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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영철이 소장 도서 328권을 도서관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기부된 소장도서를 따로 분류한 장소에 그럴듯한 이름도 붙여 김영철 개인적 홍보효과가 꽤 있어 보입니다.

 일간스포츠 기사에서 김영철 씨가 도서관을 출입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도서관을 출입하는 모습이 "있어 보여서" 라고 했다고 합니다. 

 10년 이상 거의 매주 공공 도서관을 출입하고 있는 나는 왜 한번도 내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도서관이 나에게 준 지적 행복을 모두 꺼내 보이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목록정리라도 조금 해보려 합니다.

 

 도서관을 안 가던 사람이 어느날 도서관에 간다면, 아마도 인기신간 도서를 보려는 이유가 클 것 입니다. 

하지만 막상 자료실을 둘러보면, 인기 신간 소설이나 에세이집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도서관과 서점의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지요.

공공 도서관은 이용이 무료이지만 그 개방성 때문에 소수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도 하죠. 

물론 검색을 해보면 1년 미만의 신간이 자료실에 분명 존재는 하지만 이미 대출이 되었거나 대출예약도서로 등록되어 있거나 혹은 속이 부풀대로 부풀어 얼룩덜룩 해진 채, 지친 모습으로 서가에 꽂혀 있죠.

굳이 인기 신간을 봐야만 하겠다면 예약을 하고 기다리면 되지만 글쎄... 신간 짝사랑 보다는 숨은 보석인 구간 찾기가 더 재밌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도서관과 이미 친해져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도서관과 친하고 서가를 자연스럽게 누비고 다닙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독서관련 활동이나 도서관 방문 프로그램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도 금방 찾지요.

거의 대부분 도서관이 어린이 자료실을 따로 마련해두어서 초등생 이하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성인책만큼 많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가정집 거실 벽면이나 아이들 방 벽면을 책으로 채운 집이 많이 있습니다. 계속 책을 사들여 집 벽을 채워 나가다 보면 순수한 독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또다른 형태의 소유욕을 채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책으로 벽면을 채워도 도서관만큼 책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책 자체에 대한 애정이 책을 읽는 열정으로 저절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출발은 나쁘지 않습니다.

 

 학생 시절 도서관에 가면 대출도서가 많아야 두 세권이라 그냥 손에 끼고 오면 되었죠. 그 때는 내가 빌린 책의 제목을 누구든 볼 수 있었고, 그것으로 나에 대한 인상이 정해질 수도 있었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엉뚱발칙한 제목의 책을 들고 다니며 진짜 내 자신을 숨기려 했었었습니다. 귀여웠었죠.     

 

그 뒤 아이가 생기며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에 아이와 함께 책을 실어 나르고 다녔습니다.

유모차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부분 엄청난 실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를 편안하게 싣고 다니는 것 뿐만 아니라 미는 사람도 많이 힘이 들지 않는 구조에, 또 수납도 상당히 많이 됩니다.

유모차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어느 날, 그 많은 짐들을 다 어깨에 매아 한다는 상황에 당황스러웠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이불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커다란 포셀린 백에 책을 담아 다녔습니다.

체육관과 함께 지어져 멋졌던 그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던 시절, 가족수 대로 대출한도를 꽉 채워 빌리면 그 무게가 어깨가 빠질 만큼 큼 엄청났었습니다. 수영장 셔틀버스를 탈 수 있어서 그런 자가 운반이 가능했었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도서관들에서 두 세 권이었던 대출한도를 거기는 5권에서 7권까지 늘려 놓아 아이 둘과 함께 가면 열 댓권의 책을 대출할 수 있어서 한도를 꽉 채워 대출하곤 했습니다.  

특히 아동 도서는 책장수는 적어도 표지가 두껍고 거기다가 크기 또한 커서 질긴 포셀린 가방도 몇 개월이면 찢어지기 일 수 였습니다.    

 

최근에는 장바구니용 핸드카트를 사용합니다.

내가 사는 고양시는 본인의 대출카드에 가족대표로 등록을 해두면 온가족 대출을 한 사람이 다 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일인당 7권씩 4명분 총 28권의 책을 넉넉히 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독자들의 환영을 받지요. 무엇보다 고양시는 전체 도서관 수가 아주 많아 동네별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서관이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10년 이상 책 셔틀을 한 덕분에 아이들은 책을 아주 자연스럽게 봅니다. 갑자기 심심해지거나 뭔가 할 것이 없나 두리번 거릴 때 자연스럽게 책꽂이로 다가가 책을 집어 읽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독서 분야도 있어서 아이의 취향을 유심히 보았다가 비슷한 책을 계속 이어서 빌려오고는 합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읽을 엄두도 안났던 삼국지를 덥석 잡아 읽는 아이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후 수호지 등 여러 중국 고전을 실어 날으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이를 끌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부지런하다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주변 사람들이 궁상떤다는 눈치를 주었던 것도 있습니다. 남들이 보던 더러운 책을 아이에게 읽게 주냐며 책에 투자 좀 하라는 의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책을 찾아 재밌게 보고 나면 반납하지 않고 그냥 집 서가에 꽂아 두고 싶지 않냐는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마음이 가 가지고 싶은 책을 구매해 본 적도 있지만, 희안하게도 책을 사고나면 더 이상 읽지는 않고, 그 표지만 뿌듯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책 내용 전체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 때의 감동이 계속 유지 되지도 않는데, 단지 아련한 이미지로 추억될 책을 계속 사재어 집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경험도 교육적으로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읽은 보석같은 책은 기억 속에 정리해두고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양서들이 더 엄청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계속 도서관 서가를 두리번 거리고 있습니다.

책 자체보다는 바로 어느 작가의 특별하고 신선한 생각에 대한 공유 욕심이 도서관을 못 끊게 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안 읽은 책이 계속 줄지 않는 화수분 같은 지식 창고, 어떻게 그 곳을 잊을수 있을까요.

