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pened the file and looked at the crammed letters.
'Those are too heavy...'
But I have to send anything today. I just have time now. And I just wanted to finish copy quickly.
Person who is in the association asked me that they want my story for their autumn magazine 2 weeks ago.
I already have 2 pages enough to send, but I wasn't sure if the two pages would be okay.
As I tried to expend the simple story, the sentences become verbose.
After roughly making the pages, I put a plausible file name.
Since it was a request without fee anyway, I decided that there was no need to struggle anymore.
Quick after I sent an e-mail, new request came to reduce the amount.
'Are you kidding me?'
I numbered the paragraphs and sent them a reply to pull out the paragraph whichever you wanted.
Then, I leaned my neck against the chair.
I still have been dopey.
I thought I knew why I was so dazed.
The guest I met yesterday was definitely different.
He was polite and nice, just like any other guest.
But he was different.
It wasn't because he was a transgender.
I felt him as his gender from start to finish.
And whatever surgery he did was not the reason.
I kept looking for a reason in my head.
'Why my heart flutters?'
I was already aware.
His smile, tattoos, clothes and shoes, hair and piercings.
Every single one of them was left as an afterimage in my head.
White T-shirt and black pants, black sling back on his shoulder, Tuck it behind from the front of braid and tied behind back, long hair. piercings on nose and ears, arm tattoos, small but neat appearance, humble and warm attitude from beginning to end....
All I know is that he is a 24-year-old college student and Mexican-American.
He said he doesn't have a girlfriend, but I can't believe it. Luckily, I know his Instagram, so I can look into it.
He told me I wasn't old yet, and I didn't look old. But the facts are true, and flattery is flattery....
After a long time, I opened the box, took out the stone and took out the paints.
I started dotting the Blue Evil Eye for him.
'I knew it already. I knew it at first sight. So what can I do?... Nothing.'
I am supposed that I'll be angry when I see him tomorrow. Because I know I can't do anything. If he reads my feelings, he'll be fed up with me....
I really have naver ever even imagine.
I never thought I'd feel it again.
If I were his age, I had go straight to him, then no matter what.
학대 받고 죽는 아이들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과 학대를 받아 다치는 아이들이 자라는 각각의 환경... 이 둘 사이에 멀고 먼 간격이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라데이션 분포도처럼 사랑을 주고 학대를 자행하는 이어지는 많은 부모, 어른들이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 아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느끼기에는 여성이 늙어가면 사회계층적으로 후순위가 된다. 자세히 말하자면, 세상 모든 나이 계층이 만만하게 여기는 취급을 받게 된다. 늙은 남성이 가지는 폭력성이나 반사회성에서 초래되는 거부감과는 다른, 그저 만만하고 약하고 예쁘지않다고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늙은 여성은 시모, 고참의 지위를 이용해 더 약해보이는 같은 여성에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소비력이 충분한 여성은 별도대우이다. 돈을 버는 직업을 가져온 지인들이 가지는 우월감의 근거는 결국 소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소비자랑을 하는 지인들의 자녀고민을 잘 알기에 부러울 일이 없다. 그냥 다행이다. 자녀로부터 느끼는 아쉬움을 돈으로라도 해결하고 있으니 말이다.
육아 대신 일하며 자신의 경력을 잘 쌓왔다고 자신에 찬 지인들이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거의 느껴지지도 않아 그들의 자신감이 내 자신감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나역시 평범하고 흔한 사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벌며 스트레스와 억압을 느낌을 잘안다. 남성중심사화에서 혹은 남성화된 여성집단에서 오랜 차별을 겪어오며 무뎌졌다 생각하지만 자존감이 무너지는 기분은 결코 무뎌지지 않음을 잘 안다.
고생한다 격려해주고 싶지만 육아에 전념하는 깉은 여성을 시간만 나면 비하하는 것을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잘 알아서 그냥 넘어가려고.
나는 아이들에게 자존심을 쉽게 굽힌다. 어린 아이에게 훈육이랍시고 자존심 고집을 피운 적도 많았다. (부모다운 부모가 되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를 한 다섯쯤 낳았을 때야 가능할런지...) 이제는 그렇지않다.
나는 아이보다 힘과 결정권을 가진 보호자로 일종의 기득권이다. 기득권자로서 약자인 아이에게 좀더 조심하고 배려하고 양보해야한다고 생각한 후로, 아이와 마찰은 줄었다.
하지만 나의 온종일은 아이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지나간다. 마치 좋아하는 스타를 따라다니듯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싶고 설레고 기쁘다. 아이를 관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장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내가 아는 한에서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아이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쉽고, 아이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을 가졌던 부모는 이미 아이가 스스로 여러번 탈피해 변하고 변했음을 이제서야 느끼고 채 다시 파악을 할 새도 없이
무시무시한 입시를 맞딱드리게 된다. 그렇게되면 대부분 실망과 분노로 사이만 멀어지게 될 뿐이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출근하느라 피곤해서, 이유는 많다. 결국은 모두 부모의 선택이었다. 낳기만 하면 큰다는 이상한 소리를 아직도 하더라. 낳기만 하고 밥만 먹여 키우면 제대로 된 사람으로 자라기 힘들다. 아이의 결핍은 다음 대로 그다음 대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육아는 그 무게와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어쩌다, 일년에 한두번, 아이가 급하게 나를 찾을 때가 있었다. 당장 달려가지 못했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었고, 아이 스스로 견뎌냈다. 하지만 나는 견뎌내지 못했다.
