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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넘게 병원에 머물다 집으로 돌아온 김기동 씨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어지러운 현관의 풍경을 스치듯 쳐다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는 신발 열댓 켤레가 마구 뒤섞여 놓여져 있었고, 한쪽 벽에 달린 신발장 문은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제 짝을 알 수 없는 신발들이 놓인 앞쪽으로 양파가 담긴 종이박스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맡았는지 못 맡았는지 집안으로 들락거리는 누구 하나 그 박스 안을 들여다 보지 않았다. 대낮 임에도 컴컴한 집안은 여기저기 수건과 옷가지가 널려 있었고,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집안으로 들어온 김기동은 국을 끓이느라 음식 냄새가 도는 집안의 어디라도 창문을 열거나 하려는 생각은 없는 듯,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잠시 방안을 둘러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쳐다보며 약 먹을 시간을 재던 기동은 약까지 다 먹고서야 비로소 집안을 천천히 둘러 다시 보았다. 그리고는 그간 쌓인 우편물 더미를 들추어 보던 김기동씨는 시청에서 보내온 안내문 하나를 들어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사용 목적을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식탁의 절반 정도만 식사를 위해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고가의 인덕션 레인지가 식탁 위에 놓여져 있었는데 그 인덕션 레인지 위에도 여러 크기의 플라스틱 약통과 약 봉지, 무언가 담긴 그릇 등이 잔뜩 올려져 있어 이 인덕션 레인지의 용도가 그릇 받침대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엄마는 언제 온다고 하나?”

- “지금 오시면 되겠습니까? 아직 좀 더 있다가 오시겠지요. 은숙이 보고 빨리 올라오라고 했는데, 오겠지요.”

“내 가방 안에 든 거 다 꺼내서 빨래 해야 된다. 빨래해서 다 널어놓고 가라.”

- “병원에서 빨래 안 해줍디까?”

-“해주지. 해주는데 어제 입은 옷하고 속옷은 안 빨고 그냥 들고 왔지.”

“제가 해놓고 갈 테니까 혹시 밖에 못 널면 아버지가 좀 너는 것만 하세요.”

-“……”

환식은 김기동이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도 계속 식탁과 싱크대 사이에 서서 숟가락을 하나 들고 국솥에서 바로 국을 떠서 홀짝이며 먹었다. 그러더니 우럭 살 점 하나를 그릇에 담더니 그대로 서서 발라 먹기 시작했다. 또 주방 바닥에 놓여있는 전기 밥통 뚜껑을 열더니 국을 떠먹던 숟가락 그대로 밥을 떠서 먹으며 다시 국을 떠서 홀짝였다. 그러는 환식을 본 기동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뭐하나? 앉아서 먹어라! 그리고 숟가락 입에 댄 거를 가지고 여기저기 쑤시지 마라.”

김기동은 서서 밥을 먹는 환식을 보더니 버럭 화를 내었다.

“밥은 다 먹었고요, 한 숟가락만 더 먹으고요. 이제 안 먹습니다. 숟가락 깨끗하게 닦아서 살짝 밥만  한 숟가락 떠 먹었고, 침 안 묻혔어요. 국은 이대로 또 끓이면 깨끗해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먼 소리를 또 지르십니까?  소리 지르면 혈압이 확 올라 갑니다. 혈압도 안 좋은 사람이 뭐 그렇게 소리를 질러댑니까?  말로 해도 다 들립니다.”

“아, 니가 더럽게 하니까 고치라고 하는 말이야!”


유신애는 부엌 뒤 편에서 무언가 하다 들리는 큰 소리에 나와 환식이 숟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유신애는 눈치를 살피며 말에 끼어 들었다. 

-“당신, 밥 다 먹어 놓고… 모자라요?”

“아니, 맛이 있어서 한 숟가락만 더 먹을라고 했지.”

-“이제 그 숟가락 놓고 빨래 하라는 거 좀 보세요. 여기 내가 치울게요.“

“아 참, 아버지 저렇게 매일 소리 지르는 거 아무도 안 좋아한다.”

환식은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신애는 설거지를 마치고 어지러운 식탁을 다시 한번 흘깃 보고는 작은 방 문을 슬며시 열어 보았다. 집이 비어 있던 것이 한 달 가까이 되어서 인지 온 집안에서 군내가 났다. 바닥에 깔려있는 이불도 한 달은 되었을 것이나 바닥 이불 아래 전기매트의 코드를 찾아 꽂고는 신애는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잠이 들려던 신애는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 나 여기 빨래방 왔는데 말리는 것까지 하려니까 만원은 드네. 그냥 집에서 해야겠다. 세탁기가 제대로 돌아는 가나 한번 보시오.” 

-“빨래방에 갔다고요? 빨래는 가지고 갔어요?”

“아니, 세탁기 돌아가나 그거 좀 보라니까”

-“돌아가겠지요. 이 집은 뭐 빨래 안하고 살까 봐요.”

“빨래 안 한다. 다 손으로 빨고 한참을 안 빨아 입고 하지.”

-“당신이 와서 보세요. 나는 모르겠어요.”

유신애는 부엌 뒤 편의 어지러운 다용도실의 모습이 다시 생각이 났는지 인상을 쓰며 전화를 끊었다. 
좀 전에 김기동의 식사를 차려주고는 부엌 뒤 편으로 갔던 유신애는 더러운 바닥과 먼지가 쌓인 물건들 사이를 쳐다보며 정리라도 하려는 듯 보였으나 다시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장독을 보며 다가간 유신애는 뚜껑을 열며 안에 든 어떤 내용물을 찾는 듯 보였다. 다시 주방으로가 찬장을 열어보던 유신애는 새 비닐 봉지 몇 장을 찾아 꺼내어 들고 다시 다용도실로 갔다. 거기서 한 장독 뚜껑을 열어 된장을 조금 비닐 봉지에 퍼 담았다. 서너 개의 장독 뚜껑을 전부 열어 확인해 보고는 된장을 담은 비닐만 챙겨서 돌아 나왔다. 

다용도실 바닥에는 채소 찌꺼기와 먼지, 머리카락이 뒤엉켜 쓰레기장 같았고 그 안을 들어갔다 나왔던 유신애의 발바닥은 엉망이 되었다. 그때 마침 큰 소리가 나 문 앞에서 멈칫한 것이었다.
그 다용도실 한 켠에 세탁기가 있었는데, 통돌이 세탁기의 뚜껑은 떨어져 덜렁 거렸고, 세탁기 안에도 무언가 한참 담겨있었던 듯 보였다.  그래도 벽에 코드를 꽂으니 전원이 들어왔고 작동은 되는 듯 보였다. 

신애가 다시 작은 방으로 가서 누워 있는데, 그때 환식이 돌아왔다.

“왔어요? 세탁기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빨리 돌리고 우리는 이제 가야되요. ”  

-“그래? 세제는 다 있나?”

“그거는 안 봤는데, 어디 있겠죠. 빨래를 하고 살면 세제가 어디에라도 있을 거에요.”

-“이 집에는 없을 수도 있다. 빨래 해놓고 저녁 차려드리고 내려가야지”

“저녁은 국 데워서 드리면 되고, 밥은 있어요. 차려만 놓으면 아버님 드실 수 있을 거에요.”

-“다 차려드리고 가야지. 은숙이 오늘 언제 올 줄 알고?”