 

조금 더해 20년 가까이 책장을 넘기며 살다보니 도서관 다니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더이상 두꺼운 양장 표지의 동화책을 빌리지는 않지만, 청소년 도서의 다양함을 또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사한 곳이 바로 동네에서 도서관 최단거리 아파트라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기 바빠서 그렇지 책 구하기 어려워 책을 못보는 것은 아니에요. 

도서관에 오래 다니다 보니 도서관 돌아가는 시스템이나 직원들도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초보 사서의 어설픔도 3초면 알아채지요.  

 

 내가 매주 읽은 책 중 몇 권의 흔적을 sns에 남기다 보니 앨범을 만드는 재미 같은 것도 있습니다. 다시 뒤져서 예전에 담아둔 문구를 읽으며 세상살이 내공을 쌓아가기도 합니다. 책 표지에 딱 붙여진 00도서관 자료 라는 스티커가 동네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도 합니다.

 

 김영철 씨가 느꼈다는 도서관 다님이 있어보이는 것. 김영철 씨가 바로 가진 사람이자 내적 사치를 아는 사람이라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447697&c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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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다. 사랑은 사람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의 좋은 예이다.사랑은 퇴색되고 변하며 망각된다. 결혼 전 나름대로 배우자와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성을 압도하지만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 까지 정신을 차려볼 만한 순간은 여러 번 있다. 이 남자가 과연 꾸준한 수입을 만들 것인가, 남자의 부모로부터 재산을 받아낼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줄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해봤다면... 앞으로도 쭉 하지 말길...
배우자가 생기고 나면 배우자 있는 여자들까리 비교가 시작된다. 배우자 없는 여자와는 한여름 냉장고에 반찬거리 없듯 얘깃거리가 뚝 떨어진다. 시가의 재산현황에 대한 자랑과, 남편의 수입에 대한 자랑, 결혼과 동시에 여유있는 중산층이 되었다는 착각에, 그래서 신혼은 즐거운 것이다. 결혼 전 스스로 창출해 낸 수입을 소비하는 재미는 수입이 없어지더라도 잊기 어렵다.
더 늦기전에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가진다. 육아서적을 넘겨보기도 하지만 육아서적보다는 유아용품의 고가 브랜드 라인업에 더 관심이 간다. 단 몇 퍼센트 라도 세일가가 적용된 번듯한 육아용품을 구하기 위해 하루를 투자하고 지낸다. 9달만에 배속에서 자라다 태어나는 아이는 아쉽지만 그렇게 태어나 버렸다. 그리고 절대 경험 못 해 본 호모 사피엔스적 존재감 상실을 경험한다.
친정엄마에게 늘 도움을 구하며, 너무나 아쁘고 사랑스런 아이와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순간만을 갈구한다. 육아서적을 읽고, tv에 나온 육아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 하고싶지만 결국 친정엄마의 오래된 노하우가 답이라 여기고 따른다. 늘어진 뱃살을 정리하려고 운동도 하려 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기는 너무 어렵다.
영캐쥬얼에서 부인복 브랜드로 갈아타니 저절로 날씬해진 느낌이다. 아파트에 다니는 책장사 아줌마들과 안면을 트고, 아이를 위한 교육교재에 투자하는 똑똑한 엄마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를 위한다지만 내 sns용 해외여행도 필수이다. 어린이집을 옮기려 정보수집 중이다. 동네 소문이 중요한 것 같았다. 아이친구가 곧 엄마 친구이기 때분이다. 함께 키즈카페를 다닐 엄마모임이 필요했다. 산후조리원 친구는 합격, 나보다 더 뚱뚱하지만 2백만원짜리 다이어트를 곧 시작할 예정이란다. 남편의 수입이 꽤 되는 것 같았다. 앞동 친구도 나쁘지 않다. 시가가 잘 살아 머지않아 30평대로 이사갈 듯 하기 때문이다. 같은 층 새댁은 별로다. 지방 출신인데다가 사투리가 심하다. 같이 있다간 우리 아이도 사투리병에 옮을 것만 같다. 그 놀이터 친구는 생각 중이다. 아무래도 고졸인 것 같은데, 대놓고 물어보기는 좀 그그랬다. 게다가 곧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니 맞벌이 가정은 모임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생각나는 한 명, 대학원 졸업 예정이라는 그 이웃은 나이도 좀 많았고 아이가 부산스러워 결정이 힘들었다.
4명 정도로 추려보려고 고심 끝에 큰 아이가 있는 또다른 친구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임 친구들과 거의 매주, 며칠에 한번 꼴로 만나며 친해졌고, 아이들의 예체능 수업도 같이 하며 30대에 10대 집단문화를 형성해 다니게 되었다. 친한 무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감 마저 들었고, 매일 볼 친구를 못 만든 다른 이들의 부러운 시선에 우월감을 느꼈다. 남들이 보기엔 친한 듯 했지만 결국 이해관계를 위한 모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다보면 다른 점만 남게 되어 서로간의 거리는 최소한 일진 몰라도 더이상 좁아지지는 못하는 거리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결국 한마디 섭섭함에 내일은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구경꾼들의 뒷말에 신경쓰이는 것이 더 컸다. 어느 순간 학습이라는 것과 멀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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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감을 만나 결혼이란 것을 했다. 어쩌다 엄마가 되었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점점 병원과 친해지며 아이가 태어났고 모성은 일생일대로 커졌다. 아이를 위한 쇼핑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나면 알찬 하루를 보낸 느낌이었다. 쇼핑 목록은 조금씩 변했다. 기저귀, 배냇옷, 장난감에서 신발을 사고 돌복을 사고, 문화센터 강좌, 스포츠 클럽 등록을 시작하고, 유행하는 장난감, 책, 선행을 위한 학습지, 입학식에서 멋지게 보일 옷과 가방, 핸드폰, 학원, 반값 여행권 등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아이에게 잔소리도 조금 해보지만 동네 친구들과 브런치 카페에 앉아 시간보내는 것이 요즘 제일 재밌다. 하나 둘 만나던 사람이 없어진다. 돈벌러, 아파서 각자의 생활로 분리되고 있다.
용기 내어 고용센터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뿐이다. 더 버티다간 청소부가 될 것 같아 판매 알바를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나 없이도 잘 지내 보였다.  집 근처 분식점과 편의점이 아이의 허기를 돌보아 주었다. 점점 늦어지는 내 귀가를 크게 아쉬워 하는 가족은 없다. 남편은 내가 버는 소소한 월급이라도 기대하는 눈치다. 가게 사장이 바뀌었다. 새롭게 오픈을 하려고 한단다. 그만두라는 소리다. 옆 가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서빙. 주말만 서빙알바로 하기로 했다.  운동이 부족한 탓인지 늙어서 그런지 힘들다.남편은 퇴직했고 아이는 취업준비중이다. 돈버는 이가 나 뿐이라 풀타임으로 근무해야 했다. 가끔 만나는 근처 가게 친구들과의 저녁식사가 유일한 낙이 되었다.
자존심은 언젠가 없어진 것 같다. 사장이나 손님의 잔소리에 반응하지만 두 걸음은 안나간다. 무슨 팡 하는 게임을 핸드폰에 깔았더니 지하철에서 두드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세상 근심은 다 잊어버린다. 두둑한 뱃살을 주무르다 빵빵한 볼살을 두드려보고 잠자리에 든다. 다 이러고 사는 거지 뭐. 산다는 게 이런거지...
대학 졸업 후 가로수 길을 환하게 만들며 걷던 나는 지금 식당 서빙을 하는 중년의 아낙이 되어있다. 자식도 키웠고 내 집도 있지만 내 인생은 식당 테이블 바닥에 놓인 삼겹살 기름에 찌든 방석 같다.
어디서부터가 잘못 채워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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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오늘은 학교를 혼자 가야 돼. 엄마가 어제 얘기 했지?"
-"근데 엄마 언제올거야?
"아들이 이따가 학교 마치고 학원 갔다가 집에 오기 전에 엄마 올게. 엄마가 동생이 먼저 집에 와 있을거야. 시계보고 있다가 꼭 8시10분에 집에서 나가야 돼. 학교 가는 길에 진호를 만날거야. 진호랑 같이 가면 재밌겠다. 그지? 아들이랑 엄마랑 동생이랑 이따 오후에 다시 만나자. 사랑해"
-"응"

