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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너 그때 그랬던 거 기억나?”


라며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을

갑자기 꺼내는 친구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와 함께 옛날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어

참 소중하고, 또 지금처럼 계속 얼굴을

보며 지낼 수 있어 고맙기도 합니다.



추억에 젖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땐 그랬 었지 하고

흐뭇해지기도 하지만,

가끔 친구 안에 숨어있던 꼬마 악마가 나타나

수북한 먼지 아래 묻어둔 추억을

굳이 들추어 내기 시작합니다.

내 앞의 귀여운 이 빌런이

먼지 쌓인 페이지를 들추어 기억력을 과시하면,

공중에 풀풀 날리는 먼지로

잠시 숨을 멈추어야 되기도 합니다.

사방으로 날리는 먼지는 한 톨도 증발하거나

사라지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립니다.

어지럽게 날리는 먼지들이 원래 있던 제자리에

다시 쌓이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오래 전 내 모습과 이야기를 기억하는 친구는

심심한 지 장난스러운 얼굴로

공연히 먼지를 일으키고

또 먼지일 뿐인 별 것도 아닌

추억을 다시 들먹입니다.

털어봐야 공중에 붕 떴다가 다시 그 자리에

소복이 가라 앉고 말 먼지를 굳이 일으 키려 하는

친구의 유치한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죠.

오래 전 추억 이야기 네…

하고 무방비로 듣고 있다가

결국 나를 놀리는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내가 가진 그 친구에 대한 허접한 기억을

낱낱이 꺼내어 주고 싶기도 합니다.

지저분한 먼지가 내 과거에만 잔뜩 쌓여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늘 기분이 별로 였던 친구는

상대가 우스워지면

자신이 돋보인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요즘 친구의 처지가 좋지 만은 않음을

나도 알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만만한 상대로 나를 고른 친구에게

놀라면서도, 서로 다 아는

그 친구의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를 고려해서,

그냥 웃어 넘깁니다.
















“별로…… 근데 그 하드 맛은 기억나.

오렌지인 척 연기를 한 오렌지색 맛이었지.”





둘 다에게 그다지 멋진 기억이지도 않는 기억을

굳이 그것도 자주 꺼내어 이야기하는

친구를 두었다면,

그런 그의 단점에도 불구 하고

오래 두고 사귄 그 친구가

가진 소중한 장점을 믿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황하여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과거의 내 모습,

그러나 그런 나로 인해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그 과거에 대한 재고는 당사자, 나의 몫입니다.

그 때 옆 에서 구경했던 사람 혹은

그냥 방관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예전 실수를

들추어내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참 유치하고 못된 일이죠.

비록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이것 역시 다 구차한 변명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 앉기를 기다렸던

지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배려심이 부족하고, 공감력이 결핍된,

자기 자신은 돌아볼 줄도 모르는

철 없는 존재임을 광고하는 것 밖에는

다른 어떤 의견도

안타깝지만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철 없는 친구들이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에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멀쩡 하게 잘 안 그러다가

또 갑자기 눈에 힘을 주며

불편한 기억을 들 추는 그 친구가 처한

당장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결핍을 이해 해주고,

끝 끝내 철들지 않는 존재로서의 순수함을

인정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나 또한 그러 하기 때문입니다.

내 과거가 나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과거를 통해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고,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내 존재가 있어 오고 있다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고 선택 했던 것들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속에 존재했고,

그들과 함께 흘러 왔으며

과거와의 과감한 단절을 택하지 못한 내 연약한

결정의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던 내 과거에 대해

당당해지고자 합니다.

과거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진지한 반성 없이 모든 과거를 아름 답게만

저장하려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면,

이는 초현실적인 자기 중심적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일인 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내용에 대해 이런

편집과 재생산의 과정을 적용하는 타인의 예를

우리는 실제로 접하기도 하며

깊은 실망을 했었는데요,

그들 중에는 비교적 지성적인 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기 버거운 처지의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혐오를 외부로 방향을 돌려

혐오를 표현하며, 어차피 세상은

다 거기서 거기로 똑같이 엉망이라는

안쓰러운 자기 위안을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들추어지는 추억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들이 필요합니다.

타인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그 모든 추억들이

지금 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이야기 만을 통해

존재 한다 생각하려고 합니다.

의미 없는 과거 속에 머물 일이 더는 없다는

의지를 주위에 보여 주면,

조롱은 그 조롱의 발원지로

되돌아 갈 것이니까요.

