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자신의 그런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부적절한 행동과 말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습관은 그것의 허용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 어릴적 80년대 후반에만 해도 길거리에서 서서 소변보는 남자가 아주 많았다. 어느 특정 담벼락에 소변금지라고 적힌 곳도 많았다. 물론 누구나 그런 모습이 보이면 싫었지만, 하도 많았기에 그런가보다 한 것이다.
살다보니 별로인 사람 감별법이 생겼다.
지난 이야기를 계속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주로 예전에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갔나를 자랑한다. 지금은 단지 운이 나빠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남 험담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 가까운 친구 사이에 남 험담은 흔한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힐링의 과정이라 보인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가 아닌, 만남에 있어 목적이 분명한 사이에서 남의 험담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인격의 밑바닥 수준이 보이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이라 넘어가면 되지만, 단 한 두명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러한 부끄러움을 보이고있다면 그 모임은 끝났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평판이 괜찮은 사람이 단지 나에게만 그렇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괜찮지 않다. 네 잘못이 아니다.
토론대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진중권 교수는 절망하고 미래에 회의적인 대학생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꼰대같은 말을 했다. 물론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안다. 그래서 그는 연대하고 투쟁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그러나 내일은 그렇지 않아야한다.
당장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불쾌하다는 의사표시를 해야한다. 그 순간을 참고 넘어가주면 무언가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헛된 기대이다.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예의를 보여줄순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단지 나를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순간 나도 그들이 되어있을 것이다.
돈때문에 당장 별로인 사람들의 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유는 당연하다. 하지만 별로라고 느낀 그 순간부터 이탈을 준비해야한다. 실력을 쌓고 시야를 넓히며 내가 원하는 바를 차분히 생각해본다.
무기력하게 그루밍 glooming되기는 순식간이다.
'여기가 별로지만 한번 참아볼까? 여기도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설마 날 죽이겠어? 어떻게든 경력을 쌓아야하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별로인 곳, 비상식적인 곳에서 이탈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분치 못한 능력을 가진 처지의 당신이 그저 참고 버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의 대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희생양에서 시작하여 방관자로 또 동조자로, 결국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나하면 비상식적인 직장이나 단체에서 오래 버티려면, 매일 매순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해야 하는데, 응력으로 튕겨져나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익숙해지고 그루밍되면서 위계관계가 일상화되어 자연스럽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사회나 제도 문화에 불만이 많은 사람에게는 뭐가 그렇게 항상 불만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근데 오히려 불만이 없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이 그렇게도 만족스럽고 아무 문제도 만들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다가올 보편적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반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