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공식1 : 말 ‹ 행동

 

 내가 그나마 이 나이까지 살면서 다행스럽게도 터득한 지혜 하나는 상대방을 판단할 때 그가 허공에 대고 떠드는 말 보다 말 아래에 깔린 실질적인 행동, 즉 과거에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많은 말들을 늘어 놓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말 뿐일 경우가 많으며, 실제 행 하는 행동이야말로 그 사람의 말 중에서 본인이 진짜 믿고 있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 사람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20대 혹은 30대 남성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 모임을 통해 얻으려 했던 원래 목적 에다가 덤으로 색다른 기회까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는 긍정적인 기대를 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는 것을 떠올리더라도 행동은 전혀 확인이 안 되는 말이 넘쳤고, 나에게 자신의 서브 역할을 하라고 한 것에서 그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아마도 그 남성에게는 내가 자신이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 정도로 보였나 보다. 나는 적어도 그 남성보다는 이 분야에서 경력이 많았고 정식 자격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티가 안 나 유감이다. 남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될 때, 그 평가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도 재미 지다. 

한국인이자 40대 여성인 나에게 자주 닥치는 차별적 시선이나 무례함으로 인한 불쾌함은 어느 곳 어느 자리 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역치의 선 만 넘지 않으면 참으려 하고 간혹 못 참겠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소극적으로나마 표현을 하곤 했다. 그리고 별 것도 아니고 의미 없는 대상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당시는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때 였었다. 나는 사람들의 진심에 관심이 있었고 내가 알고 싶은 그 진심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말 속에 먼저 등장하고 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장, 거짓말이라도 어느 정도는 참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자 마자 이건 헛소리 구나 라고 생각이 드는 이야기도 참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화자의 마음 속 진심이나 도저히 포장이 안 되는 사실이 튀어 나오는 것을 알아냈다. 사실 이것이 독심술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에 대해 과대 포장해서 말하거나, 우연히 얻은 운에 대해서 마르고 닳도록 써 먹으며 이야기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내려 했던 이야기는 그런 텅 빈 내용보다는 그 사람이 결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 혹은 전과 다른 용감한 행동을 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 지, 바로 그것 이었다.

쏟아지는 사람의 말 속에서 숨어있던 진실을 발견할 때 생기는 반가운 기분이 있다. 자발적으로 경청 훈련을 시작했던 나는 그 남성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툭툭 튀어 나오려는, 내 솔직한 감정에서 오는 반응을 필사적으로 누르려 애썼다. 그 과시적이었던 30대 초반 어쩌면20대 후반 남성의 말을 들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나는 무표정 하려고 애썼다.

평소에 내 얼굴 표정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고 내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얼굴을 문에 바짝 대고 서 있던 사람의 얼굴을 갑자기 볼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떴던 내 표정을, 엘리베이터 문 앞에 얼굴을 대고 서 있던 그 사람은 그런 내 표정을 보고 오히려 어이 없다는 표정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평소 감정을 숨기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던 나는 모르는 사람과 너무 솔직한 감정 교류를 해 버렸던 순간이었다.

내 감정을 숨기는 일, 다시 말하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을 그냥 넘겨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유치하고 또 이기적으로 보일까 자기 검열 차원에서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의 눈치를 보거나 거짓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무례한 상대도 주변의 솔직한 반응을 볼 의무가 있다. , 물론 평등한 관계에서 말이다.

