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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한테서 전화왔었어요, 그런데 나가지 말라고"

같은 동네사는 이웃과 촛불집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들은 말이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라는 내 뒤이은 물음에

"뭐..."

라며 그는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내가 3차 촛불집회에 다녀왔노라 꺼리낌없이 공개하는 데에 대해 그는 놀라면서도 웃음을 곁들였다.

무슨 의미였을까? 무슨 생각을 한걸까?

 

과거에 본인에게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였던가, 앞으로 무언가라도 제공할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을 대놓고 하기엔 금전적 손해 확률을 키울 수 있다는 중요한 핵심이 있다. 내 앞의 모래를 끌어 모으기 위해 넓은 백사장의 모래 유실은 눈감는다는 것과 똑같아 보인다.

부모 혹은 시부모로부터 받는 경제적 도움은, 부모세대가 공유하는 과거 가치관을 경제적 수익자 자녀가 공유해야 하는 의무를 포함한다. 단 하나 진리, 공짜는 없다.

   

또 하나, 양도세와 상속세에 대해 불만을 말하고 월급에 붙은 소득세에 대해 부당하다는 푸념을 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가만히 그 내용을 들어보면 집을 매매하면서 얻은 이익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을 내기 싫다는 말이고, 부모에게서 받은 재산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을 내기 싫다는 말이다. 이미 무노동, 행운 같은 이득을 얻었음에도 수수료를 내기는 싫단다. 왜냐면 공평하지 않아서 라고 덧붙인다. 정확하게 내는 사람이 손해라는 생각이 확고한 것이다. 

정확히 부과하지 못하는 정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법을 피해보려는 이기심 역시 문제다.

이런 개인적 이해득실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사람은 촛불집회에 나가기가 망설여질것이다.

개인의 시간과 노력, 돈을 투자해야 하는 데 당연히 아까우니까.

 

무슬림들은 민주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느정도 합리적인 왕정을 원할 뿐이라고 하였다.  캐런 엘리엇 하우스의 <중동을 들려여다 보는 창, 사우디아라비아> 2016년 발행   

저자는 그 이유를 문화라고 하였다. 복종과 억압의 문화는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사람들을 무기력 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학교육 까지 받은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고 둘째 처로 자청하여 남편의 폭력, 강간, 억압이 허용된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자신이 강요받았듯이 딸들에게도 똑같은 삶을 강요하면서 말이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어도 좋다는 의지라고 하면 심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인류 역사 속에서 이슬람 문화의 발전이나 전파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촛불집회에 나가 촛불 하나 더 밝히는 것이 뭔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은 광화문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내가 이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방송에  얼굴이라도 나오고 주위에서 알아보면 불이익 당할 가능성만 커지는데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하면서도 길들여진 태도를 가질 수는 있다.

북한을 보라. 4.19, 5.18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을까? 

북한이나 우리나 뭐가 다를까?

백년전 프랑스 시민혁명이나 미국 독립전쟁, 일제 강점기 3.1운동을 지금 우리가 되새기긴 무리가 있다. 정서는 공감이 되지만 하도 옛날 일이라 그냥 역사책 같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80년대 시민 운동의 증인을 볼 수 있고, 그 증언을 듣을 수 있다. 기억할 수도 있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운 아닌가? 민주화 역사를 함께 써 가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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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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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종전된 뒤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뒤이어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임시정부나 의열단의 노력이나 국내 항일투쟁 덕분이라는 내용을 국사문제에서 봤던 기억이 있지만,

해방을 맞은 나라에 또 다른 나라 - 미군정이 시작된 것이 우리 스스로 해방을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에서 결국 해방에 우리가 기여한 부분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 역시 있다.

거기서 부터 문제 였을까?

 

우리 역사에는 혁명이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국사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배세력 교체말고 혁명적으로 제도가 뒤바뀌는 일은 식민지 때 와서나 있었던 것 같다.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던져진 선물 꾸러미처럼 신분과 성차별제도는 갑자기 폐지되어 버렸다. 그래서 노비, 성불평등, 지역차별 역시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 같다. 내가 필요해야 쓰니까...