내 아이가 잠시라도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을 때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을때 내가 옆에 있어주지 않았던 것이 너무 힘들었다. 괜찮다고, 다 그렇게 큰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이가 반복되게 느끼는 불안은 나비효과처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퇴근후 파김치가 된 몸으로 아이와 성의있는 교감을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 수퍼우먼? 웃기네... 다 잘 할 수는 없다. 세상 일이 그렇더라.
나에게 아이라는 의미는, 아이는 나의 책임이다. 내가 아니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존재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싹다~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부모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오며 내가 포기한 것들도 아주 많다. 1.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소비, 2. 내가 주인공이 되는 여행, 3. 직업을 가지고 꾸준히 경력쌓기, 4. 가격표 보지않고 물건사기, 5. 당장 오늘만 생각하고 긴 생각 없이 살기, 6. 좋아하는 반찬 먼저 집어먹기, 7. 어질러놓고 그냥 자기, 8. 남편의 이혼요구에 바로 갈라 서버리기.
적어놓고 보니 과시적 소비나 충동적 소비가 많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해도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들이다. 그렇다면 참 다행이다. 저렇게 어설픈 인격으로 계속 살아올 뻔한 내가 아이로 인해 노는 수준이 달라졌다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2017년도 수능이 80여일 남았다. 8살의 초등생이 입학하여 12년의 세월을 이 수능을 보기 위해 달려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나고 보면 대입이라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어지러운 터닝을 어떻게 해내느냐는 결국 수능이 측정하지 못한 나의 잠재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내신 상위 4%에 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작은 수행평가 하나도 놓쳐서는 안되며, 고등학교 3년간 12번의 시험을 완벽히 치루어야 한다. 좀 더 놀고 싶은 것을 참고, 좀 더 자고 싶은 것도 참으며 완벽한 이해와 암기를 위해 보고 또 보고 외우고 또 외운다. 이것은 대단한 성실성이자 지구력이고, 끈기이다. 고가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성적이 우수하다는 비판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는 하지만,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학원에서 알려준 답안을 외우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공부하도록 판을 깔아준 부모의 투자 규모는 다를지라도 머리 속에 정답을 인위적으로 업데이트 시킬 수는 없기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며 암기하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이다. 그래서 수능 성적을 대입에 반영하는 정시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수시의 불공정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에서는 성적우수자 - 명문대 출신 엘리트의 성공에 박수를 치며 인정해준다. 엄청난 경쟁율의 공시도 불합격자들의 시험에 대한 불만은 없다. 게다가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 비교적 어려운 환경이었다면 더욱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성공을 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인정이다. 그러나 사회는 지난 날의 성실성에 더해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 이제까지의 성적은 인과관계가 뚜렷한 자료이지만, 이후 필요한 조직에 충성과 복종하는 능력은 객관화 하기 어렵다. 많은 조직이 평가자의 주관적 평가를 믿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객관적 학습 성적이 평가의 기준이 아니라면, 이제 불공정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대물림 된 부, 행운,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의 틈새에서 승자가 되기엔 억울함이 너무 많다.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사회라면 좋은 성적을 가진 이들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시험 평가기준이 창의적 사고를 막는 암기력 측정이라고 해도, 사회적 발전의 득실에 관계없이 일단 공정은 하다면 사람들은 수긍한다. 우리들은 그만큼 불공정한 게임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논쟁도 이유있다는 것이다. 성적순은 일단 공평하다.
그러나 12년의 수능준비 기간에 대한 결과가 남은 88년의 인생을 좌우하는 단 한번의 기회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또 다른 1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온 이들에 대해 기회를 주어야 하고, 언제든 노력의 결과를 보이는 이들을 성공의 대열에 끼워 주어야 한다. 동시에 게으른 무임승차자를 골라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그래야 공평하니까.
평일 아침, 동네 사람들의 출근과 등교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세상 조용한 시간이 온다. 가스렌지로 물을 끓이는 동안, 이가 나간 커피 드리퍼에 거름종이를 끼우고 기다린다. 각성의 시간. 지금 이 평온한 순간에 대한 고마움의 각성이기도 하고, 오후가 되기 전 분주히 움직여야 된다는 각성이기도 하다. 지금 카톡을 본다면 한 시간은 금새 없어지기 때문에 알림을 지워버리고 화면을 꺼버렸다. 빈 컵을 내려놓고 책을 주섬주섬 챙겨 나간다. 입구에서 만난 아파트 경비실 직원분께 인사를 하고 걷는다.
내가 걸어서 도착한 곳은 동네 도서관이다. 말끔하게 잘 지어놓은 시립도서관이다. 2층으로 걸어올라가 먼저 확인할 것은 신착도서 서가이다. 오늘은 텅 비어 있다. 그렇다면 일단 신착도서 서가 바로 뒤편 서가부터 훑어본다.