투명한 내 표정은 내가 굳이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 야 하는 생존 훈련 과정을 겪지 않음에서 온 것 같다. 만약 엘리베이터 문 밖에서 얼굴을 대던 엉덩이를 대던 간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서 있던 그 사람이 그 건물 에서 쥐꼬리만한 권한이라도 지닌 사람이었더라면, 그 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나에게 어떻게 든 앙갚음 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바로 사회 생활 못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함은 뭐 라도 있는 사람이 주로 애용하는 감정이면서, 또한 자유로운 영혼들이 애용하는 감정이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솔직함을 요령껏 잘 숨기는 사람 이 많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사람은 본심을 그리 오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다. 편집 화면이 아닌 연속 화면, 롱 테이크로 어떤 사람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단지 시간과 노력이 조금 필요할 뿐이라는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포장도 능력인가

 

 그 날 나는 백 명 이상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여러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보여 주는 말이나 태도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 는 남성들이 마치 그룹 토의 면접을 준비하는 듯한 자신감이 고취된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모임 에서 젊은 여성들 역시 상당수를 이루었었는데 20대를 갓 넘어선, 혹은 그 이상의 나이쯤으로 보였던 그들의 에너지 역시 대단했다.

조금 과장하여 약간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졌던 그들의 자신감은, 과거에 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수준 까지는 성취가 가능하다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사회 수준에서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실력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 청년들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과 더불어 자신을 드러내야만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청년 취업 시장의 녹록지 않음까지 도 엿볼 수 있었다.

아쉬웠던 부분은, 자신감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그 자신감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겸손하기도 해야 하는 것, 또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허풍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뽑히고 누가 떨어지는 취업 면접장이 아니었음 에도 확신에 찬 모습과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는 이들 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잊고 있었던20, 30대 남성 일부의 자기 중심적 특성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그들의 말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참가자들의 개인적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모임에 초대를 받은 것 자체가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경력을 쌓아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무도 그들이 말하는 성공다운 성공을 못했다는 것 이다. 그러면 겸손한 편이 유리 했다. 태도나 말투에서 해외에서 오래 산 것처럼은 안 보였던 그 사람은, 서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적정한 정보를 공개 하고, 겸손하면서 혹은 필요에 따라 근거를 통해 말하 는 것이 서로를 잘 모르는 관계에서 신뢰를 줄 수도 있었던 점을 잊고 있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어쩌면 그 모임 후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며 보내는 나에 비해 그 남성은 점점 일이 많아져 안정된 수입을 얻기 시작했을 지는 알 수 없다.

젊은 꼰대들이 출몰했던 그 날 여기 저기에서 들려 오던 말 속에 어김없이 자기 과시는 드러났다. 거기에 다 조금 더 용기를 낸 일부는 타인에 대한 오지랖을 넘어 결국 라떼(‘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자신 보다 모자라 보이는 타인을 향한 훈계)가 등장했다. 아무리 많게 보아도 고작 30년 남짓을 산 이들의 라떼, 삶의 경험과 성찰에 의해 얻은 지혜나 어떤 깨달음이 아닌, 그들 인생에 있어서 나름대로 특이했던 경험 이라고 치는 군대 경력과 해외 경험과 단기 취업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그렇게 대단한 경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40대 아줌마인 나 를 경쟁자로 보고 이겨 먹으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참 모자라 보여, 꼰대 본능에서 오는 오지랖을 편안 하게 부린 것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싫지만,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기성 세대에게는 나이에 의한 위계문화가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같은 성별 간에서는 나이를 거스르 는 이른바 하극상 꼰대가 흔하지는 않다. 물론 성별이 달라 지면 거기에는 나이 위계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꼰대에게는 성차별 의식도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만났던 그 젊은 꼰대 는 내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여성이라는, 단지 눈에 쉽게 보이는 정보 만으로 자신감에 차올라 꼰대 본심 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민감 하게 반응했더라면 그 대화는 적당한 선에서 끊어졌을 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자발적으로 경청 트레이닝을 하는 중이었고,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고 타인의 말을 경청을 했으며 지금까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 젊은 꼰대가 가진 지나친 자기 확신은 평소 부터 있어 왔고 그 날 하필 나를 상대로 보여졌던 것 이라 생각한다.

