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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계속 모이는 도시는 유지된다. 인류가 만든 모든 문명이 모여있는 도시는 사람이 모여드는 한 변화하고 지속된다.
이 도시 문명의 혜택을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누릴때 까지 치열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정말 탐욕의 한계를 정하고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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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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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덥다.
자주 보는 이가 더운데 건강 조심하라는 인사를 시작으로 지구가 조만간 기상이변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며 걱정을 덧붙인다. 중년의 그는 현재의 기후가 과거와 다르다는 말에 덧붙여 사회구조가 갈수록 불공평해진다는 말을 자주한다. 가끔은 그가 그걸 바라고 있는건가 궁금하다.
날씨나 기온으로 불만이 없는 날이 일년에 며칠이나 될까? 호우에 태풍에 혹한에 가뭄에 그리고 혹서에 언제나 걱정은 있었다. 이렇게 무더위가 왔다가 또 지나가고 내년 여름에 열대야는 다시 찾아올 것이고 또 지나갈 것이다. 지구상 우리나라 위도가 그렇다.
매년 찾아오는 이런 혹독한 날씨에 대해서는 우린 잘 알고 있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우리가 이런 계절변화를 겪으며 살기에 시간의 흐름도 잘 알고 있고, 여러 산업도 발달하였다. 적응하고 대비하고 준비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다.
현실이 불만이고, 그 불만을 재기하지 않고, 그것을 이겨낼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희망이 없다며 세상이 종말에 가까웠다는 절망을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고 인정하고 굴복하면,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동인형적 수동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지상에서 걸어다니며 번식하고 살던 오랑우탄이 나무에만 매달려 살게 된 것이 인간 때문이라고 한다. 나무에라도 매달려 지금까지 종족을 유지하고 있는 의지가 놀랍다. 인간은 더 대단한 존재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들과 연대하고 협동할 줄 알며, 대단한 장치와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내고 있다.
인류와 지구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절망을 말하는 이들이 단지, 수명이 다해가는 노인들 뿐만이 아니라 희망을 잃은 청년들을 포함하는 것은, 자연의 힘에 굴복하는 것과 사회구조에 굴복하는 것이 비슷한 의미를 띄기 때문이다.
굴복하기까지 수많은 절망과 회의를 가지게 한 여러 사람들과 많은 일들이 누군가에게 있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속에서 찬물을 들이키며 하루를 잘 이겨낸 나자신이 자랑스러움을 느낄수 있는 시간은 중독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며 그립다.
다시 올지언정 잠시 쉴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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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가 보냈다.
도대체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아침부터 본능적 욕구에 몸부림치고 있으신 것인지...