공공도서관의 장점은 아주 많다. 내가 세금을 한푼도 안내고 산다면 이런 좋은 시설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 많이 미안했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지만, 그래서 거기엔 여러 사람의 손을 타 곁을 주기 싫은 책들이 많다. 저자가 TV에 나온 사람이거나 조금이라도 유명하면 그 책은 꺼내보나 마나다. 법륜스님, 이철희 씨, 진중권 씨나 연예인 작가들 이 쓴 책들은 표지에 훼손주의 스티커가 붙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해리포터 같은 인기 시리즈 소설책 또한 손 때와 이물에 부풀대로 부푼 채 지친 모습으로, 거기다가 환자복 같은 비닐 옷까지 껴입고 있다. 인기스타이지만 전성기를 다 보내고 내면까지 탈탈 털린 듯한 모습으로 서가에서 요양중이시다. 책 아래 부분이 무언가에 젖었다가 마른 듯이 우글거리는 책, 책장 끄트머리를 접어두거나 본문에 줄을 그어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덜룩한 자국들이 수십장 이어지기도 하는 책, 그 중에 제일 싫은 것은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쏟아지는 담배 냄새나 누군가의 체취이다. 환기가 안 되는 좁은 곳에서 열독을 했거나 책이 너무 좋아 몸에 문지른 모양이다.
나는 문학 분류와는 별로 친하지 않다. 주로 사회과학 쪽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 책 제목과 함께 책 윗면을 본다.부풀지도 않았고 깨끗한 상태가 유지되어 있는 책이라면 일단 집어본다. 보물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주제가 비슷하면 어느 저자의 책을 고르던 기본 내용은 다 비슷하다.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은 그 주장까지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굳이 더러운 인기 도서를 고를 필요없이 깨끗한 숨은 진주를 고르는 것이 낫다.
도서관에서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이 아니어서 제목을 쓱 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국내 정치관련 에세이는 한 십년 동안 같은 내용의 반복 같다. 무언가 바꾸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물론 바뀌는 것은 없기에 또 계속해서 글을 쓴다.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 간혹 책은 쓸 수도 있지만 남의 책은 보지 않는다. 돈을 벌게 해 준다거나 승진 시켜 준다는 책은 계속 쏟아진다. 그 동안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새로운 비법을 알려준다며 자극적인 제목으로 내 눈길을 붙잡으려 하지만, 그 대단한 비법을 아는 작가는 본인부터 성공을 이루었을까? 아직도 뉴스 짜집기식 자기 개발서나 쓰고 있는데... 유명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책은 내용이 솔직한 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거의 미화된 것이다. 세상에 불특정 다수를 항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살짝 반성하다가 결국 제 자랑이다. 간혹 당황스럽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작가들이 있다. 한 작가는 인도에서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면서,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에게 각자의 카스트 계급을 공개적으로 물었었다는 과거를 말하고는 그것이 무덤으로 가져갈 죄라고 했다. 회개이자 반성이었지만, 작가의 무식한 행동에 내가 아주 당황스러웠다. 다신 그 저자의 책은 안 볼 것이다.
감정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다. 사랑은 사람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의 좋은 예이다.사랑은 퇴색되고 변하며 망각된다. 결혼 전 나름대로 배우자와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성을 압도하지만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 까지 정신을 차려볼 만한 순간은 여러 번 있다. 이 남자가 과연 꾸준한 수입을 만들 것인가, 남자의 부모로부터 재산을 받아낼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줄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해봤다면... 앞으로도 쭉 하지 말길... 배우자가 생기고 나면 배우자 있는 여자들까리 비교가 시작된다. 배우자 없는 여자와는 한여름 냉장고에 반찬거리 없듯 얘깃거리가 뚝 떨어진다. 시가의 재산현황에 대한 자랑과, 남편의 수입에 대한 자랑, 결혼과 동시에 여유있는 중산층이 되었다는 착각에, 그래서 신혼은 즐거운 것이다. 결혼 전 스스로 창출해 낸 수입을 소비하는 재미는 수입이 없어지더라도 잊기 어렵다. 더 늦기전에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가진다. 육아서적을 넘겨보기도 하지만 육아서적보다는 유아용품의 고가 브랜드 라인업에 더 관심이 간다. 