갈가 말까 고민하는 자리는 보통 안 가는 게 맞지만 때로는 기대 없이 참석한 자리에서 뜻 밖의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 남성뿐만 아니라 그 남성과 가까이 대화를 하던 겉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은 그 날 모임을 주선한 업체 직원들과 아주 긴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낯선 사람들이 모인 자리를 어색해하는 다수의 사람들 과 달리 자신이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서둘러 주최 측 혹은 내부 관계자 등 뭔가 핵심적인 위치의 사람들과 잘 알고 있고 친밀하다는 것을 보이려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사회성이 남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행동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관계가 이어지던 어떻게 되던 그것보다는 일단 자신이 특별 하다는 과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자신 보다 모자라 보이는 나 같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 만의 기발한 사회 생활 요령 이라도 가르치려는 듯 한참을 떠들며 존재감을 보이고 싶어한다. 의도가 너무 얕은데 있고 충분치도 않아 금새 바닥이 드러나 버리는 아쉬 운 전개이고 말았지만.

 

 

 

 

게시된 모든 내용의 사용 권리는 책하다 작가, 본 블로그 저자에 있습니다.  

 

반응형

'[출간도서]젊은꼰대백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은)꼰대백신5  (0) 2021.11.15
(젊은)꼰대백신4  (0) 2021.11.15
[공개출간]꼰대백신2  (0) 2020.12.21
꼰대백신 꼰대감별테스트  (0) 2020.11.17
[출간] 꼰대백신 1  (0) 2020.10.29
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
728x90
반응형






"야!  오늘은 못참겠다.
빨리 일어나서 가라, 인간적으로."

거실바닥에 자고 있는 송혁언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이는 송혁언의 전 부인이다. 이혼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송씨는 전부인 집을 친정인양  찾아 온다.
송씨는 이혼한 부인이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릴까 봐 계속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매달 약간의 생활비를 갖다주며 전 부인이 엄한 놈을 만나고 다니지 않도록 하려고, 이혼을 하고 나서야 남편 노릇을 그나마 하는 중이다.

송씨의 전부인은 송씨가 내미는 돈이 이상하지 않았다. 이혼 위자료도 한 푼 받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전 남편 송씨의 돈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집에 들어와 자기 집 인양 차지하고 있는 송혁언을 보면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송씨의 전부인은 자신의 잔소리에 아랑 곳 않고 자는
송씨를 쏘아보고 출근을 해버린다. 현관문이 쾅 닫히고 현관잠금장치가 삐리리 소리가 나자 송혁언은 그제야 슬며시 일어난다.
냉장고를 열고 속을 두리번거리다 아래칸의 큰 김치통을 보고 뚜껑을 열어 김치부터 꺼낸다. 밥솥을 열어보았지만 안은 텅 비어 있다.

'젠장, 밥도 안했구만.'

부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라면 한 봉지를 찾아낸다.
라면을 끓여 냄비채로 가져와서는 아까 꺼내 둔 김치와 함께 먹기 시작한다. 송씨의 전부인의 친언니가 담아 보내주는 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이 끝내준다.


송혁언은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었다. 이민 간 미국은 상처의 깊이만 다를 뿐 매일 상처를 주는 곳이었고 온 몸으로 그 상처들을 견뎌 내야 했다. 어린 동생들은 미국 친구들을 사귀고 말도 빨리 배웠지만 송혁언은 수줍은 성격에 경계심까지 생겨 저절로 입이 무거운 성격이 되었다.

이민을 떠나면서 부모가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도망친 것을 알게 되었고, 쉽게 생긴 돈이라서 였을까 송씨의 부모는 그 돈을 빨리도 모두 날려버렸다.

송씨는 조용히 그리고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인타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한국에서 유치원이나 초등상대  영어강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조금이나마 모은 돈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씨의 부모는 송씨가 고향 한국에 자리를 잡으면 따라가 살겠다고 맏아들에게 미련을 보였지만 사실, 송씨의 동생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동생들이 송씨보다 먼저 미국에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더 컸다.