여기저기에서 가입된 밴드가 여러개다.
아이를 기르고 있다면 특히 그럴 것이다. 아이들 반모임이나 취미모임 등  밴드는 카톡이나 카페와 달리 편한 부분이 있다.
요즘은 핸드폰의 여러 앱 사이에 공유를 할수 있는 좋은 기능이 있다. 연락처 같은 것을 굳이 찾아서 복사, 붙이기  하지않아도 되고, 메세지도 저절로 붙여진다. 여러 사이트간에 아이디 공유가 되고, 뉴스기사나 인터넷주소, 사진등이 화면 변경없이 공유된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이중적 생활이 원치않게 드러나기도 한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어디서는 예의바르게 메세지를 주고 받지만, 또다른 곳에서는 포르노사진 같은 것을 대단한 것 마냥 먼저 발견했다는 듯 공유한다. 그러다가 스텝이 꼬이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친구들이나 친목 모임에 장난스럽게 공유하려다가 아이들이나 다른 학부모가 포함된 모임에 공유해버리는, 실수라고 하기 참 부끄러운 일이 오늘 또 벌어졌다.
 학부모가 벌써 됐음에도 아버지들은 왜 그런 비정상적인 사진이나 내용에서 벗어날수 없을까? 결혼해서 남자와 살고있지만 정말 궁금하다.
 식욕을 못이겨 고도비만이 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매일 성욕을 못이겨 혼자만의 환상에 아침부터 빠져있는 건가?...
 남성들의 폭력성, 성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열등성은 우리 인류가 가진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정말 최근에 어느 지역의 늙은 남성 택시기사가 젊은 여성 탑승객에게 별 추잡스러운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욕이 본능이라 제어하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남자 정치쇼 출연자를 티비에서 보았다. 누구였지? 하여튼... 가지가지다. 알고 보면 더하겠지.
 우리가 가진 본능은 여러가지다. 생존을 위해 강자에 복종하는 것도 본능일 수 있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여 나만 행복하자는 이기심도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남에 대한 공감과 보편적 행복에 대한 고민으로 여기까지 힘들게 왔다. 너는, 우리는 뭘 했나?
10대도 아닌데 끓어오르는 성욕에 하루하루가 힘들다면, 이렇게 부끄러운 포르노 공유 실수를 저지른다면,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제발 가지시길. 같은 인류로 부끄럽다.
 잠깐, 조절이 안된다는 건 말도 안되는 핑계일 것이다. 남자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발정기가 따로 없는 인간남자가 오로지 본능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자라면서 꾸준히 학습이 된 것이고,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골라 그것을 이용하는 이기심일 뿐이다.
 플라스틱 일회용컵을 저렴하게 사서 잠깐 마시며 즐기다가 버리고 다음번에 또 새로운 컵을 원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쓰레기로 돌고 돌아온 미세 플라스틱을 원치않게도 꾸준히 복용하게 될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플라스틱 컵을 달라고 조르고 있다. 왜냐면 깨끗한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실때 당장의 내 기분, 내 본능이 더 중요하니까. 멍청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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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의 패배를 책임지기 위해 홍준표와 유승민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은 당선을 기대했던 자리 수보다 훨씬 적은 결과를 얻어, 그에 대한 책임으로 당대표 직에서 사퇴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지못해 '선거에서 졌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대표로서 선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고 득표에 실패한 책임도 분명히 대표에게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 사임하면 책임을 다한 것인가?
자신들의 위치에서 내려와 명예를 버리고, 월급여를 더이상 받지않고, 영향력 행사를 그만 하겠다는 것으로 4년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거에서 진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일까?

대학시절 한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끼리 모여 친목을 다지고 야외활동을 하며 이틀을 보내는 일정이었는데, 당시 행사진행을 담당 했던 한 학생이 행사과정 중 참가자들과 관련하여 무리한 일정진행을 시도하면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 라는 말을 했었다.
또다른 행사 진행자 중 한 사람이었던 나는 그때 그말을 듣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그에게 그러한 책임을 질 권한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나뿐만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 일정은 그의 주장대로 무리하게 진행되었고, 모두가 지쳤으며, 그렇게 모두가 하루를 참아내면서 시간은 지나갔다.
다시는 그와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었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학생들의 원망이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오지않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그 행사 이후 책임진다는 '그'는 그냥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뿐이었다.
지친 모두에게 아무런 사과도 없었고, 위로도 없었고, 반성도 없었다.
당시 우리는 어설픈 대학생이었고, 의리로 뭉쳤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래선지 현재 모두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사라짐만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이만큼 부담없기도 없지 않을 수 있을까? 사퇴를 하면 매달 벌던 수익이 없어지고 생계가 걱정될 개인이라면 이렇게 쉽게 그만둘 수 없고, 처음부터 독단적 결정을 하기도 어렵다.
공동의 책임으로 분산해야하고 그래야 가장 현명한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는 상식이 바로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 개인에게 쏠린 과한 권한을 나누어야 했다. 실패에 대한 결과는 모두가 나누어 져야하는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가 그냥 평범함으로 돌아와 1/n만 손해를 지기만 지면 된다면 이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지않은가?

처음부터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를 대표 자리에 앉힌 모두의 책임이고 그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던 것에 대한 것의 책임도 모두의 책임이다. 귀찮아서, 불편해서, 별일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두고 보았다.

실패한 조직은 사라져야하며, 겨우 살아남더라도 쇄신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실패에 대해 고찰은 필요하다. 인류보편적 가치와 공동의 삶을 위한 목표의 실패는, 개인의 삶에 매몰되거나 굴절된 시각을 가진 이들에 의한 잠깐의 실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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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다니던 치과를 끊고 새로운 치과를 찾아 가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걸 고민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었다. 나는 그 특정 치과의사에게 의존해버렸던 것이다.

치과는 항상 가기싫다. 