“아까 당신이 일찍 가자고 했잖아요. 이제서야 저녁까지 다 차리고 간다고 해요?”

-“일단 시키는 대로 해.”

환식은 신애에게 통보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기동이 누워 있는 방 문을 열었다.  

“아버지, 정부 지원금이 나온답니다.”

-“뭐라고?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안 돌아 간다고 돈 쓰라고 정부에서 집집마다 백 만원씩 준다고 하네요.”

“백만원?”

자는 듯 보였던 기동은 눈을 번쩍 뜨고는 일어나 환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4명 가족이 백만원이고, 이 집은 지금 가구수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까? 은숙이가 별로 가구 입니까?”

-“은숙이 별도다. 엄마랑 내랑 두 명 한 가구 다.”

“그러면 60만원 나올 겁니다.”

-“두 명은 60만원 주나?”

“네, 어무이 것도 아버지가 받으니까 받으면 어무이 30만원 드리세요.  그리고 이거는 지난번에 생신 못 차려 드린 거 40만원 입니다. ”

-“명식이도 보냈나?”

“명식이 것이랑 합친 겁니다. 아까 미하 오마이가 우럭 장봐서 상 차려 드리고 또 저녁에 저녁 차려드리고 우리 는 내려갈랍니다.”

-“빨래는 했나?”

“빨래 이제 돌리고 널고 하면 됩니다. 아버지는 그냥 주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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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빌라 계단을 내려간 유신애는 골목에서 남편 김환식의 차를 발견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핸드폰을 열었다.

“ 지금 내려왔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김환식은 차 안에서 유신애의 전화를 받았다.

“ 그냥 저 쪽에 가 있어. 전염될 지도 모르니까 가까이는 오지도 말고.” 

유신애는 차가 보이는 방향 반대편으로 물러나 서 있었다.
김환식은 차 뒷 좌석에 앉아 있는 김기동씨를 쳐다보며, 

“ 아버지, 이제 내리세요. 올라 가시면 됩니다.” 
- “ 나 혼자 가라고?”
“ 천천히 올라가고 계시면 제가 바로 따라 갈게요. 수하 오마이가 식사도 다 준비해놨다고 합니다.”
- “ …… ”

김기동씨는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빌라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김환식은 차에서 곧 따라 내리더니 김기동을 뒤따라 가지 않고 유신애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아니, 전염된다면서요,  왜 이리 와요?”
- “ 나는 안 걸린다. 식사는 다 준비 해놨어?”
“ 당신은 뭔데 안 걸리는데요? 지금 당신이 아버님이랑 제일 오래 있었잖아요.  그냥 내가 올라가서 밥 차려드릴게요. ”
- “ 걱정을 마시오. 내가 다 할 테니. 국만 뜨면 되나? ” 
“ 아직 더 할 게 있어요. 내가 갈게요.”
- “아 참, 전염된다고 해도.”
“ 아니, 걸렸으면 벌써 걸렸어요. 그리고 병원에서도 괜찮다고 내보내신 거잖아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내 앞에서 침 다 튀기고 있으면서…  왜 그래요?”
- “내가 무슨 침을 튀겨? ”
“ 침방울이 튀는 게 사람 눈에 보였으면 이 사단이 났겠어요? 아우, 됐고, 지금 같이 올라가요.”

유신애는 앞서서 빌라 입구로 걸어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 다다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부터 급하게 벗었다.

“아버님, 저 올라 왔습니다. 괜찮으세요? ”
-“왔나. 병원에서 오래 있었더니 기운이 없다. 엄마는?”
“어머님은 은숙이 아가씨랑 잘 있어요. 이따가 오신답니다.”
-“… 알았다. 밥 차려라. 배고프다.”
“네, 제가 거의 다 해놨어요. 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유신애는 급하게 나가느라 어수선한 부엌 싱크대 앞으로 다가가 정리를 시작했다. 끓여놓은 우럭 탕을 국그릇에 담고 밥도 펐다. 급하게 담아놓은 밑반찬들로 식탁을 차려냈고 이만하면 그럴 듯 하다는 표정으로 식사준비를 마쳤다.

“ 아버님, 식사하세요.”

유신애가 부르는 소리에 김기동은 벌떡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김기동은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막 먹으려다가 다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도하는 듯하던 김기동은 다시 숟가락을 들고 국을 떠 입에 넣기 시작했다. 

“ 국이 입에 좀 맞으세요? 병원 밥이 맛이 없지요?”
- “ 아니다. 병원 밥 잘 나왔다. 반찬도 항상 새로한 것으로 세 가지 씩 싱겁게 해서 몸에 좋게 나오더라.”
“그래요?... 병원 밥이 좋네요.”

유신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냉장고를 열어보며 무언가 찾기 시작했다.

“반찬 드시던 것은 통 안보이네요. 병원 들어가시기 전에 반찬 뭐 해 드셨어요? 아가씨가 뭐 해 주대요?” 
- “은숙이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 사다가 먹고, 얻어왔다고 주고 그랬지.”

그때 김환식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식사하고 계십니까?” 
“아버님 드시고 계세요. 당신도 같이 식사하세요. 그런데 그거는 뭐에요?”

유신애는 김환식의 손에 들린 봉지를 보고는 물었다.

“이거, 아버지 몸에 좋은 겁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사람은 다 먹는 거라고 합니다.”
-“그게 뭔데?”

김기동은 정신 없이 밥을 먹다가 김환식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이게 꿀보다 좋은 거랍니다. 면역력에 그렇게 좋고 먹기도 참 좋아요.”
- “면역력에 좋아?”
“네, 오래 약 먹는 사람이 먹어도 좋고 아무 부작용이 없다네요.  원래 엄청 비싼 건데 해외에서 바로 사온 사람이 있어서 하나 부탁했어요. 이거 하루에 하나씩 드시면 됩니다.”

유신애는 김환식의 밥을 차리고 김환식이 들고 온 봉지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 당신도 식사 하세요. 이거 그거 네요.“
- “ 이게 그렇게 좋은 건데, 해외에서 바로 온 거라 더 좋답니다. 아부지.”
“ 어디서 구했어요?”
- “ 다 아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몰라도 되고.”

김환식은 김기동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자 그제야 반대편 의자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우럭 맛있네. 이거 얼마 주고 샀다고?”
- “ 2만원 가까이 줬어요. 그래도 물은 좋네요.”
“ 명식이 보고 돈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은숙이 보고 좀 오라고 해야지, 집을 이래 놓고 갔네. 화장실이랑 부엌도 엉망진창이다...”
- “지금 청소할 시간은 안 되요. 저녁에 집에 가야 되요.  당신이 밥 먹고 나서 좀 치우세요. 나는 설거지 하고 재료 치우고 하면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밥 안 먹어? 그 국물은 나중에 좀 드시게 남겨두시오.”
- “저는 배 안고파요. 나중에 집에 가서 먹을 라고요.”