송씨는 운좋게도 한국에 와서 서울 마포의 한 영어학원에 강사로 채용이 되었다. 송씨가 미국에서 온 교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혀를 굴리자 별다른 확인 없이  채용이 된 것이었다.
송씨는 학원에서 젊은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송씨의 전부인이 바로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송씨를 미국시민권자로 알아 혹시나 미국으로 가서 살수 있을거라 기대했던 송씨의 부인은 송씨가 조건부 영주권자였던 것을 뒤늦게 알았고 그때부터 다툼이 시작되었다.

3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왔던 송혁언은 40이 조금 넘어 직접 학원을 차려 사업을 시작했고 운좋게도 학원은 운영이 잘 되었다. 송씨는 열 명의 강사를 채용해 원장님 소리를 들었는데, 통장에 돈이 쌓여가자 나스닥 주식에 큰 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하고 말았다.
부인과는 외도문제로 이혼을 했고 학원을 말아먹은 덕에 부인과 나누거나 위자료라도 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전 부인의 허황된 기대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뭐라도 하려로 시도해보았으나 미국에서 자리잡은 동생들은 빈혼인 형의 리턴을 반기지 않았다. 부모님이 힘들게 지내고 동생들이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할 때, 혼자 한국으로 도망간 형을 결단코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송씨는 쌀쌀 맞게도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미국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가 다시 상처를 입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혁언은 50이 다 된 나이에 학원강사로 일하려고 알바천국 앱을 깔았다. 연락이 온 곳이라고는 여학생들이 있는 성인대상 회화학원은 일절 없었고 그나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강사 자리 밖에 없었다. 운좋게 면접을 보러간 서울 외곽의 한 초등 영어학원 주변에는 잠시 둘러보아도 영어학원이 여러개 더 보였다.  이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은 자신이 아는 영어강사를 면접관으로 불렀고 둘은 송혁언의 이력서를 훑어 보았다. 그러고 질문을 흘렸다.

"송 선생님, 미국시민권자에요?"

-- "네"

"혹시 비자 확인 할수 있을까요?"

--"네? 그건 당장은 어렵고요.."

"시민권자는 맞으세요? 그런데 최종학력이 무슨 스쿨인데 고졸이신가요? 컬리지 나오신건가요?"

--"한국과 제도가 조금 달라서 설명하기는 힘든데 고졸과 대졸 중간쯤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 소리야, 참. 아닙니다. 그럼 수업시연 지금 해보시죠."

--"네? 지금 바로요?"

"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송혁언은  칠판 앞에 서서 어정쩡 수업을 시작했다. 학원이 망하고 폐인처럼 지내다 과외를 시작했는데 시험대비를 해주기에는 실력이 한참 떨어졌고, 회화반은 원어민들에 밀려 자리가 없었다.

간신히 찾은 초등영어학원에서 자신을 구경보고 있는
원장과 원장 친구 앞에서 뭐라도 해야하는 송씨는 칠판을 긁적였다.

