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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5일 또 한번의 광복절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 대한 기사 밑으로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약 1만 개의 댓글이 달렸고, 좋아요 수는 10만 건이 훌쩍 넘어보인다. 휴가철도 얼추 지났고 여전한 폭염에 쉬고 있는 시민들은 기사 검색 중인가보다.

 현직 대통령이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민주적인 나라이다. 국가기관의 불법개인사찰이 있다고는 하지만 털어봐야 털릴 것이 없는 사람들인지, 불의를 못 참는 것인지 국가원수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글이 매일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에 대해서는 별로 짚어보고 싶지도 않다. 그냥 여전하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하야까지 요구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대통령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한 가족에 대햔 비극적 기사가 있었다. 한 가족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동거 가족들이 한 달이 지나서 알았다는 내용이다. 그 가족은 최소한의 형태만 유지한 채 이미 해체되었었을 것이다. 그 가족의 진실은 모르지만 추정해 보건데,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비소통적 모습에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로부터 점점 멀어졌을 것이고 관심이 없어졌을 것 같다. 그래서 사망 후 한달 동안 생사여부를 확인 못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일방적 의사소통만 했을 가부장적 아버지로부터 가족은 살아남고자 아버지를 거부했고, 아버지는 스스로 자초한 고립 속에 빠져 가족의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내다 결국 죽음으로써 남은 가족이 반인륜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만든 셈이 되었다.

 

 자신을 선출해 준 시민의 의견을 두루 듣지 않고, 일방적 소통을 하는 대통령에 대해 우리는 그래도 멀어지지 않는 듯하다. 대통령도 단지 부족한 인간일 뿐인데 그가 여전히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이 완벽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완벽한 시스템인가?

 베르너 지퍼는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 이라는 책에서     

"공감이라는 감정보다는 공정함에 대한 욕구가 한결같고 안정적이다. 공정함에 대한 욕구는 세계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욕구로 심지어 일부 발달한 동물들에게도 확인이 되는 특징이다. 우리가 늘 공존을 위해 강조하며 정치권에서 매일같이 들을 수 있는 신뢰라는 개념 역시 공정함의 한 결과물이다...공감도 신뢰와 마찬가지이다. 공정함이 전제되어야만 공감이 가능해지고 공평하고 공정한 상호작용 속에서만 공감이 발생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우리는 최고 통치권자에게 공감 이상의 공평함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권력이 집중된 자리인 대통령에 대한 희망적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에 태어나 살기 때문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이 되는 서로의 입장 차를 토론으로 이야기 나눠보면서 갈등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갈등은 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 높은 문화는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님을 우리모두가 다 알고 있다. 사적 토론의 결과는 늘 '건방지게! 너 나이 몇살이야' 로 산불 번지듯 번지고, 사회적 통념을 인정할 수 없는 측 역시 감정적 대립으로 맞선다. 서로 함께 공유할 가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현재 우리 사회, 즉 말이 안 통하는 사회에서는 법만이 최후의 보루이다. 그 법의 공정성을 시민들은 절실히 바라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를 제외하고, 사회가 세대별 계층별로 양극화 되었다는 점을 가만히 따지고 보면 금새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도 보인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혈연과 지연과 학연에 얽힌, 서로 아주 가까운 사회이다. 원론적 사상적 갈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일부 학자나 정치인들의 문제일 뿐, 먹고사는 문제가 중한 대다수 시민들에겐 단지 그것은 개인적으로 내재된 불만을 담은 갈등을 촉발시키는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드배치를 반대한 칠곡주민들 처럼 농사짓고 있는 내 땅만 아니라면 사드를 배치하건 말건, 한반도 안보나 신냉전 시대의 등장은 하등 중하지 않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내 친척과 친구를 각자가 의무적으로 조금만 보살피고 애정을 쏟는다면, 서로 간의 정이 중한 우리 시민들의 대립은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매번 할 수도 있고 한 번에 크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역시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시스템에서 우리도 특정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다음 정권을 선택할 우리의 기회도 다가오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7409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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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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