김환식은 매운탕 한 그릇을 말끔히 먹어 치우고는 가스렌지로 다가가 놓여있는 매운탕 냄비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는 화장실 벽 한쪽에 세워져 있는 대걸레를 들고 와 집안 여기저기를 닦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옷 가지와 수건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의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온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김환식은 보이는 바닥만을 대걸레로 훔치며 그 외의 물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김기동은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정면의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환식은 기동을 쳐다보고는,

“아버지, 시계는 왜 보고 있으십니까?”
- “ 내 약 먹어야 된다.”
“ 30분 있다가 드시려고요? 30분 지나고 드시면 되지 시계를 뭐하러 보고 있습니까?”
- “ 까닥하면 시간 넘어가서 안 돼!”
“ 시간 조금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뭐 하러 그러고 계십니까?  티비나 보세요.”
- “약은 식후 30분 있다가 먹어야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내장이 상해. ”
“그러면 지금 오늘 제가 갖다 드린 거 그거 드세요. 그거는 약이 아니라 천연 성분이라서 식사 후에 바로 드셔도 됩니다.”
- “ 그거 안 묵는다. 약 묵고…”
“그게 몸에 얼마나 좋은 건데 안 드신다고 합니까? 원래는 꿀보다 열 배는 비싼 겁니다. 로얄 젤리와 비슷한 거라고 합니다. ”
- “그래?”

김기동은 ‘꿀보다 열 배 비싸다’는 말에 잠시 관심을 두는 듯 보이다 다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 보았다.

2시 5분 10초 11초 12초 13초....

김기동은 2시 10분이 되자 손에 들고 있던 약을 입안에 털어넣고 물을 마셨다. 식탁 위에는 여러개의 컵이 놓여 있었지만 용케 컵을 찾아 마시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놓았다. 

(7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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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동네 마트로 들어간 유신애는 천천히 마트 안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채소 코너에서 둘러보고 있는 중에 생선코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다가 거기로 다가갔다. 

“사모님, 오늘 생선 좋아요. 보세요. 조기, 자반 고등어 새로 들어왔어요. ”

“탕거리 뭐 좋은 거 있어요?”

“탕 끓이실 거면 우럭 이거 하세요. 물 좋습니다.”

“얼만데요?” 

“마리에 1만 6천원 입니다. 이거 하시면 제가 싹 장만해드리고 양념하고 미나리도 무료로 드릴게요.”

”근데 좀 비싸네요… 둘러보고 올게요.”

유신애는 생선을 쳐다보다가 다시 채소코너로 돌아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 병원 도착했어. 집은? 엉망이지?”

“여보, 병원에 도착했어요? 집에 쓰레기 냄새가 너무 나서 쓰레기 먼저 버리고 지금 장보러 나왔어요.”

“쓰레기면 한달 전 쓰레기겠네. 은숙이는 쓰레기도 안 버리고 내뺐나? 하여튼. 앞에다 내놓으면 내가 버릴 건데, 버리지 말지 그랬어?”

“냄새가 너무 나서 안 버릴 수가 없었어요. 근데 점심으로 뭘 할까 싶은데…”

“아버지 좋아하시는 탕이나 하나 끓이지?”

“요기 마트에 생우럭이 싱싱한데 좀 비싸서 그냥 동태사서 찌개 끓일까 싶은데요?”

“우럭이 얼만데?”

“1만6천원 이라네요. 근데 그거 사면 양념도 주고 미나리도 서비스로 준다고는 하네요.”

“그거 사. 어차피 돈 걷었어. 그걸로 하면 되니까 우럭 사서 탕 끓이고 반찬 여러 가지 좀 하고 과일도 사고 해.”

“그래요? 그러면 알았어요. 잘 모시고 오세요.”
유신애는 전화를 끊자 마자 생선코너로 다시 돌아갔다. 

“아저씨, 우럭 장만해 주세요. 서비스 주신다고 했죠?”

“그럼요, 사모님. 오늘 우럭 진짜 싱싱해서 국물 잘 나올 겁니다. 여기 조개도 좀 보세요. 알이 굶고 싱싱하죠. 이것도 오늘 새벽에 올라온 겁니다. 이것도 하시면 싸게 드릴게요.” 

유신애는 잠시 망설이듯 하더니 

“그럼 조개도 주시고 미나리를 좀 많이 주세요.”

“아, 네 서비스 많이 드릴게요. 지금 마수걸이 해야 또 팔고 하지요.”

유신애는 통통한 생우럭을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생선코너 직원은 약속대로 미나리를 푸짐하게 담아주었고 비닐 봉지에 담긴 찌개양념도 챙겨주었다.     

“많이 파세요.”

“맛있게 드시고 또 오세요.”

유신애는 우엉대를 들어 보다가 옆에 껍질을 벗겨 채 썰어 놓은 우엉 한 봉지를 집었다. 오징어 젓갈도 한 통 바구니에 담았고, 두부와 무, 대파, 송이버섯 한 봉지도 골랐다. 

가게 입구에 진열해 놓은 과일을 둘러보던 유신애는,

“과일 박스로 배달해주죠? “

라며 계산대 직원에서 물었다.

“네, 5만원 어치 사면 배달 해드립니다.”

”그러면 생선은 들고 갈께요, 사과 한 박스하고 이거 같이 배달 좀 해주세요.”

”네, 그러세요. 주소가요?”

유신애는 마트에서 계산을 끝내고 배달을 부탁하고는 우럭과 바지락만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제과점에서 들어가 커피 한잔과 고로케 하나를 사 들고 나왔다.

집에 도착한 유신애는 창문을 열어 놓아서인지 냄새가 많이 빠진 내부로 다시 들어섰다. 집안 바닥은 온통 얼룩과 먼지가 가득했고 열린 화장실에서도 악취가 나왔다. 옆에 엎어져 있는 우레탄 실내화를 가져와 신은 유신애는 화장실 문을 닫아 버리고 부엌으로 갔다. 식탁 위에 잔뜩 올려놓은 약병과 물건들을 옆으로 슬쩍 밀어 두고는 의자에 앉아 사가지고 온 아메리카노를 홀짝 거리며 마셨고 고로케를 베어 물었다. 핸드폰에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카톡 메세지]
“지금 출발” 

잠시 앉아서 핸드폰을 보다가 커피를 다 마신 유신애는   사가지고 온 우럭을 봉지에서 꺼내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싱크대에서 깨끗한 냄비 하나를 찾아 물을 담고 가스불에 올렸다. 쌀을 찾아 밥통에 밥도 앉혔다.
아직 배달 시킨 물건을 기다리는 듯 다시 의자에 앉은 유신애는 냉장고를 열어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다. 부엌 옆 문을 열고 나가 무언가 찾는 듯 보이더니 그때 현관문 벨소리가 났다.

“배달입니다.”

“네, 잠시만요. 안녕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배달원은 아까 유신애가 마트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가져다 주고 돌아갔다. 
유신애는 먼저 무를 꺼내서 납작하게 썰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무를 먼저 넣고 이어 우럭을 집어 넣었다. 생선가게에서 준 양념을 풀고 간을 한번 보았다. 그리고는 싱크대에 미나리를 풀어 씻기 시작하였다. 식탁에는 우엉봉지와 송이버섯 봉지가 남아있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 나올 준비해요.”

“아직 멀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 십 분이면 됩니다.”

유신애는 서둘러 우엉봉지를 뜯었다. 물에 대충 헹구어 냄비 하나에 담고는 간장과 물엿을 부어 가스불에 올렸다. 
식탁 위 송이버섯을 보다가 그냥 집어서 냉장고 안에 넣어 버렸다. 어지러운 식탁 위 물건들을 옆으로 밀어두고 오징어 젓갈통을 열어 반찬 그릇에 조금 옮겨 담아 두며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우럭탕이 얼추 끓었는지 뚜껑을 열어보다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이제 올라가니까 당신 지금 내려오시오.” 

