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혐오 노인포비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5.11 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4
  2. 2016.05.10 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3
  3. 2016.05.09 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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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인이 왜 계속 가난하게 살라는 정치가들을 지지할까?
매달 준다는 돈도 주지 않는 정부에 믿도 끝도 없이 계속 표를 주는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경제적인 문제를 초월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라고 봐야하나.

한달 생활비가 빈곤층 노인이 50% 이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중위소득 이하의 비율이 50% 미만 이라는 것이지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이 마냥 가난한 노인이 전체 노인의 50%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오류가 있다.
물론 정부에서 기초생활비를 지원받아 사는 노인도 있을 것이고, 기초생활비 지원대상에서 빠져 정말 빈곤한 삶을 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정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살 수 있는 노인,
그들이 빈곤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당장 쓸 돈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크고, 가진 재산의 규모는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생각해야한다.
   
매달 백여만원의 연금이 나오는 노인도 기본 의료보험 이외에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이 되어있지 않으면 한달 백여만원의 생활비로는 병원비까지 감당하기는 쉽지않다.
아껴서 쓰거나 자식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불편을 본인이 감내하거나 결국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이들을 뭐라고 생각해야하나?

자식을 키우느라 노후 준비를 못했다는 토로는 자식이 배은망덕함을 하소연 하는 것이 되거나, 스스로 현명하지 못했음을 자백하는 결과일 뿐이다.
사회 여러 구성원들이 모두 '자식'이다. 그 '자식'에는 범죄자도 있고, 학자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다.
그 자식들은 갑자기 주어진 삶을, 룰렛 게임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 영향 속에서 벗어나거나 벗어나지 못하거나 하는 인생을 살아오고있다.
노인의 노후를 불행하게 만드는 '자식'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자식들이 효도할 줄 알았다는 노인들의 한탄을 가만히 생각해보자.
서 넛의 자식들을 자연의 순리대로 낳아 처한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키웠다고 친다면,
그 자식들의 유년기는 그 노인의 노년기처럼 불행하고 부족하고 혼란스러웠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부모는 선택한 삶이다. 전쟁처럼 몇몇의 주장에 끌려 들어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선택한 삶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느끼는 무한한 애정이라는 감정을 선사받았다면, 그 이후 남은 것은 사회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과제 밖에는 없다.
'자식'에게 갑자기 삶을 주어지게 한 이유 - 사랑이든 사고든 - 를 설명해주고,
존재에 역행하는 질문에 빠져 하는 고뇌는 길지 않도록 삶의 기쁨을 먼저 몸소 보여준다면 그걸로 되지 않았나

보수단체가 국정원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정부옹호 집회를 열었다는 주장을 접하면서 보수단체 노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들을 낡은 이데올로기에 갇혀 맹목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낡았지만 그들의 신념이고, 그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이니, 하나의 사회가 다양해지는 긍정적 효과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뒷거래가 있었다면 과연 그들 주장에 확고한 근거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워졌다.
노인들은 가족부양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물론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본인 외의 다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이 이러한 집회를 통해 생활비를 벌었다는 추측은 가능성이 낮은 것 같다.
피라미드식 조직이라면 조직 수뇌부는 생활비를 건져 갔을 수도 있었겠다.
그럼 뭘까? 단지 돈을 벌려고 용역업체 알바를 하는 청년과 같은 경우도 아니고, 신념에 불타는 투사들도 아니면 뭐라고 생각해야할까?

결국 이도저도 아닌 이들이다.
중세적 가치관에 근대적 욕구가 섞이어, 나서서 행동하는 데에서 존재감을 느끼는, 그 뿐인 노인들이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정부를 위해 또다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친근하게 습득된 근대적 집단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면 막연히 이득이 되겠지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 전세대이다. 
젊어서 배운 인문적 소양만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독재정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 살면서 경제적 혜택을 받음을 기뻐했을 것이다.
평생을 비교적 근면하고 충성스럽게 살았지만, 충실했던 자신들을 더이상 보살펴주고 이끌어주고 지배해 줄 이가 보이지 않자 화가 났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예전에 힘들게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오늘 먹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순간이 감사할 것이고, 불행하게 먼저 죽은 부모나 친구들이 떠오르면 미안함마저 들어 이렇게 뱅뱅돌며 과거에 갇히는 것이다.
과거에 매몰된 채, 갇힌 도넛 같은 차원을 과감하게 넘어서지 못하는 이들.
갇힌 도넛을 탈출하면 큰일이 나는 것이고, 나눠먹을 도넛이 없더라도 함께 다독거리며 살면 된다는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그 과정의 출발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그런데, 과거에 갇힌 채 현재를 보고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 미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들을 불행한 근대화의 포로들이라고만 여기기에는 후련하지 못하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다.