단 몇 퍼센트 라도 세일가가 적용된 번듯한 육아용품을 구하기 위해 하루를 투자하고 지낸다. 9달만에 배속에서 자라다 태어나는 아이는 아쉽지만 그렇게 태어나 버렸다. 그리고 절대 경험 못 해 본 호모 사피엔스적 존재감 상실을 경험한다. 친정엄마에게 늘 도움을 구하며, 너무나 아쁘고 사랑스런 아이와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순간만을 갈구한다. 육아서적을 읽고, tv에 나온 육아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 하고싶지만 결국 친정엄마의 오래된 노하우가 답이라 여기고 따른다. 늘어진 뱃살을 정리하려고 운동도 하려 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기는 너무 어렵다. 영캐쥬얼에서 부인복 브랜드로 갈아타니 저절로 날씬해진 느낌이다. 아파트에 다니는 책장사 아줌마들과 안면을 트고, 아이를 위한 교육교재에 투자하는 똑똑한 엄마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를 위한다지만 내 sns용 해외여행도 필수이다. 어린이집을 옮기려 정보수집 중이다. 동네 소문이 중요한 것 같았다. 아이친구가 곧 엄마 친구이기 때분이다. 함께 키즈카페를 다닐 엄마모임이 필요했다. 산후조리원 친구는 합격, 나보다 더 뚱뚱하지만 2백만원짜리 다이어트를 곧 시작할 예정이란다. 남편의 수입이 꽤 되는 것 같았다. 앞동 친구도 나쁘지 않다. 시가가 잘 살아 머지않아 30평대로 이사갈 듯 하기 때문이다. 같은 층 새댁은 별로다. 지방 출신인데다가 사투리가 심하다. 같이 있다간 우리 아이도 사투리병에 옮을 것만 같다. 그 놀이터 친구는 생각 중이다. 아무래도 고졸인 것 같은데, 대놓고 물어보기는 좀 그그랬다. 게다가 곧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니 맞벌이 가정은 모임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생각나는 한 명, 대학원 졸업 예정이라는 그 이웃은 나이도 좀 많았고 아이가 부산스러워 결정이 힘들었다. 4명 정도로 추려보려고 고심 끝에 큰 아이가 있는 또다른 친구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임 친구들과 거의 매주, 며칠에 한번 꼴로 만나며 친해졌고, 아이들의 예체능 수업도 같이 하며 30대에 10대 집단문화를 형성해 다니게 되었다. 친한 무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감 마저 들었고, 매일 볼 친구를 못 만든 다른 이들의 부러운 시선에 우월감을 느꼈다. 남들이 보기엔 친한 듯 했지만 결국 이해관계를 위한 모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다보면 다른 점만 남게 되어 서로간의 거리는 최소한 일진 몰라도 더이상 좁아지지는 못하는 거리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결국 한마디 섭섭함에 내일은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구경꾼들의 뒷말에 신경쓰이는 것이 더 컸다. 어느 순간 학습이라는 것과 멀어져 버렸다.
남편 감을 만나 결혼이란 것을 했다. 어쩌다 엄마가 되었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점점 병원과 친해지며 아이가 태어났고 모성은 일생일대로 커졌다. 아이를 위한 쇼핑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나면 알찬 하루를 보낸 느낌이었다. 쇼핑 목록은 조금씩 변했다. 기저귀, 배냇옷, 장난감에서 신발을 사고 돌복을 사고, 문화센터 강좌, 스포츠 클럽 등록을 시작하고, 유행하는 장난감, 책, 선행을 위한 학습지, 입학식에서 멋지게 보일 옷과 가방, 핸드폰, 학원, 반값 여행권 등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아이에게 잔소리도 조금 해보지만 동네 친구들과 브런치 카페에 앉아 시간보내는 것이 요즘 제일 재밌다. 하나 둘 만나던 사람이 없어진다. 돈벌러, 아파서 각자의 생활로 분리되고 있다. 용기 내어 고용센터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뿐이다. 더 버티다간 청소부가 될 것 같아 판매 알바를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나 없이도 잘 지내 보였다. 집 근처 분식점과 편의점이 아이의 허기를 돌보아 주었다. 점점 늦어지는 내 귀가를 크게 아쉬워 하는 가족은 없다. 남편은 내가 버는 소소한 월급이라도 기대하는 눈치다. 가게 사장이 바뀌었다. 새롭게 오픈을 하려고 한단다. 그만두라는 소리다. 옆 가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서빙. 주말만 서빙알바로 하기로 했다. 운동이 부족한 탓인지 늙어서 그런지 힘들다.남편은 퇴직했고 아이는 취업준비중이다. 돈버는 이가 나 뿐이라 풀타임으로 근무해야 했다. 가끔 만나는 근처 가게 친구들과의 저녁식사가 유일한 낙이 되었다. 자존심은 언젠가 없어진 것 같다. 사장이나 손님의 잔소리에 반응하지만 두 걸음은 안나간다. 무슨 팡 하는 게임을 핸드폰에 깔았더니 지하철에서 두드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세상 근심은 다 잊어버린다. 두둑한 뱃살을 주무르다 빵빵한 볼살을 두드려보고 잠자리에 든다. 다 이러고 사는 거지 뭐. 산다는 게 이런거지... 대학 졸업 후 가로수 길을 환하게 만들며 걷던 나는 지금 식당 서빙을 하는 중년의 아낙이 되어있다. 자식도 키웠고 내 집도 있지만 내 인생은 식당 테이블 바닥에 놓인 삼겹살 기름에 찌든 방석 같다. 어디서부터가 잘못 채워진 걸까?