엄마는 아들이 아직 등교하기도 전인 7시 반에 어린 딸을 업고 집을 나섰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지 이제 한 달 지난 아들을 혼자 학교로 보내야 되는 상황이 너무 불안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 달 한 식품회사에 모니터링 요원으로 응모한 것이 당첨이 되어 오늘 처음으로 모니터링 간담회에 참석하는 일 때문이었다.
어린 딸을 업은 채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가야해서 넉넉히 1시간 반 전에 집을 나섰다.
아들이 혼자 잘 할 지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평소 늘 하던대로 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긍정하며 등에 업은 딸을 추켜 올렸다.
이른 아침부터 자는 딸을 깨워 옷을 입히고 머리를 단장해 주었더니 딸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엄마 등에서 골아 떨어졌다.
엄마는 큰 가방에 딸 아이 아침거리와 갈아입을 옷, 양말, 작은 담요에다가 물병과 두유 두 개에 육포 간식까지 담아두었다.
등에 업은 아이만한 짐이 손에 들렸다.

집에서 십 분 정도 걸어가야 지하철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기는 꺼려졌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자면, 택시기사의 성격에 따라 불편하거나 혹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많아서 였다.
훨씬 불편하지만 웬만하면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버스나 지하철이 편했다.
이렇게 아이를 업고 가야할 때는 수색대 훈련하는 것 같은 체력이 소모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갓 4월 초입에 들어선 터라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했다.
등에 업은 아이를 다시 추켜 올리고 아주 느리게 올라오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출근시간에 이렇게 아이를 업고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아침 출근객들로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는 이미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잠시 딸을 바닥에 내려 세우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두리번 거리는 중 바로 지하철이 들어오는 신호가 울렸다.
순간 지하철을 못 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아이를 들어 안고 지하철 쪽으로 다가갔다.
지하철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내리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지하철에 올라 타고는 일단 지하철 문 주위 기둥에 딸아이 손을 잡아 붙였다.

"딸 이거 꽉 잡아"

지하철 역에 내려 와서 기다리는 동안 잠이 살짝 깬 딸은 엄마에게 업어달라며 두 손을 내밀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짐가방을 짐칸에 올리고는 다시 딸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무래도 노약자석으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손으로는 기둥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팔에 낀 채 딸을 안고 노약자 좌석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워낙 붐비는 지하철 칸이라 넘어질 공간도 없었다.