"송혁언 선생님,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문법이 많이 모자라신 것 같고 교포라고 하시지만 국내 대졸자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간판은 그럴듯하게 꾸미면 되니까 일단 기초 파닉스반에 맞으실 것 같고 주로 7세에서 8세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부드럽게 대해야 하는데 잘하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파닉스반도 가능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고 혹시 직접 학원을 차리셨던 적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네, 누가 어디서 봤다고 해서요. 으흠. 아무튼 다음주부터 출근해주시고 첫 수업 하시는 것 보고 수업 횟수
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페이는 일단 시간당 만원으로 가고 봐가면서 올려드릴게요. 괜찮으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송씨는 겨우 연락 온 학원의 조건을 생각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1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받는 대가는 150만원 정도였다. 그 외에 아무런 제공은 없었다. 송씨는 50이 다 된  할아저씨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것 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  전 부인에게 생활비를 갖다주고 관계를 이어가려면 단돈 1백만원 아니 1십만원이라도 필요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송씨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고 영어든 뭐든 가르치는 일 역시 송씨에게 맞는 일은 아니었다. 여학생들과 시시덕거리며
영어로 대화하는 그런 것이나 재미있었지 학문적으로 누굴 가르칠 능력도 마음 가짐도 없었으나, 송씨가 한국에서 할 일은 그것 뿐이었다. 송씨는  미국 영주권 박탈 위기에 처해있었고 그렇다고 완전한 한국인이 되는 것도 싫었다.  조만간 이중국적을 정리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려면 미국인이어야 하고 한국에 더 머물려면 한국인이어야 하는 박쥐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하던  학원이 다른 업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원장은 권리금을 받고 판 뒤, 한 일년 여행을 다니다가 다른 곳에 다시 학원을 차린다고 했다.
송씨는 이 기회를 잘 잡아보고 싶었다. 학원을 인수하려는 사람이 수학 학원으로 운영하려는 것을 알고 영어학원까지 합쳐서 종합학원으로 운영하자고
설득을 시작했다.


" 사장님, 아니 원장님, 두 과목 모두 하시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아이들이 보통 학원 두 개 씩 다니는데 그게 영 수입니다. 제가 사교육계에서 일한지도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초등 영어 쪽은 제가 눈감고도 다 압니다. 저만 믿어주시면 제가 확실히 살려보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도 오래 살았고 학원 경력이 이만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저는 월 300만원 정도 받으면 되고 학원이 더 커지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네, 사장님? 아니 사모님? 그런데 사모님 참 엘레강스 하십니다. 허허"


송씨는 평생 살며 지금까지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절절하게 말을 널어놓았다. 송씨의 말에 넘어가 준 학원 인수자는 학원을 반 나누어 송씨와 나누어 경영을 하기 시작했고 50대에 갑자기 부원장 직함을 달게 된 송혁언은 아주 오랜만에  의욕이 넘쳤다. 그 덕분인지 송씨 말대로 수강생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송혁언은 자신이 사장에게 벌어다주는 매출이 1억에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지분을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송씨는 자신은 주3일 총 12시간만 수업을 하고  강사를 두 명 더 뽑아 다른 시간을 채우자고 주장했고학원 원장은 송씨의 말을 따랐다. 알바천국에 강사신규채용 공고를 내자마자 이력서가 쇄도했다.


"송 부원장, 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이에요. 이력서
확인해보세요"

--"음... 일단 교실로 가시죠."

송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듯한 강사 지원자를 교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 자 그럼 수업 시연 해보세요"

이름도 묻지 않고 송씨의 해보라는 말에 어색하게 수업을 시작하던 강사 지원자를 보다가 갑자기 송씨는 수업을 멈추게 했다.

" 자, 잠깐만요. 선생님,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티칭스킬이 많이 모자라신 것 같고 교육학 전공이 라고 하시지만 고졸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십니다. 그래도 간판은 그럴 듯하게 꾸미면 되니까 일단 기초파닉스반에 맞으실 것 같고 주로 7세에서 8세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카리스마 있게 대해야 하는데  잘하실 수 있으실까요?"

--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제가 영어 교육 20년 경력에 국내 파닉스 전문가입니다. 저한테 도제식으로 배우셔야 합니다. 제 수업 모두 들으시고 숙지하시고 그대로 시연할 수 있을 때 그때부터 정식 페이 지급되고요 계약 들어갑니다. 아시겠어요?"

--"수습기간이 얼마나 되는지요?"

"선생님 하기에 달렸어요. 똑똑하시면 빨리 하실거고,
느리시면 늦을거고. 그런데 혼자 사시나 보네요.  혹시 애인은 있고? 없으시다고요. 생각 있으시면 오늘부터
배워 보실래요? 제 수행비서처럼 따라 다니시면 됩니다. 일단 겉옷 벗어서 저기 두시고  여기로 앉아보세요. 식사는 하셨나?  뭐 좋아해?"