사진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825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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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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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유로운 거래야말로 그 궁극의 선이라는 염원에 보다 잘 도달할 수 있는 길임을, 진실을 시험하는 최선의 기준은 시장경쟁속에서 스스로를 수용시키는 생각의 힘임을...'
앤서니 루이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탈북자들 중 자본주의에 빨리 눈 뜬 사람은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기독교교리에 빠진 사람은 맹목적 교리와 선교에 쉽게 지배되어지며, 또 반북주의에 빠져 자신을 부정한다.
본인이 전부라 믿으며 살아온 사회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정신적 아노미 현상 -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하여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하여 사회적,개인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 은 필연적이며 그래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거나 안정화하려 또 다른 이론에 쉽게 압도되어 휘둘리게 된다.
반북주의와 같은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적을 만들어 거기 매달리기도 한다.

토크쇼에 나온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여러 경험담이나 ...카더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북한을 희화하 하는 것을 보자면 그들이 출연료나 인기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비록 지금 그들이 탈출을 한 사회이지만 거기에는 통제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 살았던 가족과 친구, 친척, 동네 사람들.
그들도 아는 누가 죽으면 인간적인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힘든 노동 뒤에 저무는 해를 같이 바라보며 동료애를 느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하여 떠난 고향이지만 그곳에는 북한의 선전과 통제가 스며들지 않은 언덕과 개울이 남아있을 것이고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에게 그런 추억이 남아있길 바래본다.

대구의 시부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부모에게서 일방적 지시를 받아왔을 시부는 자라며 근대식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수준을 지금처럼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책도 부실했을 것이고 가르치는 사람도 부실했을 것이다. 단순한 지식 습득과 근대 여러 이론의 겉핥기를 경험했다고 본다.
시부의 시대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다스려 주기를 바라고, 통치당하길 바란다.
하늘이 내려준, 대대로 뿌리 깊은 가문의 인재가 왕이 되어 백성들을 이끌어야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뿌리깊은 가문"이란 것은 기득권 세력의 또다른 말이기도 하다.
기득권 세력에 큰 반발없이, 가진자 그대로 가지라 하고 못 가진자에게 조금은 나눠줄 수 있는 착한? 아량을 가진 인재가 왕 - 대통령이 된다면 복종할 준비가 된 사람이 바로 시부이다.

자신은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종교적으로 이루어내었지만, 자신의 자식들과는 단절을 두려워하여 끊임없이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자식에게 주입한다. 결국 본인도 본인의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반공하지 않으면 매장당하는 사회를 살아오다가 반공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세대를 보며,
세상이 난리날 듯한 걱정으로 - 이게 바로 종말인가?
한 귀퉁이에서만 산 자신을 옮겨 다른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귀퉁이 밖을 벗어난 자식을 귀퉁이로 끌어들이며 자신이 습득한 공포를 그대로 전해 주려는 것이다.

나와 다른점은 무얼까?


        
사진출처 : http://static5.techinsider.io/image/56f31919910584155c8b84d5-1200/xiaolu-chu-life-in-north-korea-train-ride-photograph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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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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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언제부턴가 노인혐오증이 생겼다. 그들과는 인사말 이상 나누기 싫고, 가까이 있고 싶지도 않다.
병이 옮겨나 하는 그런 걱정보다는 노인의 예의없음이 싫고 일방적 의사소통이 싫다.
그렇지 않은 노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내 일상 생활 구역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불현듯 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신은 나이 안 먹을 줄 아나? 라는 비아냥이 근거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내 노인혐오증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고칠 수 있을지, 계속 이렇게 살다가 노인이 되기 전 자살이라도 해야 되는 건지
구석에 처박아 둔 뜨다만 스웨터 실밥을 조심스레 풀어 포텐셜 넘치는 실뭉치를 만들어 볼 대단한 꿈을 안고 결말없이 쓰는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진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104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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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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