“아직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데요, 밥도 안 펐어요.”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그냥 내려와요.”

“당신이 한다고요? 그래요. 그럼”

유신애는 그대로 숟가락을 내려두고는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다 뒤돌아 냉장고로 가더니 조개봉지를 급히 챙겨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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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김기동은 아침 식사를 대충 끝내고는 빠르게 짐을 챙겨서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퇴원 환자들을 데리고 내려갈 간호사가 병실에 도착했다. 

“김 할아버지,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퇴원하시면 그 동안 드시고 싶었던 것 드시고 편안하게 집에서 지내시면 좋겠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김기동은 대꾸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니 어디고? 인제 나 내려간다.”

- “네, 아버지. 밑에 와 있습니다. 조심히 내려오세요.”

김기동은 아들이 와있다는 말에 표정이 밝아지며 간호사를 따라 병실 밖을 나갔다. 
비닐 커튼이 쳐진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고 퇴원하는 사람들만 몇 명 복도로 나와 합류했다.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며 김기동 씨는 옆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누가 데리러 왔어요?”

- “... 저는 구급차 타고 갑니다.”

“구급차를 타요? 왜 자식들이 안 모시러 오고…”

- “다들 바쁘기도 하고, 괜히 병원에 왔다가 걸리면 어쩌려구요. 
구급차 타도 돈 안 낸다고 해서 그냥 타기로 했어요. 거기는 굳이 가족들을 다 불렀나 보네요.”

- “자식들이 당연히 와야지. 
지금 한 달 넘게 이렇게 병원에 있었는데 이제 집에 가면 자식들 보고 내 수발 들으라고 해야지요. 
가르쳐야지 그냥 놔두면 알아서 한 개도 안 합니다. 지들 마음대로 살지. 
어른이 딱 가르칠 거는 가르치고. 어디 효도를 모르면 그게 사람입니까? 금수만도 못하지.”

“그런데 중앙교회에서 오신 것 아닙니까?”

- “제일교회에서 왔어요.”

“아 네…” 

1층으로 나온 김기동과 다른 퇴원자들은 잠시 병원 측과 인사 나눈 후 병원 입구로 걸어 나왔다. 
같이 걸어 나온 사람이 건물 근처에 서 있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과 만나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김기동 씨는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계속 두리번 거렸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다른 퇴원자들을 따라 함께 큰 길 쪽으로 걸어갔다. 
찾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지 긴장한 듯 보였다.    
길가로 차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누군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발견한 김기동 씨는 표정이 환해지며 손을 흔드는 방향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아버지, 여깁니다. 여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멈추어 서서 둘러보니 큰 아들 환식이 길 건너편에 서있는 듯 보였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김환식은 

“아버지, 접니다. 지금 서있는 그대로 앞 쪽으로 걸어오세요. 그리고 거기서 길을 건너세요.” 

김기동은 천천히 걸어서 아들 환식이 있는 곳까지 갔다. 

“아이고, 아버지. 다 낳으셨습니까? 얼굴은 좋으시네요. 앞 좌석  말고 뒤에 타세요.”

아들 김환식이 몰고 온 차 뒷 좌석에 탄 김기동은 대뜸 이렇게 말을 했다.

”아니 병원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태워야지 이렇게 멀리 차를 대고 와 있어?”

- “병원 안에 차를 대면 위험해서 안됩니다. 
밖으로 좀 걸어 나와서 만나면 안전하고 좋지요. 여기 경치 참 좋네요. 
마스크 벗지 마시고 앉아 계세요. 금방 집으로 갑니다.” 

“너 혼자 왔나?”

- “여러 사람 오면 안 되지요. 그 나쁜 코로나 균이 아직 다 안 없어져서 재활성화 될 수도 있다는데, 지금 음성이 나와도 재양성 나오는 사람이 수두룩 하답니다. 
회복되고 나도 폐에 자국이 남고 몸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병이랍니다. 
아버지 병원 들어가시고 환자가 얼마나 많아졌었는데요. 
아버지가 균 옮긴 사람도 꽤 될 겁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회복하셔서 다행입니다. 
아버지야 살만큼 사셨고 그래도 건강하게 더 사서야 되지만, 어머니는 몸도 약하고 저도 걸리면 큰일 나는 상황이지요. 
그래도 올 사람도 없고 장남인 제가 와야지요. 
말 많이 하지 마시고 그냥 기대서 주무세요. 
창문 일부러 열어 둔거니까 좀 불편하시더라도 참으세요. 
아침은 먹고 나오신 거지요? 점심은 집에 가면 다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마스크 벗지 말고 그대로 앉아 계세요. 마스크 코 꼭 눌러서 쓰신 거 맞죠? 
그냥 그렇게 주무시면 됩니다.”

“잠이 와야 자지!”

- “잠이 안 오면 뒤로 기대서 눈을 딱 감고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한참을 혼자 떠들던 김환식은 김기동을 차에 태우고 20분이 지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경북 외곽에 위치한 병원에서 퇴원한 김기동씨를 태운 갈색 레간자 승용차는 어느새 대구 시내로 들어섰다. 
김기동의 빌라 아래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김환식이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도착했다. 지금 안 올라가니까 좀 치워놓고 나올부터 준비하라고.”

- “벌써 왔어요? 길이 하나도 안 막혔나 보네? 아직 국이 덜 끓었어요.”

“이 사람이 참… 얼마나 더 걸리는데?”

- “십 분이면 되요. 국만 조금 더 끓이고 상 차리면 되니까 바로 내려갈게요. 십분, 한 십오 분만 있어요.”

김환식은 아침에 병원으로 향하기 전 부인 유신애를 아버지가 사는 빌라에 내려주고 갔던 것이었다. 
유신애는 한동안 비어있던 방 청소를 하고 식사와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시부인 김기동씨 집으로 먼저 갔다. 

이른 아침에 광주에서 출발해 대구에 도착한 유신애는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다. 
악취가 온 집에 배인듯한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집안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옷들이 널려있었고 버릴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물건들이 가구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창문부터 열어 제낀 유신애는 부엌 싱크대로 가서 먼저 쌓여있는 더러운 그릇들을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나는 악취의 정체는 역시 음식 쓰레기였다. 
고작 한달 남짓 집을 비웠을 뿐인데 단 두 명이 사는 집이라 치면 몇 달은 쌓아 두었을 법한 양의 음식 쓰레기가 부엌 문 옆에서 풍겨왔다.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 구분이 안 되어 뒤섞인 여러 봉지들도 부엌 옆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뒤져서 가장 큰 비닐 봉투를 찾아낸 유신애는 먼저 음식 쓰레기를 담고 그 위로 다른 쓰레기들을 차곡차곡 올렸다. 그런 다음 비닐봉투를 현관문 앞에 옮겨두고 입구에 서서 집안을 훑어보았다. 

잠시 서서 생각을 하는 듯하던 유신애는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와 버렸다. 