또한 나를 상처 입혔던 과거를 직시하고

더 이상 그 고통이 내 것이 아니라

과거에 갇혔다는 것과 또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불완전 했던 내 모습에 더 나은 현재의 모습으로

덧입히려 합니다.

과거 는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 만이 선명해지고

다른 것들은 희미해 지며,

내 존재가 머무르는 여기 현재가

나를 나타내 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분명한 내 생각이 과거를 의미와 무의미로

구분해 줄 것입니다.

어설펐던 과거의 실수를 통해

지금의 내가 소중한 것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고

더 나은 존재로 바뀌었다면,

그리고 또 내 과거 실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던 일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주위 사람에게 배려와 양보로 갚아가고 있다면,

그 추억은 먼지가 아닌 향기로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추억을 공유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내가 진심으로 저장한 추억의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추억이 아닌, 나의 추억이니까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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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투기는 투기대로 가고
서울시장 선거는
또 다가오고 있네요.

지난주 여당 단일화 후보인
김진애 박영선
토론회가 아주 흥미로웠죠.
(할머니들이 계속 서서 하시느라
다리 터시는 모습이
관전포인트였죠.)


서울시 도시계획, 돌봄센터 등
흥미로운 내용이 나왔었는데

지난주에 이어
야당 단일화 후보
오세훈 안철수 토론도
나름 흥미롭습니다.

부자집자제 가난한 아이
발언으로 히트친 오세훈은
서초구 땅 보상 관련해
처가댁 처가집 단어를 오가고
여전히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모습이
꼰대가 여기 있네 싶네요.
(나경원이 나왔어야
재미졌을텐데 말이죠)
사람들이 지적하는대로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것 같은..


오세훈과
마찬가지로
안철수도 말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설득한다기보다 우긴다는 느낌이
드는 ㅠㅠ
좀 무례한 듯한 오세훈의 발언
(선거비용 돈못대준다
김종인 할배랑 사이 안좋지않냐 등)
차분하게 대응한 안철수 대응은
칭찬할만하네요.

jtbc라이브


야당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서울시에 큰일날 일은 없겠죠.
보궐선거라 임기도 짧으니
선거는 금방 돌아오나

적폐 기득권의 유산을
물려받은 제1 야당이
지금보다 더 뒤로가는 한국을
만들까 그게 싫으네요.
일본이 그렇고
미국이 그랬듯이 말이죠.

갑자기..
원래
여당은 정책토론을 하지만
야당은 자질검증을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되네요.
안철수도 딴세계 사람같지만
오세훈의 빈정거림 참 별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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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가 해외 특히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미나리는
미국 이민자 가족의
잔잔하면서도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미국인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 듯하다.

미나리에 등장한 한국이민가족은
기존 미국사회에 전혀 위협적이지도
이질감이 커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음식이나 문화는 다랐지만
미국은 이부분을 호기심 내지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제한해
어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면으로 보는 것 같다.

물도 없는 빈 땅을 차지하고
힘든 일을 도맡은 한국 이민자들은
그들 기득권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느낄 것 같다.



그들이 민감해 하는 종교는
교회를 나가는 것으로,
영어를 쓰려고 하고
그저 착실하게 노동만 하는
모습에서

그들 사회의 일부분,
특히 하기 싫은 부분을
내어 맡기는 배려?와
그래서 끝자리를 하나 정도는
내어주는
배려? 가 느껴진다.





미나리 감독은 미나리가
과거 본인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했다.

그래서 80년대인지 90년대인지를
재현한 영화인가 잘 모르겠다.
그 이전일까?
아무튼 내 눈에는
의상 등에서 80년대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착실하고 착실한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는
미국인들에게
아주 안전하게 느껴질 것 같다.
다른 문화에서 오는 몰이해를 통해
느껴지는 이질성과 폭력성을
두려워하는
미국인에게는
이렇게 온순하고 성실한 한국인들이

하기힘든 일은 도맡아 하는 역할에
흡족하고 또 만만하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미나리 영화는 지루했다.
처음 부터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다 알았다.
제목부터 미나리 이지 않는가

그러니 전혀 이야기가 궁금하지도
배경이나 소재에 대한 호기심도
없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며
이번엔 영어를 잘하는 아역배우들이
인기를 얻겠구나 라는 생각은 들었다.