송씨는 신규 강사로 들어온 여성에게 과거 자신이 숱하게 들어온 인터뷰 갑질을 몽땅 재현했고, 그런데도
별 거부 반응이 없는 여성을 보고 점점 간이 커지고 있었다.


송씨는 큰 두갈래 길에 서 있다. 전 부인을 달래가며
하던 학원강사 일을 할 데까지 하는 것과 지금 앞에서 잡혀온 초식동물 마냥 가만히 있는 이 여성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며  앞 일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송씨의 담배로 쩌든 시커먼 얼굴에 박힌 누런 두 눈알이 데굴거리며 앞에 서 있는 이의 아래 위를 훑고 있다.




반응형
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
728x90
반응형





“이봐, 나 숨이 안 쉬어져. 숨이 안 쉬어 진다고! 이봐!”

김기동씨는 가슴을 움켜쥐고 간호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환자복을 잡아 뜯으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김기동씨는 입원실 유리 창문 쪽을 계속 쳐다 보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이 없자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악! 숨이 안 쉬어 진다고! 환자가 부르는데 왜 아무도 안 쳐다보는 거야!”
소리치던 김기동씨는 의외로 간호사 호출 벨을 누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때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기동 할아버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필요할 때 여기 벨 누르시라고 말씀 드렸죠. 소리 지르시면 목 아프시니까 여기 벨을 누르세요.”
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숨이 안 쉬어진다고 내가! 가슴 통증이 또 심해졌다. 빨리빨리 부르면 와야지 말이야! 아참, 간호원부터 좀 바꿔 줘!”

김기동 씨는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간호사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할아버님, 지금 말씀 크게 하시는 것 보니까 호흡 곤란은 아닌 것 같아요. 가슴 통증이 있다고 하시니까 담당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진통제 투약 해드릴게요.”

“아니, 내가 숨이 안 쉬어진다는데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간호원 주제에 환자를 잘 돌보려고 하지는 않고 밖에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있재?” 

김기동 씨는 아직 화가 치미는 듯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김기동 할아버지, 이제 점심 드실 때 되셨어요. 챙겨서 갖다 드릴게요. 그리고 필요하시면 이 벨을 누르세요.”

이 간호사는 김 노인의 항의에 익숙한 듯 태연하게 환자 상태를 둘러보고 병실을 나왔다. 
방호복을 입은 이 간호사가 얼굴에 쓴 고글에는 김이 서려 있었고, 흐릿한 김 뒤편으로 지쳐 보이는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김기동 씨 병실을 나온 이 간호사가 기록을 남기고 담당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간호사에게 아래층 병실에 다녀온 다른 간호사가 다가왔다.  

“저희 12층 환자 중 세 명 정도는 이번 주에 퇴원할 것 같아요.  그런데 10호실 김 할아버지 안 좋아지셨어요?”

“아니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좀 심적으로 불편하신가 봐요. 그러게, 재검사 결과가 언제 나온대요? 환자들 모두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면 좋으실 텐데요.” 라고 이 간호사가 말했다.

“네, 다들 힘드시겠죠. 김 할아버지도 갈수록 심해지시네요.”

“선생님도 힘내세요. 환자분들 식사 나눠드리고 우리도 조금 쉬어요.”

“그래요. 전부 천재지변 전염병 탓이지 누구 탓이겠어요.”


방금 전까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호소하던 김기동 씨는 간호사가 나가자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환자복을 고쳐 입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계속 지켜 보았다. 

11시 58분 15초, 16초, 16초......
12시 10분 30초, 31초, 32초……
12시 11분 02초, 03초, 04초……

김기동 씨는 침대 식탁을 세워 펼쳤다. 
12시 15분 45초, 46초, 47초……
12시 17분 9초, 10초, 11초……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점심 식사가 도착했다. 
이 간호사가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할아버님, 식사 왔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문 앞에 내려놔 주세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식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왜 이리 늦게 왔어! 다른 방에 먼저 주고 왔나?”