노약자 석이 있는 공간은 덜 붐볐다.
하지만 빈 좌석은 없었다. 빈 좌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생각이었다.
노약자 석에 앉은 노인들은 등산복을 입은 채 베낭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있거나, 답답한 색의 점퍼를 입고 뭐가 들었을지 모를 서류 봉투를 무릎에 올리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노약자 석에 앉은 노인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엄마와 낯선 곳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딸아이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엄마는 노인들이 자신을 구경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지하철 정거장을 열 개가 넘게 지나치는 동안 노인들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종로역에 닿을 무렵 몇 몇 노인들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내릴 준비를 했고, 한 할머니가

"애기엄마 여기 앉아. 애 데리고 힘든데"

하며 선심을 쓰듯 소리쳤다.
엄마는 무표정하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딸을 업고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엄마도 여기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3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종로역에서 내려 바삐 걸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하루를 다 보낸 느낌이었다.
딸은 이제 좀 잠이 깼는지 등에 업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1호선 지하철은 아직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 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1644로 시작 되는 번호라 아들이 학교에서 콜렉트콜 전화를 한 것 임을 알았다.
뭣 때문에 전화를 했는지 걱정되었지만 보통 별일 아니었기에 그냥 무사히 학교는 갔구나고 안심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도중에 큰 보행자 고가다리를 넘은 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한 개 건너야 했다.
신호등도 문제지만 정작 걱정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고가 다리는 차가 안 다니는 다리라 다행이긴 하였지만, 워낙 높은 고가다리라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하였다.
그 다리를 건너서 아랫 길로 내려가면 샛강을 따라 산책로가 쭉 나있었고 그 곳을 따라 걸어가면 학교 정문에 도달하게 되는 통학로 였다.
그 문제의 샛강에는 징검다리가 앙증맞게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풀이 심어져 심지어 물고기도 사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그냥 못 지나가게 하는 재미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엄마는 늘 아들이 한 눈을 팔다가 학교에 늦을까 걱정이 생기는 곳이기도 했다.

갈아 탄 1호선 지하철은 놀랍게도 텅 비어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출근 인파에 섞여 같이 움직인 것도 오랜만이긴 하였지만, 그렇게 붐비던 3호선과는 다르게 텅빈 1호선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은, 중력이 센 공간에 빠져 아주 긴 시간 여행을 한 것과 같은 , 엄청나게 진이 빠진 상태여서 였을 것이다.
매일 이렇게 출 퇴근하는 남편의 수고로움이 고마와졌다.

드디어 목적지 남영역에 도착한 엄마는 다시 힘을 내어 딸을 업고 가방을 들춰맸다.
모니터링에 참여할 주부를 뽑는다는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오랜만에 설레였던 엄마였다.
아이들과 보내는 하루도 늘 좋았지만, 가끔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었다. 무엇보다 평범한 주부보다는 똑똑한 주부, 특별한 엄마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밤새 쓴 자기소개서를 이메일로 보낸 뒤, 무언가를 다시 도전하기엔 자신의 형편이 예전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당첨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자위를 하며 큰 기대 안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러니 일주일 뒤 식품회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분이 날아갈 듯 한 것은 당연하였다.

회사 건물 내부로 들어서서 두리번 거리다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내 직원은 아주 친절하였다.
이 건물로 들어오기 전까지 길거리를 아이를 업고 다니며 주위의 양해를 구하던 자신이 마치 사회가 돌아가는데 폐를 끼치는 존재로 취급된다는 느낌을 받다가, 거대한 건물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인격이 주어진 듯 한 느낌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데스크에 서 있던 그 안내자는 환하게 웃으며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 주는 성의를 보였다. 엄마는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간담회 장소에 도착한 엄마는 고생한 딸의 손을 물티슈로 닦고 자신의 얼굴의 땀도 닦았다.
아침을 아직 먹지 못한 아이를 위해 먹을 거리를 주섬주섬 꺼내 놓을수 밖에 없었다.
먼저 도착한 주부들 중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깔끔한 옷차림에, 다니는 직장을 하루 빼고 온 듯 한 모습으로 회의실에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았다.
업은 아이까지 덮고 오느라 남편의 커다란 코트를 걸치고 오긴 했지만 누구보다도 좋은 아이디어로 조리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신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이를 데리고 등장한 또 다른 아기 엄마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간담회가 시작 될 무렵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아까 못 받은 전화에 대한 불안도 있어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었다.

"어, 아들"
-"엄마, 뭐가 없어. 선생님이 그거 필요하대"
"뭐가 없는데? 응?"
-"종이에 뭐 적힌 거 그거 있어야 된대. 없으면 안된다고 박보래 선생님이 꼭 가져오랬다고 애들이 그랬어"
"그게 뭔지 말을 해야지, 아들.
엄마가 지금 집에 없어서 못 갖다주니까 선생님한테 없다고 말씀드리고 일단 엄마가 집에 가면 그때 해결해 줄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된다고 하는데... 엄마 끊어"

아들과의 통화가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간담회가 시작되려고 하였다.

오전 간담회가 끝나고 지방 공장으로 이동하여 견학을 하는 일정까지 다 따라갔던 엄마는 피곤해 하는 딸에게 너무 미안하였다.
딸은 아침부터 이러저리 엄마를 따라 끌려 다니느라 아주 지쳐보였다.
오후 4시가 넘어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났다. 사측에서 참가 수고비로 10만원이 든 봉투를 참가자들에게 내밀자 마자 봉투를 챙긴 그들은 연기같이 흩어졌다.
엄마도 봉투를 받아 들고는 안고 있는 딸에게, 집 가는 길에 슈퍼에서 짜요자요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엄마와 딸은 힘들었지만 뭔가 해냈다는 느낌으로 다시 1호선과 3호선을 갈아타며 집으로 도착하였다.
기진맥진하였지만 뭔가 일을 하고 왔다는 뿌듯함은 분명하였다.
가방에 든 십만원 봉투도 금액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아까 낮에 단체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이동하던 중 전화가 왔었었다.
아들이 아니라 아들 친구인 진호의 엄마로부터 온 전화였다.