이렇게만 생각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참 무기력하거나 멍청하거나 답답한 사람들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 화가 난다. 그 수많은 전쟁과 전쟁보다 악랄한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도 인정을 잃지않고 서로 도닥거리며 살아온 사람들인데 착한 멍청이들로만 정리되야 할까?

 

내가 3.1 운동을 별 의미없게 생각한 이유도 중학교 시절 사회선생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3.1운동을 유래없는 비폭력운동이라고 설명하면서, 준비없이 진행되어 오히려 비폭력적인 운동이라 사람들만 죽고 얻은 것은 없었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것이 참 시크하면서 예리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근대를 살아간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의 멍청함이 문제라 생각했다.

멍청함은 배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이 들고 그래서 나 외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나아가 과거와 미래를 인식하기 시작해야 없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식은 검색하면 얻을 수 있지만 현명함은 못구한다. 

멍청함은 어디든 언제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수업내용 이었다. - 물론 당시 선생님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겠지...  

3.1운동은 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일제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여론을 분명히 보여주었고, 힘없어 보이는 사람들 일지라도 무리가 지어지면 반대편의 소수는 두려워하게 된다.  더군다나 명분도 정확한 옳고 정의로운 일이었다.

        

세상은 결국 가장 힘있는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는 있다. 핵심을 쥐었던 주먹을 벌리면서 자신 주변으로 힘과 함께 핵심이 전달되면서 통제의 오류는 발생하고 결국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깔끔한 메신저가 아니라 손때와 체취를 묻히는 성실하지 못한 심부름꾼이다.  

어디든 틈은 생기고 그 틈을 비집고 결국 할 말은 하게 된다. 

 

조선 후기 고부민란에서 이어지는 동학농민운동, 고려 무신집권기의 망이 망소이 난, 이언년의 난, 신라 시대의 적고적의 난 등 가만히만 있었던 우리 조상들은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난 이후로 세상이 확 바뀌는 결과는 없었지만, '난'의 대한 데이타 - 그 시작과 진행, 전개 - 는 착착 쌓아갔을 것이다.

또한 진압은 되었을 지 언정 멍청하거나 착하지만은 않은, 목숨을 걸고라도 타고난 팔자를 고치려는 지독한 사람들이 나말고 여기저기 많다는 공감대 혹은 기득권측에서 보면 두려움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모인다고 촛불이 켜진다고 세상이 변하겠냐고 한다.

세상이 두어달 동안 모여서 나누어 붙인 촛불에 의해 변한다면, 세상 바꾸기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모인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생각을 했다. 아니 성찰을 반성을 했다.    

촛불 들었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지만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거꾸로도 간다.

거꾸로 간다는 건 무시무시한 일이다. 내일 내가 공권력의 고문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일제 위안부가 될 수도 있고, 노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5차 집회까지 촛불이 모이지 않았다면 검찰은 아무도 구속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청와대는 대국민담화라며 계속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고,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수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촛불을 켜서 대통령을 퇴진시키지 못했고 여당을 해산시키지도 못했고 이상한 보수들의 생각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세상을 하루 아침에 바꾸려면 돈많고 힘있는 외세가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느끼고 성찰하여 무언가 바꾼다면 그것은 비가역적일 것이다. 다시는 거꾸로 돌아가지 않을 자발적이면서 무의식으로도 존재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사춘기를 겪고 부모에게 비난당하면서 느꼈던 처절함과 두려움, 그러면서 동시에 느껴지는 해방감.

이 사태는 어느 순간 적정선에서 정리가 되고 또 적당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 꿰차겠지만 우리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고, 그 주인공이 대사를 외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였다.

우리는 절대 이 경험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데이타로 저장하였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7767048583A3DE3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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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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