학원 원장은 송씨의 말을 따랐다. 알바천국에 강사신규채용 공고를 내자마자 이력서가 쇄도했다.


"송 부원장, 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이에요. 이력서
확인해보세요"

--"음... 일단 교실로 가시죠."

송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듯한 강사 지원자를 교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 자 그럼 수업 시연 해보세요"

이름도 묻지 않고 송씨의 해보라는 말에 어색하게 수업을 시작하던 강사 지원자를 보다가 갑자기 송씨는 수업을 멈추게 했다.

" 자, 잠깐만요. 선생님,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티칭스킬이 많이 모자라신 것 같고 교육학 전공이 라고 하시지만 고졸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십니다. 그래도 간판은 그럴 듯하게 꾸미면 되니까 일단 기초파닉스반에 맞으실 것 같고 주로 7세에서 8세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카리스마 있게 대해야 하는데  잘하실 수 있으실까요?"

--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제가 영어 교육 20년 경력에 국내 파닉스 전문가입니다. 저한테 도제식으로 배우셔야 합니다. 제 수업 모두 들으시고 숙지하시고 그대로 시연할 수 있을 때 그때부터 정식 페이 지급되고요 계약 들어갑니다. 아시겠어요?"

--"수습기간이 얼마나 되는지요?"

"선생님 하기에 달렸어요. 똑똑하시면 빨리 하실거고,
느리시면 늦을거고. 그런데 혼자 사시나 보네요.  혹시 애인은 있고? 없으시다고요. 생각 있으시면 오늘부터
배워 보실래요? 제 수행비서처럼 따라 다니시면 됩니다. 일단 겉옷 벗어서 저기 두시고  여기로 앉아보세요. 식사는 하셨나?  뭐 좋아해?"


송씨는 신규 강사로 들어온 여성에게 과거 자신이 숱하게 들어온 인터뷰 갑질을 몽땅 재현했고, 그런데도
별 거부 반응이 없는 여성을 보고 점점 간이 커지고 있었다.


송씨는 큰 두갈래 길에 서 있다. 전 부인을 달래가며
하던 학원강사 일을 할 데까지 하는 것과 지금 앞에서 잡혀온 초식동물 마냥 가만히 있는 이 여성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며  앞 일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송씨의 담배로 쩌든 시커먼 얼굴에 박힌 누런 두 눈알이 데굴거리며 앞에 서 있는 이의 아래 위를 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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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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