"자기, 오늘 내가 자기아들 봐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시모가 온다네, 어쩌지. 그래서 내가 7단지 시윤이 엄마한테 부탁을 좀 했어. 우리 진호도 같이 논대. 시윤엄마 원래 일하는 데 오늘 쉰다네, 자기 집에 오면 나한테 전화해. 우리 진호한테 전화해서 우리 단지로 오라고 하면 되니까"

엄마는 지하철 역에 내리니 벌써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도저히 더이상 20킬로 가까이 나가는 딸을 업고 집까지 걸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계속 업어달라는 딸에게 걸어가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진호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지금 지하철에 내렸어. 우리 아들 집에 좀 보내줘. 고마워, 내일 만나서 애기해"
-"어...그래 근데... 너도 고생했겠지만 자기아들도 고생이 많았더라. 일단 쉬고 내일 만나서 얘기해"

간신히 집에 도착해서 딸을 거실에 내려놓자 마자 아들이 현관문으로 들어왔다.
아들 역시 피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엄마에게 달려와 안겼다.

"우리 아들 오늘 혼자서 참 잘했어. 엄마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치킨 시켜줄게"
-"앙념치킨 사줘. 콜라도 시킬거지?"

아들은 치킨시켜 준다는 소리에 좋아하며 거실에 드러누었다.
드러 누운 아들의 양말을 벗기려 다가가 보니 양말 바닥이 더러웠다.
마치 진득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아들, 양말이 왜 이래?"
-"어... 오늘 빠졌어"
"뭐? 또 샛강에 빠졌어? 그래서 전화를 했구나... 그래서 계속 이렇게 있었던 거야?"
-"응"
"샛강 얼었지 않았어? 아직 아침에는 얼었을텐데... 발 시려웠었지? 어떻게 참았니?...."
-"괜찮았어"
"괜찮긴... 오늘 축구는 잘했고? 물을 안 가지고 가서 목 말랐지?"
-"그냥 괜찮았어"
"피아노도 갔다오고? 아까 시윤이에서 뭐 좀 먹었어?"
-"피아노 갔다왔고 시윤이집에서는 안 먹었어"
"시윤이 엄마가 고맙네. 근데 시윤이집에는 처음 간거지? 엄마도 시윤이 얼굴만 살짝 기억나는데. 하여튼 오늘 고마우니 우리집에도 놀러오라고 하자"
-"......"

배달 시킨 치킨을 맛있게 먹은 아들을 딸과 함께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 넣어 씻겼다. 아직 엄마 자신은 외출복도 벗지 못한 채 소매를 걷어 붙이고는 아이들을 헹구어 내었다.
얼굴에 붙었던 꾀죄죄한 먼지들이 싹 닦이고 원래의 예쁜 얼굴로 반짝반짝 빛나자 엄마는 세상 모를 행복감을 또 다시 느꼈다.
피곤했던 딸도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해 웬일 별 투정없이 국에 말은 밥을 먹고는 어느새 이불에서 잠이 들었다. 그 이불은 하루종일 저 자리에 그대로 있었었지.
엄마는 짐가방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채 겨우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10시가 다 되었고 마침 남편이 귀가하였다.
남편 역시 붐비는 지하철에 끼여 퇴근 하였을 것이다. 가스렌지에 물을 올리며 바빴던 하루를 변명같이 이야기 해주었다. 오늘도 또 하나의 치열한 하루를 보낸 남편에게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주는 미안함에 점점 말이 줄어버렸다. 왜 사서 고생하냐는 남편의 퉁명스런 말에도 서운함은 크지 않았다. 별 소리 없이 라면을 먹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오늘 또 한 겹의 정이 쌓였음을 느꼈다.
그렇게 온 식구가 골아 떨어지고 안전하고 깊은 밤을 맞이하였다.

다음 날 만난 진호엄마의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자기, 뭐 간담회인가 뭔가 잘 다녀왔어? 딸래미 데리고 다녀오느라 고생했겠다. 진작 어린이집엘 보냈으면 서로 안 힘들었을텐데..."
-"어쩌다 한번 갔다온 건데 뭐... 어린이집 원비가 원채 비싸서..."
"그래, 그래도... 그건 그렇고. 어제 아들이 이야기 안해?"
-"어? 무슨 이야기? 샛강에 빠진 거? 엄청 추웠을 텐데 참고 있었더라. 내가 정말 화가 나려고 하더라. 우리 아들 그렇게 참고 있을 때 마다 내가 정말 속상해. "
"아니 그거 말고... 다른 얘기... 안했나 보구나. 어제 자기 아들 벌 섰대.
우리 진호가 그러더라. 우리 진호가 어디 학교에서 있었던 일 미주알 고주알 말하는 애야? 근데 어제는 나한테 그러는 거야.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울었다고. 속 없어 보이는 우리 아들이 자기 아들은 친구라고 꼭 챙기잖아. 들어봐. 어제 뭐 수학 시험을 쳤는데 시험 치고 나서 자기 아들이 손바닥을 맞았대."
-"네? 몰랐어요... 언니"
"하여튼 뭐 학교 보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만, 선생이 좀 별로야. 왜 애를 때리고 난리야. 박복례 선생이 이 학교 오기 전 다니던 학교에서 봉투받는다는 애기는 있었다고 들었는데 때린다는 것 까지는 몰랐네. 우리 진호도 곧 맞고 오겠어. 순한 자기 아들이 맞았는데 우리 장난꾸러기 진호야 시간 문제지..."

엄마는 심장이 마구 뛰었고, 아들이 맞고 울었다는 말에 울컥하려고 까지 하였다. 진호 엄마는 말을 이었다.