내 무질서한 치열과 여기저기 메워진 인공재료를 또 다시 확인해야하고, 듣기만 해도 시린 그라인더 소리는 정말 질색이다. 그 의사는 이미 내 진료기록을 모두를 알고있고, 또한 내 치아치료에 주요역할을 했기에, 그의 앞에 누워 입을 벌리는 것이 조금은 편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비록 그가 내 치아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고가의 치료를 권유하고, 한번의 치료로 될 일을 여러번 나누어 오게 하는 수법을 다 알면서도 계속 거기를 갔었다. 왜냐하면 내 주치의니까.

 스케일링을 위해 또다시 치과를 가야했던 나는 이번엔 정말 불필요한 신경소모를 줄이고 싶었다. 스케일링 하고난 뒤 잇몸치료를 추가로 2회 받으라는 얘기는 도통 이해가 안되었고, 예전에는 없었던 이런 권유가 바로 스케일링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나서 벌어진 의사의 수익을 위한 수법임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누워 입을 벌리고 있는 위압적 상태에서 이러한 권유를 들으면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늘 치료 후 기분이 별로이고, 다시는 안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치과치료는 내 약점이었던 것이었는지...

 

 나는 죽을 때 까지 안 아프고 싶다. 아프다는 소리를 버릇처럼 하면서 누군가 나를 보살펴주고 돌봐주길 바라는 사람이 되고싶지 않다. 나중에 허리가 구부러지던 무릎 연골이 나가던간에 잘 못 걸어도 내 가방 내가 들고 지팡이 짚어가며 내 스스로 걷고 싶다. 결국은 아파서 누워 지내는 시간이 오겠지만 끝까지 스스로 하려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안 아프려면 결국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고, 몸상태를 단단하게 만들어야하겠지.

 길들여지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버리는 과정, 그루밍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지만 익숙함에서 벗어나기는 의식적으로만 해결되는 일이다. 당장 치료가 급한 질병이지도 않는 치과 치료를 위해 다른 의사를 찾는 행동조차 이러저리 고민해야했던 내가 참 딱했다.

 

 새로 찾아간 집 앞의 치과는 아주 깨끗한 시설로 모든 병원 사람들이 젊고 친절하고 예의발랐다.

엑스레이 사진을 다시 찍어야했지만, 내 치아상태에 대해 혀를 차지도 않았고, 고가의 진료를 권유하지도 않았다. 꼼꼼히 스케일링을 해준 그 분에게 난 어색한 감사를 표시했고, 다음 주 치아메움치료를 예약하고 왔다. 물론 이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아주 고마운 치료이기도 하다. 

 

여기 아니면 안되는 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다시는 안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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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자신의 그런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부적절한 행동과 말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습관은 그것의 허용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 어릴적 80년대 후반에만 해도 길거리에서 서서 소변보는 남자가 아주 많았다. 어느 특정 담벼락에 소변금지라고 적힌 곳도 많았다. 물론 누구나 그런 모습이 보이면 싫었지만, 하도 많았기에 그런가보다 한 것이다.


살다보니 별로인 사람 감별법이 생겼다.

지난 이야기를 계속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주로 예전에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갔나를 자랑한다. 지금은 단지 운이 나빠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남 험담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  가까운 친구 사이에 남 험담은 흔한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힐링의 과정이라 보인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가 아닌, 만남에 있어 목적이 분명한 사이에서 남의 험담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인격의 밑바닥 수준이 보이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이라 넘어가면 되지만, 단 한 두명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러한 부끄러움을 보이고있다면 그 모임은 끝났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평판이 괜찮은 사람이 단지 나에게만 그렇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괜찮지 않다. 네 잘못이 아니다.    

 

토론대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진중권 교수는 절망하고 미래에 회의적인 대학생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꼰대같은 말을 했다. 물론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안다. 그래서 그는 연대하고 투쟁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그러나 내일은 그렇지 않아야한다.

당장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불쾌하다는 의사표시를 해야한다. 그 순간을 참고 넘어가주면 무언가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헛된 기대이다.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예의를 보여줄순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단지 나를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순간 나도 그들이 되어있을 것이다.

돈때문에 당장 별로인 사람들의 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유는 당연하다. 하지만 별로라고 느낀 그 순간부터  이탈을 준비해야한다. 실력을 쌓고 시야를 넓히며 내가 원하는 바를 차분히 생각해본다. 

무기력하게 그루밍 glooming되기는 순식간이다.

