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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아침, 동네 사람들의 출근과 등교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세상 조용한 시간이 온다.
가스렌지로 물을 끓이는 동안, 이가 나간 커피 드리퍼에 거름종이를 끼우고 기다린다.
각성의 시간.
지금 이 평온한 순간에 대한 고마움의 각성이기도 하고, 오후가 되기 전 분주히 움직여야 된다는 각성이기도 하다. 지금 카톡을 본다면 한 시간은 금새 없어지기 때문에 알림을 지워버리고 화면을 꺼버렸다.
빈 컵을 내려놓고 책을 주섬주섬 챙겨 나간다. 입구에서 만난 아파트 경비실 직원분께 인사를 하고 걷는다.

내가 걸어서 도착한 곳은 동네 도서관이다. 말끔하게 잘 지어놓은 시립도서관이다. 2층으로 걸어올라가 먼저 확인할 것은 신착도서 서가이다. 오늘은 텅 비어 있다. 그렇다면 일단 신착도서 서가 바로 뒤편 서가부터 훑어본다.

공공도서관의 장점은 아주 많다.
내가 세금을 한푼도 안내고 산다면 이런 좋은 시설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 많이 미안했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지만, 그래서 거기엔 여러 사람의 손을 타 곁을 주기 싫은 책들이 많다.
저자가 TV에 나온 사람이거나 조금이라도 유명하면 그 책은 꺼내보나 마나다. 법륜스님, 이철희 씨, 진중권 씨나 연예인 작가들 이 쓴 책들은 표지에 훼손주의 스티커가 붙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해리포터 같은 인기 시리즈 소설책 또한 손 때와 이물에 부풀대로 부푼 채 지친 모습으로, 거기다가 환자복 같은 비닐 옷까지 껴입고 있다. 인기스타이지만 전성기를 다 보내고 내면까지 탈탈 털린 듯한 모습으로 서가에서 요양중이시다.
책 아래 부분이 무언가에 젖었다가 마른 듯이 우글거리는 책, 책장 끄트머리를 접어두거나 본문에 줄을 그어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덜룩한 자국들이 수십장 이어지기도 하는 책, 그 중에 제일 싫은 것은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쏟아지는 담배 냄새나 누군가의 체취이다. 환기가 안 되는 좁은 곳에서 열독을 했거나 책이 너무 좋아 몸에 문지른 모양이다.

나는 문학 분류와는 별로 친하지 않다. 주로 사회과학 쪽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 책 제목과 함께 책 윗면을 본다.부풀지도 않았고 깨끗한 상태가 유지되어 있는 책이라면 일단 집어본다. 보물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주제가 비슷하면 어느 저자의 책을 고르던 기본 내용은 다 비슷하다.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은 그 주장까지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굳이 더러운 인기 도서를 고를 필요없이 깨끗한 숨은 진주를 고르는 것이 낫다.

도서관에서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이 아니어서 제목을 쓱 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국내 정치관련 에세이는 한 십년 동안 같은 내용의 반복 같다. 무언가 바꾸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물론 바뀌는 것은 없기에 또 계속해서 글을 쓴다.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 간혹 책은 쓸 수도 있지만 남의 책은 보지 않는다. 돈을 벌게 해 준다거나 승진 시켜 준다는 책은 계속 쏟아진다. 그 동안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새로운 비법을 알려준다며 자극적인 제목으로 내 눈길을 붙잡으려 하지만, 그 대단한 비법을 아는 작가는 본인부터 성공을 이루었을까? 아직도 뉴스 짜집기식 자기 개발서나 쓰고 있는데...
유명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책은 내용이 솔직한 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거의 미화된 것이다.
세상에 불특정 다수를 항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살짝 반성하다가 결국 제 자랑이다.
간혹 당황스럽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작가들이 있다.  한 작가는 인도에서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면서,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에게 각자의 카스트 계급을 공개적으로 물었었다는 과거를 말하고는 그것이 무덤으로 가져갈 죄라고 했다. 회개이자 반성이었지만, 작가의 무식한 행동에 내가 아주 당황스러웠다. 다신 그 저자의 책은 안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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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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