아, 그리고
극우유튜버 스티브유
사례에서 느꼈듯
한인교회의 폐쇄성이
영화에 한번 등장하여
다시 경계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갑갑했던 지난
우리 나라에서나
현재도 가끔 소란을 피우는
과거에서온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는 영화라는 느낌이
들게도 했다.



만약 미나리의 배우가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이 아니라
태국이나 중국인
이민자 이야기 였더라면
소감은 분명 달랐을 것 같다.
나에겐 또다른 익숙치 않은
문화라서다.
미국인들에게
한국문화가 신기한 것처럼 말이다.

아마 나는
미국인들이 미나리에서 느끼는
그들이 안전할까 하는 걱정을
또다른 우리나라 버전으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생충이 큰상을 수상할 때
잔치구경하느라 덩달아 즐거웠다.
와서 꽂히는 공감 포인트가
있어서 였다.




응답하라 시리즈나
영화 써니, 맘마미아를 보면서
흥겨운 레트로 트렌드를
느꼈던 것을 기억하지만
이제 나에게 과거는
그런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라기 보다는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졌던 폭력,
성폭력과 부조리함이 만연했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대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우주궤도를 청소하는
김태리, 성중기의 영화가
더 재미있더라.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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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줄었음에도
배출되는 쓰레기는 그대로 라고 한다.
배달음식 포장용기 쓰레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데,
플라스틱이 재활용 되는 비율도
낮다고 하니
당장 내 집 앞이 쓰레기장이
되지 않겠지만 걱정스럽다.

쓰레기를 줄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식재료를 모두 사야하기 때문에
재료를 싸고 있는 포장은 랩 한장
이라도 반드시 따라온다.
(최근에 무 하나를 구입했는데
정말 무만 사기도 했다.)



어쪌수 없이 사게 된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하게 씻어
재활용 배출하고 스티포폼이나 병도
재활용하는 법대로
따르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스팩 처리가 참 어렵다.
인근에 있는 지역난방공사에서
쓰레기를 모아 태워서
열에너지를 만든다는데
쓰레기를 좀 많이 소비해 주었으면 싶다.




그나마
내가 가장 의도적으로 줄일수 있는
쓰레기는 음식쓰레기인것 같다.
집에서 음식을 할 때 정말 먹을 만큼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먹을 만큼을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다.
양조절에 실패하거나
어쩔수없이 최소 기본량을
만들게 되면 음식은 남는다.

누가 차려주는 음식을 주로 먹고,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는 사람들은
남긴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사람이 아닌
자신이 남긴 음식임에도
방금 새로한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남긴 음식에 대해
서로 누가 먹느냐에 대해 불평을
하게되고 결국 전부 내 몫이 된다.
가족을 사랑하므로 갓 만든 음식을
주고는 싶지만
어느새 매일 남긴 음식만 먹고 사는
내 자신이 너무 슬프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적당히 양에 차게 먹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든 음식 전부를
조리하여 먹어서 처리하는 것도
아주 어렵다.
식재료를 살 때 마음과
냉장고를 채우고 난 뒤의 마음은
달라질 때가 많다.


결국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내가 먹는 음식량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한다.
건강상 이유로, 날씬한 몸매를 위헤
과식하지않고
저열량식을 먹으려는
사람도 많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식탐을
부리다가 음식을 남기지 말자는
이야기다.
남긴 음식을 버리지않고 두었다가
끝까지 책임지고 먹어서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음식 쓰레기를 쉽게 만들지않고
환경과 타인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게된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이 소소하지만
충분히 행복한 일을
행복하게 마무리 하려면
모두가 골치 아파하는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잔반생각을 해야만 하냐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답하고 싶다.


가축은 스스로 청소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 치워주어야만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어질러놓은 자리는 스스로
치워야 사람일 수 있는 것 같다.

음식을 하면서
재료를 남겨 버리지 않게 쓰고
만든 음식은 다 먹는 것 까지 생각을
할 때가 되었다.



돼지고기 덩어리를
기름두른 후라이팬에 빨리 구워서
오븐에 넣고 다시 구워 먹으면
아주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굽다가 튄 기름과
오븐내부에 붙은 기름기까지
다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자주 이 고기요리를
해먹지는 못할 것이다.