"우리 시엄니는 왜 하필 어제 갑자기 와서는 병원가자는지 참... 하여튼... 그리고 급식시간에 자기아들 토했댄다. 선생이 가서 같이 치우라고 해서 우리 진호가 애들이랑 가서 치웠대. 뭔 선생이 일학년 짜리보고 그런 걸 치우라고 하는지..."
-"토했다는 말 안 했는데..."
"애들이야 토할 수도 있지. 먼 이유가 있을거야. 1학년 담임을 맡았으면 애들 어린거 다 알고 맡은 건데 정내미가 뚝 떨어져...
근데, 자기야, 어제 시윤이네 보냈었잖아. 이시윤 알아? 걔 장난 아냐. 완전 병이야 병. ADHD . 우리 진호가 집에 와서 뭐라고 했냐면,
시윤엄마가 진호랑 자기 아들을 식탁에 앉혀서는 시윤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계속 그랬나 봐. 그리고 또 시윤엄마가 김치전을 해줬대. 우리 아들은 그런 거 잘 먹는데, 자기아들 그거 안 먹잖아. 내 알지. 거기다가 대고 가려먹으면 안된다고 한참을 또 뭐라고 했다네. 그것 뿐만 아 아니야. 시윤이가 자기방에서 장난감을 막 던져서 진호하고 자기 아들이 피하면서 놀았댄다.
참... 시윤엄마는 지 아들이나 똑바로 키우지.
시윤이 걔 수업시간에도 막 돌아다니고 여자애들 때리고...
그런 애를 태권도 도장에를 보내놨으니 기술까지 배워서 애들을 더 때리고 있잖아.
나도 우리 진호 태권도 보내지만 시윤이 같은 애는 어디 조용히 앉아있는 거 배우는 학원을 보내야지. 아니 학원이 문제가 아니야.
시윤이는 큰일 났어. 저런 애는 엄마가 집에서 딱 붙잡고 있어야 되는데 저 집 부모는 매일 일한다고 애를 학원만 돌리니 원..."

진호엄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속이 너무 상하였다.
엄마는 하교한 아들을 앉히고는 조용히 물었다.

"아들, 어제 토했어?"
-"응"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그런데 왜 토했어?"
-"깍두기 먹다가 그랬어"
"너 김치 싫어하는데... 선생님이 다 먹으랬어? 그럼 매일 어떻게 먹고 있었어?"
-"진호가 대신 먹어 줬는데"
"아.. 그랬어. 그랬구나. 어제 근데 왜 손바닥 맞았어? 손 아팠겠네. 봐봐"

아들이 내민 손바닥엔 아무 흔적도 없었지만 손가락에 빨갛게 피멍이 든 것이 보였다.

"이거는 왜 이런거야?"
-"어제 내가 전화 한다고 교실에 좀 늦게 왔는데 그때 박보래 선생님이 내가 문 뒤에 있는 걸 모르고 문을 닫았어. 그때 다쳤어. 그래서 수학 문제를 다 못 풀었어"
"아들, 아팠겠다. 어제 많이 힘들었겠네. 엄마가 전화도 안 받고... 간식도 못 먹고... 엄마가 미안해..."
-"나 어제는 좀 안 좋았는데 오늘은 괜찮아. 근데 나 방과후 축구 안하면 안돼?"
"축구는 왜? 축구 선생님이 무섭게 했어?"
-"축구 하기 싫어..."
"알았어. 이번달까지만 하고 다음달엔 다른 거 하자"

엄마는 다음 주 축구 수업이 있는 날 축구강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했으나 그 전에 축구 교실이 휴강한다는 문자를 학교로부터 받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이러했다.
축구교실 고학년 반 아이가 축구교실 저학년반 수업 마치기를 기다리며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때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축구강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6학년 남자아이는 강당에서 놀고 있던 1학년 여자아이를 구석 창고로 데려가 바지를 벗게 했고, 속옷만 입은 그 아이를 다른 남자아이로 하여금 만지게 했다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축구강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리를 한참 비운 상태였고, 학교측은 학생들을 잘 인솔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급하게 수업을 폐강 시킨 것이었다.
피해자 1학년 여자아이 부모는 학교 측의 애매한 태도에 상처를 받아 결국 전학을 간다며 집까지 내놓았다.
가해자인 6학년 남자아이는 오히려 전담 상담 선생님과 1 대 1 상담을 받았고, 선생님들과 학교 측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소문에 학부모들은 흥분했다.

엄마는 아들이 학교 입학한 한 달 새 부쩍 컸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올바른 성장이 아니라 강요된 인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아들은 어제 하루 동안 참고, 그냥 참고, 무기력하게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했다.
아침에 차가운 젖은 발로 교실에 있었어도 담임선생은 알지 못했고,
문 틈에 끼어 피멍이 든 아이 손가락에 대해서도 몰랐다 치더라도,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 반 아이의 입장은 한발 앞서 헤아려, 자신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체벌, 손바닥을 때린 것이었다.
아들은 축구교실 수업을 하면서 두꺼운 옷을 벗지 못해 그냥 더위를 참았을 것이고,
6학년 형의 이상한 행동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고,
여전히 엄마는 아들의 전화를 받지 못했었다.
시윤이 집에서 시윤이의 폭력을 놀이로 받아주어야 했고, 시윤엄마 앞에서 또 참아야 했을 것이다.
거의 종일 굶은 아들은 피아노 학원 아래 편의점에서 엄마가 준 천원으로 삼각김밥을 사먹으려 했지만 친구 진호와 나눠먹기 위해 삼각김밥 대신 마이쮸를 두개 사서 나눠먹었었다.