 

'여기가 별로지만 한번 참아볼까? 여기도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설마 날 죽이겠어? 어떻게든 경력을 쌓아야하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별로인 곳, 비상식적인 곳에서 이탈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분치 못한 능력을 가진 처지의 당신이 그저 참고 버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의 대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희생양에서 시작하여 방관자로 또 동조자로, 결국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나하면 비상식적인 직장이나 단체에서 오래 버티려면, 매일 매순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해야 하는데, 응력으로 튕겨져나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익숙해지고 그루밍되면서 위계관계가 일상화되어 자연스럽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사회나 제도 문화에 불만이 많은 사람에게는 뭐가 그렇게 항상 불만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근데 오히려 불만이 없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이 그렇게도 만족스럽고 아무 문제도 만들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다가올 보편적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반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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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웃기지도 않은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너무도 많은 부조리와 말도 안되는 이기심이 마치 역사의 필연성인냥 존재한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는 시절은 정말 얼마 되지않았다. 하지만 원래부터 모든 사람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무엇이 옳은지 안다.
때론 어쩔수 없이 방관자가 되기도 하고, 공범이 되기도 한다. 가만이 있기는 아주 쉽기 때문이다. - 가만히 있었다면 계속 가만히 있어야한다. 하지만...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기적이고 단기적 이익에 급급한 행태에 기가 막히지만 우리가 할일은 화를 내고 박차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똑똑히 지켜보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이들은 계속 항상 이기적이지 않다. 자신들도 그런 이기적 행동이 유치하고 부끄러움을 알기때문에 때론 배려 깊은 양, 인격적인 양 군다. 이때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그들이 가식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원래 모습을 안다고 크게든 적게든 드러내야 한다.
타인과 자신의 때론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모습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그것이 바로 진짜 독선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당장 이익에 매몰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처절하게 기억해야 앞으로 점점 그런 행태를 줄일수가 있고 영원히 안할수 있는 것이다.
어제를 잊어먹고 낯부끄러운 짓을 또 저지르는 멍청한 짓을 하는 이들 앞에서, 정색한 표정을 지으며 '난 네가 한짓을 기억하고 있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도 세상의 많은 부조리능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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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는 여성은 어찌보면 좋은 기회를 가진 것이다.

주목받지 못해 그저 작성한 글을 sns를 통해 남기는 경우가 넘친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혹은 본인을 밝히고 싶지않아 익명으로 이야기를 남기는 것 같다.

40대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그런 수치스런 피해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순진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 적 있다. 바로 속으로 거짓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렇게 이야기 한 건 자신이 직접 당한 피해가 아니라서, 단지 주위에서 일어났고 잘 모르는 사람이 당한 것일 뿐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참 이기적이다.

미투 관련 글의 검색어를 보고 참... 그랬다. 검색어가 미투운동을 찾는 것이 아닌, 성적 관심을 찾는 단어였다. 참혹한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과거에는 성적 판타지 같은 영화 소재로 사용한 적이 있기도 했으니... 확언하건데 이런 여성은 드물다. 남성은 참 성적인 존재이다.

예전 20대때 내 주위 남학생이 하는 말이 기억난다. "솔직히 말하면 남자는 하루종일 그 생각뿐이다. 잠깐씩 까먹는 순간 빼고."

남성은 스스로 생식본능을 줄일 필요가 있다. 여성이 피임약을 먹는 것처럼. 

앞에서 말한 그 40대 여성이 미투를 이야기하면서 꼭 덧붙이는 단어가 꽃뱀이었다.

미투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꽃뱀이 실제 악의를 가지고 남성을 이용하며 기런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매주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이라서 보수적 남성중심 구조를 가지는 교회 조직에 세뇌가 되었을 것이고, 본인의 여러 처지상 그렇게 얘기했다 이해가 가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는 그와 미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았다.

 

인간은 권력을 쥐고 흔들며 하고싶은 대로 해야 행복한 존재일까?