쓰레기 봉투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으며 간신히 쓰레기가 담긴 비닐을 가까스로 빌라 앞 쓰레기장까지 옮긴 유신애는 뒤죽박죽 섞인 쓰레기를 분리수거 했고 마지막으로 음식 쓰레기를 음식 쓰레기통에 부어버리고는 도망치듯 쓰레기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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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아버지, 지난주에 재검사 하신 거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네요. 
이번에 퇴원하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오늘 특별한 증상 생긴 것 없으시죠? 퇴원하실 때 집으로 모셔갈 보호자 있으신가요?”

김기동 씨 병실을 찾은 이 간호사는 김기동의 안색을 살폈다. 

“언제 퇴원하는데?”

- “오늘 퇴원 결정 받으실 분이 다섯 분이시거든요.
다섯 분 다 지금 건강 상태가 안정적이셔서, 
담당 선생님께서 아마 점심 식사 전에 결정해서 알려주실 거에요. 
이 전에 한 것처럼 하면 오늘 오후도 퇴원 가능하실 거고, 내일 오전에는 확실히 나가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김기동 씨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는 이 간호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따라갔다. 
“지난번에 병원비 안내도 된다고 했지?” 

- “네, 할아버지는 안 내셔도 되세요.” 

김기동 씨는 병실을 나가려는 이 간호사에게 한마디를 더 건넸다.  

“다른 환자들은 돈 내나 안내나?”

- “아, 내시는 분들도 있고 할아버지처럼 안 내시는 분들도 계세요. ”

“내는 사람은 왜 내는데?”

“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요. 
그리고 좀 있다가 점심 가져다 드릴게요. 가족 분들에게 연락 한번 해보세요. 
내일 모시러 오실 수 있냐고요. 혹시 오늘 오후에도 가능하신지도 물어보시고요.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일단 여쭤만 보세요.”

이 간호사가 나가며 문을 닫기도 전에 김기동은 충전 중이던 핸드폰을 급히 집어 들었다. 
전화번호 목록에서 ‘김환식’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말이 흘러나왔다. 
김기동 씨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다시 통화 버튼을 눌었다. 이번에는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왜 전화를 안 받아! 어!”

-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전화하셨어요?”

“통화를 하고 있어도 새로 전화가 온다고 알림이 뜨잖아. 그러면 바로 끊고 내 전화를 받아야지, 뭐하는 기야!”

김기동 씨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전화기에 대고 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 “아… 소리 좀 그만 지르소. 저는 어디 통화할 데가 없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통화할 수 있는데 왜 그래 화를 냅니까? 네?”

“…하여튼 내 오늘 퇴원한다고 하니까 데리러 오거라.”

- “퇴원이요? 아버지 음성 받았습니까? ” 

“증상도 없고 음성 나와서 오늘 퇴원하라니까 준비해서 오너라.”

- “오늘 오후에 일이 있어서 제가 못 갈지도 모르는데, 명식이 보고 가라고 해놓을게요.”

“명식이? 명식이보고 일찍 오라고 해라. 늦으면 안 된다고 꼭 해라.”  

- “네, 아버지. 퇴원하시면 올라갈게요.”




김기동 씨는 통화가 끝나자 마자 옷장에서 가방을 꺼내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장과 서랍 안에는 그 동안 받은 간식거리가 제법 많았다.

“김기동 님, 식사 왔습니다.”

점심 식사가 병실에 도착했다. 
자원봉사자는 웬일로 그대로 접혀있는 침대 테이블을 펴고는 식판을 놓았다.

- "할아버지, 가방은 왜 챙기세요?”

“퇴원 준비한다.”

- “그런데 할아버지, 오늘 퇴원한다고 누가 그러대요?”

“간호원이 아까 들어와서 음성이라고 했어, 나갈 준비를 해놔야 나가지.”

자원봉사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김기동 씨는 챙기던 짐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테이블로 와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반찬 그릇과 국 그릇까지 전부 말끔하게 비우고는 병실 문 앞에 식판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침대 옆으로 돌아와 가만히 시계를 주시했다. 배를 쓸어 내리며 살짝 걷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시계바늘만 주시하던 김기동은 30분이 지나자 약봉지를 집어 들었고 이어 침대 옆에 둔 약병들을 열어 먹을 약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을 먼저 마시며 각 약들을 차례로 먹었고 약을 다 먹은 김기동 씨는 평온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 “할아버지, 잠시 일어나 보실래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눈을 뜬 김기동은 일어나지 않고 누워서 눈만 껌뻑였다. 
김기동을 깨운 건 이 간호사가 아닌 다른 간호사였다. 

“김기동 할아버지 퇴원 내일 오전입니다. 아침 드시고 보호자 오시면 저희와 같이 내려 가시면 됩니다. 저희한테 얘기해주세요. 보호자 오실 수 있는지”    

- “오후에 퇴원이라고 했잖아.”

“아니요, 오후가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던데요. 
일단 오후는 안 되고 내일 퇴원하십니다. 저녁 드시기 전에 미리 짐 좀 챙겨 두세요.”

- “……”

김기동은 간호사가 나가자 천천히 일어났다. 
아까 정리하려던 짐이 여기저기 그대로 널려 있었다. 가방을 꺼내어 짐을 담기 시작했다. 
옷장 안에는 병원에 올 때 입었던 점퍼가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걸려 있었다. 
김기동 씨는 천천히 짐을 정리하다가 피곤했는지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 “아버지, 명식입니다. 좀 어떻습니까? 퇴원한다면서요, 제가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오늘 오지 마라. 퇴원이 내일이란다.”

- “그래요? 그러면 형한테 전화해서 내일 모시러 가라고 할게요. 저는 내일 바쁩니다. 
그리고 음성 나와도 또 재감염 된다고 하니까 어디 다니지 마시고 집에 계셔야 합니다. 
성훈이 보고 아버지 집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거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거기 가도 아버지한테서 옮으면 당장 큰일이니까요. ”

“내한테 옮는 게 아니라 내가 걔한테서 옮을 일이 더 문제지. 
균이 버글버글한 중국에서 온다는 놈이 어디 여기를 와. 오지 말라고 확실히 말해놔라. 
자기 집에 가면 되지 왜 여기를 온다고…  ”

- “중국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집이 좀 지금 엉망이라서 그럽니다. 
친구들 만나고 하기도 대구가 좋으니까 거기 간다고 했지요. 안 갈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들어갑니다.”


김명식은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내고 형 김환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내일 퇴원이라는데. 나는 내일 못 가.”

-“내일이라고? 오늘 오후라 하더니만, 그러면 내가 내일 갈게.”

“성훈이가 아버지 집에 간다고 형이 말했어? 
성훈이가 대구를 왜 가? 거기 가서 전염이라고 되라고?”

-“니가 지난번에 성훈이 중국에서 오면 대구 보낸다고 해서 내가 얘기했지.”

“그때는 코로나 없었을 때고, 지금 노인네 걸려서 저러고 있는데 그 집에를 보내면 되겠어? 
혼자 뭘 안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데?”

-“… 됐다. 아버지 퇴원 하시면 빨리 찾아 뵙고 식사나 이런 것이나 좀 챙겨라. 
우리는 퇴원하는 날 같이 집에 가서 청소하고 반찬거리 해놓고 할거다.”

“우리는 알아서 할 테니까 내일 아버지 퇴원이나 잘 시켜. 병원비는 안 나온다니까 짐만 잘 챙겨서 모셔다 드리면 되겠네. 그리고 형도 조심하시고.”

-“알겠다. 그리고 삼 십 만원 부쳐라. 아버지 지난번 생일 용돈 드리게.”