잔반도 마찬가지같다.
식욕이 막 생길 때에는
손이 크다는 핑계를 대며
음식을 많이 하려고 하나
이 음식 한가지를 혼자서 며칠간
먹어야 한다고 상상하면
음식을 하는 동안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몰랐다는 핑계나,
남을 줄 몰랐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이제는 더는 안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은 자유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듯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주변과 세상을 더럽게 하는 데에 대한
책임도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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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불운이나 실패를
자신의 경우와 대비하여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렸다 던가
동창이 실직했다던가
하는 불행한 사건을
자신의 경우와 대비해 위로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행운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분 모자라고 불행했던
자신의 삶은 숨기고
그나마 있는 작은 운을 부풀려서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유치한 마음을
가진 이로, 어찌보면 멍청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악의 평범함이라는 말은
우리 모두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도 가끔 이기적인지,
내가 누군가를 상처입히지는 않는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펑범한 악이라는 이름이
내것이 되지 않는 가장 좋은 길 같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남의 눈으로
나를 비추어 보며 생각해보는 것은
바로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중요한 점이다.

성찰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여
성찰하지 않으면
말년이 추해진다.


이기적인 사람도 매사에
이기적이지는 않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이기적이라는 것은
남의 어려움이나 힘든점까지
모른척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는
것이므로 차이는 있다.

이기적인 사람도 가끔은
남을 통해 자신을 본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는 많은 감정을
느끼고 비슷하게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즐거움과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커서
타인의 어려움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이면서
이기적인 시각이 점점 커지면
바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두루마리 휴지와 같다.
주변의 습기를 서서히 빨아들인다.
그 빨아들인 물기를 말려버리기도
물기를 몽땅 흡수하여
무거워지기도 한다.
주변의 이기적인 사람들의 성격을
서서히 흡수하고 어느새 젖어있는
퉁퉁불은 휴지가 되기도 한다.
휴지가 젖지않고
제 기능을 하도록 휴지주변을
물기없이 관리하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자주 젖었다가
말랐다가 하다보면
원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운을 강조하며 살다보면
무언가 자신이 더 나은 사람같다고
느끼며 비교우위에 서는
유치한 우월감에 빠진다.
그리고 계속
다른 사람의 불행에만 관심을 보이고
성공이나 노력은 애써 외면하고자 한다.
위를 보지않고 아래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성공하는 법보다 실패하는 법에
익숙해지고, 실패를 겪더라도
그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실패하는 사례에 익숙해
실패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속에서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나이들어 못난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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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월은, 현실은
사람을 또다른 모습으로
보게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전 내가 알고 있던
그 모습도 분명 어딘가
남아있을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을 만날때
기억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보다
행동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잘 알지못하는 상대가
진짜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이 널어놓는 말을 쫒다가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본 모습은 커녕
허상으로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럴거면 그냥 티비속 배우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환상적이겠죠.


어느정도의 행동을
지켜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때는 어쩔수 없이
상대의 말에 주목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도 한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나 겸손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으나,

상대가 주로 자랑을 널어놓고 있다면
그것도 열심히 편집해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상대가 말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만약 상대가 아는 누군가의
행운에 대해 자신의 일인냥
말한다면,
정작 그 상대는 어떤 행운도
겪지않은 것입니다.

대신 남의 행운을 위안삼아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의 성공이나 합격을
자랑한다면
실제로 자신이나 자신과
아주 가까운 이( 주로 자녀가 되겠죠.)
의 실패가 짐작이 됩니다.


공허한 남의 이야기에 휩쓸리지말고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것이
갈수록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늘상 솔직하게
신세한탄만 하는 사람과는
같은 이야기를 또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알게되고
깨닫게 된 것을
나누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네요.
참 만나기 힘든 것 같아요....


대화요령 타인이해하기 대화하는법
말하지않는것에주목 말보다행동



 

저주책 나는너를저주한다 아이컬스유

스트레스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적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기도 하고 대인관계에서 오는것이 대부분입니다. 기울어진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약자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회생활이라는

being-great-j.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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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광고 텔레마케팅 전화였고
간혹 연락을 잘 하지않던
지인에게서 오는 전화도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새로 바꿀때
굳이 저장된 전화번호를
몽땅 백업해 옮기지도 않는다.
필요한 번호 몇개만 골라
일일이 재입력하고
어차피 연락할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연락이 닿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불평하거나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있다.

물론 나는 개의치 않는다.




정말 중요한 용건이 있다면,
문자도 있고, 카톡으로도 연락할 수 있다.
수신자가 불편감을 느끼는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수신을 강요하며
굳이 통화를 하려는 이유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이런 내 습성이
"전화공포증"이라고 한다.