과거 우리 사회에서 정치, 돈을 가진 남성권력은 사회에서 자기 마음대로 군림하였고, - 마치 김정은 정권과도 같았다. 아래 작은 남성권력은 더 작은 남성권력 위에 군림하였고, 하위 남성 권력은 자존감을 상실한채 존재했지만 결국 가정내에서 여성과 자녀 하위 구성원에 권력을 행사함으로서 이 부당한 권력 상쇄구조에 동참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불평등함과 부당함에 눈을 감는 이들은 공범이다.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라고 하는 무책임함이 너의 무죄를 보장하지 않는다. 조금씩 나아져 가는 사회에 무임승차를 하는 이들에게 내리라고 말하고 싶지만 곧 깨닫겠지. 무임승차가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대부분 당장의 작은 이익을 고민없이 한번에 무시하고 살기는 쉽지않다. 그렇게 얻은 돈이나 기회로 살 수 있는 행복의 가치가 결코 적지 않아서다. 잠깐 무시당하고 잠깐 눈감고 얻은 아주 작은 돈으로 행복감을 잠깐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갈수록 괴물이 되기전에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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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 수 있는 사회라는 곳에 조금만 발을 담그면 느낄 수 있는 꼰대문화-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사고와 방식을  만만한 상대에 강요하는 문화에 미래는 없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자리잡은 관리자 인 50대나 60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 세대서부터 쭉 이어져온 우리의 찬란한 유산이다. 그만큼 해결은 어렵다.
열 명의 열린 마음이 있어도 한 명의 꼰대가 있다면 그 자리는 꼰대 승 이다.
당장 무엇이든 잡아먹을듯한 꼰대 아니면 온순하고 이기적인 초식동물만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라서이다.

답은 "저항"이다.
이미 그들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기는 늦었다. 이제는 행동을 할 때다. 좀 더 기다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간극에 더 큰 갈등으로 전쟁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다.
집을 구매해서 기존 소유자의 양도차액을 확보해주어서는 안된다.
결혼을 해 육아퇴직을 하면서 또 한명의 꼰대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남편과 시월드 말이다.
데쓰노트를 써라. 무능력하면서 이기적인 꼰대 앞에서 무기력하겠지만 돌아서서 잊어버린다면 만만한 초식동물로밖에 살 수 없다. 기록하고 기억하라.
나의 방법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듯 하다.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고 엉뚱한 대책만 쏟아지고 있다.

아래로부터 변화보다 위로부터의 변화가  절실하다. 질문할 줄 모르고 온순한 아래동네는 위를 들이받기 역부족이다.
그러나, 희망을 가져본다. 사람은 의외로 휙 바뀌기도 하더라.
우리는 자신의 그늘은 못 보아도 남의 그늘은 잘본다. 똑똑하고 센스있는 우리는 절실함을 느껴야하고 우리 각각 존재에 대해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더 절실히 느껴야한다.

당장은 어쩔수 없더라도 박차고 떠날 기회를 노려라. 참고 눌러앉다간 거울속에서 또 하나의 꼰대을 만날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99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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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모으고 가지고 노는 어른,  키덜트족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어른을 위한 피규어 판매대가 마트마다 환하게 설치되고 북적인다. 취향이고 취미니 남들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장난감을 찾는 마음에서 보이는 단순한 소유욕과 시각적 욕구충족 그 이상을 헤아리긴 힘들겠다.
피규어 나름의 스토리가 있고 예술성도 있어 고가임에도 수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만화가 담은 철학성도 분명있다. 하지만 화려하고 귀여운 시각 뒤의 철학을 보려는 이들이 과연 많을까?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실수를 줄이고 감정을 숨길 줄 알면서 스스로 성숙하다 생각할 것이다. 경제적 독립까지 이루면서 세금을 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으며 이제  배우려하기보다는 누리려 한다.
편협한 식견으로 노년기를 보내는 지난 세대를 보면서 안 저러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반복되는 일과와 순간적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매일은 결국 그들의 데자뷰만이 기다릴 뿐이다.
원초적인 물음,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없이 과연 무엇을 깨달을 수 있고 얼마나 성숙할 수 있을까? 내 태생적 뿌리인 부모와의 감정적 단절과 내 가치관이 상식인 사회에 대한 낯선 질문을 시도해 보는 것이 성찰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자기 성숙, 성찰은 혹독한 노력과 투자 없이는 오지않는다. 모두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겠지만 그런 순간들에 얽매이지 않고, 다만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예상해보다보면 내 성찰의 방향은 보일 것이다.
성숙해져야만 비성숙했던 시절을 깨달을 수 있다.
제발 어른이 되길...

독서하는 여인 1937 이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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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주가게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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