“네. 딸깍”

김명식은 전화를 끊었다. 이미 회사에 오후 반차를 낸 상태라 통화 끝낸 명식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집 근처 당구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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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님, 좀 어떠세요? 잠깐 일어나 보실래요?”

김기동 씨가 눈을 떴다. 의사와 간호사가 김기동 씨의 병실에 와있었다.

“어허흠…”

잠이 덜 깬 김기동 씨는 눈만 뜬 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까 가슴이 아팠다면서요? 지금은 어떠세요?”

방호복을 입은 의사는 김기동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며 안색을 살폈다.  

“약 묵었어.”

김기동 씨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까 간호사한테 숨 안 쉬어진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내일도 증상이 계속 있으면 엑스레이 한 번 찍을게요.” 
“……”

“필요한 것 있으시면 간호사한테 말씀해주시고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곧 퇴원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식사는 잘하신다니 빨리 나가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내 병원비는 누가 와서 냈습니까?” 

“아, 병원비는 안받습니다. 나라에서 다 해줍니다. 그 동안 가족 면회가 안 돼서 힘드셨을 건데,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그런데 퇴원하셔도 사람들 만나는 것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럼, 쉬세요.”



김기동 씨는 병원비가 무료라는 말에 갑자기 잠이 확 깨었는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옷장 안에 걸어두었던 점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무언가 확인하는 듯 지갑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때 마침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광주 사는 큰 아들이었다. 

(전화통화) 
“여보세요?”

- “아버지, 접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

“어, 했다.”

- “병원에서 퇴원 언제 하랍니까? 퇴원해도 자가 격리하라고 한다던데, 의사가 그라죠? 근데 성훈이가 중국에서 다음 달에 온다는데, 와서 아버지 집에 좀 있을것이라고 간다는데 오지 말라 해야겠지요?”

“누가 와? 오지 말라 해라! 중국에서 병 숨겨서 온다.”

- “그거는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아버지 식사 잘 하시고
계시면 퇴원 때 큰 며느리랑 모시러 갈게요.”

“니 내 말 좀 들어봐라. 옆에 병실에서는, 면회는 안 돼도 온 가족들이 병원에 찾아와서 창문 밖으로 얼굴 보고 간단다. 음식 같은 거 싸가지고 와서 병원에 일하는 사람들한테 주고 가고 그런다는 데. 느그는 오지도 않나? 병원에서 뭘 좀 갖다 주고 해야 대접을 해주는 거야. 내가 여기서 특별 대접 하나 못 받고 이래 있다. 아나?”

- “함 가려고는 하는데… 아버지, 수하가 이번에 시험을 보는데 병 걸리면 절대 안 돼서 식구들 아무도 어디 안 다니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험이 끝나야 뭘 해도 하겠습니다.”

“…… 알겠다. 그… 온다는 그 놈 보고 중국에 전화해서 내 집에 오지 말라고 말해 놔라.”

전화를 끊고 김기동 씨는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승용차 몇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가족들이 음식을 싸서 환자 면회를 오는 듯한 모습은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기동 씨는 한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보다 침대에 다시 누웠다. 눈을 뜬 채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시계를 보고는 다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손과 발을 까딱거리면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물은 한 모금 마신 김노인은 침대 옆에 놓인 성경책을 펼쳐 들었다.

잠시 성경을 읽는 듯하던 김 노인은 그러고 이내 핸드폰을 열어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57로 적힌 메시지 숫자에 놀라지 않고 그 단체 발송된 문자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도착한 메시지 중 몇 개를 재전송을 하고는 핸드폰을 닫았다. 그리고 벽 시계를 쳐다보았다. 

3시 50분 52초, 52초 54초……

시계를 쳐다보고 가만히 앉아 있던 김기동 씨는 옆에 펼쳐놓은 성경책의 페이지를 읽으려다가 또다시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는 제사라는 단어를 검색 창에 쳤다. 이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제사 대행을 누르고 새 화면으로 뒤따라 나오는 홍보 내용을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전부 읽어 내려갔다.  



김기동 씨는 제사를 대행해준다는 업체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찬찬히 내용을 읽었다. 

[… 고인을 위하여 자손과 친지가 추모하고자 정성된 마음으로 혼을 위로하고 생전의 은덕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제사입니다. 매년 정해진 날 경건한 제를 올려 자손들이 조상을 기억하게 하는 아름다운 관습은 우리나라의 전통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제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생전에 자손에게 조상을 기억하고 모시는 제사를 가르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우리 땅에서 난 재료와 경건한 마음으로 만든 음식을 정성껏 차려서 제를 치러 드립니다. 언제든지 오셔서 참관하셔도 좋습니다.]

[…아들은 일 년에 서너 번씩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 부모를 기억해줍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아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제사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영생하는 방법은 제사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들의 입장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식은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은 얼마 못 살다 죽는 그런 찰나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구한 먼 조상들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은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울러 자신의 아들도 이렇게 자신을 기억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자신의 사후에도 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도가 됩니다…]

[… 국내 선교사들은 조상 숭배를 우상숭배로 여기며 전면 금지했지만 부모님을 살아 생전에 봉양하고 효를 다하는 것을 맹 중요하게 여겼다. 기독교에서 강조한 공경의 자세는 보다 실천적인 효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복음 전파를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우리가 부모님께 지극한 효를 행하면 그들에게 효의 실천의 참 길을 보여주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동씨는 갑자기 고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듯 중얼거렸다. 오전 내내 긴장했던 얼굴이 약간 여유를 찾은 듯한 모습으로 옆 탁자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서랍 속에 넣어둔 사탕 봉지를 뒤적거려 꺼내 사탕 하나도 입에 까 넣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기대 앉아 병실 문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병실 문을 쳐다보던 김기동 씨는 핸드폰을 열어 아까 본 링크 몇 개를 여러 명에게 공유했다. 

[공유하기 :
최장로, 장권사, 박목사, 임구역장, 최간사, 김환식, 김은숙, 김명식, 김정식, 유신애, 백희경, 김수하, 김성훈, 김수훈, 김미하…]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어도 답장 메시지가 오는 알림 소리는 바로 들리지 않았다. 

“카톡!(카톡알림소리)”

답장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기동 씨는 바로 답장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김환식. 큰 아들이었다. 아들이 보낸 메시지에는 직접 쓴 내용은 없었고 자신이 보냈듯이 인터넷 주소 링크만 있었다.   

[ 코로나 확진 후 회복되어도 다시 확진될 가능성 있다. 방역전문가 이기무 소장은 코로나19 확진후 완치 판정을 받아도 다시 재 확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소장은 정보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카톡!(카톡알림소리)”

몇 명이 짧은 아멘 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던 김기동 씨는 다시 얼굴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소리를 질렀다.

“간호원! 간호원! 나 지금 가려워서 죽겠어! 거기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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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나 숨이 안 쉬어져. 숨이 안 쉬어 진다고! 이봐!”

김기동씨는 가슴을 움켜쥐고 간호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환자복을 잡아 뜯으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김기동씨는 입원실 유리 창문 쪽을 계속 쳐다 보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이 없자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악! 숨이 안 쉬어 진다고! 환자가 부르는데 왜 아무도 안 쳐다보는 거야!”
소리치던 김기동씨는 의외로 간호사 호출 벨을 누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때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기동 할아버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필요할 때 여기 벨 누르시라고 말씀 드렸죠. 소리 지르시면 목 아프시니까 여기 벨을 누르세요.”
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숨이 안 쉬어진다고 내가! 가슴 통증이 또 심해졌다. 빨리빨리 부르면 와야지 말이야! 아참, 간호원부터 좀 바꿔 줘!”