"아들, 오늘은 학교를 혼자 가야 돼. 엄마가 어제 얘기 했지?" -"근데 엄마 언제올거야? "아들이 이따가 학교 마치고 학원 갔다가 집에 오기 전에 엄마 올게. 엄마가 동생이 먼저 집에 와 있을거야. 시계보고 있다가 꼭 8시10분에 집에서 나가야 돼. 학교 가는 길에 진호를 만날거야. 진호랑 같이 가면 재밌겠다. 그지? 아들이랑 엄마랑 동생이랑 이따 오후에 다시 만나자. 사랑해" -"응"
엄마는 아들이 아직 등교하기도 전인 7시 반에 어린 딸을 업고 집을 나섰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지 이제 한 달 지난 아들을 혼자 학교로 보내야 되는 상황이 너무 불안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 달 한 식품회사에 모니터링 요원으로 응모한 것이 당첨이 되어 오늘 처음으로 모니터링 간담회에 참석하는 일 때문이었다. 어린 딸을 업은 채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가야해서 넉넉히 1시간 반 전에 집을 나섰다. 아들이 혼자 잘 할 지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평소 늘 하던대로 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긍정하며 등에 업은 딸을 추켜 올렸다. 이른 아침부터 자는 딸을 깨워 옷을 입히고 머리를 단장해 주었더니 딸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엄마 등에서 골아 떨어졌다. 엄마는 큰 가방에 딸 아이 아침거리와 갈아입을 옷, 양말, 작은 담요에다가 물병과 두유 두 개에 육포 간식까지 담아두었다. 등에 업은 아이만한 짐이 손에 들렸다.
집에서 십 분 정도 걸어가야 지하철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기는 꺼려졌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자면, 택시기사의 성격에 따라 불편하거나 혹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많아서 였다. 훨씬 불편하지만 웬만하면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버스나 지하철이 편했다. 이렇게 아이를 업고 가야할 때는 수색대 훈련하는 것 같은 체력이 소모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갓 4월 초입에 들어선 터라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했다. 등에 업은 아이를 다시 추켜 올리고 아주 느리게 올라오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출근시간에 이렇게 아이를 업고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아침 출근객들로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는 이미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잠시 딸을 바닥에 내려 세우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두리번 거리는 중 바로 지하철이 들어오는 신호가 울렸다. 순간 지하철을 못 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아이를 들어 안고 지하철 쪽으로 다가갔다. 지하철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내리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지하철에 올라 타고는 일단 지하철 문 주위 기둥에 딸아이 손을 잡아 붙였다.
"딸 이거 꽉 잡아"
지하철 역에 내려 와서 기다리는 동안 잠이 살짝 깬 딸은 엄마에게 업어달라며 두 손을 내밀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짐가방을 짐칸에 올리고는 다시 딸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무래도 노약자석으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손으로는 기둥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팔에 낀 채 딸을 안고 노약자 좌석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워낙 붐비는 지하철 칸이라 넘어질 공간도 없었다.
노약자 석이 있는 공간은 덜 붐볐다. 하지만 빈 좌석은 없었다. 빈 좌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생각이었다. 노약자 석에 앉은 노인들은 등산복을 입은 채 베낭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있거나, 답답한 색의 점퍼를 입고 뭐가 들었을지 모를 서류 봉투를 무릎에 올리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노약자 석에 앉은 노인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엄마와 낯선 곳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딸아이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엄마는 노인들이 자신을 구경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지하철 정거장을 열 개가 넘게 지나치는 동안 노인들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종로역에 닿을 무렵 몇 몇 노인들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내릴 준비를 했고, 한 할머니가
"애기엄마 여기 앉아. 애 데리고 힘든데"
하며 선심을 쓰듯 소리쳤다. 엄마는 무표정하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딸을 업고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엄마도 여기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3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종로역에서 내려 바삐 걸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하루를 다 보낸 느낌이었다. 딸은 이제 좀 잠이 깼는지 등에 업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1호선 지하철은 아직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 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1644로 시작 되는 번호라 아들이 학교에서 콜렉트콜 전화를 한 것 임을 알았다. 뭣 때문에 전화를 했는지 걱정되었지만 보통 별일 아니었기에 그냥 무사히 학교는 갔구나고 안심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도중에 큰 보행자 고가다리를 넘은 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한 개 건너야 했다. 신호등도 문제지만 정작 걱정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고가 다리는 차가 안 다니는 다리라 다행이긴 하였지만, 워낙 높은 고가다리라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하였다. 그 다리를 건너서 아랫 길로 내려가면 샛강을 따라 산책로가 쭉 나있었고 그 곳을 따라 걸어가면 학교 정문에 도달하게 되는 통학로 였다. 그 문제의 샛강에는 징검다리가 앙증맞게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풀이 심어져 심지어 물고기도 사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그냥 못 지나가게 하는 재미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엄마는 늘 아들이 한 눈을 팔다가 학교에 늦을까 걱정이 생기는 곳이기도 했다.
갈아 탄 1호선 지하철은 놀랍게도 텅 비어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출근 인파에 섞여 같이 움직인 것도 오랜만이긴 하였지만, 그렇게 붐비던 3호선과는 다르게 텅빈 1호선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은, 중력이 센 공간에 빠져 아주 긴 시간 여행을 한 것과 같은 , 엄청나게 진이 빠진 상태여서 였을 것이다. 매일 이렇게 출 퇴근하는 남편의 수고로움이 고마와졌다.