전화 공포증은
1. 전화벨소리가
울릴 때 느끼는 공포증
그리고
2. 전화를 받고
대화하는 것에 대한 공포증
3.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알려진것에 대한 공포증
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7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일부,
이후 밀레니얼 세대의 과반이
이런 전화공포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집에 단 한 대 있던 유선전화 시절,
그리고
마당까지 통화가 가능했던
무선전화기,
비퍼- 삐삐,
개인 핸드폰을 차례로 사용해왔던
나는 유선전화기가 주는
공포증부터 겪은 것 같다.

누가 전화하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유선전화기는
따르릉 벨소리도 엄청났었는데,
가끔 어른들이 받지 말라고 하는
그 전화 벨이 멈출때 까지
온 집을 쩌렁쩌렁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가족 중 누가 전화 걸려온 누구와
통화를 하고 무슨 내용을 대화 했는지
가족 모두는 원하던 원치않던
알게 되었었다.

그 이후로
모토로라 삐삐를 사용하며
집전화 대신 전화카드로
공중전화를 자주 사용했었고
제한된 숫자 부호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문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첫 개인통신기기였던
삐삐였기 때문에 연락이 오는 사람을
다른 가족과 공유하거나
가족이 아는 누군가가 아니라
오로지 나와만 관계된 사람이었고
그래서 연락이 오면
더 반가웠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삐삐의 시대는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그 다음으로
핸드폰이 보편화되며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용건을 문자로 보내며
간편함을 경험하기 시작했었다.
처음에 문자메세지는
마치 전자 메일 또는 편지 같기도 했으나
곧 캐쥬얼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이어,
카톡이 등장하며 더욱 간편하고
가볍게 용건이나 안부를 보내는 방법에
아주 빠르게 적응했다.




나의 전화공포증의 근원은
받기싫은 전화, 통화하기 불편한
대상을 기피하려는데서
시작하는 듯하다.
마주치기 싫고 대화하기 싫은 사람이
있듯이 통화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때로는
'친절,상냥'할 에너지가 부족하면
말하기가 싫어지고 그래서
통화를 기피하기도 했다.


핸드폰 속 통화 기능 중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와는
아예 통화를 하지 않는 기능이 있다.
가끔 이 기능을 쓰기도 한다.
모르는 곳에서 오는 불필요한 연락에
단 1초도 쓰기 싫으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중요한 연락이
올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요즘 중요한 정보는 전부
온라인 공지되거나 문자로 통지된다.


업무적으로
모르는 번호로 오는 연락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중요한 거래 관련
용건은 통화가 아닌
메시지나 거래 시스템으로 해결하고
업무시간외에 개인 연락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대부분은 통화하나마나 상관이 없다.
(오히려 안 받는게 낫다...)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았을때,
관심없다 양해를 구하고 끊기도 불편하고
어디서 번호를 알았냐고 묻기도 불편하다.
그 마케터나 상담원도 인격이므로
예의를 갖추어 대해야 하지만
내 시간을 방해하는 이들에게
예의까지 갖추어야 하는 상황을
되도록 피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광고번호신고 기능인
후후나 더콜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집에 자동응답 전화기를
둔 적이 있었다.
굳이 자동응답기를 쓸 필요는 없었으나
영화에서 보듯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히 과거세대는
기계에 대고 이야기하는
자동응답기를 거부했다.

자동응답기에 익숙치 않은 시모는
며느리가 일부러 전화를 안받는다는
혼잣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원치않게 남의 속마음을 아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일년에 한번 올까말까 아주 가끔 오는
안부전화도
니들끼리만 뭐 좋은거 누리고 사냐는 듯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제는
받지 않는다. 중요한 용건이 있다면
카톡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번호에다가
여기저기 명함도 뿌려졌고
조금만 찾아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수신에 더욱 조심스럽다.

나에게 전화 통화는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아무에게나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내 목소리나 목소리와 말투등에 담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나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영업용 전화번호를 일부러 광고하고
퍼뜨리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업용 영업용 번호라는
목적성이 분명한 번호라서이다.
개인 전화번호로 거는 전화는
수신자의 거부의사를 무조건
존중해야한다.
왜 전화를 받지 않냐는 항의성 물음 대신
받기 싫은 전화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




전화공포증은
타인과 얼굴을 맞대기 싫은
대인기피증과는 다르다.
오히려 통화만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제한된 상황이 불편해
직접 대면을 더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화 수신에 대한 두려움은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나
전화 응답에 대한 내용에서
실제 벨소리에 대한 두려움까지 다양하다.