김기동 씨는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간호사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할아버님, 지금 말씀 크게 하시는 것 보니까 호흡 곤란은 아닌 것 같아요. 가슴 통증이 있다고 하시니까 담당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진통제 투약 해드릴게요.”

“아니, 내가 숨이 안 쉬어진다는데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간호원 주제에 환자를 잘 돌보려고 하지는 않고 밖에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있재?” 

김기동 씨는 아직 화가 치미는 듯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김기동 할아버지, 이제 점심 드실 때 되셨어요. 챙겨서 갖다 드릴게요. 그리고 필요하시면 이 벨을 누르세요.”

이 간호사는 김 노인의 항의에 익숙한 듯 태연하게 환자 상태를 둘러보고 병실을 나왔다. 
방호복을 입은 이 간호사가 얼굴에 쓴 고글에는 김이 서려 있었고, 흐릿한 김 뒤편으로 지쳐 보이는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김기동 씨 병실을 나온 이 간호사가 기록을 남기고 담당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간호사에게 아래층 병실에 다녀온 다른 간호사가 다가왔다.  

“저희 12층 환자 중 세 명 정도는 이번 주에 퇴원할 것 같아요.  그런데 10호실 김 할아버지 안 좋아지셨어요?”

“아니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좀 심적으로 불편하신가 봐요. 그러게, 재검사 결과가 언제 나온대요? 환자들 모두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면 좋으실 텐데요.” 라고 이 간호사가 말했다.

“네, 다들 힘드시겠죠. 김 할아버지도 갈수록 심해지시네요.”

“선생님도 힘내세요. 환자분들 식사 나눠드리고 우리도 조금 쉬어요.”

“그래요. 전부 천재지변 전염병 탓이지 누구 탓이겠어요.”


방금 전까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호소하던 김기동 씨는 간호사가 나가자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환자복을 고쳐 입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계속 지켜 보았다. 

11시 58분 15초, 16초, 16초......
12시 10분 30초, 31초, 32초……
12시 11분 02초, 03초, 04초……

김기동 씨는 침대 식탁을 세워 펼쳤다. 
12시 15분 45초, 46초, 47초……
12시 17분 9초, 10초, 11초……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점심 식사가 도착했다. 
이 간호사가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할아버님, 식사 왔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문 앞에 내려놔 주세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식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왜 이리 늦게 왔어! 다른 방에 먼저 주고 왔나?”

“아, 네 조금 늦었어요. 배고프셨죠? 맛있게 드시고 약 챙겨드세요.”

이 간호사는 식판을 탁자에 내려두고 서둘러 옆 병실로 갔다.
김기동 씨는 시선을 차지한 식판에 놓인 반찬 그릇 뚜껑들을 조심히 열었다. 오늘 점심 반찬은 생선구이와 오이생채, 고사리무침이었다. 국그릇 뚜껑을 여니 소고기 무국이 나왔다. 김기동 씨는 고사리 무침 뚜껑은 도로 덮어버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생선 살을 발라먹다가 뼈에 붙은 살까지 다 먹으려고 뼈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다가 퉤 뱉어냈다. 국물까지 얼추 다 마시고 식사를 끝낸 김기동 씨는 발라낸 생선 뼈 조각과 씹다 뱉어낸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보이는 식판을 대충 들어다가 병실 문 앞에 내려두었다. 지저분한 식판 위에 고사리 반찬 그릇의 뚜껑은 그대로 덮여 있었다.

김기동 씨는 점심 약 봉지를 챙겼다. 당뇨약과 혈압약 병에서 먹을 알 수까지 헤아렸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서서 다시 벽 시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식판을 회수하는 봉사자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기동 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고사리를 왜 먹으라고 주나? 그게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남자 전립선을 다 죽인다는데. 병원 밥에다가 그런 거를 넣어서 환자 먹으라고 주나? 거기, 아줌마. 가서 애기 좀 해. 지난번에도 내가 한 번 말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나.”

봉사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할부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고소하게 고사리 볶아서 드린 건데, 좋은 대학 나온 똑똑한 영양사가 다 연구해서 드시라고 하는 거에요. 고사리가 몸에 안 좋다는 거 가짜뉴스에요. 믿지 마세요. 근데 할부지 전립선 어디다 쓰시게? 흐흐”

중년 여성 봉사자의 농담에 기분이 상한 김기동 씨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병실에 서서 다시 시계를 보던 김기동 씨는 12시 55분이 되자 약봉지를 뜯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기침 증상을 완화한다는 가글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진통제를 처방 받아 병실로 왔다.

“김 할아버지, 이거 진통제에요. 아까 가슴이 아프다고 하셔서 일단 이거 드시고 오후에 선생님 회진 하실 때 다시 봐 드릴 거에요. 약 지금 드시면 돼요.”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의 말에 아무 대꾸 없이 입만 계속 작게 우물거렸다.  

“할아버지 아시겠죠? 이거 지금 드시면 되요. 지난번처럼 반만 드시거나 하지 말고 두 알 다 드셔야 해요. 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하는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무표정하게 계속 입만 우물거렸다.