드디어 목적지 남영역에 도착한 엄마는 다시 힘을 내어 딸을 업고 가방을 들춰맸다. 모니터링에 참여할 주부를 뽑는다는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오랜만에 설레였던 엄마였다. 아이들과 보내는 하루도 늘 좋았지만, 가끔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었다. 무엇보다 평범한 주부보다는 똑똑한 주부, 특별한 엄마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밤새 쓴 자기소개서를 이메일로 보낸 뒤, 무언가를 다시 도전하기엔 자신의 형편이 예전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당첨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자위를 하며 큰 기대 안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러니 일주일 뒤 식품회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분이 날아갈 듯 한 것은 당연하였다.
회사 건물 내부로 들어서서 두리번 거리다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내 직원은 아주 친절하였다. 이 건물로 들어오기 전까지 길거리를 아이를 업고 다니며 주위의 양해를 구하던 자신이 마치 사회가 돌아가는데 폐를 끼치는 존재로 취급된다는 느낌을 받다가, 거대한 건물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인격이 주어진 듯 한 느낌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데스크에 서 있던 그 안내자는 환하게 웃으며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 주는 성의를 보였다. 엄마는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간담회 장소에 도착한 엄마는 고생한 딸의 손을 물티슈로 닦고 자신의 얼굴의 땀도 닦았다. 아침을 아직 먹지 못한 아이를 위해 먹을 거리를 주섬주섬 꺼내 놓을수 밖에 없었다. 먼저 도착한 주부들 중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깔끔한 옷차림에, 다니는 직장을 하루 빼고 온 듯 한 모습으로 회의실에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았다. 업은 아이까지 덮고 오느라 남편의 커다란 코트를 걸치고 오긴 했지만 누구보다도 좋은 아이디어로 조리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신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이를 데리고 등장한 또 다른 아기 엄마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간담회가 시작 될 무렵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아까 못 받은 전화에 대한 불안도 있어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었다.
"어, 아들" -"엄마, 뭐가 없어. 선생님이 그거 필요하대" "뭐가 없는데? 응?" -"종이에 뭐 적힌 거 그거 있어야 된대. 없으면 안된다고 박보래 선생님이 꼭 가져오랬다고 애들이 그랬어" "그게 뭔지 말을 해야지, 아들. 엄마가 지금 집에 없어서 못 갖다주니까 선생님한테 없다고 말씀드리고 일단 엄마가 집에 가면 그때 해결해 줄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된다고 하는데... 엄마 끊어"
아들과의 통화가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간담회가 시작되려고 하였다.
오전 간담회가 끝나고 지방 공장으로 이동하여 견학을 하는 일정까지 다 따라갔던 엄마는 피곤해 하는 딸에게 너무 미안하였다. 딸은 아침부터 이러저리 엄마를 따라 끌려 다니느라 아주 지쳐보였다. 오후 4시가 넘어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났다. 사측에서 참가 수고비로 10만원이 든 봉투를 참가자들에게 내밀자 마자 봉투를 챙긴 그들은 연기같이 흩어졌다. 엄마도 봉투를 받아 들고는 안고 있는 딸에게, 집 가는 길에 슈퍼에서 짜요자요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엄마와 딸은 힘들었지만 뭔가 해냈다는 느낌으로 다시 1호선과 3호선을 갈아타며 집으로 도착하였다. 기진맥진하였지만 뭔가 일을 하고 왔다는 뿌듯함은 분명하였다. 가방에 든 십만원 봉투도 금액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아까 낮에 단체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이동하던 중 전화가 왔었었다. 아들이 아니라 아들 친구인 진호의 엄마로부터 온 전화였다.
"자기, 오늘 내가 자기아들 봐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시모가 온다네, 어쩌지. 그래서 내가 7단지 시윤이 엄마한테 부탁을 좀 했어. 우리 진호도 같이 논대. 시윤엄마 원래 일하는 데 오늘 쉰다네, 자기 집에 오면 나한테 전화해. 우리 진호한테 전화해서 우리 단지로 오라고 하면 되니까"
엄마는 지하철 역에 내리니 벌써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도저히 더이상 20킬로 가까이 나가는 딸을 업고 집까지 걸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계속 업어달라는 딸에게 걸어가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진호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지금 지하철에 내렸어. 우리 아들 집에 좀 보내줘. 고마워, 내일 만나서 애기해" -"어...그래 근데... 너도 고생했겠지만 자기아들도 고생이 많았더라. 일단 쉬고 내일 만나서 얘기해"
간신히 집에 도착해서 딸을 거실에 내려놓자 마자 아들이 현관문으로 들어왔다. 아들 역시 피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엄마에게 달려와 안겼다.
"우리 아들 오늘 혼자서 참 잘했어. 엄마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치킨 시켜줄게" -"앙념치킨 사줘. 콜라도 시킬거지?"