추위와 고통, 두려움, 무기력, 배고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맛있는 양분이 아닌 부정적 감정이었다.
살기 위해, 혼나지 않기 위해 아들은 순간순간 긴장하고 마음 졸이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선생도 이웃도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으며, 보호자 없이 방치된 아이는 그들에게 노출된 도구일 뿐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커 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엄마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성취를 접었고, 딸을 위해 스스로를 집에 가두었다.
언젠가 느낄 후회와 미련은 나중 일로 미루고,
내 아이를 위해, 남편의 아이가 아닌 바로 내 새끼를 위해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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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페 식당에서 식사 중 옆 자리의 노인들 대화를 들었다.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모여 모임 같은 것을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까지로 보이는 그들은 건강해 보였고, 식사량도 꽤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거의 개개인의 자랑이었던 것 같다.
모임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뉴스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거기에 대화의 내용이 자랑일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랑이 자랑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화를 나누는 이들 간에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상황적 동질감 보다는 감정적 동질감이 있다면 유쾌한 대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랑 배틀과 같이, 누군가 쏟아내는 자랑에 아무런 공감없이 또다른 자랑으로 맞받아치는 상황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20대나 30대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닥쳐올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선택할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친구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지만, 예상치 못했기에 자신에게도 죽음은 갑작스런 사고로 다가옴이 두려운 것 일뿐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급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죽음 이후에 대해 준비할 것도 없고, 또 준비할 수도 없다.
다만 자신의 역할을 다르게 대체시킬 의무감이 있다면 아쉽겠지만 말이다.

노인은 죽음을 느끼고 있다.
바로 쇠약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노인의 일상에 대해 단순하게 얘기할 때 보면 대부분 병원과 약이 주인공이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혹은 장수를 추구하기 위해 노인들은 병원을 방문한다.
병원이 가깝지 않은 곳에 사는 노인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약과 치료 외에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자신의 건강수명을 노인자신이 연장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다만, 스스로의 노력을 넘어 주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면 자기애적 치료가 이기적 연명으로 바뀌는 것이다.

도시의 병원을 순례하며 연명하는 노인이 스스로에게 공들인 약과 치료만큼, 깊은 성찰과 사라짐에 대한 준비를 한다면

단편적이고 말초적인 자랑을 할 시간이 있기는 할까?

살아온 시절과 살아온 방식이 고스라니 투영되는 노인의 모습은 참 솔직하다.
지난 인생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 있는 후회와 아쉬움을 지나간 일로 덮어 버리고 또다시 후회와 아쉬움을 만들어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삶은 단하루라도 후회와 부끄러움을 낳는다.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면 더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하고, 다른 이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더 이상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한다.

간단한 삶의 정리기법이다.

살아온다고 지혜가 그냥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건강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남들과 무의미한 잡담에 시간을 계속 낭비하고 있는 노인들은 그저 지구양분으로 돌아갈 흙이 될 뿐일 것이다.
깊이있는 시선과 따뜻한 몸짓 하나라도 주위사람에게 남길 수 있다면 그저 흙은 아니다.
인류가 왜 지금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손엔 칼을 들지 않고 다닐 수 있을까? 
나말고 다른 사람을 점점 생각하면서 살아온 앞 세대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 때문이다.
원초적인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고 - 너보다 내가 건강하고, 내가 돈이 더 많고, 내가 덜 늙어보이고 하는 자랑 따위를 하는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소외되지 않았다는 가짜 소속감 정도일까? 가짜는 금방 사라진다.
    
일상에서 추상적인 대화나 긴시간의 인생에 관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면,
포털 뉴스 메인화면처럼 매일매일이 소모되고 채워지는 과정에서 그나마 뭐라도 남길 수 있다면 다행이다.
철학적 개념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다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현상으로서만 구경할 것인지, 아니면 의미를 찾아 지혜로 삼을 것인지는 순간의 선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내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거나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사진출처 : 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6051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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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인이 왜 계속 가난하게 살라는 정치가들을 지지할까?
매달 준다는 돈도 주지 않는 정부에 믿도 끝도 없이 계속 표를 주는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경제적인 문제를 초월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라고 봐야하나.

한달 생활비가 빈곤층 노인이 50% 이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중위소득 이하의 비율이 50% 미만 이라는 것이지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이 마냥 가난한 노인이 전체 노인의 50%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오류가 있다.
물론 정부에서 기초생활비를 지원받아 사는 노인도 있을 것이고, 기초생활비 지원대상에서 빠져 정말 빈곤한 삶을 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정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살 수 있는 노인,
그들이 빈곤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당장 쓸 돈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크고, 가진 재산의 규모는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생각해야한다.
   
매달 백여만원의 연금이 나오는 노인도 기본 의료보험 이외에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이 되어있지 않으면 한달 백여만원의 생활비로는 병원비까지 감당하기는 쉽지않다.
아껴서 쓰거나 자식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불편을 본인이 감내하거나 결국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이들을 뭐라고 생각해야하나?

자식을 키우느라 노후 준비를 못했다는 토로는 자식이 배은망덕함을 하소연 하는 것이 되거나, 스스로 현명하지 못했음을 자백하는 결과일 뿐이다.
사회 여러 구성원들이 모두 '자식'이다. 그 '자식'에는 범죄자도 있고, 학자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다.
그 자식들은 갑자기 주어진 삶을, 룰렛 게임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 영향 속에서 벗어나거나 벗어나지 못하거나 하는 인생을 살아오고있다.
노인의 노후를 불행하게 만드는 '자식'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자식들이 효도할 줄 알았다는 노인들의 한탄을 가만히 생각해보자.
서 넛의 자식들을 자연의 순리대로 낳아 처한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키웠다고 친다면,
그 자식들의 유년기는 그 노인의 노년기처럼 불행하고 부족하고 혼란스러웠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부모는 선택한 삶이다. 전쟁처럼 몇몇의 주장에 끌려 들어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선택한 삶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느끼는 무한한 애정이라는 감정을 선사받았다면, 그 이후 남은 것은 사회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과제 밖에는 없다.
'자식'에게 갑자기 삶을 주어지게 한 이유 - 사랑이든 사고든 - 를 설명해주고,
존재에 역행하는 질문에 빠져 하는 고뇌는 길지 않도록 삶의 기쁨을 먼저 몸소 보여준다면 그걸로 되지 않았나

보수단체가 국정원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정부옹호 집회를 열었다는 주장을 접하면서 보수단체 노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들을 낡은 이데올로기에 갇혀 맹목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낡았지만 그들의 신념이고, 그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이니, 하나의 사회가 다양해지는 긍정적 효과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뒷거래가 있었다면 과연 그들 주장에 확고한 근거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워졌다.
노인들은 가족부양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물론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본인 외의 다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이 이러한 집회를 통해 생활비를 벌었다는 추측은 가능성이 낮은 것 같다.
피라미드식 조직이라면 조직 수뇌부는 생활비를 건져 갔을 수도 있었겠다.
그럼 뭘까? 단지 돈을 벌려고 용역업체 알바를 하는 청년과 같은 경우도 아니고, 신념에 불타는 투사들도 아니면 뭐라고 생각해야할까?