“아까 제가 말씀 드렸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 벨 누르시고, 이 약은 지금 드셔야 한다고요. 알아 들으셨죠?”
이 간호사는 김기동 씨에게 당부를 하고 잠시 쳐다보다가 병실을 나갔다. 
김기동 씨는 이 간호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에 아무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시계만 쳐다보다가 60초 기침약 가글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손에 들고 가만히 보던 김기동 씨는 두 알 중 한 알만 먹고 다른 한 알을 서랍 속 봉지 안에 넣어버렸다. 그러고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는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다시 시계 바늘만 주시하던 김기동 씨는 한 시간이 딱 지나자 다시 일어나 침대 아래 가방을 열었다. 침대 밑에 둔 가방에는 약병과 약이 든 상자가 가득했다. 그 안에서 몇 개 병들을 꺼내더니 먼저 녹색 가루를 한 스푼 입에 털어 넣었고, 검은색 환을 한 주먹 삼켰다. 그리고 액상 스틱 하나를 짜 마시고 나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아래에 내려두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김 기동 씨는 손으로 한동안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쓸어 내리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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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간 1천만원으로 환산된 2018년 통계청 발표 가사노동의 가치에 별로 놀랄일도 없었다. 어차피 모든 이 사회에서의 차별은 노동과 그보다 더 낮게 취급받는 가사노동에서 비롯되었으니까.
모성으로 육아를 전담하는 여성 전업주부의 수가 많으므로 1천만원으로 환산되는 여성의 가사노동의 가치가 300만원 정도인 남자의 가사노동보다 세배가 많게 계산된다.
첫 통계에 의미를 두고 넘어가야겠지만, 엄마의 절대적 희생으로 정리되는 가사노동, 누군가 희생해야만 해결되는 일이 가사노동이다. 시간당 만원으로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애너벨 크랩은 「아내가뭄」이라는 책에서 가사노동에서 비롯된 차별적 요소를 이야기했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우리에게도 심각한 아니 더 심각한 차별 문제가 있다.
청소하는 노동력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회가 다른 노동에도 가치를 두지않음은 쉽게 예상된다. 또 역시 너무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인력, 쉽게 대체가능한 인력 즉, 그 일을 할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사람에 대한 가치가 저렴한 사회가 여성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낮게 쳐줄지 뻔하다.
애너벨 크랩은 전업주부의 가치에 대해 환산이 어렵다 말했다. 능숙함과 미숙함의 개인차에다 육아의 가치는 환산불가다. 거기다가 섹스의 대가까지 고려하면 환산이 불가능 하다고 했다. 전업주부의 가치는 이 정도로 희생적이다.
통계청의 겉핥기 계산이 안타까울 뿐이며, 그럼에도 시도했다는데 의미를 둘 뿐이다.
불꽃축제이후 난장판이 된 공원을 치우는데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본인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청소하기 싫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더러운 일을 대신해 줄 "희생하는 엄마"같은 역할을 원하지만 돈은 조금만 지불하고 싶은 철없는 게으름들이다.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고, 기본적 성격과 소양이 드러난다.
아직도 저렴하게 값이 쳐 지는 노동의 가치를 바로 잡아야 하며, 그래야 현재 벌어지는 차별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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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 청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집에서 낡은 물건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청소를 포기하기 쉽다. 청소를 해도 바닥 정도는 깨끗해지지만 낡고 허접해진 물건들이 새 것이 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열심히 청소를 해도 한 것 같지 않아보이고 청소하는 수고로움의 가치가 저평가 받게 되니, 자연스럽게 청소를 덜 하게 되고 그러면서 주변은 점점 더 어지럽고 낡고 우울해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물건에 대한 집착은,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그 틈에 끼어서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TV속 모습에서 너무도 많이 보고 있다. 심리적 문제가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표출되는 이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시무시함이 함께 드러나는 듯 하다. 심리적 고립감과 스트레스를 많은 쓰레기들 - 그들은 쓰레기를 재산, 돈이 되는 자원이라고 했다 - 을 끊임없이 주워다 모아 쌓는 행위로 해소하려 하지만, 피곤한 몸에 알콜을 들이붇는 행위가 정상이고 오히려 권장되는 이 사회에서 특별히 별 이상한 짓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가난한 사람들의 쓰레기집은 그들의 집이 원래 크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대의 트럭을 채워 옮기는 것만으로 치워지기는 한다. 그런 쓰레기들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는 심리는 참 이해하기 힘들다. 현재 살아있음을, 늘 하던 행동을 이어 함으로써 확인하려고 하고, 당장 순간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이 동물이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하긴 지금도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수많은 행동이 동물 시절, 본능에만 따라 살던 시절의 유산이기도 하다.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가난에 심리적으로 여전히 갇혀 살고 있다.
큰 냉장고를 두 대 이상 두고, 그곳을 채우기 위해 계속 사들이며, 일년도 넘게 냉장고 속에 보관한다. 가득찬 냉장고를 열어볼 때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만족하나보다. 옷장 속은 더 대단하다. 비록 당장 입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아도 절대 버리지는 않는다.
한때 부족해서 곤란을 겪었던 기억으로 인해 미리 사두고 모아두는 버릇은, 강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조차 없이 그저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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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집안에 들어서면, 제자리에 있지않은 물건들과 식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그릇들이 내 시야를 찾아 들어온다. 나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고 믿는다. 손에 든 가방만 내려놓고 양말도 신은 채 두시간 정도 이방 저방 청소를 하고 나면 씻을 기운조차 남지않는다.

내 몸을 청결하게 만드는 대신에 주변을 먼저 청소하고 나면 느끼는 청소가 주는 쾌적함, 기분이 상쾌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편안함은 내가 매일을 사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청소할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밖에서 묻혀온 더러움과 피곤함을 먼저 씻어 내주는 내몸 청소 샤워를 했을 것이고, 샤워벽만 물기를 닦아내고 바닥에 머리카락을 뭉쳐 주워 치우고 내가 벗은 옷과 수건만 빨래통으로 던져 넣었으면 됐을 것이다.

가끔 바닥구석을 뒹구는 머리카락과 먼지뭉치를 모르는 척 외면해보기도 하지만, 오래지않아 2~3일 내에 결국은 걸레봉을 들고야 만다. 마치 연체된 세금고지서 같이 결국은 내야하고 정리해야하는 청구서 처럼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것들이 매일 생겨난다. 먹다 흘려 마른 음식물 조각, 매일 꾸준히 빠지고 있는 머리카락, 아직도 어디서 왔는지 정확하지 않은 먼지뭉치들...
당장 물티슈로 발밑만 끼적거리다 점점 닦는 범위가 넓어지게되고, 반통 넘게 물티슈를 뽑아 쓰게되면 차라리 처음부터 걸레를 쓸 걸 하는 후회와 짜증, 내 인생이 청소로 소비되고 있다는 아까움이 몰려오며... 결국은 진이 빠질 때까지 청소를 하고 만다.

내야할 세금 청구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미뤄두고 그 돈으로 다른 걸 사는 순서가 바뀐 짓을 잘 안 해보아서 그런지 불편해서 못하겠다. 바닥 청소를 외면하고 설거지 거리를 쌓아두고 , 침대에만 훌쩍 올라가 누워 쉰다고 휴식이 되지는 않더라. 바닥의 먼지를 외면하자니 덮고 있는 이불에 묻은 진드기나 먼지 생각이 떠오르고, 베개에서 나야되는 상큼한 섬유유연제 향이 나지 않음이 갑자기 강조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라도 걸레를 빨아 들고 바닥을 닦았더라면 침대 위 내 이불의 정기 세탁시기까지 생각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예민함에 대한 한계가 있어, 특히 퇴근 후에는 어느정도 치우고 나면 청소에 대한 의지가 감소하는 체력적 한계가 있음은 분명했다.

하루종일 청소를 하며 보낸 날을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이 어질러진 상태로 있는 시간의 주기가 짧아지고 더 자주 닦고 더 자주 환기하며, 청소를 넘어 아예 서랍정리에 장식까지 하는 수준에 도달했던 것 같다.
서랍은 집어넣고 닫으면 잠시 시간이 정지되는 타임머신처럼 내 과거 기억이 저장되고, 다시 열었을 때 시간이 다시 이어져 흐르는 듯하다. 내 머리속 매일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순서없이 흩어져 있을때, 이를 수면을 통해 버리고 간직하고 정리 해야하는 것처럼, 서랍속 물건들도 나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 서랍정리란 오래된 숙제로, 과거의 나를 정리하고 기억할 -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만 골라 낼 수 있는 꼭 해야할 작업이다. 과거 물건 정리를 통해 현재 나를 탄탄이 하고 내일의 내가 있을 자리를 상상하게 해준다.

매일 충분히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지낸 후 든 생각은, 정리가 필요한 물건들로 가득찬 서랍이나 어디선가 몰려든 먼지뭉치가 바닥을 구르는 것처럼, 내 에너지를 쏟아 모든 것을 돌이킬 그 어지러움과 엉망이 바로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며칠은 어쩔수없이 때로는 지저분함을 느끼지 못하고 어지럽게 살아야만 하는 피곤함과 지침을 위해 내 에너지를 쏟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단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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