“아, 네 조금 늦었어요. 배고프셨죠? 맛있게 드시고 약 챙겨드세요.”

이 간호사는 식판을 탁자에 내려두고 서둘러 옆 병실로 갔다.
김기동 씨는 시선을 차지한 식판에 놓인 반찬 그릇 뚜껑들을 조심히 열었다. 오늘 점심 반찬은 생선구이와 오이생채, 고사리무침이었다. 국그릇 뚜껑을 여니 소고기 무국이 나왔다. 김기동 씨는 고사리 무침 뚜껑은 도로 덮어버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생선 살을 발라먹다가 뼈에 붙은 살까지 다 먹으려고 뼈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다가 퉤 뱉어냈다. 국물까지 얼추 다 마시고 식사를 끝낸 김기동 씨는 발라낸 생선 뼈 조각과 씹다 뱉어낸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보이는 식판을 대충 들어다가 병실 문 앞에 내려두었다. 지저분한 식판 위에 고사리 반찬 그릇의 뚜껑은 그대로 덮여 있었다.

김기동 씨는 점심 약 봉지를 챙겼다. 당뇨약과 혈압약 병에서 먹을 알 수까지 헤아렸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서서 다시 벽 시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식판을 회수하는 봉사자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기동 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고사리를 왜 먹으라고 주나? 그게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남자 전립선을 다 죽인다는데. 병원 밥에다가 그런 거를 넣어서 환자 먹으라고 주나? 거기, 아줌마. 가서 애기 좀 해. 지난번에도 내가 한 번 말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나.”

봉사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할부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고소하게 고사리 볶아서 드린 건데, 좋은 대학 나온 똑똑한 영양사가 다 연구해서 드시라고 하는 거에요. 고사리가 몸에 안 좋다는 거 가짜뉴스에요. 믿지 마세요. 근데 할부지 전립선 어디다 쓰시게? 흐흐”

중년 여성 봉사자의 농담에 기분이 상한 김기동 씨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병실에 서서 다시 시계를 보던 김기동 씨는 12시 55분이 되자 약봉지를 뜯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기침 증상을 완화한다는 가글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진통제를 처방 받아 병실로 왔다.

“김 할아버지, 이거 진통제에요. 아까 가슴이 아프다고 하셔서 일단 이거 드시고 오후에 선생님 회진 하실 때 다시 봐 드릴 거에요. 약 지금 드시면 돼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의 말에 아무 대꾸 없이 입만 계속 작게 우물거렸다.  

“할아버지 아시겠죠? 이거 지금 드시면 되요. 지난번처럼 반만 드시거나 하지 말고 두 알 다 드셔야 해요. 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하는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무표정하게 계속 입만 우물거렸다.

“아까 제가 말씀 드렸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 벨 누르시고, 이 약은 지금 드셔야 한다고요. 알아 들으셨죠?”
이 간호사는 김기동 씨에게 당부를 하고 잠시 쳐다보다가 병실을 나갔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에 아무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시계만 쳐다보다가 60초 기침약 가글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손에 들고 가만히 보던 김기동 씨는 두 알 중 한 알만 먹고 다른 한 알을 서랍 속 봉지 안에 넣어버렸다. 그러고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는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다시 시계 바늘만 주시하던 김기동 씨는 한 시간이 딱 지나자 다시 일어나 침대 아래 가방을 열었다. 침대 밑에 둔 가방에는 약병과 약이 든 상자가 가득했다. 그 안에서 몇 개 병들을 꺼내더니 먼저 녹색 가루를 한 스푼 입에 털어 넣었고, 검은색 환을 한 주먹 삼켰다. 그리고 액상 스틱 하나를 짜 마시고 나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아래에 내려두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김 기동 씨는 손으로 한동안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쓸어 내리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반응형
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