아들은 치킨시켜 준다는 소리에 좋아하며 거실에 드러누었다. 드러 누운 아들의 양말을 벗기려 다가가 보니 양말 바닥이 더러웠다. 마치 진득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아들, 양말이 왜 이래?" -"어... 오늘 빠졌어" "뭐? 또 샛강에 빠졌어? 그래서 전화를 했구나... 그래서 계속 이렇게 있었던 거야?" -"응" "샛강 얼었지 않았어? 아직 아침에는 얼었을텐데... 발 시려웠었지? 어떻게 참았니?...." -"괜찮았어" "괜찮긴... 오늘 축구는 잘했고? 물을 안 가지고 가서 목 말랐지?" -"그냥 괜찮았어" "피아노도 갔다오고? 아까 시윤이에서 뭐 좀 먹었어?" -"피아노 갔다왔고 시윤이집에서는 안 먹었어" "시윤이 엄마가 고맙네. 근데 시윤이집에는 처음 간거지? 엄마도 시윤이 얼굴만 살짝 기억나는데. 하여튼 오늘 고마우니 우리집에도 놀러오라고 하자" -"......"
배달 시킨 치킨을 맛있게 먹은 아들을 딸과 함께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 넣어 씻겼다. 아직 엄마 자신은 외출복도 벗지 못한 채 소매를 걷어 붙이고는 아이들을 헹구어 내었다. 얼굴에 붙었던 꾀죄죄한 먼지들이 싹 닦이고 원래의 예쁜 얼굴로 반짝반짝 빛나자 엄마는 세상 모를 행복감을 또 다시 느꼈다. 피곤했던 딸도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해 웬일 별 투정없이 국에 말은 밥을 먹고는 어느새 이불에서 잠이 들었다. 그 이불은 하루종일 저 자리에 그대로 있었었지. 엄마는 짐가방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채 겨우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10시가 다 되었고 마침 남편이 귀가하였다. 남편 역시 붐비는 지하철에 끼여 퇴근 하였을 것이다. 가스렌지에 물을 올리며 바빴던 하루를 변명같이 이야기 해주었다. 오늘도 또 하나의 치열한 하루를 보낸 남편에게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주는 미안함에 점점 말이 줄어버렸다. 왜 사서 고생하냐는 남편의 퉁명스런 말에도 서운함은 크지 않았다. 별 소리 없이 라면을 먹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오늘 또 한 겹의 정이 쌓였음을 느꼈다. 그렇게 온 식구가 골아 떨어지고 안전하고 깊은 밤을 맞이하였다.
다음 날 만난 진호엄마의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자기, 뭐 간담회인가 뭔가 잘 다녀왔어? 딸래미 데리고 다녀오느라 고생했겠다. 진작 어린이집엘 보냈으면 서로 안 힘들었을텐데..." -"어쩌다 한번 갔다온 건데 뭐... 어린이집 원비가 원채 비싸서..." "그래, 그래도... 그건 그렇고. 어제 아들이 이야기 안해?" -"어? 무슨 이야기? 샛강에 빠진 거? 엄청 추웠을 텐데 참고 있었더라. 내가 정말 화가 나려고 하더라. 우리 아들 그렇게 참고 있을 때 마다 내가 정말 속상해. " "아니 그거 말고... 다른 얘기... 안했나 보구나. 어제 자기 아들 벌 섰대. 우리 진호가 그러더라. 우리 진호가 어디 학교에서 있었던 일 미주알 고주알 말하는 애야? 근데 어제는 나한테 그러는 거야.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울었다고. 속 없어 보이는 우리 아들이 자기 아들은 친구라고 꼭 챙기잖아. 들어봐. 어제 뭐 수학 시험을 쳤는데 시험 치고 나서 자기 아들이 손바닥을 맞았대." -"네? 몰랐어요... 언니" "하여튼 뭐 학교 보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만, 선생이 좀 별로야. 왜 애를 때리고 난리야. 박복례 선생이 이 학교 오기 전 다니던 학교에서 봉투받는다는 애기는 있었다고 들었는데 때린다는 것 까지는 몰랐네. 우리 진호도 곧 맞고 오겠어. 순한 자기 아들이 맞았는데 우리 장난꾸러기 진호야 시간 문제지..."
엄마는 심장이 마구 뛰었고, 아들이 맞고 울었다는 말에 울컥하려고 까지 하였다. 진호 엄마는 말을 이었다.
"우리 시엄니는 왜 하필 어제 갑자기 와서는 병원가자는지 참... 하여튼... 그리고 급식시간에 자기아들 토했댄다. 선생이 가서 같이 치우라고 해서 우리 진호가 애들이랑 가서 치웠대. 뭔 선생이 일학년 짜리보고 그런 걸 치우라고 하는지..." -"토했다는 말 안 했는데..." "애들이야 토할 수도 있지. 먼 이유가 있을거야. 1학년 담임을 맡았으면 애들 어린거 다 알고 맡은 건데 정내미가 뚝 떨어져... 근데, 자기야, 어제 시윤이네 보냈었잖아. 이시윤 알아? 걔 장난 아냐. 완전 병이야 병. ADHD . 우리 진호가 집에 와서 뭐라고 했냐면, 시윤엄마가 진호랑 자기 아들을 식탁에 앉혀서는 시윤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계속 그랬나 봐. 그리고 또 시윤엄마가 김치전을 해줬대. 우리 아들은 그런 거 잘 먹는데, 자기아들 그거 안 먹잖아. 내 알지. 거기다가 대고 가려먹으면 안된다고 한참을 또 뭐라고 했다네. 그것 뿐만 아 아니야. 시윤이가 자기방에서 장난감을 막 던져서 진호하고 자기 아들이 피하면서 놀았댄다. 참... 시윤엄마는 지 아들이나 똑바로 키우지. 시윤이 걔 수업시간에도 막 돌아다니고 여자애들 때리고... 그런 애를 태권도 도장에를 보내놨으니 기술까지 배워서 애들을 더 때리고 있잖아. 나도 우리 진호 태권도 보내지만 시윤이 같은 애는 어디 조용히 앉아있는 거 배우는 학원을 보내야지. 아니 학원이 문제가 아니야. 시윤이는 큰일 났어. 저런 애는 엄마가 집에서 딱 붙잡고 있어야 되는데 저 집 부모는 매일 일한다고 애를 학원만 돌리니 원..."