벨소리에 이어지는
말하고, 연기하고, 대화해야하는 것과
관련된 생각으로 특징 지어지는
일련의 불안이 유발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혹시 전화를 통해 불쾌하거나
위협적인 상황을 겪었더라면
불안은 자기방어적인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전화를 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상대를 방해할까 걱정하는 것과
수신이 불가능할 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볼 수 있다.
단순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음을
확대해석해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끼기도 하고,
일부러 자신의 전화만을
받지 않았다는 상상으로
평소 사람을 대하는 차별적 성향이나
타인에 대한 불신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받기 싫은 전화를 받아야하고
말하기 싫은 상대와 대화해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대화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무의미한 반복을 하지 않기 위해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않기 위해
반응을 최소화하고
추가적인 대화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방법을 연습하고 기억한다.
카톡의 간편성을 부각시키는 것도
좋다고 본다.


끝으로
전화공포증, 콜포비아에
영향을 준 것은
평소 스트레스를 난폭운전으로 푸는
운전대만 잡으면 악당이 되는 사라처럼,
전화에 대고 분노를 드러내거나
폭언을 하는 등의
대면 관계에서 자신을 잃은 사람이
얼굴 없이 하는 통화에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평화를 원하기에
회피라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내 전화공포증의 이유같다.




저주책 나는너를저주한다 아이컬스유

스트레스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적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기도 하고 대인관계에서 오는것이 대부분입니다. 기울어진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약자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회생활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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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어가는 징조 20 가지 >


1. 샤워 하다가 넘어져 다치면 오래간다.

2.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데
나만 아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3. 유명한 연예인이라는데 당췌
알아볼 수가 없다.

4. 스마트폰을 하다가
자꾸 주위에 물어본다.

5. 티비 리모콘에 쓸데없이
버튼이 많은 것 같다.

6. 청바지를 한 동안 안 입었다.

7. 전직 대통령을 5명 이상을
티비에서 본 기억이 난다.

8. 나름대로 가려먹는데도
살이 찐다.

9. 옷장에 비슷한 스타일이
여러벌이다.

10. 십년 전 물건이
서랍 바로 앞에서 발견된다.

11. 방구와 트림이 조절이 잘 안된다.

12. 종종 음식이 흘러 냅킨을
목에 꽂고 싶다.

13. 은행에서 기다리는 것이
그리 귀찮치 않다.

14. 가족 중 제일 먼저 잔다.

15. 은퇴 후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하다.

16. 밤 모임을 안한 지 꽤 되었다.

17. 새 구두보다
실내에서 신는 슬리퍼에
더 관심이 간다.

18. 이미 안마기구가 있지만
새로운 상품이 궁금해진다.

19. 친구 혹은 옆집 사람이
부쩍 나이들어 보인다.

20. 남들 다 웃을 때 웃기지 않고
내가 웃을때 남들이 쳐다본다.


몸나이 마음나이 따로? 동물숫자세기 정신연령테스트 결과 해석

⁠ 금쪽상담소에서 등장해 유명한 동물 그림자 그림을 통해 몇 마리 동물이 보이는지 세는 테스트 입니다. 때때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나이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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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백신 꼰대감별테스트

나의 꼰대지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꼰대습성을 잘 감추고 살아온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잘 감추고 자제하고 겸손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밝은 세상은 위해서요.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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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꼰대는 젊어서도 꼰대였다 [책] 꼰대백신 by책하다

내 주변의 젊은 꼰대들을 겪으며, 정신 차리지 않고 살지 않으면 어느새 나도 꼰대가 되어있을지 모른다고 느낀다. 한 자리에 모여 각자 자기 말만 하는 꼰대들의 무리에는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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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게 X 책하다 : 네이버쇼핑 스마트스토어

저주가게 저주책 저주인형 제웅 X 책하다 출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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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는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함을 강요합니다.

자식의 효도를 자랑하고
친정엄마의 희생과 지원을
자랑합니다.
정말 작은 단위 가족간에
이루어지는 일을
온 사회가 집중하고 부러워하며
마치, 그런 가족이 없다면
실패한 관계라고 분류하는 듯 합니다.

가족이란 의미가 동거하는
가족간의 관계로 축소된지 오래임에도
가족간의 유대만을 강조하고
가족간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 문제라고 외면합니다.