결국 이도저도 아닌 이들이다.
중세적 가치관에 근대적 욕구가 섞이어, 나서서 행동하는 데에서 존재감을 느끼는, 그 뿐인 노인들이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정부를 위해 또다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친근하게 습득된 근대적 집단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면 막연히 이득이 되겠지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 전세대이다. 
젊어서 배운 인문적 소양만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독재정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 살면서 경제적 혜택을 받음을 기뻐했을 것이다.
평생을 비교적 근면하고 충성스럽게 살았지만, 충실했던 자신들을 더이상 보살펴주고 이끌어주고 지배해 줄 이가 보이지 않자 화가 났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예전에 힘들게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오늘 먹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순간이 감사할 것이고, 불행하게 먼저 죽은 부모나 친구들이 떠오르면 미안함마저 들어 이렇게 뱅뱅돌며 과거에 갇히는 것이다.
과거에 매몰된 채, 갇힌 도넛 같은 차원을 과감하게 넘어서지 못하는 이들.
갇힌 도넛을 탈출하면 큰일이 나는 것이고, 나눠먹을 도넛이 없더라도 함께 다독거리며 살면 된다는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그 과정의 출발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그런데, 과거에 갇힌 채 현재를 보고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 미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들을 불행한 근대화의 포로들이라고만 여기기에는 후련하지 못하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다.

사진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825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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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유로운 거래야말로 그 궁극의 선이라는 염원에 보다 잘 도달할 수 있는 길임을, 진실을 시험하는 최선의 기준은 시장경쟁속에서 스스로를 수용시키는 생각의 힘임을...'
앤서니 루이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탈북자들 중 자본주의에 빨리 눈 뜬 사람은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기독교교리에 빠진 사람은 맹목적 교리와 선교에 쉽게 지배되어지며, 또 반북주의에 빠져 자신을 부정한다.
본인이 전부라 믿으며 살아온 사회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정신적 아노미 현상 -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하여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하여 사회적,개인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 은 필연적이며 그래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거나 안정화하려 또 다른 이론에 쉽게 압도되어 휘둘리게 된다.
반북주의와 같은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적을 만들어 거기 매달리기도 한다.

토크쇼에 나온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여러 경험담이나 ...카더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북한을 희화하 하는 것을 보자면 그들이 출연료나 인기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비록 지금 그들이 탈출을 한 사회이지만 거기에는 통제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 살았던 가족과 친구, 친척, 동네 사람들.
그들도 아는 누가 죽으면 인간적인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힘든 노동 뒤에 저무는 해를 같이 바라보며 동료애를 느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하여 떠난 고향이지만 그곳에는 북한의 선전과 통제가 스며들지 않은 언덕과 개울이 남아있을 것이고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에게 그런 추억이 남아있길 바래본다.

대구의 시부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부모에게서 일방적 지시를 받아왔을 시부는 자라며 근대식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수준을 지금처럼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책도 부실했을 것이고 가르치는 사람도 부실했을 것이다. 단순한 지식 습득과 근대 여러 이론의 겉핥기를 경험했다고 본다.
시부의 시대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다스려 주기를 바라고, 통치당하길 바란다.
하늘이 내려준, 대대로 뿌리 깊은 가문의 인재가 왕이 되어 백성들을 이끌어야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뿌리깊은 가문"이란 것은 기득권 세력의 또다른 말이기도 하다.
기득권 세력에 큰 반발없이, 가진자 그대로 가지라 하고 못 가진자에게 조금은 나눠줄 수 있는 착한? 아량을 가진 인재가 왕 - 대통령이 된다면 복종할 준비가 된 사람이 바로 시부이다.

자신은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종교적으로 이루어내었지만, 자신의 자식들과는 단절을 두려워하여 끊임없이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자식에게 주입한다. 결국 본인도 본인의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반공하지 않으면 매장당하는 사회를 살아오다가 반공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세대를 보며,
세상이 난리날 듯한 걱정으로 - 이게 바로 종말인가?
한 귀퉁이에서만 산 자신을 옮겨 다른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귀퉁이 밖을 벗어난 자식을 귀퉁이로 끌어들이며 자신이 습득한 공포를 그대로 전해 주려는 것이다.

나와 다른점은 무얼까?


        
사진출처 : http://static5.techinsider.io/image/56f31919910584155c8b84d5-1200/xiaolu-chu-life-in-north-korea-train-ride-photograph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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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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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언제부턴가 노인혐오증이 생겼다. 그들과는 인사말 이상 나누기 싫고, 가까이 있고 싶지도 않다.
병이 옮겨나 하는 그런 걱정보다는 노인의 예의없음이 싫고 일방적 의사소통이 싫다.
그렇지 않은 노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내 일상 생활 구역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불현듯 저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신은 나이 안 먹을 줄 아나? 라는 비아냥이 근거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내 노인혐오증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고칠 수 있을지, 계속 이렇게 살다가 노인이 되기 전 자살이라도 해야 되는 건지
구석에 처박아 둔 뜨다만 스웨터 실밥을 조심스레 풀어 포텐셜 넘치는 실뭉치를 만들어 볼 대단한 꿈을 안고 결말없이 쓰는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진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104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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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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