진호엄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속이 너무 상하였다. 엄마는 하교한 아들을 앉히고는 조용히 물었다.
"아들, 어제 토했어?" -"응"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그런데 왜 토했어?" -"깍두기 먹다가 그랬어" "너 김치 싫어하는데... 선생님이 다 먹으랬어? 그럼 매일 어떻게 먹고 있었어?" -"진호가 대신 먹어 줬는데" "아.. 그랬어. 그랬구나. 어제 근데 왜 손바닥 맞았어? 손 아팠겠네. 봐봐"
아들이 내민 손바닥엔 아무 흔적도 없었지만 손가락에 빨갛게 피멍이 든 것이 보였다.
"이거는 왜 이런거야?" -"어제 내가 전화 한다고 교실에 좀 늦게 왔는데 그때 박보래 선생님이 내가 문 뒤에 있는 걸 모르고 문을 닫았어. 그때 다쳤어. 그래서 수학 문제를 다 못 풀었어" "아들, 아팠겠다. 어제 많이 힘들었겠네. 엄마가 전화도 안 받고... 간식도 못 먹고... 엄마가 미안해..." -"나 어제는 좀 안 좋았는데 오늘은 괜찮아. 근데 나 방과후 축구 안하면 안돼?" "축구는 왜? 축구 선생님이 무섭게 했어?" -"축구 하기 싫어..." "알았어. 이번달까지만 하고 다음달엔 다른 거 하자"
엄마는 다음 주 축구 수업이 있는 날 축구강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했으나 그 전에 축구 교실이 휴강한다는 문자를 학교로부터 받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이러했다. 축구교실 고학년 반 아이가 축구교실 저학년반 수업 마치기를 기다리며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때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축구강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6학년 남자아이는 강당에서 놀고 있던 1학년 여자아이를 구석 창고로 데려가 바지를 벗게 했고, 속옷만 입은 그 아이를 다른 남자아이로 하여금 만지게 했다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축구강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리를 한참 비운 상태였고, 학교측은 학생들을 잘 인솔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급하게 수업을 폐강 시킨 것이었다. 피해자 1학년 여자아이 부모는 학교 측의 애매한 태도에 상처를 받아 결국 전학을 간다며 집까지 내놓았다. 가해자인 6학년 남자아이는 오히려 전담 상담 선생님과 1 대 1 상담을 받았고, 선생님들과 학교 측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소문에 학부모들은 흥분했다.
엄마는 아들이 학교 입학한 한 달 새 부쩍 컸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올바른 성장이 아니라 강요된 인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아들은 어제 하루 동안 참고, 그냥 참고, 무기력하게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했다. 아침에 차가운 젖은 발로 교실에 있었어도 담임선생은 알지 못했고, 문 틈에 끼어 피멍이 든 아이 손가락에 대해서도 몰랐다 치더라도,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 반 아이의 입장은 한발 앞서 헤아려, 자신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체벌, 손바닥을 때린 것이었다. 아들은 축구교실 수업을 하면서 두꺼운 옷을 벗지 못해 그냥 더위를 참았을 것이고, 6학년 형의 이상한 행동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고, 여전히 엄마는 아들의 전화를 받지 못했었다. 시윤이 집에서 시윤이의 폭력을 놀이로 받아주어야 했고, 시윤엄마 앞에서 또 참아야 했을 것이다. 거의 종일 굶은 아들은 피아노 학원 아래 편의점에서 엄마가 준 천원으로 삼각김밥을 사먹으려 했지만 친구 진호와 나눠먹기 위해 삼각김밥 대신 마이쮸를 두개 사서 나눠먹었었다.
추위와 고통, 두려움, 무기력, 배고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맛있는 양분이 아닌 부정적 감정이었다. 살기 위해, 혼나지 않기 위해 아들은 순간순간 긴장하고 마음 졸이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선생도 이웃도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으며, 보호자 없이 방치된 아이는 그들에게 노출된 도구일 뿐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커 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엄마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성취를 접었고, 딸을 위해 스스로를 집에 가두었다. 언젠가 느낄 후회와 미련은 나중 일로 미루고, 내 아이를 위해, 남편의 아이가 아닌 바로 내 새끼를 위해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