가족간의 가치관을 공유하지도 않고
각자의 가치관대로 생활하는
가족들이 많지만
한 가족을 그룹으로 묶어
편의대로 취급하며
가족이라는 사회의 최소단위를
강요합니다.

최근 유아 아동 학대 문제가
계속 불거지며
무책임한 타인의 양육이 초래하는
결과가 드러나고 있는 것인데요,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일은
손쉽지만 그만큼 위험성이 큰일입니다.)
그렇다고 가족은, 부모는
책임있는 양육을 하는 것일까요?
출생으로 맺어진 가족은
서로 특별한 인연이지만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이는
서로간에 이익을 바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책임한 부모,
괘씸한 불효자가 근래에 발생한
새로운 사건은 결코 아닙니다.
많은 부모는 늘 양육에 소홀했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식에 집중하는 편이었습니다.
괘씸한 불효자 역시 그
괘씸함을 바로 부모에게서 배웠을 뿐입니다.

낳아줬으니 낳아준 보답을 기대하면,
태어났으니 태어나준 것으로
된 것이죠.
존재에 대한 동의없이 존재하게 된 것은
감사할 일도 원망할 일도 아닙니다.
다만 태어나 자랄때까지
존재를 부정당할 일이 없기만을
소원할 뿐이죠.

부자집에 태어났음을
함부로 자랑하면 안되듯
너그럽고 베푸는 부모를 만난 운도
함부로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노력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간의 사랑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가족은 대부분의 일상에서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족내에서 감정적 유대감을 해결하고
반사회적 성향이 사그라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는 가족내 사랑을 강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고
가끔씩만 불편한 동정을 하는 것은
편리한 일 일수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을 개인으로 보고 굳이
가족의 거울로 비추어보지 않을 때입니다.
가족의 사랑이 고팠다면
더이상 없는 사랑을 바라는 대신
베푸는 역할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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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낙태 판결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밤거리로 모여
개정된 법에 대한 항의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수천 명의 여성들은 폴란드 전역의 도시에서
새 낙태법에 항의 의사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달 폴란드 법원 판결은
강간, 근친상간 또는 산모의 건강이 위험에
처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했습니다.

지난해 98 %를 차지했던 태아 기형시
행해진 낙태는 이제는 불법화된 것입니다.
폴란드는 이미 EU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법을
가지고 있는데요,

매년 2,000건 정도가 실시되고 있으나
여성 단체는 최대 200,000 건의 낙태가
불법적으로 또는 해외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시위는 다른 도시들과 함께 포즈난, 바르샤바, 브로츠와프, 크라쿠프에서 열렸으며
방송사 TVN의 영상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10 명 이상의 사람들의 집회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국가에서 벌어졌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시위대는
법과 정의 (PiS) 정당을 이끌고 있는
야로슬라프카친스키 부총리가 있는
바르샤바 집 밖에서 진압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경찰은 경찰이 시위대가 돌을 던지고
집 주변의 전선을 훼손하려 할 때
후추 스프레이와 물리적인 힘을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장비를 착용한 경찰은 시위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일부는 확성기를 통해 시위자들에게
공개 집회 제한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북부 그디니아시의 34세 시위자 마그다는
"이 나라에서는 여성이 존경받지 못한다.
아무도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여성 가족 계획 연맹의 크리스티나 카푸라 대표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국가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향한
폴란드의 수치입니다.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이 왜 바뀌었을까?

개정 판결은 폴란드 헌법 재판소에서
전달되었으며 기형 태아의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은
헌법과 "양립 할 수 없다"며
작년에 국수주의자 PiS의 하원 의원들이
개정을 시도한 이후로 벌어진 일입니다
법원 판사의 대다수를
보수가 임명하였고
폴란드 성공회 의장과 대주교와
폴란드 대통령은 모두 이 개정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의 인권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로마 가톨릭 국가이지만
여론 조사에 따르면 낙태법을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다수가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유럽 ​​평의회 인권위원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슬픈 날"이라고 했고
도널드 터스크 전 폴란드 총리 -현재
유럽 이사회를 주재한 후 중도 우파 유럽
인민당 그룹을 이끌고 있음-도
이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낙태와 의사 법원의 판결에 대한 주제를
격렬한 전염병의 한가운데에 던지는 것은
냉소 이상입니다." 라며
혼란스러운 상황을 우려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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